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0일 (목) / 제 8 회

▣ 남극에서의 죽음, 그 후 1년

지난해 12월, 남극 세종기지에서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17차 
월동대원으로 참가했던 전재규 대원이 조난 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것이다. 그의 나이 겨우 스
물 일곱,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놓지 못했던 순수과학에 대한 열정
을 차가운 남극 얼음에 묻어야 했다. <논픽션 공감>에서는 고 전
재규 대원의 1주기를 맞아 그동안 아름다운 희생자로 박제된 전재
규의 청춘을 되살리고자 한다. 과묵했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누
구보다 치열했던, 원하는 공부를 위해 홀로 운동장을 뛰었던 집념
의 청년 전재규를 만나본다. 

* 그 후 1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크고 작은 추모 행
사가 줄을 잇지만, 행사장에 나타난 가족들 표정은 여전히 눈물겹
다. 학교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평생을 어렵게 살아온 아버지 전익
찬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상금과 
보험금을 합쳐 총 4억여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전재규의 사망은 
세종기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도 연구자
들의 염원이었던 쇄빙선이 2008년을 목표로 건조되기 시작했다. 
극지연구소에서는 남극에서 새롭게 발견된 화산과 세균에 전재규
의 이름을 붙임으로서,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의 
마지막 바램인 국립묘지 안장. 정부에서 의사자로 결정하고 국민
훈장도 추서했지만 군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충주 중원사에 봉안된 그를, 유골이나마 마른 땅에 묻어주
고 싶다는 가족들의 눈물겨운 호소는 1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남극 얼음에 묻은 청춘 
지질학을 전공하며 연구자로 남고 싶었던 전재규. 경제적인 어려
움으로 대학원을 휴학했던 그에게 남극은 연구도 계속하고 경제적
인 부담도 덜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남극에 도착한지 
보름만에 사고가 터졌다. 16차 월동대원의 환송을 떠났던 3명의 대
원이 실종된 것. 팀 내에서 유일하게 위치추적 장비를 다룰 줄 알
았던 전재규를 포함해 5명이 구조에 나섰지만, 기상 악화로 이들마
저 2시간만에 조난 당하고 말았다. 장비가 부족했던 세종기지 대원
들은 속수 무책으로 무전기 앞에서 생존 소식만 기다릴 뿐... 중국 
등 주변 기지와 칠레 공군의 도움으로 급박하게 수색작업이 펼쳐
졌고, 소식을 들은 한국의 가족들은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무사히 세종기지로 돌아온 대원은 7명, 스물 일곱의 청년 
전재규는 싸늘한 시신으로 한국에 송환됐다. 

* 별을 사랑했던 청년, 남극으로 떠나다 
두꺼운 안경, 밥을 먹을 때조차 손에서 책을 떼지 않던 모범생... 
사람들 기억속에 전재규는 한결같다. 아버지가 학교 일용직으로 
근무하셨고, 어려웠던 가정 형편 속에서 똑똑하고 공부 잘 하던 그
는 온 집안에 희망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 없이 그저 
묵묵히 공부에만 몰두하고, 약해진 체력을 위해 혼자 운동장을 달
릴 만큼 집념이 남달랐다. 그러나 별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
이 달라졌다. 왕따이기를 자처할 만큼 말수가 적던 그가 사람들 앞
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때로는 전공 수업조차 포기하고 천문동아
리 일에 매진했다. NASA에서 우주지리를 연구하고 싶어했던 전재
규, 그러나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장남이라는 위치는 연구를 계속하
기엔 힘겨운 현실이었다. 결국 그는 석사를 채 마치지 못하고 한 
지질회사에 취업을 했다. 연구에 대한 열망을 꺼뜨리지 못한 그에
게 1년여의 회사 생활은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 그에게 또다른 기
회가 찾아왔다. 남극 월동대원, 전공에 관련된 연구도 할 수 있고,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학비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주
저 없이 선택한 남극 세종기지, 그렇게 그는 남극으로 떠났다. 현
실 앞에 꺾였던 청춘의 꿈을 남극에서 되찾으리라, 희망을 품고 그
는 먼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