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9일 (월) / 제 432 회

MBC 심야스페셜 <2005 봄 지리산별곡>

올 봄은 늦게 찾아왔다. 꽃샘추위가 3월이 다가도록 시샘을 부렸
고 때늦은 봄눈에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꽃피는 봄은 어김없이 우
리 앞에 찾아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지리산 산골마을에도 매화향기를 앞세우고 찾아
온 봄소식에 기지개를 편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붙여
진 이름인 지리산(地理山)... 
봄을 맞는 지리산 사람들의 봄 이야기에는 푸른 향기 물씬 풍기는 
사람들의 삶이 묻어난다... 봄이 무르익은 4월의 끝자락에 화려한 
꽃 축제와 진한 녹차향이 머무는 남도의 지리산...그곳에서 인간
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의 의미를 찾는다.

지리산의 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번쯤 산골 생활의 여유로움
과 넉넉함을 꿈꾼다. 그러나 지리산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산은 언
제나 변함없이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다만 그곳에서 삶을 지탱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번잡한 드나듦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지리산의 4월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다. 

녹차향 가득한 4월의 지리산... 사람들은 그렇게 지리산에 기대어 
살고 지리산은 그렇게 넉넉한 품으로 사람들을 보듬고 있다.

제 1 부 : 범왕리 권노인 부부의 봄날
겨우내 움츠렸던 지리산은 섬진강변 매화 마을의 매화향이 전해
질 무렵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화개장터로 잘 알려진 경남 하동
군 화개면... 섬진강을 따라 펼쳐지는 쌍계사 벚꽃 터널을 지나면 
지리산 꼭대기 마을인 범왕리가 있다.

80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온 토박이 권기선 할아버지 부부는 아들
의 노름빚 때문에 정든 집에서 쫓겨나 마을 공터 컨테이너에서 유
난히 춥고 시린 겨울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새 봄이 찾아온 지금, 
할아버지는 고로쇠를 받고 버섯을 따며 새순이 돋아난 녹차밭에
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지리산을 터로 잡고 사는 노부부에게도 
이 봄은 새로운 희망이다. 
산골 촌로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던져주는 지리산...
평생 지리산 자락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권 할아버지 부부에게 
지리산의 품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