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35 화 - 이발소와 미용실

 

(M) 주제음  기적 / 김동률 & 이소은

 

(E) 드라이 윙...

 

여  정말 오래 벼르고 별러온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게 10년 전.

    그동안 대형 미용실의 막내 조수부터 시작해

    얼마나 고생고생하며 견뎌 왔는지.

    손톱이며 손가락 지문이며 독한 퍼머약에 염색약에

    멀쩡한 날이 드물었고

    어깨 근육통에 시달리거나 손목 인대가 늘어나

    걸레도 짜지 못할 만큼 아픈 날도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이름을 건 미용실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서른 해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은

    한번도 없었다.

(M) Life is Cool / Sweetbox

 

여  개업 일주일째.

    날이 갈수록 손님은 늘어나고 있었다.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어서오세요.

남  .....

여  뭐 하시게요?

남  .....

여  손님?

남  여긴 몇평이나 됩니까?

여  네?

남  됐습니다. 컷트는 얼마나 받아요?

여  아.. 컷트하시게요? 만원이에요.

남  뭐에요? 얼마? 만원?

여  네, 왜요?

남  아니 무슨 동네미용실이 이렇게 비싸?

여  비싸...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요.

    서울 강남에선 컷트만 삼만원 넘는    곳도 많아요. 저

    도 사실 얼마전까지 그런 샵에서 일하다가 독립한 거구요.

남  그래서요!

여  네?

남  거기서 일하다 왔으면 가위 한번 들어놓고 만원씩이나..

    이거야 원... 가위 든 강도 아냐.

여  아니.. 손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저기.. 여기 컷트비가 너무 비싼 거 같으시면

    다른 곳에 가셔도 됩니다. 저어기 길 건너에 이발소도 있더라구요.

남  있죠.

여  그러니까요. 솔직히요. 이발소에서 자르시는 거랑 미용실에서

    자르는 건 스타일에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뭐 상관 없으시면 아무데서나 자르세요.

남  아무데서나? 이발소가 아무데서나야?

여  아니 왜 다짜고짜 반말이세요?

남  지금 이발소를 무시하는 것처럼 얘기하잖아!

여  내가 언제.. 아니 그리구.. 그게 손님이랑 무슨 상관이신데요?

    손님이 이발소주인이라도 되세요?

남  눈치가 없으시구만? 그래요. 내가 이발소 주인이요.

(M) Low / Flo-Rida

 

(E) 쥬스 따라주는

 

여  앉으세요. 아우 앉으세요.

남  괜찮다구요.

여  손님도 잠깐 빠졌구. 사실 제가 이웃에 떡이라도 돌렸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 없다 보니까요.

남  떡은 무슨.. 뭐 좋은 일 났다고 떡 얻어먹겠어요?

여  .... 왜 그러시는지 제가 좀 알 것 같기는 해요.

남  그래요? 알아요? 알면 한번 얘기나 해보슈.

여  일단 앉으세요.

남  앉았어요.

여  그거잖아요. 저희 집 개업하고 나서 이발소 손님 뚝...

남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상도라는 게 있지 않아요?

    어떻게 미용실을 이발소 바로 코앞에 열 수가 있어요?

여  다르잖아요. 제가 이발소를 연 것도 아닌데...

남  왜 달라요? 손님이 겹치는데.

여  기분 나쁘게 듣진 마세요.

    손님이 겹치더라두요. 경쟁력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런 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남  뭐라구요? 경쟁력?

여  그렇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집이 컷트비도 훨씬

    비싸구요. 보조도 없이 저 혼자 하는거라 컷트하러 오신 남자

    손님이 퍼머 손님 때매 30분 이상 기다리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구요.

남  그래서요.

여  그래서요라뇨. 그런데도 우리집에 와서 굳이~ 컷트를 하시겠다는

    손님이 계시다면... 그건 둘 중 하나 아니겠어요?

남  둘 중 하나요?

여  네. 제 실력이 너무 좋든가... 아니면 이발소 실력이 별로든가...

(M) So Hot / 원더걸스

 

(E) 문 탕 닫고 나가는 소리

 

여  어머? 왜 남의 영업집 문을 저렇게 탕탕 닫고 나가?

    내가 뭐 틀린 소리 했어?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어서오세...

남  납니다.

여  또 왜요.

남  실력 운운하셨는데. 그래요. 한번 해 봅시다.

여  뭐..뭘요.

남  우리 둘이 한판 붙어 보자구요.

    나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요. 35년 여기서만 살아온

    토박이라구요.

여  그래서요?

남  우리 동네 사람들, 내가 잘 알아요. 일단 없던 미용실이 생겼으니

    호기심에 한번씩 들러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진짜 실력 대결은

    이제부터라.. 이겁니다.

여  아우.. 네 알겠어요. 그리구요. 저는 그쪽 이발소랑 대결? 뭐

    그런 거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너무 애쓰진 마시구요. 저 영업 해야 하니까 그만 좀 가주실래요?

(M) Change / 현아

 

여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정말 잘되던 영업이 갑자기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띄게 손님이 줄었다.

    바로 코앞 이발소엔 남자 손님들이 북적댔는데

    우리집엔 컷트 손님은 물론이고..

    염색이나 퍼머를 하려는 여자 손님들까지도 뚝.. 떨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답답해 죽겠는데 누구 하나 붙잡고

    이유를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E) 커피잔 젓는

 

여  오늘 커피만 몇잔째야... (후..한숨 쉬다가)

    가만... 이발소 이 인간.. 이 인간이 무슨 수 쓴 거 아냐?

    맞어. 동네에 아는 사람도 많고...

    영업방해.. 틀림없어.

(E)  벌떡 일어나 나가는

(E) 사람들 북적대는

 

여  뭐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

    파격..세일... 이발료 5천원 반값 세일?

    반값? 그럼 2천 오백원?

    이 인간.. 미친 거 아냐 이거??

(M) Tik Tok / Ke$ha

 

(E) 문 닫고 나오는

 

여  저기요.

남  아 깜짝이야.

여  죄지셨나봐요? 놀라시는 거 보니까?

남  누가 죄를 져요? 일 끝나고 나오는 사람... 갑자기 부르니까...

    지금 나 기다리는 거에요?

여  네.

남  왜요?

여  제가 좀 알아볼만큼 알아봤거든요.

남  뭘 알아봐요.

여  이발비 반값세일에.. 아줌마들 로비해서 저 다음 블럭 미용실 가라고

    꼬드기고... 그쪽 누님이 이 동네 통장님이시라대요?

남  험..

여  아니.. 권력을 그런 데다가 사용하나?

남  뭔 권력이요.

여  내가 무슨 세금을 안내고 영업하는 것도 아니구요.

    이쪽 이발소에 오는 손님 강제로 납치해서 우리 가게 데려가는 것도

    아니구요.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건데요?

남  내가 분명히 말했죠. 상도라는 게 있다고.

    그걸 지켰어야죠.

여  정말..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죠?

남  내가 말했잖아요. 한판 해보자고. 상관 없다면서요?

여  아뇨. 이제 상관 있어졌어요. 한판. 해 보자구요.

(M) 으랏차차 / 럼블피쉬

 

(E) 스카치 테이프 탁탁 붙이고

 

여  반값세일? 너만 하니?

 

(E) 문 닫고 들어가고

 

여  일단 모든 종류의 시술비를 이 동네 시세에 맞게 확 내렸다.

    그리고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온갖 잡지 신간호를

    갖춰놓고. 커피도 막 갈은 좋은 원두로 막 뽑은 걸

    돌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쿠키와 함께.

    그리고 퍼머 하는 손님에겐 코팅을 공짜로..

    염색하는 손님에겐 트리트먼트를 공짜로 해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쿠폰을 만들어 10번 찍어오는 손님에겐

    내 환상적인 두피맛사지를 해주었다.

    좁은 동네에서 소문은 빨랐다.

    상황은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했다.

    주로 아줌마 손님들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 손님들을 구워 삶으면서 나는

    한마디씩 은근히 덧붙였다.

    애들 데리고 오세요~ 퍼머 하시면 아이 머리 다듬어 드리는 건

    공짜니까.... 뭐하러 이발소 가서 돈 써요. 애 머리 바가지나 만들지~

(M) I Saw Him Standing There / Tiffany

 

(E)문닫고 나오는데

 

남  거기.. 미용실 아줌마.

여  ...나 아줌마 아닌데요.

남  우리 얘기 좀 합시다.

여  무슨 얘기요? 난 뭐 별로.. 할 말 없는데?

남  할 얘기가 왜 없어요. 이리 좀 와 봐요.

여  어머?

 

(E)캔맥주 따는

 

남  마셔요.

여  뭐 주시는 거니까 마실께요. (마시고 크..)

남  장사 잘 됩디다?

여  이 동네 분들은 냉정하시더라구요. 인정이나 지연 이런 거 보단

    실력을 위주로 평가하시는 듯? 후후..

남  실력은 무슨. 우리 동네 애들 머리가 다 똑같애.

    남자 애들도 다 무슨 기지배들 머리 같아 가지고.

여  그게 요즘 트랜드에요. 아이돌 머리 안 봐요?

남  난 그런 거 안 보거든요? 나한텐 유행 보단 내 주관이 중요해요.

여  아니.. 주관 있으시면 본인 머리나 그렇게 자르세요.

    다른 사람들도 생각을 해 주셔야지..

남  됐고. 우리 협정을 맺읍시다.

여  협정요?

남  일단.. 가격은 제자리로 올리고.

여  그리구요?

남  최소한 서로 영업방해는 하지 말기.

    상대방 헐뜯기.. 손님 가로채기.. 그런 거..

    많이 해봤으니까 알거 아니에요.  

여  뭐, 그럽시다. 먼저 싸움 건 건 그쪽이니까 나야 뭐..

남  그래요. 그리구 한 가지 더...

여  한가지 더 뭐요?

 

여  그 다음 그의 얘기는 조금 놀라운 것이었다.

 

(M) I Should Be So Lucky / Kylie Minogue

 

---------------------1부 끝 ------------------- 

 

(E) 미용실 문 드르륵

 

여  들어와요.

 

(E) 불켜고

 

여  앉아요.

남  ...큼..

여  뭘 어색해해요. 얘기할 땐 언제고.

남  진짜 약속한 겁니다.

여  그래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해요.

남  그리고 내 스타일대로..

여  그건 해 봐야 알죠. 앉아요 빨리. 나두 얼른 하고 집에 가서 쉬어야  돼요.

남  (의자에 앉고) 어디.. 실력 실력.. 했으니까 실력 좀 봅시다. (어색)

여  참나.. 잘 부탁합니다.. 이럼 어디가 덧나시나..

    고개 들어보세요.

 

(E)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

 

여  그랬다.

    그가 나에게 말하려 했던 한 가지 더..는 이것이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좀 잘라달라는 것.

    너무나 진지하게 그 얘기를 하는데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사실 나도 내 머리를 다듬을 땐 다른 미용실에 간다.

    엊그제까지 자존심 다툼을 하던 남자의 머리를 다듬자니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남  너무 기지배처럼 자르면 안돼요.

여  끝까지 잔소리시네.. 고개 숙여 보세요.

 

(E) 면도기로 징 미는

 

여  다 됐어요. 이리 오세요. 머리 감겨 드릴께요.

남  아 됐어요.

여  샴푸해드리고 드라이까지 해드리는 게 미용실의 컷트거든요?

    이게 이발소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남  아 우리도 그런 거 다 해요.

여  그럼 더 잘 아시겠네. 이리 오세요.

 

(E)샤워기 소리

 

여  이발소 일 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남  오래됐죠. 그 자리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하셨고..아버지가 하셨고..

    난 그거 어려서부터 보다가.. 물려받은 거니까.

여  그렇게 오래된 곳이에요?

남  전쟁 직후부터... 50년 넘었어요.

여  그렇구나... 나름 유서깊은 곳이네.

남  요즘 누가 이발소 오냐구요. 그나마.. 아버지 단골.. 할아버지 단골..

    이런 분들이 근근이 나 먹여살려주는 거에요.

여  (샤워 끄고) 자.. 머리 말려드릴께요.

(E)드라이 소리

 

여  머리 마음에 들어요?

남  ..... 인정하기는 싫은데. 괜찮네요.

(M) 두근두근 / 브로콜리 너마저  

 

여  며칠 후.

    아침에 출근하다가 수건을 내다 말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남  안녕하세요.

여  머리 이쁘네요. 누가 잘랐는지.

남  거 손은 왜 그래요?

여  뻔하죠. 어제 고데기 만지다가 데였어요.

남  초보야? 아직도 손을 데고 그래요?

여  그러게요.

남  연고도 안 발라요?

여  많이 데인 것도 아닌데요 뭐.

남  잠깐 기다려 봐요. 내가 화상 연고 하나 있는데..

(E) 들어가더니 나오고

 

남  여기.. 손 대 봐요.

여  뭘 이렇게까지..

남  머리 공짜로 잘랐으니까.. 그 웬수 갚는 겁니다.

여  뭐 이 정도루?

남  지금 뭐하세요? 나한테 작업거세요?

여  어머? 왕자병이 심각하신가봐요. 어딜 봐서 내가...

남  오늘 늦게 끝나요?

여  네?

남  시간 되면 밥이나 먹읍시다. 연고 다 됐어요. 아 거 어리바리하니

    손이나 데고 그러지 말고. 제대로 좀 해요.

여  뭐라구요?

남  정신 똑똑히 차리고 일하시라구요.

여  아니 그거 말구. 그 앞에.

남  ...(어색) 시간 되면... 밥이나?

(M) 이 사람이다 / 김종국

 

(E)돈까쓰 써는

 

남  이 동네엔 뭐 먹을 게 없어서..

여  나 돈가스 좋아해요.

남  그럼 다행이고..

여  그런데 왜요?

남  네?

여  왜 나랑 밥을 먹재요?

남  그냥... 저녁에 혼자 밥먹기 그래서요.

여  이발소도 그런 지는 모르겠는데요. 미용실이라는 데가 그렇잖아요.

남  네?

여  소문의 진원지.

남  ?

여  아줌마들이 그러시더라구요. 10년 전엔가.. 좋아지내던

    동네 여자분이랑 헤어지고.. 여자 만난 적이 없으시다구..

남  누구? 나요?

여  그럼 누구 얘길 하겠어요.

남  하아... 아줌마들 별 얘기들을 다 하네~

여  진짜에요?

남  아... 돈까스가 왜 이렇게 퍽퍽해. 아저씨~

(M) Day After / 홍경민

 

(E)걷는 소리

남  이 길이.. 목련길이에요. 벌써 몽우리 맺혔네.

    한 일주일 있으면 하얗게 피겠네요.

여  왜요. 첫사랑이랑두 이 길을 걸으셨나?

남  아 왜 그래요~

여  왜 그러긴요. 나한테 작업 거는 남자가 워낙 오랜만이라~

    나두 관심 보이는건데...

남  내가 무슨 작업을 걸었다구.. (하다가) 그런 남자가 진짜 그렇게

    오랜만이에요?

여  스무살에 처음 미용학원 다녔구.. 그 뒤에 이 미용실 저 미용실..

    전전하면서 너무 바빴어요. 돈 버느라 바쁘구... 일하느라 바쁘구..

    상처 받느라 바쁘구... 연애할 시간 없었죠.

    정말 10년만에 숨돌리는 거랍니다.

남  쉬운 일이 없죠.

여  아직도 우리 미용실 때매.. 타격이 커요?

남  타격.. 아무래도 있죠. 있는데.... 그래도 뭐 처음처럼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진 않네요.

여  ....왜요?

남  글쎄... 왜 그럴까. 꽃이 필 때가 돼서 그러나....

여  하...치... 웬 노인네 같은 소리?

(M) 매일 꿈을 꾸나요 / 레이나

 

여  데이트 같지 않은 데이트를 하고 나서부터

    나 역시 은근히 그가 신경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문을 열었는지...

    수건은 바짝 잘 말리고 있는지...손님이 너무 없진 않은지...

    남자 컷트 하러 오면.. 지금 바쁘다면서 저 앞에 이발소 가보라고

    괜히 떠미는 일도 생겼다.

    

(E) 똑똑..

남  (가위질하다가) 어.. 웬일이에요.

여  이거.. 국수를 좀 삶았는데 너무 많아서...

    멸치국수 좋아하나 몰라..

남  좋아하죠. 잘 먹을게요.

여  불을까봐..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남  골목에 목련꽃 폈더라구요?

여  그래요? 그랬나? 몰랐네?

남  저녁에 보러 갈래요?

여  뭐.... 그러시든가....

(M) 일요일 맑음 / 러브홀릭

 

여  미용실 끝날 무렵에 온 퍼머 손님은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10만원이 눈앞에서 어른거렸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화장하고.. 드라이하고.. 옷도 갈아입고..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왔다.

    잠깐 머리 좀 자를 수 있냐며...

    죄송하다고.. 오늘은 영업이 끝났다고

    다시 한번 손님을 돌려보내고.. 나오려다가

    가글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 꼭 뭔가를 기대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러고 나서 미용실을 나왔는데...

    이발소 앞에 아까 머리 잘라달라던 그 여자가 서 있다.

    그 앞에 그 사람도 서 있었다.

    혹시 저여자가 이발소 가서 머리 자르려고 하나? 하다가...

    두 사람 분위기를 보고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아 그 여자구나...

    10년 전에 저 남자 버리고 서울로 갔다던.. 그 여자.

(M) 여가 / 장연주

 

여  못볼 꼴을 본 것처럼 집으로 갔다.

    휴대폰도 꺼놓고.. 괜히 우울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고.

    다음날엔 얼굴 팅팅 부어서 출근했다.

    그런데...

 

(E) 빗질 소리

남  어이 미용실 아줌마.

여  ....

남  어? 적반하장이네? 약속 안지켜놓고 지금.. 누가 화를 내?

    전화는 왜 안받고?

여  방해하기 좀 그렇더라구요.

남  뭘요.

여  그 여자분... 어제 우리집에 왔던데? 머리 좀 다듬어달라고?

남  ....

여  다 봤어요.

남  봤어요?

여  네.

남  어떻게 알았어요?

여  그쪽 눈 보고. 아니. 아예 구걸을 하지?

    여자를 보는 눈이 애처로워서 못 보겠더라구요.

남  .....내가 뭘...

여  왜 다시 잘해보기로 한 거에요?

남  그냥 만난 거에요. 뭘 잘해봐요.

여  뭐 그냥 찾아온 건 아닐 거 아니에요. 10년 전에 헤어진 여자가

    뭐.. 머리 잘라달라고 이발소 왔겠어?

남  거 비켜요. 청소하는데....

여  그래서요. 다시 사귀기로 한 거에요?

남  뭐 그렇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아요?

여  글쎄... 왜 그러까... 꽃이 필 때가 돼서 그런가...

(M) 사랑은 봄처럼 / 수빈

 

(E) 문 닫고 나오는데

 

남  꽃 보러 가야죠.

여  안가요.

남  왜요? 같이 가기로 해놓고?

여  내가 아무리 남자가 궁해도.. 여자 있는 남자.. 미련 있는 남자..

    그런 남자랑은 안놀아요.

남  누가 놀재요? 그냥 꽃 보쟀지?

여  누굴 초딩으로 아나. 그 말이 그말이지.

남  여자 없어요. 미련도 없어요. 그러니까 나랑 놉시다.

    가끔 내 머리도 잘라주고.. 샴푸도 해주고..

여  왜요? 10년동안 못잊고 여자도 안만났다믄서? 그 여자가

    다시 어떻게 좀 해보자고 찾아온 거 뻔한데?

남  꽃이 말이에요. 필 때는 이쁘잖아요. 이게 사진으로 남아 있을 땐

    좋은데.... 그런데 이미 다 진 꽃잎은 아무리 이쁘게 봐줄래야

    이쁘지가 않아요. 그냥... 방금 핀 들꽃이 더 낫지.

여  뭐야? 이건 웬 알아듣기 힘든 은유법? 어쩌라구?

남  그쪽이 방금 핀 들꽃.

    그 여자는 10년 전에 피었던 장미.

여  내가 왜 들꽃이야?

남  아직은 들꽃이죠.

여  뭐야.. 나한테 그쪽은 꽃도 뭣도 아니거든요?

남  그래요. 그런다 치고.. 꽃이나 보러 갑시다. 산책도 하고..

    날리는 머리카락만 봤더니 머리가 다 지끈대..

여  그건.. 나도 그래. 염색약 냄새.. 으유 지긋지긋해.

 

(E)걷는 두 사람

 

여  목련이 피어나고 있는 그 길을 걷는다.

    난 아직 그 사람에게 들꽃.

    그 사람은 나에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는 서로에게 피어나고 있는 사이라는 것 밖엔.

(M) 주제음

 

 

 

 





2010-03-2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