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의 야! 이런 사건이!!> 임금님은 중매쟁이.
조선 정조 집권기 어느 날, 조정의 관리들이 마을의 처녀 총각들
을 마구잡이로 붙잡아 가는 일이 벌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
간 처녀 총각들. 도대체 무슨 중죄를 지었길래? 
이들의 나이는 각각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사이로, 당시로 치면 처
녀 총각이라고 하기엔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 황당하게도 노처
녀, 노총각이라는 것이 이들의 죄명이었던 것이다. 혼기를 놓친 처
녀총각들이 있다고 보고된 마을의 관리가 파직까지 당할 정도라
니 이는 실로 엄청난 죄였는데... 결혼을 못한 것도 서러운데 도대
체 왜 그것이 죄가 되었던 것일까? 과연 이 처녀 총각들의 운명
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  (1992년).
1992년 10월 28일, 그 날의 긴장감과 허탈감을 기억하는가? 바로 
사상초유의 휴거소동!! 당시 시한부 종말론자들에 의해 주창된 휴
거(예수의 공중 재림 때 허공으로 들려 올라가는 현상)설로 인해 
한반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전국 각처엔 종말론 추종자들이 들
끓었고, 이들이 주장하는 휴거예정일(10월 28일)이 다가오자, 곳곳
에서 일상을 일탈하는 일들이 벌어졌으니. 종말론에 심취해 가정
을 내팽개치고 몇 개월 째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십 
명씩 집단 생활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선교활동
을 하는 사람 등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간부, 남녀노소 가릴 것 없
이 휴거 소동에 휘말렸던 것. 
10월 28일. 이날 휴거가 일어나리라 주장하던 교회 앞은 신도들과 
경찰병력, 국내외 취재진, 구경온 인파. 그리고 가족을 찾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는데... 피 말리는 긴장 속
에 시간은 흘러 드디어 10월 28일 자정, 휴거의 순간! 올라가기 위
해 애써 허우적거려보았으나 결과는 불발!! 허탈감을 느낀 신도
들, 가정파탄이 난 시민들의 항의 등 큰 후유증만을 남긴 채 한바
탕 소동으로 끝나버리고 만 황당 휴거 사태!

43년만의 귀향, 국군포로 조창호   (1994년).
94년 10월 23일, 6.25 전쟁 때 포로가 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43
년 만에 북한을 탈출한 육군소위 조창호,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
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43년 간 생과 사를 수도 없
이 오갔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 이야기의 출발은 51년 4월, 관
측장교로 한석산 전투에 참가한지 한 달만에 북한군의 포로가 되
면서부터이다.
만포 수용소를 거쳐 아오지 제1특별 수용소에 수용된 조창호 소
위. 불굴의 의지로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삶의 밑바닥을 
견뎌내는 동안 자그마치 43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는 이미 규
폐증 2기 증세와 실명, 왼쪽 다시 부상 등 성한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94년 10월, 북한 탈출을 결심, 아슬아슬한 탈주의 여
정이 시작된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통해 마침내 94년 10월 23
일 인천항에 도착하고 결국 그리운 가족들 품에 안겼다. 
돌아온 국군포로 조창호,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한 그의 인생 역경사
를 돌아보며, 그의 43년만의 귀향을 통해 잊혀져 가는 6.25의 의미
를 되살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