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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엄홍길 - 죽음의 산, 로체샬에 가다
♣ 다시 로체샬(Lhotseshar)로!!
엄홍길은 로체샬과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 로체샬(8400m)은 정상까지 이어지는 칼날 같이 험한 산세
때문에 접근이 특히 어렵기로 이름난 곳. 최근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독립봉으로써 그 난이도를 인정받고 있는 로체샬. 이곳은 엄홍길이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위해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1년 첫 번째 도전에서는 7,600미터
지점 도달 후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후퇴, 2003년에는 8,250미터 지점에서
판상 눈사태로 후배 두 명(박주훈, 황선덕)을 잃은 채 돌아섰던 엄홍길!
그가 다시 로체샬 여신을 향해 세 번째 발길을 뗐다.
♣ 원정대 베이스캠프에는
없는 것이 없다!?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보통 2~3개월.
장기간 머물다보면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화장실은 물론 음식조리실에서 샤워실까지... 로체샬 베이스캠프에는
불편한 것은 있어도 없는 것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식인 쌀에서부터 함께 등반하는 셀파들이 특히
좋아하는 인스턴트커피까지... 이번에는 특별히 고된 등반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온 핵심식량이 있다고 하는데... 4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식량은 로체샬에서의 60일 동안 대원들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 계속되는 눈과의 싸움.
그리고...
드디어 시작이다. 두 번의 고배를 마셨던
만큼 몸도 마음도 단단히 준비했다.
등반을 위해서는 각 구간별로 캠프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 중 첫 번째
캠프를 만들기 위해 원정대가 출발했다. 하지만 역시 로체샬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원정대의 발목을 잡았고 연이어
쏟아지는 눈은 하루가 멀다 하고 텐트를 덮치기에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루트에 겁먹은 셀파들이 밤사이에 도망을 가버리는데...
적은 인원으로, 대원 한명 한명이 귀한 이번 원정에 비상이 걸렸다!
♣ 죽음의 산, 로체샬 정상을
향하여
D-데이 하루 전, 천신만고 끝에 정상을
향한 마지막 로프설치를 끝낸 대원들.
“올라간다. 이제
간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고맙다.
내일 올라간다. 내일 다시 올게. 다시 올게.”
이제 내일이면 2003년 사고와 함께 가슴에 묻은 두 후배들에게 정상을
내줄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로체샬의 변덕스런 날씨,
여기까지 온 것은 어쩌면 죽은 후배들의 보살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D-데이. 어제 힘들게 설치했던 로프가 눈
속으로 사라졌다. 쏟아지는 햇살은 설면을 녹이고... 한발 한발, 엄홍길이
로체샬 정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떼기 시작했다. 5년을 기다린 로체샬
여신의 허락, 과연 이번에는 로체샬 여신이 그의 손을 잡아 줄 것인가?
2부, 셀파,
히말라야의 타이거
♣ 히말라야 등반사의 또 다른
주인공
지난 5월 16일.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기록 하나가 갱신됐다. 16번째 등반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에 1회를 더한 압바 셀파가 그 주인공. 그 외에도 87년
산악인 허영호씨와 함께 정상을 밟은 앙리타 셀파는 무산소 10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가진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이다.
히말라야와 함께 살아온 주인공. 그들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존재일까? 제작진이 그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봤다.
♣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1977년 히말라야로 떠난 한국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해 1차 등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실패로 끝난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꼭 가야한다고해서... 제가 승낙했습니다.
한반도를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 故 고상돈씨, 그리고 셀파 펨바 노르부. 당시 2차 공격조로
등정에 나선 그의 나이는 28살.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한 시즌에 단 한 팀에게만 등정이 허락됐던
그 당시, 한국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대한민국에게 에베레스트 초등의 감격을 안겨준 이 젊은
셀파 청년은 그 후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들이 가장 함께 오르고 싶어
하는 1순위의 등반 셀파가 된다.
이제는 어엿한 트레킹회사의 사장으로 성공한
셀파 펨바 노르부. 그와 함께 우리를 감동으로 이끌었던 77년의 그날로
다시 돌아 가본다.
♣ 우리는 셀파(Sherpa)입니다.
'셀파(Sherpa)'는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짐꾼'이나 '산악가이드'란 뜻이 아니다. 네팔의 솔루쿰부 일대에 사는
고산족으로 셀파라는 단어는 티베트어로 동쪽을 뜻하는 '샤르(shar)'와
사람을 뜻하는 '파(pa)'의 합성어, 즉 '동쪽에서 온 사람'을 의미한다.
1953년, 세계는 네팔의 소수 민족 셀파에게
주목한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한 셀파 텐징
노르가이! 이후 셀파는 무수한 기록을 남기며 고산 등반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된다.
산을 경외하고 신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 산에 오르지 않는 셀파들. 아이가 태어나면 사원으로 찾아가 이름을
짓고, 태어난 요일이 이름이 되는 그들은 새해맞이(로사르-Losar) 축제를
위해 2주전부터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곳곳에 짬바라는 흰 가루를 묻히며
집안을 치장한다.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챠를 마시고 만두와 같은
모모를 먹는,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그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엄홍길과 셀파!
1971년부터 2003년까지 히말라야에서 사망한
대원 58명, 셀파 32명.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세계 최초 15좌 완등에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 산악계의 기록이다. 히말라야에서의 모든 것은 어쩌면 셀파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엄홍길의 등반인생에서도 셀파는 결코 빠질
수없는 존재다. 85년, 히말라야에 첫발을 들이며 만난 까르상 셀파를
비롯해서 97년, 크레바스 아래로 떠나보낸 의형제 셀파 나티. 그리고
매 원정 때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엄홍길이 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하는
겔젠과 파상.
셀파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일하는 원정대의 짐을 나르기 위해 야크를 끌고 온 겔젠의 아내,
원정대의 주방 일을 도우며 죽은 남편을 대신해 엄홍길과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가는 학파디기.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들의 만남. 그 속에서 고산등반 셀파로서 그들의
역할과 삶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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