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
2006년 11월, 서른여섯 살의 김은희 씨는 남편의 담당의사로부터 청천 벽력같은 그
한마디를 듣는다 “올해를 못 넘기겠습니다. 준비하세요”
남편 이준호씨는 이제 겨우 마흔 한 살, 은희씨는 차마 남편을 보내는 일도 상상할
수 없고 초등학생인 아들 영훈(9)과 딸 규빈(7)을 데리고 남겨질 자신의 삶도 받아들
이기 힘들다.
남편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1월, 가족은 기적을 기대해왔다.
사실 이준호씨에게 처음 암이 발병한 것은 1999년, 결혼한 지 2년만의 일이었다. 하
지만 남편은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주었다 아내도 남편도 이번 역시 암을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고 기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0개월 후 이미 암은 대장은 물
론 십이지장장, 위, 폐까지 퍼져있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여지가 없다
■ 많은 것을 버리고 맺은 사랑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준호 씨의 형편 때문에 은희씨 부
모님은 막내딸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은희 씨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었다. 1997년 봄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그러나 그 시
간은 길지 않았다. 첫아이 영훈이를 낳고 둘째 규빈이를 임신한지 3개월째, 준호씨
가 쓰러졌다. 대장암이었다. 친정가족들이 달려왔다. 가족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키우는 딸을 지켜볼 수 없다며. 이번에도 은희씨는 고집을 부렸다.
예쁜 딸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준호씨는 수술로 대장을 잘라내
고 일어섰던 것이다.
■ 강한 아내, 은희 씨
남편이 처음 쓰러졌던 99년 이후 7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것
모두 은희씨의 몫이었다 더욱이 지난 1년 준호씨가 다시 암으로 입원한 이래 은희씨
에게는 그야말로 슈퍼우먼 아내, 슈퍼우먼 엄마가 되야 하는 하루하루였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서 영훈과 규빈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한
다. 출근을 해서도 근무시간 틈틈이 병원에 들러 남편을 살핀다. 그리고 퇴근 후 아
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나면, 다시 병원으로 와서 준호씨를 간호하고 집으로 돌아가
는 것을 반복해왔다.
사실 은희씨 역시 갑상선이상으로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하는 상황, 담당의사가 제
발 본인 몸도 챙기기를 당부하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없다. 죽음을 앞둔 남편 뒷바라
지가 그녀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 차마 할 수 없는 말
온몸에 퍼진 암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심각한 통증이 몰려온다.
하루 1000ml의 모르핀 투여로도 준호씨의 고통을 막을 수 없다. 때때로 찾아오는 환
각과 환청, 이제 남편은 은희씨를 몰라보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간호에 매달리는 아내, 은희씨는 결국 준호씨의 막
내 동생이자 카톨릭 수사인 이종호씨가 가족을 대표해서 준호씨에게 죽음이 가까워
져 있음을 알린다.
형에게 가족과 함께 아름답게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사랑하는 아
내와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는 준호씨, 때때로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아내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다.
■ 아빠, 제발 힘내세요
첫 눈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점점 의식조차 희미해지는 준호씨, 그래도 그
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은 바로 아이들을 만날 때다. 은희씨와 아이들을 그런 아빠를
위해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아직은 헤어질 수 없
는 가족들, 모두가 부둥켜안은 채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2006년이 며칠 남지 않은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