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7일 / 제 79회

1. 내 인생의 사과나무 
- 새의 영원한 동반자 새박사 윤무부 교수 !

 날개도 없이 365일을 새와 함께 비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새박
사 윤무부 교수!! 6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가 있는 곳
이라면 어디라도 불철주야 새를 찾아 나선다는 그가 바로 이번 주 
<내 인생의 사과나무> 주인공이다.

- 공동묘지에서 윤무부 교수가 낫과 톱을 들고 헤맨다는 괴소문!!

그 진상확인에 사과나무가 나섰다!! 
캄캄한 밤!! 사람의 숨소리는 찾아 볼 수조차 없는 인적이 드문 공
동묘지! 주변에 낫과 톱 등 무시무시한 도구들을 옆에 두고 공동
묘지를 헤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새박사 윤무부 교수!!!  그
가 야심한 밤~ 홀로 공동묘지에 나타난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 씻기 싫어하는 고질병때문일까? 아내와 잘 때도 몸에서 나는 냄
새 때문에 거꾸로 누워 잔다는 윤무부 교수!! 하지만 백로를 닮았
다며 입에 침이 바르도록 그가 자랑하는 그의 아내!! 두 부부의 전
격 풀 스토리~ 

 백로를 닮아 첫눈에 반했다는 그의 아내!!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1
여년을 매주 아내의 집 옆에 있는 여관에 자리를 잡고 구혼을 했다
는데!! 결국 기회는 왔고 아내가 그를 만나러 서울에 왔던 날 여관
으로 납치(?)해 다음날 아침 약혼사진을 찍은 사연!! 아내의 만류
에도 불구하고 그가 털어놓은 윤무부 부부의 찐한 러브 스토리!!!

- 학비가 없어 학교에서 내 쫒기던 그 시절 ~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결정적 영양을 미친 새 후투티를 만나
게 되는데!!  
   어릴 적부터 유달리 호기심 많았던 윤무부 교수! 뽕잎 밭에서 후
투티를 본 순간 그는 새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는데!! 7
남매 중 유일하게 키가 작아 지게를 질수 없고,  배멀미를 해서 어
부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윤무부 
교수~! 하지만 새를 연구하기 위해 생물학과를 지원하겠다던 그
의 꿈은 결국 가족들의 기대에 실망을 안겨 주었다는데!! 그 역경
을 딛고 그는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까? 새를 쫒아 다
니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며 그가 고백한 새에 죽
고 새에 미쳐 살던 젊은 시절에 대한 고백~!!!

-셋방살이 근근이 하며 이사만도 무려 14번!! 

   연탄가스가 새는 방에서 살면서도 새를 탐구하기 위한 장비만
은 수천만원을 들여 사고야 말았다는 윤무부 박사!! 
 그가 공개한 그의 보물창고에는 사천만원짜리 카메라를 비롯한 
그가 그동안 사 모은 진귀한 새 탐조 장비들이 전부 모여 있었는
데!! 검소하게 살면서도 탐조 장비만은 최고급을 고집했던 그의 고
집!! 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그가 장비를 구경하러 용산을 간다
고 해도 진서리를 친다는데!!  

-탐조를 하다가 생긴 훈장처럼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남자 
윤무부교수!!

새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의 사과나무는 과연 무엇일까? 김성주 아
나운서가 놀라서 뛰어간 그의 사과나무 공개현장!!! 9월 7일 전격 
공개됩니다!! 

2. 인생 대 약속 

자식을 버린 어머니, 25년만에 나타나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있
다는 전화였다. 25년 전,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였다! 남편
의 폭력에 견딜 수 없어 25년 전, 아이들을 남겨두고 도망쳤던 손
숙자씨(61).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삼남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학교도 보내주지 않아, 큰 언니는 가출을 하고 말았
다. 어머니를 대신해 초등학생 때부터 연탄불에 어린 동생들의 밥
을 해주던 언니였다. 둘째 영애씨(33)도 직장을 핑계로 다른 지역
으로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남동생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금
을 해주지 않은 부모님 덕분에 결국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힘들 
때마다 모든 원망이 삼남매를 버리고 간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여섯 살 때부터 나에게 엄마는 없다
그런데 25년이 지나서, 동사무소에서 숙자씨의 신원확인을 위해 
전화가 걸려왔다. 그동안 연락 없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만 생
각했던 삼남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무 미운 어머니였
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만나야한다고 생각했던 영애씨의 결정 
덕분에 극적으로 상봉한 모녀. 하지만, 여전히 큰딸과 아들은 어머
니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영애씨의 화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섯 살 때부터 나에게는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는 남동생. 어머니
가 집을 나간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어긋났다고 믿는 큰언니. 25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이들 남매와 숙자씨는 만날 수 있을
까? 

3. 사과나무 장학금

66대 사과나무 장학생 충남체육고등학교 전만희 
한국 레슬링의 떠오르는 기대주! 충남체육고등학교 전만희 
‘제 30회 대통령기시도 대항 레슬링 대회 고등부 자유형 54kg급 1
위’ ‘
제 18회 전국체육고등학교 체육대회 레슬링 자유형 54kg 2위’ 
‘제 85회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자유형 54kg급 3위’ ‘
2004 한일 우수고교 레슬링 교환경기 대표 선발 (2004.11.7~13 오
사카)’
대회에 나갔다 하면 메달 석권에 빛나는 레슬링계의 유망주.. 전만
희 군! 중학교 1학년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에 도움이 될까 레슬링 
선수가 되면 수업료 면제라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레슬링 판에 
뛰어든 아이. 그렇게 만희는 레슬링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지금까
지 전국대회에서 여러 번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만희에게 레슬링은 형제고, 삶 자체라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만희는 오늘도 레
슬링 판에서 땀을 흘린다. 
레슬링 경기장의 강자, 만희의 숨기고 싶은 아킬레스 건이 공개!!
타고난 체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 레슬링 경기장에 들어서면 
두려울 것이 없는 만희! 하지만 만희는 중학교 3학년부터  앓은 늑
막염으로 험한 레슬링 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고비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투기운동인 레슬링에선 체력소모가 많아 평상시에
도 충분한 영양섭취가 필요하지만 만희는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
는 부모님조차 안 계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술로 인한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잇따른 어머니의 재가! 부모님을 
대신해 만희를 키워주신 건 노령하신 할머니셨다. 다리, 허리가 아
파 만희가 메달 따는 레슬링 경기 한번 보지 못했다는 할머니.. 할
머가 걱정하실까봐 늑막염으로 아파온 얘기도 못한 만희의 아픔
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