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1일 (일) / 제 79 회

▣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강남구 대치동의 13평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8억 7천만원. 평당 가
격이  6500만원인 이 아파트 한평을 사기 위해서는 대기업체 과장
이 2년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고스란히 저축해야만 한다.
최근 문제가 됐던 용산 시티파크 분양에 단 이틀동안 몰려든 돈이 
현금 7조원. 농어민 부채 경감을 위해 향후 20년간 지원하겠다고 
농림부에서 발표한 6조원보다도 훨씬 큰 액수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땅과 아파트라면 이렇게 몸살
을 앓게 된 것인가? 그 해답은 강남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민
국 최상위층의 권력과 경제를 상징하는 공간 강남, 30여년간의 강
남개발과정을 면밀히 추적해봄으로서 부동산 투기의 뿌리를 밝혀
보고자 한다. 

* 강남개발의 촉매제, 국가 안보
6.25 전쟁 이후 한국정부의 가장 큰 화두는 국가안보였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강남개발에 눈을 돌린 계기도 60년대 후반 1.21 사태
와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이
다. 당시 건설되는 고층건물들에는 방공호와 방공포 설치가 필수
였고, 서울시민들을 이끌고 한강도강훈련을 실시했을 정도로 안보
는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었다. 

* 강남 땅값은 올라야만 했다
강남개발 당시, 재원이 부족했던 서울시는 막대한 공사자금을 토
지구획정리로 확보한 체비지 매각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땅은 
마음처럼 쉽게 팔리지 않았다. 
정부는 체비지를 팔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내놓는다. 매주 도시
계획국 직원들은 버스에 시민들을 가득 태우고 강남까지 직접 찾
는 등 홍보에 발벗고 나섰다. 73년에는 영동지구를 개발촉진지구
로 지정해 강남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면세혜택을 
부여했으며, 일부 도시계획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2호선이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순환선으로 결정됐다. 경기고 등 
명문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며 8학군을 형성한 것도 이 무렵이
다. 
강북지역이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룸싸롱, 고급 요정 
등 유흥업소들도 발빠르게 강남으로 옮겨왔다. 세계 유례없는 짧
은 시간동안 도시의 중심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모든 유인책들은 땅값 인상을 유도해 체비지를 매각하려는 서울시
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것은 당시 경제발전주의 지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목표를 정해놓고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속전속결로 경제성
장에 매진하는 것. 강남 건설에 있어서도 개발과 관련된 모든 문제
의 총 지휘자는 당시 정권이었다.
 
* 유신체제는 강남개발을 필요로 했다.
독재의 정치적 정당성은 경제성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유신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한 축은 건설개발이었다. "박대통령은 직접 
전국을 헬기로 돌며 개발지역을 선정했고 청와대 집무실은 도로망
과 지적도로 가득 차 있었다" (김상현 전 신민당 의원) 골프장 허가
에서 도시설계도면 확정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손을 직접 거치
지 않은 것은 없었다. 강남개발 역시 마찬가지. 김현옥의 대 서울
구상에서 아파트지구 지정까지 모두 정권 차원의 아이디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강남의 의도적 개발과정에서 땅을 가진 사람들, 개
발의 가치를 깨닫고 땅을 선점한 사람들이 거대한 부를 획득하면
서 부동산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했다. 그들은 개발이
데올로기 속에서 유신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 또한 부동산 
투기가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체감한 대다수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투기 현장으로 뛰어들면서 부동산 중산층은 더욱 확대되
어 갔다.

* 아파트 붐과 현대아파트 
78년 6월 30일, 현대에서 사원용으로 지었던 아파트를 고위공직자
와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특혜분양 했다는 사건이 보도되면서 세간
을 뒤흔들었다. 정, 관계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 언론인 등 모두 220
여명 이상이 연루된 이 사건은 한국도시개발 정몽구 사장 등 5명
이 구속되고 투기성 분양자 56명이 면직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
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4천~5천만원이 현대
아파트 프리미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반 국민들이 아파
트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됐다. 강남에 아파트 투
기 바람은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을 타고 더욱 거세게 흘렀고, 
압구정동은 당대 부와 권력의 최상층이 모이는 특별구역임을 널
리 알렸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촌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그들만의 성채를 쌓아나가기 시
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