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5일 (일) / 제 85 회

▣ <한국전쟁과 포로> 3부작

제 2 부 : 철조망 속의 전쟁 

* 오늘은 인공기, 내일은 태극기! 전복과 전복을 거듭하는 
포로 수용소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나뉘어진 거제도 포로 수용소. 이들은 휴
전회담에서 포로문제에 대해 양측대표들이 다툼을 벌일 때, 거제
도 포로수용소에서 또한 판문점 천막 안의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기 위해 철조망 안의 전쟁을 벌인다. 수용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는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다.
취재진이 독점 취재한 안병섭(가명)씨는 자신이 주도한 최초의 쿠
데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83수용소를 뒤집어엎기로 했
습니다. 수용소를 장악한 핵심분자들은 48명, 그때까지 내가 획득
한 동지는 150명이었습니다. 48명을 빈 텐트로 잡아와 묶어 놓고 
저항하면 두들겨 패도록 했지요. 아침에 태극기를 올렸습니다.” 
쿠데타를 통해 전복과 전복을 거듭하는 포로 수용소. 당시 포로들
은 밤의 포로수용소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으며, 시체는 땅에 파
묻거나 ‘각을 떠’ 분뇨통에 넣어 버렸다고 증언했다. 

* 포로수용소장 도드, 포로에게 포로되다
1952년 5월,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일이 벌
어진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
을 거제도로 집중시키며 유엔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유엔측의 자유송환을 무력화시키고 휴전협상을 북에 유리하게 이
끌려는 의도에서 실행된 것이었다. 
 
* 이탈자를 막아라 - 예비 분류심사
1952년 2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포로송환에 대비해, 북으로 
송환되기를 원하는 포로와, 남에 남기를 원하는 포로를 분류하기 
위한 ‘분류 심사’가 실시된다. 친공포로들은, 강제송환을 주장하는 
북한측의 지령에 따라 분류심사의 진행 자체를 방해했다. 반공포
로 조직은 이탈자를 막기 위해 혈서를 쓰게 하고 ‘반공’, 혹은 ‘멸
공’이라는 문신을 새기게 했다. 망설이는 사람은 송환을 희망하는 
자로 낙인찍혀 테러를 당했다. 또 위장된 자체 예비 심사를 통해 
북을 선택한 수십 명의 포로들을 폭행, 살해했다.

* 포로들을 위한 UN의 CI&E 프로그램은 포로들의 전향공작
을 위한 것이었다!
1951년부터 시작된 UN의 CI&E(Civil Information & Education, 민
간정보교육) 프로그램의 명분은 포로들의 사회 적응훈련의 성격
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CI&E 프
로그램은 ‘반공주의자’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었다.
거제도 주민인 제익근씨의 증언에 따르면 “1952년 포로 분류 심사
를 앞서 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했다. 민주주의의 장점을 홍보하
는 영화가 많았다.”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고 UN군 측이 포로들에게 전향공작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동안 포로들에 대한 북한의 사상교육(Brain 
Washing)을 비난해 왔던 UN군의 전향공작의 실체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