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싶다.
10년만에 찾아온 무더위. 남들은 휴가다, 피서다 일상 탈출을 꿈꾸
지만 영주씨(31)에겐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
로 행복하기만 하다. 전신마비 장애인인 영주씨가 정상인들도 하
기 힘들다는 보험 영업에 뛰어든지 8개월째. 
99년 1월. 군대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던 영주씨는 동료의 차를 타
고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삶의 포기
를 선언했던 그가 사회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 그러나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영주
씨는 번번히 거절당했고 아무도 자신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
지 않았다. 수십 번의 거절 끝에 당당히 취업에 성공한 영주씨. 
그의 곁엔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권순철(34)씨가 있다. 왼쪽 
엄지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영주씨를 위해 활동보조인을 자처하
고 나선 순철씨. 활동보조인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에서 순철씨는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영주씨를 돕고 있다. 요즘 영
주씨는 보험 영업 외에도 영화 촬영으로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 제작에 스태프로 직접 참여하고 나선 
것. 
중증 장애인들도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배려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회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영주씨. 그의 아름
다운 도전을 따라가보자. 


가족의 힘 - 영임 엄마의 여름.
충남 금산, 오늘도 베트남 신부 탄의 하루는 남편의 산소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남편은 어젯밤에도 탄의 꿈에 나타나 또 술
을 찾았다.
가난한 집에 보탬이 되겠다고 이역만리 타국으로 시집온 탄. 남편
은 이 낯설고 막막하기만 했던 땅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단 
한 사람이었다.
 유난히 자상했던 남편과의 꿈만 같던 신혼생활. 그러나 지난 1월 
남편 생환씨는 이제 막 돌을 지난 딸 영임이를 남겨놓은 채 갑작스
레 암으로 세상을 떴다.
열다섯 가구 남짓 살아가는 작은 시골 마을.. 젊은 사람들이 다 도
시로 떠나간 이곳에서 젊은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꼽힐 정도, 온동
네를 통틀어 아이라곤 영임이 하나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부모님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 그녀
가 남편도 없는 시집에 계속 머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
나 탄은 이제 이곳 금산이 고향이라고 말한다.
친딸처럼 아껴주는 시부모님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 영임이
를 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 뜨거운 여름.. 베트남 새댁
의 가족 사랑을 따라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