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9일 (일) / 제99회
2005 한반도 위기, "북한은 핵을 갖고 있다"
▶ 2002년 켈리 방북의 진실은?
켈리와 함께 방북했던 대북담당교섭특사 잭 프리처드는 취재진과
의 인터뷰에서 “켈리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말로만 추궁했다”
고 증언했다. 또 샐리그 해리슨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들
었다면서, 강석주 외무성 1부상이 “나는 HEUP를 시인한 적이 없
다. 왜냐하면 우리는 HEUP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켈리는 무
례하게 나를 대했고 피고인처럼 취급했으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켈리
가 제시했다는 증거는 무엇이고, 2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킨 강석주
의 발언은 과연 핵 시인인가? 한편, 2004년 1월, 북한은 미국의 민
간 방북단을 초청해 2002년 10월 이후 최초로 영변의 핵시설을 공
개하고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을 직접 보여주었다. 김계관 외무
성 부상은 미 방북단에게 “북한의 핵 억제력에 대한 확신을 갖기
를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방북단이었던 핵 과학자 지그프리트 해
커 박사는 “플루토늄인 것은 확실하나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지 아
닌지는 알수 없다”고 밝혀 북의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역시 제
시되지 못한 상황이다.
▶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아직까지도 명확한 증거는 없다
2002년 11월, 2005년 2월, CIA의 미 의회 보고서 “북 HEUP, 명확
한 증거 없다”
2002년 10월 17일, 제임스 켈리의 발표와 때를 맞춰, 미국의 일간
지에는 파키스탄과 북한간의 핵-미사일 커넥션이 보도됐다. 그리
고 이것은 북한이 HEUP를 보유하고 있는 근거처럼 기정사실화 됐
다. 그러나 당시 북-파키스탄 커넥션의 증거가 됐던 파키스탄 칸
박사의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설계도 이전 ‘시
인’은 미국 고위관리가 파키스탄 고위관리에게 전해 들었다는 내
용의 간접증언이었다. 관련기사를 쓴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생
거 기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에이큐 칸과 직접 인터
뷰한 사람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2002년 11월과
2005년 2월에 CIA도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HEUP
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 북한 겨냥한 핵 선제공격 비밀계획 ‘콘플랜 8022-02’폭로
한 윌리엄 아킨 인터뷰
지난 5월, 미 군사전문가 윌리엄 아킨은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2003년 1월 부시 대통령의 비밀 명령에 따라 미 전략사령부는 대
북 핵 선제공격 전략이 담겨있는 ‘콘플랜 8022-02’를 수립, 2004년
6월에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작전계획은 기존의 것과 달리 북한의 핵개발이 다급한 위협으로
판정될 때 벙커버스터 및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
고 있다. 실제로 취재진은 미 국방부 공식 문건에서 2003년 6월 미
전략사령부가 제작한 콘플랜 8022 관련 보고서의 실제여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본 그램은 ‘콘플랜 8022-02’에 대한 미 군사전문가
윌리엄 아킨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 또, 2003년 11월 소형핵무
기 개발을 허용하는 스프래트-퍼스 수정안 폐지 법안 통과 및 서
명, 2004년 11월 대북 압박용 제이댐(JDAM) 폭격 훈련 실시 등 미
국의 대북 군사압박 증거들도 소개된다. 미 정부는 북한이 1~2개
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최대 6~8개까지 보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의 보유여부 및
수량, 고농축 우라늄 존재여부까지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 북한
의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도리어 미 강경파들
의 입지를 강화시켜 미국의 핵무장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 호로위츠의 메모, “김정일을 몰아내라”“김정일은 히틀러같
은 정신이상자”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와 같은 부시 행정부의 발언의 배경에
는 미 강경파의 대북 적대심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대북 강
경파 마이클 호로위츠는 2002년 3월에 보고서 ‘호로위츠의 메모’에
서 “북한 탈출을 장려하고 김정일을 몰아내라”고 주장했다. 호로위
츠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일은 히틀러와 다름없는 정신
이상자이고, 김정일을 악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면 그 단어를 사전
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악의 축’ 연두교서를
작성했던 데이비드 프롬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9.11과 같은
사태를) 또 당하기 전에 선제공격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대북 적대감은 북한 핵 의혹의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는 위
성사진의 판독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 강경파의 입장을 뒷받침하
는 미 과학국제문제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조차 취재
진과의 인터뷰에서 길주 터널을 비롯한 북한의 위성사진에 대해
“확실한 정보는 아니고 추정”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즈 데이비드
생거(David Sanger) 기자는 1998년 8월 영변 금창리 핵시설 의혹
을 특종 보도했으나 금창리는 텅 빈 터널로 판명됐고, 2005년 5월
6일 북한의 길주터널이 파키스탄의 핵실험 장소와 유사하다고 다
시 특종 보도했으나 역시 증거 없는 오보로 판명됐다. 취재진은 이
에 대해 데이비드 생거 기자의 입장을 들어봤다. 지난 이라크 전
쟁 당시, 미국은 첩보 위성사진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보유의 증
거라고 주장 종전 후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는 것을
인정했다.
▶ 미국은 6자회담을 북한 압박의 도구로 이용하려 했다
전 미 국무부 차관보였던 잭 프리처드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6
자회담의 미국측 대표였던 제임스 켈리가 “협상기간 동안 북한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고 밝혔다. 미 국가
안전보장회의의 빅터 차는 그의 저서 ‘Nuclear North Korea'에서
‘부시행정부는 북한은 악당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북과 대화하는
부시 행정부의 감춰진 의도는 북이 악당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
해 이용하려는 것’이고 ‘북한 처벌을 위한 연합을 조직해야 한다’
고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은 대화의 자리가 아닌 대립
의 자리일 수 밖에 없었다. 2003년 8월 27일 베이징에서 열린 1차 6
자회담에서는 북한 대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이 미국 대표 제임스
켈리를 복도로 불러내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며 협상을 제
안했으나, 회담이 결렬됐고 2004년 2월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2차
6자회담에서는 참가국 공동성명 문구 협상 과정에서 딕 체니 미 부
대통령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핵폐
기)’라는 문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성명이
무산되고 의장성명만이 발표되는 결과를 낳았다. 2004년 6월 23일
베이징에서 3차 6자회담이 열렸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초적
인 합의를 이뤘지만 7월에 북한 인권법이 미 하원을 통과하면서 4
차 6자회담은 결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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