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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33 화 - 3월에 내리는 눈

 

(M) 주제음  Song From the Snow / Realgroup

 

남  이 동네에 이사온 지 일주일.

    지어진 지 삼십년이 넘은 오층 짜리 아파트에

    들어왔다. 그전에 살던 동네보다 훨씬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E) 까치 우는 소리

남  춘삼월에 때아닌 눈이 내리고 나서

    아파트 놀이터에 까치들이 많이 보인다.

    그 옆에서 눈사람 만드는 아이들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어도 보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좋은 일로 이사온 게 아니라

    하던 사업이 잘 안돼서 돈을 만드느라

    살던 집을 팔고 이쪽으로 온 거였기 때문이다.

    언제쯤 경기가 풀리고.. 봄이 올지...

(M) Trouble / Coldplay

 

(E) 마당 쓰는 소리

 

남  아직 덜 녹은 눈을 치우는 경비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슈퍼가 있는 상가로 달려갔다.

    대충 끼니를 때울 뭔가를 사러 간 거다.

(E)슈퍼 문 열고

남  오래돼 보이는 작은 슈퍼 안으로 들어섰는데

    왠지 낯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뒷모습에 속아서 놀란 게 처음도 아니고...

    그냥 별 생각 없이 코너를 돌아 라면 몇 개와 계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다가 그 낯익은 뒷모습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속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맞았다.

(M) 그녀가 나를 보네 / 브라운 아이즈

 

(E) 뭔가 부시럭 놓는 소리

 

여  어..

남  ....여기 살아?

여  응. 여기 아파트.

남  ... 나도 여기 이사왔는데...

여  언제?

남  일주일 됐어.

여  난 재작년부터 살고 있었어.

남  원래 집은...

여  아..반포.. 오빠 결혼해서 새언니랑 들어와 살구...

남  니가 독립한거야?

여  그런 셈이지. 떠밀려서긴 하지만.

남  ....

여  시간 돼? 캔커피 샀는데.. 잠깐 같이 마시자.

남  아니야. 일도 있고..

여  일? 라면 끓이는 일?

남  ...

여  여전하구나. 그러다 몸 버려. 밥을 해먹어.

남  ...

여  결혼 안했구나?

남  할 사람 있어.

여  그런데 이사를 와?

남  (약간 열받아) 신혼집으로 꾸미고 나서 결혼하려고 그래.

여  아...

남  그럼 간다. 잘 가라.

(M) 가라가라 / 캔

 

(E) 라면 보글보글

(E) 계란 톡 깨서 넣는다

 

남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는 거..

    원래 난 이런 거 싫어했었다.

    라면은 적당히 조미료맛이 나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야 된다며

    다른 건 안 넣어 먹었다.

    그랬는데....

 

(E) 라면 끓는 소리에 파 써는 소리

 

여  그렇게 해서 몸이 버텨내? 비켜봐. 파라도 썰어넣어야지.

남  괜찮다니까?

여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 좀 저리가 있어.

(E) 계란 톡 깨서 넣는

여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넣어먹어야지.. 라면만 갖구 무슨 영양분이

    있다구!

남  나는.. 계란 넣으면 텁텁해서 싫다구.

여  시키는대로 하세요 아저씨~

남  아 진짜.. 독재자.

여  당연하지. 들어가서 김치나 꺼내.

남  김치.. 없는데?

여  또..또... 친구들 데려와서 밤에 김치찌개에 소주.. 맞지?

남  어..

여  암튼 김치 한번씩 퍼오는 것도 얼마나 눈치 보이는데.

    방에 가져온 쇼핑백 안에 봐봐. 총각김치 가져왔어.

남  역시~

(M) 그녀는 예뻤다 / 박진영

 

남  그녀는 그랬다.

    시골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하고 있던 내게

    어머니 같은 여자였다.

    그렇게 잘해주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녀를 잊는 게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거다.

    그녀가 아니면 안되게 만들어 놓고 나서

    너무 혹독한 방법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E) 걸어오는

 

남  넌 내 생일에.. 지금 몇분 지각이야.

여  삼십분.

남  알긴 아네. 앉어.

여  아니야. 나 할 말만 하고 그냥 갈게.

남  가? 어딜?

여  ....

남  간다구? 오늘 내 생일인데?

여  생일 언제부터 챙겼다고 그래?

남  뭐?

여  나 만나기 전엔 생일 같은 거 안 챙겼다며.

    언제가 자기 생일인지도 몰랐다며.

남  그래. 옛날에는 그랬는데.. 너 만나곤 니가 계속 챙겨줬잖아.

여  그래. 그랬지.

남  너 왜 그래. 일단 앉아.

여  .... 우리 그만 만나.

남  너 무슨 일 있어?

여  사실은 여러 달 전부터 고민했었어. 난 분명히 자기한테 졸업하면

    취직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자꾸 사업하겠다고 했고..

남  너도 하고 싶은 거 하라며.

여  그럼 뭐라 그래? 하고 싶은 거 해야지.. 내가 뭔데 자기 미래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겠어?

남  ....

여  그렇지만 당신도 알 거 아냐. 사업.. 그것도 아무 기반도 없이

    시작한 사업.. 쉽지 않아.

남  나를 못 믿는다는거야?

여  또 그 소리. 이제 그것도 지겹거든?

남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제라도 다 때려치고 취직해?

여  이제 다 필요없다고 하잖아. 그냥 어느 순간... 자기 따라 나도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정말.. 다 싫어졌어.

    정말 헤어지고 싶어.

남  ... 그 얘기를 꼭.. 오늘 해야 돼?

여  미안해. 웃으면서 생일 축하할 자신이 없었어.

(M) 오늘 헤어졌어요 / 윤하

 

남  3년을 만났고. 이 여자 아니면 결혼할 일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사람하고 이별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웠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독하게도

    그날 이후 5년 동안 서로에게 연락 한통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새로 이사온 이 아파트에

    그녀가 살고 있는 것인지.

    왜.. 내 사업이 한참 잘 되고 있을 때.. 그때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았던 건지... 그랬다면 좀 더 당당하게 보란 듯이 그녀에게

    차 한잔 하자고 할 수 있었을텐데.

(M)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임재범

 

(E) 빨래 탁탁 털어 너는

 

남  그리고 며칠 후.

    뒷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바로 앞동의 앞베란다에 그녀가 서 있었다.

    

여  (멀리서) 뭐야.. 거기 살아?

남  어.. 넌 거기야?

여  응.

 

남  슬쩍 팬티 같은 속옷은 바구니 안으로 밀어넣었다.

 

여  자주 보겠네.

남  글쎄. 뭐 자주 볼 일이 있겠어?

    나 그만 들어가 볼게.

 

(E) 들어가고 문 닫고 커튼까지 ? 치는

 

남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이렇게까지 꽁할 건 또 뭔가.

    다 지난 일이라면 좀 더 태연해야지.

    그런데 아직도 섭섭하다.

    나한테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원망스럽다.

(M) 웃다가 울다가 / 아일랜더

 

(E) 주차장에서 시동 거는데

 

남  다음날 아침.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있는데.

 

(E) 시동 거는데 안되는

 

남  내 바로 옆차가 시동이 안 걸려 버벅대고 있는 것 같았다.

    슬쩍 보니, 또 그녀였다.

 

(E) 창문 내리는 소리

 

여  또 보네? 거봐. 내가 자주 볼 거라 그랬지.

남  .....그러네. 그런데 왜?

여  시동이 안 걸려.

남  ... 보험회사 불러.

여  불렀는데 삼십분쯤 걸릴 거라잖아. 나 지금 무지 늦었거든.

남  그래? 어떡하냐.. 택시 타고 가라.

여  회사가 여의도 아냐?

남  왜.

여  나 오늘 여의도 지점에 출장 근무해야 돼서..

    가는 길에 좀 내려줘.

남  .....

여  응?

남  그래. 타.

여  고마워~

(E) 내려서 얼른 차 타면서

여  차 좋다~

(M) Get out of my dream, get into my car / Billy Ocean

 

(E)차 가는 소리

 

남  이게 얼마만인가. 그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건...

 

여  얼마만이야 이게. 봉덕씨랑 같이 차 타고 가는 거..

    5년만인가?

남  ....

여  그땐 봉덕씨 차도 없어서... 친구 꺼 가끔 빌려오면

    우리 밤에 같이 드라이브도 가고.. 주말에 교외로 놀러도 가고..

    그땐 정말 차가 갖고 싶었잖아.

남  잘 기억이 안나.

여  정말 잘 기억이 안나?

남  오래됐잖아.

여  하긴... 오래 됐지.

남  ....

여  .... 그런데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아직도 내가 미워?

남  ....

여  난 솔직히 지금은 아무 감정 없어. 헤어질 땐 당신이 너무너무

    미웠는데... 지금은 그냥 우리 인연이 그거였나보다 그래.

남  니가 나 미울 게 뭐냐. 채인 게 누군데.

여  ...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가 채여?

남  내가.

여  뭐야.. 채인 건 나지.

남  .... 무슨 소리야. 니가 내 생일날.. 자리에 앉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서.... 기억 안나?

여  말도 안돼. 내가 당신한테 차여서 몇날며칠 울구불구한 건

    내 친구들도 다 아는 사실이야.

 

남  이건 또 뭔 황당한 얘긴가. 5년 동안 그녀의 기억장치에

    이상이라도 생긴건가.

(M) True / Spendow Ballet

 

------------------1부 끝 -----------------

 

(E) 차 멈추고   

 

여  암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당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거야.

남  뭘 잘못 기억해. 나는 똑똑히 기억해.

    내 생일에 노을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여  무슨 노을이야. 거기 아니구.. 막걸리집이었거든?

남  무슨 생일을 막걸리집에서...

여  그러니까 내 말이~ 솔직한 말로 당신 그때 백수라는 핑계로

    나한테 밥 한번 산 적 있냐구. 다른 여자들처럼 무슨 보석이니

    명품 가방이니 이런 거 바라지도 않아. 맨날 얻어먹던 사람이

    어쩌다 한번 자기 생일이라고 사주겠다면서 나오라는 데가

    막걸리집이 뭐냐 막걸리집이!

남  아니야. 레스토랑이었다니까?

여  그때 당신은 내가 살 때 아니면 레스토랑 같은 덴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이었다구!

 

여  그는 정말 기억을 못하는 걸까. 못하는 척 하는 걸까.

(M) R 2 Song / 황보

    

(E) 시끌벅적 막걸리집 소음

 

남  응. 여기...

여  뭐야... 겨우 오자던 데가 여기야?

남  겨우? .... 하... 그래. 겨우 여기다. 내 생일인데 내가 오고 싶은 데서

    술 한잔 하는 거. 그것도 안되냐?

여  어우.. 됐어. 무슨 삼월에 눈이 오고 난리냐?

남  밖에 눈 와?

여  어. 집에서 나올 땐 비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으로 바뀌었어.

    꽃이 피어도 시원찮을 판에... 눈이 뭐야.

남  너 잘 생각해봐.

    봄이 온다고.. 꼭 꽃이 피어야 되냐?

여  뭔 또.. 뜬금없는 소리야.

남  봄이 오기 전에 눈이 내릴 수도 있고 살 떨리게 추울 수도 있고...

    꽃이 좀 늦게 필 수도 있고.. 인생은 그런거야.

여  선문답해?

남  너는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냐구.

여  뭐?

남  내 인생은 지금... 눈 내리는 3월의 어느날 같다 이 말이야.

    그런데 넌.. 왜 눈이 오느냐.. 꽃은 언제 피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추울거냐.. 계속 이렇게 닦달하는 거구.

여  난 그런 적 없어.

남  없어? 그럼 내가 오랜만에 내 생일에... 막걸리집에서 만나자고 하면

    기쁘게 좋은 마음으로 나와줄 수는 없는거냐?

여  ...... 나도 여자고 인간이야. 우리 만나서 맨날 김밥에 떡볶이...

    김치볶음밥.... 영화도 영화관 가서 안본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아? 집에서 비디오 빌려다가 보고.... 너무 힘들잖아.

남  힘들어?

여  그래 힘들어. 그래서 이렇게 특별한 날엔.. 정말 가끔은

    좋은 데 가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분위기도 잡고.

    그러고 싶단 말이야. 그런 것도 욕심이야? 매일 그러자는 것도

    아니고. 정말 가끔! 그것도 안돼?

남  안될 것 같다.

여  뭐?

남  너랑 나랑 안될 거 같다고. 우리 관두자고.

여  지금 뭐라 그랬어?

남  난 니가 너무 피곤하다고. 그러니까 관두자고.

여  오늘 같은 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남  미안하다.. 나 이 기분으로.. 가짜로 웃으면서 생일 축하 받을 자신이   없다.

(M)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 Julienne Taylor

 

여  그날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집에 오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던가...

    어이없게도 그는 사과 전화나 문자 한통 없이

    나와의 관계를 그렇게 끝내 버렸다.

    그런데 지금 나의 이꼴이 뭔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완전 멋진 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이쁜 아이도 낳고

    비싼 동네에 살면서 좋은 직장도 다니면서

    그랬어야 되는 거 아닌가.

    어쩌다가.... 오빠가 결혼해서 집 좁다고 좀 나가 살면 안되겠냐고

    할 때까지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보다가... 쫓겨나듯이

    독립해서... 그것도... 실컷 뒷바라지 해줬더니 빈 깡통 차듯이

    날 차버린 놈이랑 같은 동네에....

    그놈을 슈퍼에서 딱 마주친 순간.

    난 결심했었다. 저 인간이 나를 보고. 아~ 저렇게 이쁘고 멋진 애를

    차버리다니.. 내가 미친놈이었어... 이렇게 후회하게 만들자고.

    그런데 그 인간은 오늘 정말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내가 자길 찼다구? 기막혀.

(M) 너 때문에 내가 미쳐 / 티아라

 

(E) 전기청소기

여  일요일 오전. 느즈막하게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E) 띵똥....

(E) 나가는 소리

여  누구세요?

(E) 문 철커덕

여  어? 웬일이야?

남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기도 하고. 할 말도 있고.

    오늘은 내가.. 캔커피 사왔는데...

여  ....

남  내가 들어갈까? 니가 나올래.

여  ..... 청소하던 중이었는데. 괜찮으면 들어오고.

(E) 들어오는

 

남  우리집보다 좀 작네? 이게 스무평 안되지? 방도 두 개고.

    우리집은 세갠데.

여  .....(자존심 상해) 혼자 사는데 방 두 개면 되지 뭐.

남  이 전에 살던 집은 마흔 두평이었거든.

    거기 살다가 서른평짜리로 오니까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

여  예전엔 일곱평짜리에서도 잘만 살았잖아.

남  ......그땐 그때구.

(M) 그땐 그랬지 / 카니발

 

(E) 캔커피 따는

여  왜. 뭐. 물어볼 거 있다며.

남  ...

여  할 말도 있다며. 뭔데.

남  누가 쫓아오니. 좀 천천히 하자.

여  난 솔직히 기가 막혔어.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한테 차였대?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런 날 차놓 고!

남  너 정말 기억 안나? 아니면 안나는 척 하는거야?

여  내가 하고 싶은 얘기거든?

남  그럼.. 우리 노을 갔던 것도 정말 기억 안나?

여  거기 간 거 내 생일 때야. 내가 냈잖아.

남  아니야. 내 생일 때야. 그래서 니가 자리 앉기도 전에 헤어지자구..

여  그거는 그 작년 생일 때... 아니다 기념일인가? 내가 그런 말 하긴

    했는데 화해했지. 얼마 뒤에.

남  아니라니까? 기념일 때가 막걸리집 아냐?

여  뭐 어디 크게 뇌 같은 데 다쳤었니? 아니라니까?

(M) If U Seek Amy / Britney Spears

 

여  말다툼에 지친 우리. 어느 순간 말이 없어졌고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6시가 넘어 있었다.

 

남  ...저녁먹을래?

여  내가 헤어진 남자랑 왜?

남  그래. 싫으면 마라. 간다.

여  라면 먹을라면 먹든가.

 

(E) 보글보글 끓는데, 파 써는

 

남  아직도 그런 거 넣어서 먹냐?

여  라면만 먹어서 무슨 끼니가 돼? 계란이나 꺼내.

(E) 냉장고 문 열고 계란 꺼내고

(E) 톡 깨서 넣고

 

남  그런데 너는 왜.. 결혼을 안했냐?

여  그러는 당신은?

남  난 ... 할 거라니까?

여  결혼할 여자가 집엔 얼씬도 안하나봐?

남  조신하거든.

여  아.... 그런데 결혼할 여자랑 주말에 데이트도 안하나봐?

남  .... 결혼 준비 때매 바빠서.

여  아...

남  너는 왜 안했냐구.

여  남자한테 너무너무 질려서.

남  남자. 누구? 나?

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잘해줬는데도 결과가 그랬는데

    이제 나이도 먹고.. 나한테 그런 열정이 어딨겠냐?

    난 또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아.

남  니가 정말 안믿어도 되는데...

    난 여태... 내가 차였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어.

    정말이야.

(M) 내게도 사랑이 / 김건모

 

(E) 걸어오는 소리

 

남  지금 출근해?

여  어. 어디로 가?

남  용산. 오늘 전자상가 쪽 들를 일이 있어서.

    버스 타고 가려고. 눈도 왔고...

여  그래. 잘 가.

남  은서야.

여  왜.

남  오늘 내 생일이야.

여  ....알아.

남  알아?

여  그냥 문득 생각이 났어. 발렌타인데이 사흘 전이었잖아.

남  그러니까...

여  있잖아. 궁금한 게.. 나한테 차였다고 생각해서 슬펐어?

남  말이라고 하냐? ..... 너는?

여  슬프다기 보단 자존심이 상했지. 잘 나가는 남자도 아니고

    반백수한테 차이다니...

남  너는 꼭.. 니가 그런 식이니까... 내가 그때 열등감 때문에..

    니가 날 찼다고 생각한 거 아냐.

여  어우 됐어. 열등감이 자랑이냐?

남  너 오늘 내 생일이야. 이렇게 해야 돼 꼭?

여  생일이면 뭐!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뭐 꼭

    축하해줘야 돼?

(M) 포플러 나무 아래 / 이예린

 

여  그리고 그날저녁.

    난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제과점에 들어가

    케익을 하나 샀다. 초도 달라고 했다. 큰 거 세 개 작은 거 다섯 개.

    그 사람 나이가 벌써.. 서른 다섯.

    

(E) 걸어가는

 

여  삼월에 온 눈은 금방 녹아 버린다.

    꽃샘추위는 아무래도 겨울의 독한 추위와는 다르다.

    그 사람 아파트를 보니 불이 켜져 있다.

    조금 망설이다가 벨을 눌렀다.

 

(E) 벨 누르고

(E)문 열고 나오는

 

남  웬일이야.

여  혼자 있어?

남  어.

여  생일인데 결혼할 여자친구는 또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신가?

남  .....

여  뭐 어쨌든 축하해. 자...

남  ...고맙다.

여  갈게.

남  들어왔다 가.

여  됐어. 여자친구나 부르셔.

남  없다는 거 알고 온 거 아니냐?

여  ....

남  너만 질렸냐? 나도 여자라면 치가 떨려서....

    누구 사겨본 적 없다.

여  못난이.

남  지는....

여  ....

남  들어와. 초에 불 켜고 노래도 불러주고...

여  됐네요. 내가 속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아? 그런 거까지 해주게?

남  들어와 좀...

(E) 문 닫히는

 

여  꽃샘추위가 아무리 길어도.. 봄은 온다.

    봄에 내린 눈이 녹고....

    그 눈 아래 숨어있던 꽃봉오리들이 조금씩 벌어지고...

    봄꽃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그 위로 햇살이 쏟아지겠지.

    우리는 오늘, 서로 다른 과거의 기억 대신

    앞으로의 봄날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M)주제음

 

 

 

  

 

 

 





2010-03-1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