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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양방언...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각별한 민족의식 덕분에 한국인임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한국보다 일본의 말과 문화에 더욱 익숙한 그이지만, 그는 분명한 한국인이다!
“무언가 몰라도 한국적인 힘이라 할까,
그런 것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자이니치(在日)라는 꼬리표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 그의 이야기는 12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일본인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양방언은 자전거에 붙은 이름표를 본 경찰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심문을 받게 되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간다. 어린 양방언이 경찰서로 끌려간 건 자이니치에게 휴대가 의무화돼 있는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함께 놀던 일본인 친구들과 겉모습만 비슷할 뿐, 완벽하게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첫 순간이었다.
♣ 한민족 두 개의 국적 - 자이니치의 현실
재일동포의 경우 외국인등록증에 한국과 조선 두 종류의 국적 표기가 존재한다. 이는 재일동포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이와 같은 재일동포의 복잡한 국적... 양방언도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조선국적으로 살면서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그... 한국국적으로 바꾸게 된 사연과 양방언의 조총련학교 동창들을 통해 자이니치들이 생각하는 국적과 민족의식에 관해 들어본다.
“1세분들이 고생을 해주신 덕택에 우리들의 짐이
가벼워졌어요. 이제 그 분들이 열어주신 길이나 문에 들어가서 2세,
3세, 4세 그 순간 그 세대가 가지는 정체성이라 할까 그것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재일동포의 세대교체, 뉴 자이니치 양방언!
양방언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하여 1년간 의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가의 길을 포기할 수 없어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가출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음악인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버지... 아버지는 왜 그토록 아들의 음악활동을 반대했을까? 그 속엔 슬픈 자이니치의 역사가 있다. 차별과 억압의 한을 딛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온 아버지 세대... 이젠 그 뜻을 이어받아 본인 세대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저는 일본하고 한국뿐만이 아닌 많은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아시아의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과도 공통점이 있어요.”
♣ 민족을 넘어 아시아로
양방언은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며 본인이 아시아인임을 확인했다. 그는 양방언이라는 한자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데서 공감대를 느꼈고, 많은 중화권 사람들과 음악 작업을 하고 친분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인이자 아시아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한 한국인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자이니치로써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의 생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퓨전 음악인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양방언의 음악에는 제약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만의 음악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몽골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접한 현지인의 노랫소리를 그대로 음악에 담는가 하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계 각국의 민속악기들을 현대적인 선율과 잘 조화시켜 새로운 타입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작곡부터 연주녹음, 믹싱에 이르는 작업 전반을 혼자서 해내는 양방언 ... 그가 말하는 그의 음악적 지향점은 무엇일까?
♣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①어디선가 듣고 계실 아버지를 위해 <Prince of Cheju>
언제나 고향인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아버지... 양방언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제주의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②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 그 날을 그리며 <Dream Railroad>
제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이기에 남과 북을 잇는 경의선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그는 그런 그의 마음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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