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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이야기


기획 : 정호식
연출 : 임채유   조연출 : 서범천
글구성 : 박선영   취재 : 최민정

방송시간 :
2006년 7월 2일 (일) 밤 11: 30 (1부) 엄홍길 - 죽음의 산, 로체샬에 가다 
2006년 7월 9일 (일) 밤 11: 30 (2부) 셀파, 히말라야의 타이거


  ★ 히말라야 사진 보기



■ 기획의도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신들의 영역 히말라야.
“대지의 여신”에베레스트는 50여 년의 기간 동안 2천 2백여 명에게 정상을 내주었고, 이것은 180명 이상을 산에 묻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히말라야가 허락한 사람들.

2004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 미터 고봉 15좌 완등!
평생에 한 번 오르기도 힘들다는 히말라야의 품에 15번을 안긴‘작은 탱크’엄홍길.
그동안 등반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도전의 참의미를 전해주었던 그가 2006년 3월, 또 한 번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선다. 급작스런 기상악화로 포기했던 2001년과 눈사태로 후배 두 명을 잃었던 2003년, 정상을 목전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16좌의 마지막 관문 로체샬(8,400m)로 다시 떠나는 엄홍길.
죽음의 산, 로체샬에서 목숨을 담보로 벌어지는 아찔하고 숨 막히는 순간들...

1953년 텐징 노르가이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셀파. 히말라야의 친구로서 세계의 등반가들을 신들에게 인도하는 고산족 셀파와 히말라야 원정대의 그 질기고 끈끈한 인연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일상을 들여다본다.
특히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 故 고상돈씨와 함께한 펨바 노르부 셀파. 그리고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를 10번이나 등정한 앙리타 셀파와 16번 정상에 선 압바 셀파 등 히말라야의 친구이자 영웅으로 산과 함께 살아가는 유명 셀파들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고산등반 셀파로서의 역할과 삶을 고화질 HD의 살아있는 영상 그대로 전한다.

 

■ 방송포인트


▣ 엄홍길과 죽음의 산, 로체샬(8,400m)의 인연
   ※ 2001년, 2003년에 이은 세 번째 도전 & 히말라야 8천 미터급 16좌의 마지막 관문
▣ 베이스캠프에서의 원정대 생활
▣ 로체샬 남벽 정상을 향한 루트 개척
   ※ 계속되는 악천후로 악전고투하며 전진하는 원정대

▣ 히말라야의 스타 셀파들
   ※ 77년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故 고상돈씨와 함께했던 펨바 노르부,
      87년 허영호씨와 등정한 무산소 10회 기록의 앙리타 셀파 등 취재  
▣ 셀파들의 이동경로
    ※ 티벳 동부 캄 지역-> 낭파라(5,716m) -> 남체 -> 쿰부 등에서 거주
▣ 셀파들의 새해맞이 (로사르) 축제와 종교생활

 

■ 주요내용


1부,  엄홍길 - 죽음의 산, 로체샬에 가다

 

♣ 다시 로체샬(Lhotseshar)로!!

     엄홍길은 로체샬과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 로체샬(8400m)은 정상까지 이어지는 칼날 같이 험한 산세 때문에 접근이 특히 어렵기로 이름난 곳. 최근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독립봉으로써 그 난이도를 인정받고 있는 로체샬. 이곳은 엄홍길이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위해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1년 첫 번째 도전에서는 7,600미터 지점 도달 후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후퇴, 2003년에는 8,250미터 지점에서 판상 눈사태로 후배 두 명(박주훈, 황선덕)을 잃은 채 돌아섰던 엄홍길! 그가 다시 로체샬 여신을 향해 세 번째 발길을 뗐다.

 

♣ 원정대 베이스캠프에는 없는 것이 없다!?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보통 2~3개월.

장기간 머물다보면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화장실은 물론 음식조리실에서 샤워실까지... 로체샬 베이스캠프에는 불편한 것은 있어도 없는 것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식인 쌀에서부터 함께 등반하는 셀파들이 특히 좋아하는 인스턴트커피까지... 이번에는 특별히 고된 등반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온 핵심식량이 있다고 하는데... 4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식량은 로체샬에서의 60일 동안 대원들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 계속되는 눈과의 싸움. 그리고...

     드디어 시작이다. 두 번의 고배를 마셨던 만큼 몸도 마음도 단단히 준비했다.

등반을 위해서는 각 구간별로 캠프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 중 첫 번째 캠프를 만들기 위해 원정대가 출발했다. 하지만 역시 로체샬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원정대의 발목을 잡았고 연이어 쏟아지는 눈은 하루가 멀다 하고 텐트를 덮치기에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루트에 겁먹은 셀파들이 밤사이에 도망을 가버리는데...

적은 인원으로, 대원 한명 한명이 귀한 이번 원정에 비상이 걸렸다!  

 

♣ 죽음의 산, 로체샬 정상을 향하여

     D-데이 하루 전, 천신만고 끝에 정상을 향한 마지막 로프설치를 끝낸 대원들.

        “올라간다. 이제 간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고맙다. 내일 올라간다. 내일 다시 올게. 다시 올게.”

이제 내일이면 2003년 사고와 함께 가슴에 묻은 두 후배들에게 정상을 내줄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로체샬의 변덕스런 날씨, 여기까지 온 것은 어쩌면 죽은 후배들의 보살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D-데이. 어제 힘들게 설치했던 로프가 눈 속으로 사라졌다. 쏟아지는 햇살은 설면을 녹이고... 한발 한발, 엄홍길이 로체샬 정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떼기 시작했다. 5년을 기다린 로체샬 여신의 허락, 과연 이번에는 로체샬 여신이 그의 손을 잡아 줄 것인가?    

 

2부,  셀파, 히말라야의 타이거

 

♣ 히말라야 등반사의 또 다른 주인공   

    지난 5월 16일.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기록 하나가 갱신됐다. 16번째 등반에 성공하면서 자신의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에 1회를 더한 압바 셀파가 그 주인공. 그 외에도 87년 산악인 허영호씨와 함께 정상을 밟은 앙리타 셀파는 무산소 10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가진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이다.

    히말라야와 함께 살아온 주인공. 그들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존재일까? 제작진이 그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봤다.

 

♣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1977년 히말라야로 떠난 한국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해 1차 등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실패로 끝난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가 꼭 가야한다고해서... 제가 승낙했습니다.

한반도를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 故 고상돈씨, 그리고 셀파 펨바 노르부. 당시 2차 공격조로 등정에 나선 그의 나이는 28살.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한 시즌에 단 한 팀에게만 등정이 허락됐던 그 당시, 한국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대한민국에게 에베레스트 초등의 감격을 안겨준 이 젊은 셀파 청년은 그 후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들이 가장 함께 오르고 싶어 하는 1순위의 등반 셀파가 된다.

    이제는 어엿한 트레킹회사의 사장으로 성공한 셀파 펨바 노르부. 그와 함께 우리를 감동으로 이끌었던 77년의 그날로 다시 돌아 가본다.    

♣ 우리는 셀파(Sherpa)입니다.

    '셀파(Sherpa)'는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짐꾼'이나 '산악가이드'란 뜻이 아니다. 네팔의 솔루쿰부 일대에 사는 고산족으로 셀파라는 단어는 티베트어로 동쪽을 뜻하는 '샤르(shar)'와 사람을 뜻하는 '파(pa)'의 합성어, 즉 '동쪽에서 온 사람'을 의미한다.

    1953년, 세계는 네팔의 소수 민족 셀파에게 주목한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 초등에 성공한 셀파 텐징 노르가이! 이후 셀파는 무수한 기록을 남기며 고산 등반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된다.

    산을 경외하고 신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 산에 오르지 않는 셀파들. 아이가 태어나면 사원으로 찾아가 이름을 짓고, 태어난 요일이 이름이 되는 그들은 새해맞이(로사르-Losar) 축제를 위해 2주전부터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곳곳에 짬바라는 흰 가루를 묻히며 집안을 치장한다.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챠를 마시고 만두와 같은 모모를 먹는,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그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엄홍길과 셀파!

    1971년부터 2003년까지 히말라야에서 사망한 대원 58명, 셀파 32명.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세계 최초 15좌 완등에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 산악계의 기록이다. 히말라야에서의 모든 것은 어쩌면 셀파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엄홍길의 등반인생에서도 셀파는 결코 빠질 수없는 존재다. 85년, 히말라야에 첫발을 들이며 만난 까르상 셀파를 비롯해서 97년, 크레바스 아래로 떠나보낸 의형제 셀파 나티. 그리고 매 원정 때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엄홍길이 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하는 겔젠과 파상.

    셀파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일하는 원정대의 짐을 나르기 위해 야크를 끌고 온 겔젠의 아내, 원정대의 주방 일을 도우며 죽은 남편을 대신해 엄홍길과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가는 학파디기.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들의 만남. 그 속에서 고산등반 셀파로서 그들의 역할과 삶을 들여다본다.

 

 

 





2006/06/1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