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대 - 내 꿈은 ‘사장님’!! -26살 한규철氏.
주말이면 쇼핑을 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동의 쇼핑가 한 가운데에 “쌉니다~ 싸요~”를 외치며
한 개 만 원짜리 가방을 팔고 있는, 올해 스물 여섯 살의
한규철氏가 있다.
전문대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지방의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했던 규철씨. 자기 이름으로 된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것이 어느새 2년째다.
좁은 고시원에서 잠을 자며 생활비 마련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낮 1시까지 식당의 주방 보조 일을 하고,
2시부터 밤 11시까지 명동에서 가방 장사를 한다.
장사라고는 하지만 한겨울 바람 피할 곳도 없이
서서 장사를 해야하는 형편...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지만 하루도 장사를 쉬지 않는
규철씨... 그에겐 꿈이 있다.
음식과 함께 자기가 만든 식기를 파는 가게를 여는 것이
규철씨의 목표. 그를 위해 만원 한 장 함부로 쓰지 않고
착실히 자본금을 모으고 있다는데...
편하고 쉬운 길은 아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청년, ‘한규철’氏를 만나본다.
가족 시네마 - 아빠는 가정관리사.
자타가 공인하는 알뜰 가정관리사 임종철(52)씨는
아내 예명순(47)씨가 운영하는 반찬가게에 재료 사러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족들의 아침준비를 서두르고 아내의 출근 준비를 도맡으며
엄마와 아내역할까지 도맡고 있는 종철씨.
9개월 전만 해도 여느 가정처럼, 아내 명순씨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었던 종철씨지만 9개월 전,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25년 동안 몸담던 직장 생활을
접어야 했다.
가장의 실직은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는 세 아이와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명순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쉰이 넘은 나이의 종철씨에겐 마땅한 새 직장도 없었고
가족의 생계는 막막해졌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아내 명순씨는 음식솜씨를 살려 반찬가게에 취직을 해
자리를 잡았으며 종철씨 또한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틈틈이 직장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두 아이들 또한 제대로 된 대화한번 하지 못했던 아빠를
‘엄마’라 부를 정도로 집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는데...
20년이 넘게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의 잔소리를
이제야 이해한다는 종철씨.
가족을 위해 흘렸던 남편의 피땀을 몸소 느낀다는 아내, 명순씨.
힘들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임종철씨 가족을 취재한다.
365일 따뜻한 세상 - 도봉산의 천사 아줌마 - 남순애.
서울 도봉구 도봉1동 도봉산 자락..
20평 남짓한 남순애(44)씨의 집은 항상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산동네에 버려졌던
아이들을 데리고 살기 시작한 것이 벌써 11년째...
현재는 친자식(지혜/14, 은혜/13)을 포함해 15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갈 곳 없이 방황하던 아이들을 보고
그냥 둘 수가 없어 한 명씩 데려와 교육을 시킨 것이
시작이었다. 남순애씨의 교육법은 한 마디로 터프하다.
제 멋대로 사는 게 몸에 익은 아이들에게
나쁜 버릇 뜯어고치고 예절 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아이들을 휘어잡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
처음엔 적응하지 못해 다시 집을 나갔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남순애씨를 엄마라 부르며
누구보다 착한 아이들이 되었다는데...
산동네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아줌마 목사님이기도 한
남순애씨. 얼마 전엔 남편이 간경화로 쓰러져 살아갈 길이
막막한 형편이지만 연탄 한 장 땔 형편이 안 되는
독거노인 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나눠주고,
매일 영세민 가정을 찾아다니며 챙기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는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산동네 아줌마 목사님, 남순애씨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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