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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Issue - '에콰도르의
혼란과 희망' 메모(이선태PD)
취재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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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0일, 루시오 구티에레스 에콰도르 대통령이
의회의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축출됨.
브라질 대사관저에 피신해 있던 구티에레스는 나흘 후 브라질로
망명함.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날아감. 4월 29일 도착.
에콰도르는
어떤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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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북서부 적도상에 위치. 19세기 초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북쪽으로는 콜롬비아, 서쪽과 남쪽으로는
페루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여러 차례의 국경분쟁 끝에
국토가 많이 쪼그라듦. 매번 뺏기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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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1,300만 명 정도. 원주민인 인디오가 전체 인구의
35% 정도이고,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약 45%, 백인이 10%, 흑인을 포함한 나머지가
10% 정도 된다고. 다만 정확한
인구 통계를 내기가 어려워 추정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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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화폐를 달러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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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1의 바나나 생산국인 덕분에 바나나가 주요 수출품이었으나
1970년대 초 석유가 생산되면서
석유가 총 수출액의 40% 가까이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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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토는 해발 2,850m 고지에 위치한 탓에 처음 가는
사람은 절대 뛰어다니면 안된다고. 산소
부족으로 쓰러진대나 어쩐대나. 그리고 고혈압 증세가 있는
사람은 첫날에는 샤워도 하지 말라고 함.
취재팀은 주의 사항을 잘 지킨 덕분인지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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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국민성이 무척 순박하다고 함. 한국 교민들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함. 다만 갈수록
조금씩 험해지는 것 같긴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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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00명의 한국 교민이 거주하며 대부분 상업에 종사.
루시오
구티에레스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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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원주민과 연합하여 대통령 자밀 마와드를 몰아냈던
군부 쿠데타의 주역. 당시 현역 육군 대령의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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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2003년 1월 취임함.
왜
대통령이 쫓겨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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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이 ‘정신적 무능력’을 이유로
의회에서 면직되고, 2000년 자밀
마와드 대통령이 경제정책 실패를 계기로 촉발된 군부 쿠데타에
의해 하야하는 등의 정치 불안의
연장선상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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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에레스는 원주민들과 좌파정당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취임 후 친미정책으로
선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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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남미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로 에콰도르를
이용하고 있으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구티에레스를 당선시키고(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경쟁자였던
원주민 후보를 미국이 압력을 넣어 밀어냈다는
얘기가 있음.) 정책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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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정책과 초긴축 경제정책으로 지지층이 이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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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제1야당인 기독사회당 당수 가족의 은행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것이 미움을 사, 2004년
11월 기독사회당 인사가 많은 대법원에서 탄핵이 시도되어
간발의 차로 부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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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위협을 느낀 구티에레스가 쫓겨났던 전직 대통령들
계열의 의원들을 규합해서 31명의
대법관 중 27명의 친야 성향 대법관들을 교체함. 그 후
부패의 대명사였던 부카람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들을 사면하고 귀국시킨 것이 국민의 분노를
유발함. 더러운 정치 거래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짐. 이번 시위의 요인을 정치 윤리의 실종에서
찾는 시각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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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3일부터 키토 시내에서 시위가 본격화되자
구티에레스는 대법원을 해산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킴. 그리고 공개적으로
시위대에게 범법자들이라고 하는 등 욕설을
한 것이 시위대를 자극함. 평소 남들에게 불만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것이 에콰도르 국민성임에 비추어 구티에레스의 공개적인
욕설은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짐. 마침내 4월 20일 ‘직무
유기’와 각종 부정, 족벌정치, 비상사태의
위헌성 등을 이유로 의회의 의결로 구티에레스를 대통령직에서
축출함. 그 후 알프레도 팔라시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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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TV방송 앵커의 분석에 의하면, 구티에레스가 쫓겨난
이유는 한마디로 자기보다 힘센
집단(야당)에 대들었다가 당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구티에레스에게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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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에레스는 한마디로 무식했다. 학사와 석사의 중간쯤
되는 학벌이라는데 실제로는 너무나
무식하다는 것이 그에게 자문을 해준 대학교수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국무회의 도중에 방을
나가 큰누나한테 전화해서 의견을 물은 후 그대로 결정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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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정치가 도를 넘었다. 친인척 대부분이 공공기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고 함. 더더욱 큰
문제는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중요한 직책을 맡아 정책을
좌지우지한 것. 심지어 외국과의
협상 대표로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을 임명해 말썽이
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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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황의 악화는 대통령 하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물론 경제가 열악한건 사실이지만 구티에레스
이전부터 지속돼 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에콰도르 국민들이
시위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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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일반 시민들의 시위가 구티에레스의
실정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의원들이 구티에레스를 축출한 것은 권력 투쟁의 산물인
것으로 보임. 한마디로 동상이몽이었다고
해야 할지...... 일반 국민들은 현재의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을 불신하고 있다.
이번
시위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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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주로 시위를 한 사람들이 원주민이었던 데 반해
이번에는 키토의 일반 중산층 시민들이
주축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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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리 밤에도 시위를 하고 주말에도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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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구티에레스 시위대가 지방에서 올라와 양 시위대간 충돌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 또는 계층에
따라서 구티에레스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뒤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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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라 루나’ 라디오가 시위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이번에는 특히 시위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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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사용 인구가 늘면서 문자 메시지로 시위대를 모으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 됐다고.
구티에레스가
브라질로 망명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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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토 시내는 아주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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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통령궁 앞에서는 여전히 이삼십 명 정도의 소규모
시위대가 모여 새로 대통령이 된 팔라시오도
물러나라고 외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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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위의 주축이 되었던 시민들이 모여 ‘민중자주의회’를
만들어 국정 전반에 관한 의견들을
모아 의회에 제출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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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시민들이 새롭게 정치의식에 눈을 떠 구티에레스
대통령을 몰아내긴 했지만 혼란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임. 국회에도 자질이 없는 의원들이 대부분이라는
비판이 있고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감이
국민들에게 가득 차있어 정상적인 민주화가 이룩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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