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4일 (목) / 제 82 회
◎ 도시의 봄은 어떻게 오는가 - 세 가지 색 봄 이야기
변덕스러운 날씨와 때늦은 추위 속에서도 봄은 온다. 차가운 날씨
지만 바람 끝에는 어느새 봄 기운이 묻어 있는 이즈음, 사철의 구
분이 없어져 계절의 변화도 느끼기 어려운 도시에 봄은 어떻게 오
는 걸까? 봄의 세 가지 색깔을 찾아가 본다. 먼저 출발로서의 봄
(春). 시작의 계절인 봄,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는 신
기섭 시인(27)을 만난다.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젊은 시인은, 쉽지 않은 성장기와 습작기를 거쳐 지금은 한 평 남
짓한 자취방에 생활하고 있다. 문학과 관계없는 글품을 팔아가며
혈혈단신 생활해온 신기섭 시인에게서 봄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나
본다. 그 다음으로 볼 봄은 “보다”라는 말에서 나온 관조의 봄. 사
랑과 청춘의 계절인 봄이지만 오히려 인생의 허무와 세월의 무상
함에 대해 더욱 잘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짧아서 오히려
아름다운 이 계절을 차분한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봄은 “spring"에서 나온, 욕망의 색깔을 지닌 봄이다. 누구
나 인생의 봄날을 꿈꾸고, 그 봄날을 만들기 위한 욕망으로 살아간
다. 연극 <프루프>에 출연중인 배우들을 만나 ‘내 인생의 봄날’ 이
야기를 듣는다.
◎ 너브실 애일당 처사 강기욱의 삶
전남 장성 너브실에는 고봉 기대승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이 있고, 이곳에서 가장 큰 고택이 애일당이다. 애일당을 지키고
있는 이는 고봉의 후손이 아닌 강기욱씨(43). 고택을 관리하면서
받는 월수입 50만원이, 4인 가족인 강기욱씨가 버는 수입 전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이제껏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특이
한 경력의 소유자. 시골에 살지만 농사를 짓지도 않고, 창작을 위
해 시골로 들어간 것도 아니다. 강기욱씨는 경쟁의 원리에 기초하
고 있는 자본주의가 체질에 맞지 않아, 의도적인 ‘백수’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는 소쇄원을 비롯한 산수를 떠돌면서 물아일체의 삶
을 배웠다고 한다. 소쇄원 시절 만난 아내와 함께 95년 결혼하고,
이후 비어있던 지금의 애월당에 들어와 살게 되었던 것인데... 선
택한 가난이지만 궁핍을 모르고 사는 강기욱씨의 가족들은 오히
려 이런 생활에서 느끼고 배우는 바가 크다. 초등학교 2학년인 작
은딸은 이미 <봄이란다>라는 시집을 낸 바 있는 시인이기도 하
다. 느리고 자유롭게 자연의 속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강기욱씨
와 그 가족들과의 만남은, 우리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
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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