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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의 용서.
■ 내 마음 속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
-오랜 시간 동안 애써 부정하던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찾은 아들
의 이야기
대화다운 대화라고는 1년에 한 번 정도 할까말까, 즐거웠던 추억
도 다정히 찍은 사진도 한 장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힘든 아들, 아들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운 아
버지. 한 집에 살면서도 가족 같지 않았던 부자, 손종열(72) ․ 선만
(38)씨의 이야기다.
11형제를 둔 종갓집 장남인 아버지에게 시집왔던 선만씨의 어머
니. 선만씨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상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
어지고... 모든 일에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
었던 선만씨는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살 길을 찾았다. 그래서 시작
하게 된 것이 유도! 유도를 하면 특기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진학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유도에 매
달렸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고3때 큰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둘
위기에 놓인 것이다. 몇 달 동안 하반신에 깁스를 한 채 대소변도
받아내야 했지만 아버지 곁으로 가는 건 죽기보다도 싫었다는 선
만씨. 결국 1년 동안 홀로 재활치료까지 마쳤다. 혼자 지내는 게 익
숙했던 선만씨에겐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아내와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선만씨가 아내와 싸울 때면 어린 딸 은진이는 책
상 밑으로 숨기 바빴다. 그러던 중 큰 형님이 홀로 되신 아버지 모
시기를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함께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선만씨. 역시나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
돼 급기야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랬던 선만씨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정말 나쁜 놈
이었다’라고 말하며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해 가고 있다는 선만씨.
그러나 25년 동안 멀어졌던 아버지와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
다. 과연 선만씨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까?
선만씨의 가족애 발견! - 오랫동안 잊혀졌던 당신의 이름, 아버지
입니다.
오빠는 꽃보다 아름다워.
-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기만 했던 오빠를 향한 응원가, ‘오빠, 힘
내세요!’
‘우리 오빠’. 옥란씨(42)가 오빠라고 부르는 말 속에는 눈물이 묻
어난다. 오빠, 김중한씨의 나이는 49살. 하지만 환갑을 넘은 사람
처럼 주름진 얼굴에 앙상한 몸을 한 오빠를 보면 가족들은 가슴이
아프다. 어려서부터 형제 뒷바라지에 제 몫이라고는 챙길 줄을 모
르던 오빠는 혼자 몸으로 병든 노모에 정신 지체 아들을 뒷바라지
를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시골의 농부일 뿐이지
만, 가족들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꽃’이 되는 사람, 김중한씨(49)
가 이번 사연의 주인공이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은 맨밥에 간장을 비벼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타지에 나가서 열심히 벌어온 돈을 동생의 학비로 전부 내놓았던
오빠. 그런 오빠에게 지난 3년간 불행은 연이어 닥쳤다. 자궁암에
걸린 아내를 간신히 고쳤다 생각했는데 3년 뒤 다시 간암으로 쓰러
지고 말았던 것! 중풍에 걸린 어머니를 봉양하는 와중에도 아내의
병수발에 온 힘을 쏟았지만 결국 아내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동
생 내외가 어머님을 모시겠다고 했지만, 중한씨는 오히려 맞벌이
하는 동생 내외를 걱정해 자신이 모시기를 자처했는데... ‘오늘보
다 내일이 낫고, 올해보다 내년이 낫다’는 믿음으로 산다는 중한
씨. 하지만 그도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던 아들 선태(19)만 생각하
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선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일반학교에 보냈는데 결국 선태와 중한씨에게 상처로 남고
말았다.
옥란씨는 말한다. ‘부모한테는 솔직히 심청이 같고. 자식한테 가시
고기. 형제한테 너무 잘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오빠라고. 자신을
위해서는 장날 순대국밥 한 그릇 먹는 게 호사인 오빠. 가장으로
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사느라 어깨 한번 펴본 적 없다는 중한씨에
게 이제는 가족들이 힘이 되고 싶다.
중한씨의 가족애발견 - 우리 가족은 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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