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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왕 or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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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근아,2005-07-20

이화여대 사학과 정근아

 

  '광복' 60주년을 맞은 지금에도 그들의 왕을 뭐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노무현 정부가 공식 용어로 '천황'을 사용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용어의 혼란은 여전한 듯하다.(뉴스나 신문기사에서도 혼란은 여전하다. 어떤 신문은 같은 기사를 '천황'과 '일왕' 두가지 용어를 사용한 두가지 버전의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국가의 공식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견고하다. 그것은 단지 외교를 위한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한 선택이므로, 여전히 일왕이라는 용어가 우리의 용어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왕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명쾌하다. '왜 우리가 그들의 같잖은 명칭을 사용해주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소위 '쪽바리'들의 플레이에 발맞춰주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용납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토록 명쾌한 그들의 논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천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혹은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황제는 차르, 이슬람 황제는 술탄, 중국의 '왕'은 황제라고 부르니까 일본도 '천황'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주어야 한다는 논거는 가장 보편적인 반박이다. 그렇지만 좀 더 나아가보자. 그들이 천황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이유는 '천황'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는 직접적 의미 때문이다. '하늘의 황제' 라는 뜻의 천황은 중국의 '황제'보다도 한차원 더 높은 지위를 의미한다. 쪽바리들 주제에 하늘의 황제라고 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대체하는 '일왕'이라는 용어는 타당한가. 그들의 논거대로라면 '일본'이라는 용어도 재고되어야 한다. '일본'이라는 국가 명칭도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하늘의 근본, 하늘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것 또한 발맞춰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옆나라'라고 불러야하는가? 아니면, 왜국이라고 불러야 하나? '일왕' 또한 태양의 왕, 혹은 하늘의 왕이다. 직역의 논리로서 단어 자체의 뜻을 파고 또 파고 들어봤자 그 끝은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 또한 중국으로 불러선 안된다.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뜻의 '중국'이라는 용어 역시 재고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그들의 입장에 맞춰 민족주의적 틀을 이용해 비판한다면 일왕 역시 '사용할 수 없다.'

 앞의 설이 일차적이고 단순했다면, 좀 더 시야를 넓혀보자. 우리나라의 소위 일류 대학들에는 일본어과나 일본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과가 없다. 일본의 것은 배우게 할 수 없다는 것인가? 너무나도 근시안적이고 단순한 논리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다시 언급해야할까? 그래, 일본이 싫다면 일본을 이기자 라는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보자. 이기고 싶다면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해야 한다. (학술논문이나 책에서 '일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있던가? 있다하더라도 대부분은 천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반민족적이라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저 싫다'라는 감정적 이유에 얽매여 그들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내 생각에, '천황'이라는 용어의 기피도 이러한 감정적 이유에 불과하다. 그들을 이기려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천황이라는 용어는 그들 문화의 핵심에 위치한다. 일본을 알려면, 천황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일왕'이라는 용어의 입장에서 시작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것인가? 그렇게 일본한테 이겨먹고 싶거들랑, 한 발 물러서고 두 발 나아가는 입장을 취해라. 무엇보다도, 단순한 민족주의적 논리는 위험하고 소모적이다. 천황이라는 용어의 일차적 논리에 빠져있는 동안, 중요한 쟁점은 스르르 빠져나간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주체는 일본에 빚지고 있다. 타자를 설정함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나라가 일본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이 사라지면 우리나라도 사라진다. 그 주체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사람 人 자 처럼 같이 기대어 있다.(적어도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천황이라는 용어가 더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을 때, 그때가 우리가 비로소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때이다. 무관심은, 반감보다도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