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0일 (일) / 제 80 회

▣『 중국의 6.25 참전 』 

2004년 6월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기대에 찬 달이 되고 있다. 남
북장성회담이 있었고 23일부터는 제3차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열
릴 예정이다. 그러나 주변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한반도 문제는 결
코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6.25가 발발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한
반도와 주변국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로 정리될 수 있는가. 이
런 마당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는 방송사상 최초로 중국측 
자료와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다루고자 한다.  
54년 전, 중국은 공식참전일인 1950년 10월 25일 이전부터 ‘출병
(出兵)’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위기’를 ‘중국의 기회’로 
역이용하고자 했다. 갓 수립된 신중국은 경제가 피폐했고 사회는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뒤집혀지자, 
1950년 10월 항미원조 보가위국 (抗美援朝 保家衛國, 미국에 저항
하고 조선 즉 북한을 도우며,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보위한다는 
뜻)을 내세우며 마침내 한반도에 참전했다. 중국군은 수적인 우세
를 발판으로 매복, 기습을 앞세우고 기동전, 진지전 등 독특한 전
술로써 2차 대전의 전승국인 미군에게 최장거리 후퇴를 압박하였
다. 결국 중국은 초강대국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정전협정을 체
결했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중국내 참전경로를 현장취재를 통해 추적하고 
당시 참전군들의 증언과 사료를 통해 중국의 참전 동기와 과정을 
알아보고, 전쟁의 후과가 이후 중국사회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
지 살펴본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게 한반도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
는지 반세기 이후 중미관계의 구조 속에서 모색해 본다(한국, 미
국, 중국, 러시아 등 4국 현지 취재).

1. 중국의 ‘출병’에 얽힌 진실
한반도의 전쟁은 중국에게 위기였다. 경제적 여력도 없고 대만해
방을 목전에 둔 그들에게 출병은 큰 부담이고 모험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만해협 위협과 맥아더의 38선을 넘은 북진은 중국에게 
침략 의도로 비춰졌던 것으로 보인다.
49년 7월부터 이미 중국은 해방군내 조선족을 완전무장시켜 북한
으로 보냈으며 50년 7월에 이미 동북변방군을 편성해 압록강 국경
지대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갓 사회주의 
체제를 탄생시킨 중국에게 참전은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만해
방을 연기하면서까지 그들은 왜 출병하려 했는가. 그 대답의 시작
에 놓여있는 모택동의 발언, “참전의 이익은 매우 크며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이다.” 이 말에 담긴 중국의 한반도 위기 관리
의 진심은 무엇인가.

2. 1950년 10월 2일 두 개의 전보
중국 당안관(문서기록보존소)과 러시아 대통령실에서는 같은 날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두 통의 전보가 각각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두 전보는 출병 여부에 대한 전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
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둘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니거나, 아니
면 하나만 전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로 다른 두 전보의 존재는 출병을 둘러싼 모택
동과 스탈린의 갈등에 기인하고 있었다. 진위 여부 논란 속에 밝혀
지는 모택동과 스탈린의 한국전쟁을 둘러싼 견제와 회피, 그리고 
그들의 치열한 기싸움과 노림수를 읽어본다.

3. 처음 공개되는 중국의 ‘항미원조’ 자료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부르며 기념관을 세우
는 등 각별한 의미부여를 해왔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중국측의 항미원조전쟁 자료와 현지 취재를 통한 실사 
복원을 도모한다. 특히 당시 중공군의 어둠을 틈탄 압록강 첫 도하
장면, 압록강 철교 폭파, 전쟁기간 동안 중국에서 벌어진 무수한 
군중집회 등을 공개한다. 

4. 한.미.중.러 네 나라 참전군인들의 육성을 통한 한국전쟁 추
적
한국전쟁에 처음 투입된 중국군과 이들에게 공군 지원을 했던 소
련 군인들 그리고 이들과 대적했던 미군과 한국군들. 이들의 서로
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맞춰가면서 그 날의 전쟁을 그려본다. 참
전군들이 직접 들려주는 운산 전투, 군우리 전투, 장진호 전투, 상
감령 전투. 이 전투들은 모두 중국군 참전 이래의  대표적인 전투
로 회자되는 것들이다. 
특히 10월 25일 중국의 첫 전투에 참여했던 중국인민지원군 38군, 
40군, 66군 등 참전군들이 들려주는 압록강을 건너던 긴박한 순간
과 치열했던 전투는 알려지지 않은 중국군의 전술과 병사들의 전
투 일상을 새롭게 보여줄 것이다.
한편, 미군들은 맥아더의 홈바이크리스마스작전(1950년 12월 크리
스마스까지는 전쟁을 끝내고 귀국하겠다는...)의 오만함이 가져다 
준, 결코 준비되지 못한 동계전투를 잊지 못한다. 당시 사상자들
의 90%가 동상자! 북쪽의 매서운 추위는 중국군과 더불어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적이었다.
 
5. 4개국 전문가의 치열한 대결
한편 본 프로그램에서는 한반도와 중미관계를 연구하는 한,미,중,
러 4개국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치열한 논리와 시각으로 또하나의 
장외대결(?)을 벌인다. 셀리그 해리슨, 래리 워젤, 리차드 피셔, 고
든 섬너 등의 미국측 인사와 장쉬광, 천지안, 션즈화, 양꿰이송, 천
펑쥔 등 중국측 인사 유리 바닌, 예브게니 페펠랴예프, 레프 이바
노프 그리고 한국의 박두복, 박명림, 김영호 등의 연구자들은 중국
의 참전 동기와 이후 중국의 득실, 그리고 만약 한반도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논쟁을 벌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