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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에 바탕해 있는 그대로 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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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훈,2005-08-25

 

상식에 바탕해 있는 그대로 본 일본

 

이채훈(「천황의 나라 일본」 제1부, 제3부 연출)


「천황의 나라 일본」의 실질적인 기획자인 이채훈 PD가 2005년 8월 24일자 'PD연합회보'(제427호)에 기고한 제작기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광복 60년을 맞는 올해는 반일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진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한일 우정의 해’... 일본을 믿을 만한 친구로 받아들이려면 그들을 정확히 아는 게 필요했다. 피해자로서 응당 가질 수 있는 민족주의를 억누르고 인류 보편의 상식에 바탕하여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였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문제에 대한 ‘망언’들은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자신의 침략 책임과 전쟁범죄를 외면하면서 원자폭탄의 비극에 기대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모순된 역사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취재 결과 내린 결론은 ‘천황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제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연출 이채훈)에서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왜 일본인들은 그렇게 천황제에 집착하는지 알아보았다. 제2부 ‘사쿠라로 지다’(연출 이근행)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린 수많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미화되고 바람직한 일본인의 표상으로 선전되는지 파헤쳤다. 제3부 ‘신을 만든 사람들’(연출 이채훈)은 메이지 시대에 천황이 절대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아시아 멸시와 침략주의로 흐르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제4부 ‘충성과 반역’(연출 이근행)은 6-70년대에 노골적으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천황제 부활의 움직임을 미시마 유키오, 오노다 히로오의 사례로 보여주고, 기쿠 터부에 도전한 오쿠자키 겐조를 몰락시키는 일본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제5부 ‘제국의 유산’(연출 김상균)은 평화헌법 9조를 백지화하고 다시 노골적인 군국주의로 선회하려고l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이 되살리려는 천황의 성격이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메이지 천황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을 이해하려면 천황을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일본 현지 취재를 해 보니 ‘천황’은 헌법상 ‘일본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일본의 ‘심장’, 일본인의 ‘아버지’였다. 그들의 표현을 따르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의 자손인 ‘아라히토카미’(현인신)가 영원히 통치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 신념이 바로 그들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이며 ‘국체’인 것이다. ‘천황제’가 곧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었다. 천황제에 근거한 일본인들의 ‘선민의식’은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에 대한 멸시와 차별로 이어지고, 나아가 무력 침략과 약탈을 정당화하는 후안무치함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천황’의 권위를 앞세워 군부독재와 침략의 길로 나셨다. 천황은 그들의 권력을 담보해 주는 상징인 ‘구슬’(玉)이었다. 히로히토 시대에 무제한 침략전쟁에 나서면서 천황과 군국주의자들은 일심동체가 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 함께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일반인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60년전 종전 당시까지 일본인들을 지배했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은연중에 이들의 내면에 남아 있었다. 심각한 점은, 인기 최고라는 이시하라 신타로와 아베 신조 등 극우 정치인들이 극단적인 천황제 이데올로기 신봉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치의식이 박약한 국민들을 선동하여 ‘강력한 군사대국 일본’을 재건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군가제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미미하다는 게 일본의 불행이자 아시아의 재앙이다. 천황제에 반대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이 반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1%에 지나지 않았다. 히노마루, 기미가요 등 천황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상징적 장치들이 착착 부활하고 있다.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을 개정하여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반일감정을 억누른 채 만들었지만, 천황제의 본질을 끈질기게 천착한 결과 과거의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더 강한 ‘반일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프로그램을 마친 결론은 일본의 미래가 지극히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쉽사리 과거와 같은 침략전쟁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패권국가인 미국을 등에 업고 아시아의 맹주 노릇을 하려는 야심은 명백해 보였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계속 파헤쳐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