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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34 화 - 돌아온 싱글

 

(M) 주제음  Track 3 / 이소라

 

여  돌아온 싱글. 돌싱이라고 한다던가..

    나는 남들이 말하는 돌싱이 되었다.

    처음엔 힘이 들었다.

    가족 모임에도 안 가게 되고

    친구들도 피하게 되고.

    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들과도 왕래하고

    친구들 앞에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이혼 얘기를

    할 수도 있게 됐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난 그 시간이 아무 의미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많이 성숙했다.

(M) 봄눈/ 박지윤

 

여  처음 몇 년간은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남자에게 너무 데였을 뿐인데

    남자 모두가 싫어져 버렸다.

    하지만 아픔에서 벗어나면서

    너무 닫아놓고 힘들게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친구들을 통해 이런 저런 사람들을 소개 받기도 하고

    가끔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E) 열쇠로 문 열고 들어서는

 

여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설 때

(E) 불 딸깍 켜고

여  혼자서 불을 켜야 하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E) 강아지 짖는 소리

여  그게 싫어서 강아지를 사다가 키워보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M) Amor / 웅산

 

여  친구의 권유로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재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클럽 같은 곳이었다.

 

(E) 파티 분위기

 

여  주말 저녁 같은 때

    대형 홀에 모여 식사도 하고 간단한 와인도 마시고 하면서

    사람들을 사귀는 식이었다.

    토요일 저녁에 강아지 껴안고 드라마나 보고 있느니

    이 편이 훨씬 재밌겠다 싶어

    한껏 차려입고 모임에 나왔다.

    그렇게 두세번쯤 나갔을 때... 난 정말 황당한 일을 겪었다.

 

(E) 누군가 걸어오는

 

남  윤은서.

 

여  누군가와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던 중..

    난 너무 놀라 와인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여  여..여보!!!

(M) Honey Honey / Abba

 

여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여보라니.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여보라니.

    내 앞에 서 있던 남자는 기막히다는 듯이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고.

    난 전남편 앞에서 무슨 바람 피다 들킨 여자처럼 당황스러워했다.

 

남  여기서 뭐해?

여  뭐..뭐하는 거 같애? 사람을 갑자기 그렇게 부르면 어떡해!

남  그럼 뭐.. 예고편이라도 찍어서 내보내고 나서 부를까?

여  여긴 왜 왔어?

남  왜 오긴 왜 와. 당신이랑 같은 이유로 왔겠지.

여  하.. 기막히네. 아니, 없으면 죽고 못살겠다던 그 여자는

    어떡하구 여길 와?

남  내가 뭐 그거까지 얘기해야 되나?

여  아니? 안해도 돼. 사실은 관심도 없거든.

    가던 길이나 가셔.

남  그런데 참 의외다. 당신.. 나랑 이혼할 때 뭐랬어.

    남자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정 뚝 떨어져서 이젠 쳐다보기도

    싫다며?

여  응. 그랬지. 그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뭘 좀 잘못 생각했더라구.

    알고 보니까 세상엔 괜찮은 남자들이 너무너무 많아~

    내가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너무 이상한 남자랑 살았던 거 뿐이지~

(M)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 버블시스터즈

 

(E) 파티 분위기

 

여  처음엔 기분을 확 망쳐서 그냥 나와 버릴까도 했지만

    내가 낸 회비가 얼만데 저 인간 때문에 그 돈을 날려? 싶으니

    그러기도 싫었다.

    그래서 차분히 앉아 밥 먹고 차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많은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눴다.

    한참 그러다 보니 내 전남편은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남  재밌어 보이네?

여  응. 재밌어.

남  술도 마시고?

여  마셨지.

남  옷이..그게 뭐냐?

여  옷이 왜?

남  파티..파티 하니까 여기가 외국도 아니고 진짜 무슨 드레스

    입고 와야 되는 줄 알았어? 등 파인 거 봐라.

여  가슴도 확확 파이게 입고 온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남이야 드레스를 입든 거적떼기를 걸치든

    그쪽이 무슨 상관이야?

남  누가 상관이 있어서 그래? 예전에..한때.. 알던 사람으로서!

    보기 안좋아서 충고해 주는 거지.

여  나는, 내가 예전에 좀 알던 사람이, 내 지금 모습을

    보기 좋아하든, 보기 싫어하든, 정말로 관심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충고 같은 거 받고 싶지도 않고.

    지금 그쪽이 내 옆에 있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좀 비켜줄래?

남  ... 당신 진짜 무슨 여기서 남자 만나서 결혼이라도 하게?

여  할 수 있으면 해야지!

남  나한테 그렇게 데였다며! 또 이런 데서 남자를 만나겠다고?

    여기 나오는 남자들.. 내가 봤을 때 절반 이상은

    결혼 마음 없어. 그냥 외롭고 심심하니까 나와본거지.

    이런 놈들이랑 뭘 도모해.

여  어디 외국 나갔다 왔어?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내가 여기서 백수를 만나든 바람둥이를 만나든

    세상에서 젤 못된 놈을 만나든 누굴 만나든....

    그건 내 마음이야. 상관 마!

(M) 멍 / 김현정

 

(E)주차장 걸어오는, 삑삑 차 찾고

 

여  파티가 끝나고 조금은 지쳐서 차를 찾았다.

 

남  내 이럴 줄 알았다.

여  엄마야..

남  음주운전하시게?

여  와인 딱 두잔 마셨어.

남  와인 딱 두잔은 술 아니야? 주량이 와인 반잔도 안되는 게..

여  모르는 모양인데 나 그동안 술 많이 늘었거든?

    아 왜 이래 자꾸 따라다니면서! 비켜 봐 좀!

남  혹시나 하고 와봤더니.. 내 차가 이게 꼬라지가 뭐냐?

여  그게 왜 당신 차야?

남  이혼할 때 내가 준 거 아냐. 아니지. 당신이 뺏어갔지.

여  웃기고 있네!

남  내가 그렇게 아끼던 걸 줬더니.. 여기저기 다 긁히고 박고..

    어후... 이제는 음주운전까지 할라구?

여  알았어. 대리 부를 거니까... 가.

남  내가 운전해 줄게.

여  미쳤어? 비켜!

남  내가 운전해 준다구. 오랜만에 내 차도 타볼 겸. 키 줘.

(E)키 뺏어가는, 차 타는

여  왜 이래! 키 내놔?! 야!

(M) 야 / 소호대

 

(E) 차 가는

여  정말 어이가 없다.

남  뭘 그렇게 궁시렁대냐.

여  당신이 뻔뻔한 건 알았지만.. 좀 심한 거 같지 않아?

    예전엔.. 그래. 예전에 내가 다 받아줬던 건, 그래도 당신이

    내 남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내가 그때 그 여자로 보여?

    당신 말이라면 깜박하고 다 받아주던 그 여자?

남  (하!) 당신이 내 말이라면 깜박하고 다 받아줬다구?

    솔직히 말해서 그건 아니었지~

여  아니 내가.. (하다가) 말자. 내가 왜 여기서 말싸움을 하고 앉았냐?

남  ......

여  ......

남  7년만인가?

여  .....

남  윤은서.. 너도 이제 나이 먹은 티가 나는구나. 예전엔 참 동안이었는    데. 

여  대꾸하고 싶지 않으니까 도착하면 깨우기나 해.

남  3년 연애해서 7년 같이 살았고. 이혼하고 7년 지났고.

    우리 인연도 참.. 오래 됐구나.

(M)     슬픈 인연 / 015B

 

남  은서야. 도착했다.

 

여  나도 참... 그 사이 잠들어 버렸다니.

    

남  아직도 여기 살았구나? 이사 갔을 줄 알았는데.

여  키나 줘.

남  여?다.

(E) 차 문 열고 나가는

남  잘 가라는 인사도 안하냐?

여  내가 그런 인사를 왜하냐? 가다가 확 자빠져서 코가 깨지든

    뒤통수가 깨지든 그랬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구만!

(E) 가는데

남  참... 니 물건 하나가 나한테 있다.

여  뭐?

남  언제 만나면 줘야지.. 그랬는데. 뭐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

    니 일기장.

여  뭐!!!!

남  10년 일기장.. 그거 내 짐에 섞여서 왔더라구.

여  아씨.. 어쩐지..  그거 읽었어?

남  아아니. 내가 니껄 왜 읽냐?

여  당장 돌려줘.

남  지금?

여  아 내일이라도 퀵으로 부쳐달라고.

남  싫은데?

여  약올리지 마라. 폭발할 거 같으니까.

남  다음주 토요일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때 줄게.

여  내가 왜? 미쳤어? 소화 안되게?

남  멀리 갈 거 없이 공원 옆에 파스타집 있지?

    아까 오면서 보니까 거기 아직 있더구만. 장사가 좀 되나봐?

여  아 몰라.

남  암튼 거기서 보자. 7시.

(M) 흑백영화처럼 / 이승환

 

여  내가 무슨 미국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전남편과 쿨하게 저녁 식사라니.

    그것도 내가 싫다고.. 다른 여자가 좋다고...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간 남자랑.

    겨우 평화로워졌던 내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내 일기장..

    그건 당연히 돌려받아야 한다... 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토요일 외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정말... 일기장 때문에 가는건가?

    그 사람이 그 여자와 어떻게 됐는지

    왜 나를 다시 만나려고 하는지

    나한테 그렇게 못할 짓 해놓고 미안했던 적은 없는지

    궁금한 건 아니고?

    화장을 다 마친 얼굴에 이유 모를 눈물이 쏟아져

    난 현관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결국.. 그곳엔 가지 않았다.

(M) 지지리/ 베이지

 

-----------------------1부 ---------------------

 

*잠시 후 2부 -

 

여  며칠 뒤 주말 오전.

 

(E) 벨소리, 안에서 강아지 짖고  

 

여  누구세요?

남  나야.

여  누구요?

남  니 전남편.

여  왜 왔어.

남  문이라도 좀 열어주고 말해라.

(E)문열고

여  왜 왔냐고.

남  이거 돌려주러. 너 그날 왜 안나왔어!

여  안 간다고 했잖아!

남  하여튼... 남자 혼자 봉골레 파스타 먹으면서 얼마나

    초라했는지 알기나 해?

여  내가 그걸 알아서 뭐해.

남  강아지 샀냐?

여  암튼 가져다 줘서 고마워. 잘 가.

(E)신발 벗으며

남  커피 한잔만 주라. 그건 줄 수 있잖아.

여  어딜 들어와!!

남  도배 새로 했네?

여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라.

남  그런데.. 주방 불이 왜 저러냐? 저거 전구 갈아 껴야겠네.

    ........껴 줘?

(M) 밤 하늘의 별을 / 양정승. KCM

 

남  다 됐다. 아니 무슨.. 주방불은 그렇다 치고

    화장실에 불도 안 들어오는데 그걸 안 갈고.

여  오늘 갈려고 했어.

남  그래도 커피 한잔 값은 했지? 커피나 한잔 줘.

    그것만 마시고 갈게.

 

(E) 커피 따르고

 

남  그런데 너 강아지 싫어했잖아.

여  ....

남  강아지까지 키우고. 외로우신가?

여  그냥 누가 주길래 키우는 거 뿐이야. 오바하지 마.

남  이 집 냄새.. 가끔 그리울 때 있었는데.

여  헛소리도 하지 말고.

남  ..... 잘 지냈냐 윤은서?

여  인사 참 빨리도 하네.

남  넌 그마저도 안하잖아.

여  계속 잘 지냈다고 할 순 없지만, 최근엔 잘 지내고 있었어.

    .........당신은?

남  물어봐 줘서 고맙다. (사이) 난 그다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여  다행이네.

남  가시 좀 빼고 말해라.

여  그러게 뭐하러 여기 앉아서 가시 박힌 말이나 듣고 있어.

남  ....그러게. (커피 마시고)

여  .... 그 여자랑은 헤어졌어?

남  ....

여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니야. 대답 안해도 돼.

남  그렇게 됐다.

여  (기막힌 한숨)

남  ... 왜. 좋아할 줄 알았더니.

    거봐라. 그러게 내가 뭐랬냐. 그러면서.

여  거봐라. 그러게 내가 뭐랬냐.

남  그럼 그렇지.

여  내가 뭐랬어. 사랑? 얼마나 갈 거 같냐고 내가 그랬잖아.

    나한텐 안 그랬었냐구. 사랑한다구. 안 그랬었냐구.

    그래놓고... 딴 여자한테 또 그러는 게 사랑이면.

    그런 거.. 그딴 거... 얼마나 갈 거 같냐구. 그거 얼마 안 간다구.

    미친 짓 하지 말라구..... 내가 그랬잖아!!!!

(M) 사랑 둘이서 / ab 애비뉴

 

(E) 설거지통에 커피잔 놓고. 물 틀고

 

여  그가 가고 나서 커피잔을 씻다가

    왜 갑자기 그랬는지... 울음이 터졌다.

    7년 전 느꼈던 배신감. 애써 잊고 있었던 아픔.

    이런 것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버렸다.

    난 이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E) 서랍 열고

 

여  그에게 돌려받은 일기장을

    서랍 속에 집어넣는다.

    이 안에는 그 사람과 지냈던 행복한 시간.. 불행한 시간..

    모두 적혀 있겠지.

    다시 꺼내보고 싶지가 않다.

(E) 서랍 닫고

여  하지만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뭔가, 아직 남아있는 게 있었다.     

(M)     미워요 / 정인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나야. 번호도 그대로네.

여  왜.

남  어디야?

여  나 일하는 데.

남  일하는 데가 어딘데.

여  광장동 학원이야. 왜.

남  몇시에 끝나?

여  용건을 말해 그냥.

남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 강아지랑 둘이만 보낼 것 같으면

    내가 같이 밥이나 먹어줄까 하고.

여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남  글쎄... 눈에 안 보였을 땐 몰랐는데 보이니까 또 궁금하고

    뭐.. 여러 가지로 그러네.

여  오늘은 선약 있어.

남  누구랑?

여  대학 동기들.

남  누구. 그 지용인지 하는 자식 껴있는 그 모임?

여  지용이가 왜 당신 자식이야?

남  그 자식.. 결혼했어?

여  결혼했다가 이혼했지.

남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걔는 이혼할 줄 알았어.

여  당신도 이혼남이야.

남  ...암튼.

여  당신 혹시 외로워?

남  뭐?

여  나랑 이혼했는데 그 여자한테 차이구. 그냥 가만 있을 걸 그랬나..

    후회되면서.. 그러다가 날 봤는데. 나는 그냥 좀 잘해주면 다시

    넘어올 것 같구. 만만하구. 그래서 이래?

남  아니.

여  그런 거 아니면 이런 쓸데없는 전화질 하지 마.

(M) 내 마음에 들어오지마세요 / BMK

 

(E)걸어오는 소리

남  늦었네, 이제 끝났어?

여  ....뭐해 여기서.

남  선물 사놓은 게 있었거든. 그거나 주고 가려고.

여  당신이랑 나랑 헤어지고 일곱 번째 생일이야.

    그동안 여섯 번은 선물안해주고 미안해서 어떻게 견디고

    이제 와서 이래?

남  그냥 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거야.

여  무슨 얘기.

남  ...미안하다는 얘기. 너랑 그렇게 이혼하면서도 끝끝내 미안하다는

    얘긴 한번도 못했지.

여  안했겠지. 안 미안했을테니까.

남  그래. 살면서 더 미안해지는 건 있더라.

여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최선을 다했었어. 살아보려고 끝까지 노력한

    것도 당신이 아닌, 나야.

남  ....

여  난.. 당신이랑 살아보고 싶어서... 아이 갖자는 얘기도 했었고...

    그런데 당신 한번이라도 협조해줘 본 적 있어? 시간 없다구 바쁘다구

    병원 한번 같이 가주지 않고... 그렇게 바쁜 사람이 다른 여자

    몰래 만날 시간은 있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어.

남  내가 당신 가장 좋았던 점은, 그거였어.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었던 거.

여  뭐?

남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는데. 그 여자랑 삼자대면 한번

    안해보고... 그 여자가 어떤 여잔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이혼도장 찍는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여  .....뭐?

남  ...... 간다.

(E) 뚜벅뚜벅

여  무슨 소리야! 설명을 해주고 가!

(M)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신수경

 

(E) 서랍 여는

여  집에 돌아와 일기장을 꺼내본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마지막 장에 그 사람이 쓴 글이 있다.

    

남  일기 하나도 안봤다는 말, 그 말을 넌 또 믿더라.

    미안한데.. 다 봤어.

    그리고 거짓말한 게 몇 개 더 있는데...

    널 정말 많이 좋아해서 결혼했고.

    결혼해서 살 땐 매일매일 좋고 설렌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혼 잘했다.. 그랬었다.

    그런데 니가 아이를 너무 많이 기다리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보면서는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왜냐면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거든.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면 니가 참아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건 내가 더 못참을 것 같았고.

    여자가 있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 여자 때문에 이혼하는 건 아니었어.

    그럴만큼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떠나는 핑계를 만들고 싶었던 거야.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정말 못났던 것 같다.

    이거저거 다 두려워 도망만 치고 싶었으니까.

(M) 사랑이라서 / 임재범

 

(E) 일기장 탁 덮고

 

여  일기장을 덮으며 난 한참동안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해야 했다.  

    나에겐 아이 자체만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결혼 생활에 싫증을 내 하는 것 같은 남편 모습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나와 헤어지고 싶어 했다니.

    정말 이기적이다.

 

(E) 전화 거는

 

여  여보세요.

남  어. 전화할 줄 알았어.

여  우리 좀 만나.

(M) 늦은 후회 / 보보

 

(E) 공원 소음

 

여  추운데 까페에서 보자니까.

남  간만에 공원 오니까 좋은데 왜.

여  일기장 봤어.

남  그걸 이제 봤냐?

여  내가 그렇게 형편 없는 마누라였어?

    어떤 비밀도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남  그런 게 아니라..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여  참... 변명도 구질구질하다.

남  너를 아니까 더 그랬어. 니가 얼마나 아이 갖고 싶어하는지

    다 지켜봐 왔는데. 나 때문에 안된다는 말을 어떻게 해.

    더 늦기 전에 보내줘야겠다..그랬지.

여  그런 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딴 남자 만나서

    결혼해 애낳고 잘 살았어야 되는건데.

남  그러게. 그러라고 보내준건데 왜 아직도 이러고 사냐?

여  어젯밤엔 정말 너무 얄밉고 기막히고 원망스럽고 그랬는데.

    ...... 어쨌든 그래도.. 고마워.

남  ....

여  왠지 자신감이 회복되는 기분이거든. 다른 여자 때문에 7년 산

    남자한테 까인 여자로 사는 건.. 정말 끔찍했어.

남  그래. 자신감을 가져라. 너는 좋은 여자야.

여  참... 왜 그렇게 못났냐? 뭘 부딪혀 해결할 생각 못하고 혼자고민하고

    이리 돌려치고 저리 돌려치니까... 말도 안되는 오해나 생기고...

    인생이 몇 번이나 된다고.

남  .....

여  정말 좋은 여자 만나서 이번엔 정말 잘해 봐. 당신 사는 동안엔 정말

    좋은 남자였단 말이야.

남  가려구?

여  응. 추워서 못 있겠다. 봄이 오는거야..마는거야..

남  가끔.. 만나서 차 마시고.. 그런 거 해도 돼?

여  난 정말, 그런 애들 딱 질색이거든? 지들이 무슨 미국 드라마 주인공

    이나 되는 것처럼 쿨한 척 하는 것들? 그런데... 그러지 뭐.

남  ....

여  대신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쥐똥만큼도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남  은서야.

여  왜.

남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여  뭐?

남  어떻게 한 이혼인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그런 거 다 감수하면서 이혼했는데 옛날 부인이랑 다시 잘해보고

    싶겠니?

여  하...

남  암튼... 서로 미운 건 털자.

여  뭐하니 지금?

남  악수하자구.

여  내가 아무리 미드 흉내 내고 싶어도 악수는 못하겠다. 닭살돋아서.

    나... 갈게.

(E) 걸어가는

 

여  아직도 울컥울컥 원망스럽고 미운 점이 있지만

    어느 한 때는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던 그 사람을

    이제 용서하고 싶어진다.

    내내 가슴 한쪽을 붙들고 있던 무겁고 질척했던 무언가가..

    탁....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M) 주제음

 

 

 

 

 





2010-03-1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