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타임머신> 가수 김장훈의 학창시절 속으로!.
* 우리나라 콘서트 공연계의 독보적 존재, 김장훈!
그의 파란만장한 대학시절을 <타임머신>에서 최초 공개한다!

1991년 데뷔 이후 수많은 공연을 선보이며 ‘콘서트의 달인’이라 불
리는 가수 김장훈. 새로움에 대한 과감한 시도와 파워 넘치는 에너
지! 만능엔터테이너 김장훈의 파란만장한 대학시절을 공개한다. 
대학시절, 김장훈의 후배들은 그의 ‘봉’이었다?!
그의 음악인생에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었던 대학 동아리방에서의 
‘노숙(!)’ 생활. 
많은 경제적, 정신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쳐
났던 김장훈은 자유롭게 연습이 가능했던 록음악 동아리 ‘천하대
장군’의 방주인이 된다. ‘나누는 삶’을 생활의 지표로 삶고 있던 
그. 덕분에 김장훈의 후배들은 졸지에 그의 의식주를 공동 책임져
야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되었다는데...하지만 얻어먹는 생활에도 불
구하고 늘 당당했던 김장훈. 그의 이론인 즉, 있는 자가 없는 자에
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나? 그러던 어느날 김장훈의 
‘봉(?)’이었던 한 후배가 등록금이 없어 등록을 하지 못하는 사건
이 발생했다! 돈 한푼 없던 선배 김장훈, 과연 그는 후배를 도울 
수 있었을까?  당당함과 카리스마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인
간미. 늘 엉뚱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노래를 선사하는 김장
훈...어려웠던 시절,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신세도 졌지만, 위기
에 빠진 후배를 위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대학시
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시청자 퀴즈> 양탕국을 아시나요?.
* 1900년대 초,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온 국민을 열광시킨 한 
음료가 있었으니..야릇한 흥분과 알 수 없는 괴력을 느끼게 해 
주는 까만색의 그것을 우리는 ‘양탕국’이라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프랑스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일반 서
민에게 알려지게 된 커피. 그것은 우리나라 나무를 독점하려는 프
랑스 상인들이 나무꾼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했던 것이 그 발
단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 서양에서 건너 온 커피는 
이후 신비한 힘을 주는 묘약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서양에서 건너 온 탕국, 양탕국. 
순식간에 인삼, 녹용 보다 더 좋은 보약으로 평가 받게 된 커피. 
커피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사람들은 커피 대신 ‘양탕국’ 이라는 이
름을 붙여,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프랑스 상인의 가게를 찾게 되었
다. 하루에도 몇 잔씩이나 빈속에 커다란 사발로 ‘양탕국’ 을 들이
키던 사람들. 하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면서도 커피의 유혹을 뿌리
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날로 높아만 가는 커피의 인기! 결국 ‘양탕
국’ 파동으로 한국 나무 상인들만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는데...
‘보신용’ 으로 탈바꿈하여 국내인을 사로잡았던 초창기 시절의 커
피, '양탕국‘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경석의 야! 이런 사실이!> 세자빈 비화.
* 세자빈의 영광을 거부하고 바보가 되기를 선택한 조선 처녀! 
  ‘간택’에 얽힌 세자빈 비화 전격 공개!    
장차 일국의 왕비가 될 인물을 뽑는 세자빈 간택. 간택에 선택된다
는 것은 당시 여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자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지니게 되는 존귀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세자
빈의 영광을 거부한 여인들이 있었으니..
조선 16대 임금의 아들인 소현세자의 세자빈 간택령이 내려지던 
해. 법에 따라 혼인이 금지된 전국의 처녀들이 간택에 참여하게 되
었다. 여러 차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최종 면접에 오른 3명의 
후보. 하지만 그중 유독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강씨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
의 행동에 놀란 심사위원들. 결국 강씨의 탈락을 결정하고 만다. 
대궐문을 나서는 강씨.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그 누구보다 조신한 
조선 여인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는데...
세자빈의 자리를 눈앞에 두고 바보가 되기를 선택한 여인. 과연 
그 여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시대 세자빈 비화
에 얽힌 사연을 전격 공개한다.


전화 들어오던 날.
* 온 동네에 전화 들어오던 날, 우리집에만 전화기 설치가 제외되
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한시도 견디질 못하는 ‘휴대전화 중독증’이 만
연한 현대. 하지만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전화가 국내에 
보급된 것은 불과 몇십년 전.
초창기 전화사업이 시행되던 시기에 일어난 웃지못할 일화 속으로
~
1970년대 후반, 충북의 한 시골 마을. 
주인공 전화주(가명)씨의 마을에 대단한 변화가 생겼다. 바로 국가
에서 시행하는 전화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전체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던 것. 누구보다도 전화기를 가진다는 기쁨에 들떠있던 전화
주! 하지만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전화주의 집이 마을과 너무 동떨어져 전화사업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마을 진입로를 가로막는 정체불명의 방해물들! 마
침내 마을 사람들은 범인을 잡기위한 잠복을 시작하는데...
당시 사건이 벌어졌던 마을을 찾아가, 변화 된 마을의 모습을 직
접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