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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32 화 - 2009년의 일기
(M) 주제음 그들이 사랑하기까지 / 강수지. 이승환
여 2009년 1월 1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뜨는 걸 꼭 보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 오후 2시다.
그래. 어제 좀 무리를 했지...
해는 뭐... 진작에 떴겠지.
뭐.. 아홉시 뉴스 할 때 해주겠지.. 그때 보면 되지 뭐.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무모하도록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E) 밥통 뚜껑 여는
여 밥은.. 당연히 없다.
우렁총각이 왔다 간 게 아니라면
없는 게 당연하겠지.
그래도 혹시나 했다.
즉석밥이라도 사다가 전자렌지에 데워먹어야지...
반찬은 뭐가 있더라...
우리 엄마는 딸래미 같은 건 잊어버리셨나보다
김치 안보내준 게 몇 달 됐는지.. 원.
(E)꼬로록 -
여 배도 고픈데 중국집에 배달이라도 시켜먹을까.
오늘 같은 날도 배달 해주나..
서랍을 뒤적거리며 중국집 스티커를 찾고 있는데.
(E) 우당탕 계단 뛰어내려가는 소리
남 (밖에서) 윤주야! 안돼 윤주야! 가지마!
이대로 끝이라고? 말도 안돼! 이거 내가 다 너 준 거잖아.
니꺼야. 가져가!
여 뭐야..... 해서 문을 살짝 열고 내다 보았다.
윗층 사는 남자였다.
먼저 내려가 버린 여자는 애인인가보다.
보아하니 차이는 분위기였다.
여자가 그동안 받은 선물들 갖다 주고 가는 중이고...
(E) 상자 확엎어진다
여 그 순간 남자가 자빠지며 상자가 엎어졌다.
직접 짠 목도리.. 은반지.. 곰인형.. 말린 장미꽃 같은 게 보인다.
값나가는 게 없다...
저러니.. 헤어지지... 끌끌...
혀를 차다가 자빠져 울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떡해야 할지 몰라 위로의 의미로 살짝 미소를 보였다.
그랬더니 이 자식이 나를 사정없이 째려본다.
내 탓이야? 왜 저래 나한테?
(M) Got What You Need / Eve
남 2009년 1월 1일.
새해 첫날. 내겐 최악의 날이다.
윤주가 떠났다.
내가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리고 사정하고 쌩난리를 쳤는데도
가 버렸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삼년째 취직 못하고 있는 거?
나도 애쓰고 있는데.. 갈 데가 없는 걸 어쩌라고.
나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떠나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건가.
윤주는 그동안 내가 준 것들을 상자에 담아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니가 준 것들 중에 삼만원 이상 가는 게 없다 이 찌질아!
내 용돈은 한달 삼십만원이다.
삼만원짜리 살 때도 나는 백번도 넘게 고민해야 했다 이 기지배야!
그게 내가 줄수 있는 최선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더 잘할게. 조금만 기다려.. 더 좋은 거 사줄게...
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은 이렇게 꾸질꾸질하게 살기 싫다며
떠나버리고 말았다.
계단을 내려 쫓아가다가 넘어졌다. 상자 속 물건들이 쏟아졌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데.. 아랫집 여자가 문을 열고 날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씩 웃는 게 아닌가...
남의 불행을 훔쳐보고.. 그걸 즐기다니..
미친 여자 같았다.
(M) Crazy / Gnarls Barkley
여 2009년 3월 15일.
모처럼의 휴일.
어젠 편의점 야간 알바를 뛰었더니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오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E) 청소기 돌리는 소리
여 오전 10시부터 시끄럽게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몇 번을 참고...
(E) 계속 들린다
여 또 참았지만.. 계속 들렸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윗층으로 쫓아올라갔고.
난 대차게 따졌다. 이웃지간에 뭐 이런 똥매너가 다 있냐고!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그런데 그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대청소중이라는 거다.
그리고 오전 10시가 무슨 아침 일찍이냐며..
말도 안되는 소릴 막 하는 거였다.
결국 우리는 목소리만 높여 싸우다가
집주인 아줌마로부터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찢어져야 했다.
그 남자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쳤다.
(M) I Go / 럼블피쉬
남 2009년 3월 15일.
어제가 3월 14일.. 화이트데이였다.
작년 재작년엔 그녀에게 사탕을 주었고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냈었는데...
어제 난 소주에 맥주에 막걸리에..
술만 진탕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뜨니 집안은 엉망에..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도 벌써 두달..
이대로 한 해를 보내고 말 순 없다.
이제 곧 입사시험도 있고. 모든 걸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뿐하게 일어나 이불의 묵은 먼지도 털어내고
구석구석 치우고. 그녀의 사진이며 흔적들도 버렸다.
그리고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데...
(E) 청소기 소리
남 아랫집 여자가 찾아왔다.
예전에 내가 그녀와 헤어질 때 나를 보며 웃던
그 약간 이상한 여자였다.
막 들이닥치더니, 아침 열시면 꼭두새벽인데 청소기를 돌리면
어쩌냐는 둥.. 자긴 어제 편의점알바를 했다는 둥..
똥매너가 어떻다는 둥 하며.. 말도 안되는 소릴 해댔다.
난 정중하고도 논리적으로, 아침 열시는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며
이 시간에 자는 거 방해했다고 쫓아올라오는 짓이야 말로
무매너 중 무매너라고 일침을 놓았다.
내가 생각해도 앞뒤가 딱 떨어지면서도 정확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그 여잔 말귀를 도통 못알아듣는 눈치였다.
냅다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주인 아줌마에게 나까지 싸잡아
욕을 먹게 만들었다.
그 여자 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쳤다.
(M) 만만하니 / U-kiss
여 2009년 5월 5일.
한동안 안보고 살던 그 남자를 오늘 또 만났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온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흠칫..놀랐다.
사실 그동안 왔다갔다 하면서 몇 번 마주쳤지만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모른 척하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일하는 곳에서 만난 거 아닌가.
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E)?... 물건 찍는
여 오천 이백 삼십원입니다.
남 여기서 일해요?
여 네. 영수증에 싸인 좀 해주세요.
(E)싸인하고
남 몇시부터 몇시까지요?
여 밤 11시부터 아침 여섯시 반까지요.
남 아침 여섯시 반요?
여 네! 그러니까 집에 가면 일곱시. 씻고 이불에 누우면
일곱시 반. 그래요.
남 ..... 네에.
여 뭐 더 물어보실 거 있으세요?
남 아차.. 로또 세장만 주세요.
여 ...로또를 한 주의 희망으로 삼고 사는 인생이라니...
그러니 여자한테.. 차이지.
그런데 왜 저렇게 나한테 관심을 보여? 혹시.. 나를..?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내가 좀 달리 보였겠지.
미친 거 아냐? 외롭긴 하지만.. 저런 남자는 절대 아니다.
(M) 넌 아냐 / 김정민
남 2009년 5월 5일
조카에게 어린이날 선물 사주려고 누나네 집에 갔다가
잔소리만 배불리 얻어먹고 왔다.
취직을 언제 할거냐부터.. 결혼은 언제 할거냐..까지
지난번 설에 어머니에게 들었던 잔소리와 토씨 하나
안 다르고 똑같은 소리들이었다.
저녁 얻어먹고 드라마 좀 보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왠지 소주가 땡겨서
소주 한병에 과자 몇봉지를 샀다. 그런데 계산대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어 못알아볼 뻔 했는데.. 다시 보니
아랫집 여자였다. 딱히 반갑진 않았지만 또 너무 모른 척 하긴
그래서 아무 의미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냐.. 뭐 그런 질문.
그런데.. 새벽 여섯시반에 끝난단다. 그래서 일곱시 반에.. 잔단다.
...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침 열시를 꼭두새벽이라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낮밤이 바뀌어서 그랬구나...
피부에 탄력이 없고... 눈밑에 다크서클이 퀭한 것이...
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참 늙어 보였다.
시집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 All by myself / Eric carmen
여 2009년 6월 11일.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이런 날엔 따뜻한 방에 배깔고 드러누워 뭐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그래서 치킨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암만 기다려도 이누무 치킨이 안오는 것이다.
그래서 치킨 집에 전화를 해봤더니.. 배달 이미 했다는 거다.
따져보니 치킨 배달이 된 곳은 윗집이었다.
잘못 갖다준 배달원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그걸 넙죽 받아먹은
그 사람은 또 뭔가.. 열이 받았다. 또 쫓아 올라갔다.
(E)띵똥...
(E) 문 열고 나오며
남 어.. 안녕하세요.
여 네.. 뭐.. 근데요. 혹시 치킨 배달 안왔던가요?
남 아.. 왔어요. 지금 막 먹으려고 그러고 있는데..?
여 아니.. 그거 제가 시킨 거거든요.
남 아, 그러셨구나. 저는 안 그래도 치킨 생각이 막 나는 참에
배달이 왔길래.. 아니 저도.. 안 시켰다고 말은 했어요, 했는데..
배달원이 신입인지.. 막 헷갈려 하길래.. 그럼 그냥 제가 먹겠다
그랬죠.
여 아니 그래도 그렇죠. 자기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왔으면
뭔가 확인을 해봤어야지..
남 저기.. 그럼 좀 같이 드실래요?
여 네?
남 맥주 두캔까지 시키셨던데...
여 그거야.. 치킨엔.. 맥주니까...
남 뭐 괜찮으시면 드세요. 돈은 제가 냈잖아요. 미안하게 됐으니까
제가 사는 걸로 하죠 뭐.
여 .....이렇게 해서, 난 그 남자와 어색하게 마주앉아
치킨을 뜯게 됐다.
비는 마구마구 오고 있었고. 치킨은 참.. 맛있었다.
남 .... 이렇게 해서, 그 여자와 마주앉아 치킨을 먹게 됐다.
틀어놓은 음악은 감미로웠고. 분위기는 뭐.. 괜찮았다.
(M) Kissing a Fool / Michael Buble
-----------------1부 끝 --------------
여 2009년 7월 31일
편의점 알바에서 짤린 지 일주일째.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으려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이럴 땐. 아침에 지하철 타러 뛰어가는 정규직 인생들이
눈물나게 부럽기만 하다.
남 2009년 7월 31일
새로 들어가게 된 회사에 출근한 지 한달째.
아침에 눈뜨자마자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고
지하철로 미친 듯이 뛴다.
하루종일 영업 일 하다가 부르튼 발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연속이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백수 생활에 비할소냐..
난 요즘 감사하며 산다.
그리고 오늘 아침. 오랜만에 아랫집 여자와 마주쳤다.
(E) 나가는 소리
여 어.. 안녕..하세요.
남 네.. 두부 사오시나봐요.
여 아침에 찬거리가 없어서...
남 일찍 일어나셨네요 오늘은.
여 ... 요샌 야간 알바 안가거든요.
남 ...네.
여 어디 가세요? 양복 입고...
남 아.. 저 회사 나가거든요.
여 어.. 취직하셨어요? 언제부터?
남 한달 됐어요.
여 축하드려요. 몰랐네요 그것도...
남 내일 월급 타요.
여 ... 아 그러세요? 그럼 출근 잘하세요.
남 저기요.
여 네?
남 혹시 골뱅이 파무침 좋아하세요?
여 네?
남 아니.. 내일 월급 타면... 제가 그거 쏠까요?
(M) Waltz Lesson (Feat. Whale) / Alex
(E) 호프집
여 저녁 한끼 때우기도 고민인 요즘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처음엔 재수땡인 줄 알았던 이 남자가
아주 무매너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또 평생 백수로만 살 것 같던 이 남자가
그래도 취직을 했다고 하니.. 좀 달리 보이기도 했다.
남 영업직이에요. 그냥.. 처음에 제가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랑은
비교도 안되게 작은 회사구요.
여 그래두요.. 요즘같은 때 그런 데라두 들어가는 게 어디에요.
난 작은 회사에 이력서 넣어도 계속 미끄러지는데..
암튼 부럽네요.
남 은서씨는 전공이 뭐에요?
여 저요? 저.. 철학과에요. 배울 땐 재밌었는데.. 전공 살리려니 원..
뭐 할 게 없네요. 엄마가 안경공학과 가랄 때 거기나 갔음
지금 일 하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남 좋은 소식 있을 거에요 곧..
여 뭘요. 2008년 마지막날엔.. 2009년엔 반드시 좋은 회사 취직도
하고.. 좋은 남자도 만나고.. 그럴거야!! 했는데..
벌써 7월 마지막 날.. 내일이면 8월이에요.
남 시간 참.. 빨리 가죠?
여 그러게요. 저.. 맥주 한잔만 더 마셔도 돼요?
남 드세요.
(M) 사랑은 맛있다 / 휘성
여 2009년 8월 1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다 기억이 났다.
내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고. 계속 토하고...
결국엔 그 남자에게 업혀오다가 또..토하고...
그랬던 것들...
날 완전 미친 여자로 알았겠지.
나는 어젯밤에 그 남자.. 괜찮았는데..
말도 잘 통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하고. 영화도 비슷하고.
나중에 심심하면.. 영화보러 같이 가도 좋겠다.. 그랬었는데.
그걸 내가 다 망쳐 놓고 말았다.
(E) 띵똥...
여 누구야.. (가며) 누구세요?
(E) 문 열고
여 어..
남 속 괜찮아요?
여 저.. 어제.. 이상한 짓 안했어요? 기억이.. 하나도 안나네.
남 기억 안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여 왜요. 나... 뭐.. 험한 짓 한 거 아니죠?
남 별 거 안했어요. 걱정 말고.. 약이나 먹어요.
(E) 부시럭 내미는
여 이게 뭐에요? 나 주려고?
남 이거 먹고.. 뭐라도 챙겨먹어요. 나 출근해야 해서.. 갑니다.
여 이 남자에게 풍겨온 이 향기가..
샴푸향인가.. 비누향인가.. 스킨향인가...
뭐든 간에.. 무지하게 상쾌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M) 허니 허니 베이비/ 요조
(E) 걸어가는
남 그녀는 기억을 정말 못하는 걸까. 아니면 못하는 척 하는걸까.
울고불고 징징대며 주사를 부려대던 그녀는
내 등에 업혀오다가 또 토했다.
덕분에 새옷을 다 망쳐버렸는데.. 그걸 또 기어이 빨아주겠다며
우리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안나오길래 봤더니...
젖은 옷을 꼭 끌어안은 채 잠든 게 아닌가...
안아다가 그녀의 집에 눕혀놓고 나오는데...
참 천진하고 예뻐 보였다.
출근하는 길에 약을 사다주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창가에 서서 나를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니, 잘 다녀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가 잘 드는 작은 아파트에서, 그녀와 내가 함게 살면서...
아침마다 출근하고.. 배웅해주면 어떨까.
(M)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 / 가인. 조권
여 2009년 9월 23일.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해야겠다 싶어서
닥치는대로 이력서를 쓰고 있다.
지난 한달.. 우리는 좋았다.
아침 저녁으로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기도 했고..
그러다가 슈퍼 앞에 가서 냉커피를 사마시기도 했고...
그 사람이 친구 차 빌려왔대서.. 강화도에 바람 쏘이러 가기도 했다.
이게 혹시.. 연애하는 건가? 싶어.. 난 백수 처지도 잊고
한때 행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난 보고 말았다.
그 사람의 그녀. 집앞을 서성이면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
편의점에서 물을 사오면서 설렁설렁 걸어오던 나는 굳어 버렸고.
그녀를 스쳐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내내 안절부절 못하며
그 사람이 과연 그녀와 만날 것인지를 지켜보았다.
아홉시 경 그 사람이 돌아왔고. 그는 그녀와 조용히 몇마디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숨어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며, 난 뭔지 모를 슬픔과 배신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M)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 유이.전진.숙희
남 윤주가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좀 짧아진 거 외에는 달라진 점이
없는 윤주였다. 취직했다며? 하고는 경쾌하게 웃어 보였다.
가슴이 싸하게 아파왔다. 우리가 좋았던 날들도 떠올랐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답했다. 왜 왔냐고...
그러자 윤주가 커피 한잔만 달라고 했다.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고.
그래서 집으로 올라와 마주앉았다.
말은 안하는데 그 동안 만나던 남자와 헤어진 듯 했다.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기가 실수한 것 같다고.
나같은 남자가 또 있을 거라고 여긴 게.. 정말 실수였다고.
이런 장면을 많이 꿈꿔왔었다.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정말 차갑고 독하게 그녀를 쫓아버리겠다고.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그러기가 어려웠다.
왜 그런건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었다.
미련은... 없어졌다고 자신했는데.
(M) 미련 / 김건모
여 2009년 9월 24일
깜박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아침이다.
그녀는 어제 돌아갔을까..
아니면 혹시.. 아직까지 함께 있는 건 아닐까.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렸다.
이때..
(E)계단 내려가는 소리
여 내다보니, 그였다.
(E)문열고
여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안녕..하세요. 출근하세요.
남 네. 잘잤어요?
여 그렇죠 뭐.
남 그럼.. 갈께요.
여 저 혹시.. 어제...
남 네?
여 .....아니에요.
여 ...라며 문을 닫으려는데.
(E)또각또각 내려오는 소리
여 그녀였다. 그 여자가 그 남자의 집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얼른 눈길을 피하며 문을 닫았다.
그랬구나..그랬겠지.. 나랑.. 그 사람이 뭐라고..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도 우습지..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M) 오늘 헤어졌어요 / 윤하
남 윤주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난 윤주를 내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받아주지도 못했다.
잠이 든 윤주 얼굴을 밤새 쳐다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독하게 그녀를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 그녀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걸.
이 순간에도 자꾸만 아래층에 있는 은서가 마음에 걸렸고
혹시라도 은서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난 은서에게 윤주와 함께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은서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급하게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내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M) 긴 하루 / 이승기
여 2009년 10월 31일
이제는 거의 다 정리가 됐다.
사실 이렇게 울고불고 할 일도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역사도.. 아무 쌓인 것도 없었다.
그냥.. 잠깐 좋았던 거.. 그거 뿐이었다.
난 미친 듯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닌 끝에
방문 학습지 회사에 취직이 됐다.
아이들 논술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런 땐 오히려 바쁘고 정신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가끔 그에게 전화가 오고.
일주일 전에 집앞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지만
다 무시했다. 그게 편했다.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날...
왠지 좀 쓸쓸하다.
(M) When October goes / Barry Manilow
남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밤..
함께 있고 싶었다. 오해를 풀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동안.. 마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바로 아래층에 그녀를 두고 보지 못하고 지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 그녀의 방에 불이 켜지길 기다렸고
벨을 눌렀다.
(E) 문 열리고
여 .. 무슨 일이세요?
남 전화 왜 안받아요?
여 전화했어요? 스팸 전화로 분류해 뒀거든요.
남 내가.. 스팸입니까?
여 스팸보다 더 나쁜거죠.
남 뭔데요?
여 별로 설명하기 싫은데요.
남 얘기할 게 있어요.
여 해요.
남 그날 본 거.. 아무 것도 아니에요. 예전 여자친구..가 찾아왔고..
찾아와서 다시 잘해보자고 했는데.. 얘기가 길어져서
내방에서 잠든 거 뿐이에요.
여 그걸 왜 나한테 설명해요?
남 결론은 우린 다시 잘해볼 수 없다는거였구요. 왜냐면..
나는 은서씨가 좋거든요.
여 .....난 아니에요.
남 난 좋아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나 은서씨랑 정말.. 잘해보고 싶어요.
(M) 매일매일 / v.o.s
여 2009년 12월 31일.
여느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오늘은 뭘해야 할까. 연말인데. 참.. 쓸쓸하다.
집에 밥은 없겠지. 사먹고 들어가야 하나..
혼자 저녁 먹는것도 그런데....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어디야?
여 나 집에 가는 길. 자기가 연말에 출장가니까 난 이게 뭐야
성탄절도 혼자 보내고. 마지막날까지. 진짜 너무해.
남 미안해. 조심해서 집에 가고.. 이따 12시에 전화할게. 사랑해.
여 으유. 미워 죽겠어.
(E) 계단 오르는, 열쇠로 문 여는
여 그랬다.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날.. 정식으로 애인이 됐고.
지금은 불타는 연애중이다.
( E) 대문 열고 들어가는데 찌개 끓고 압력밥솥 소리
여 어? 자기야.
남 왔어?
여 언제 도착한거야.
남 내가.. 오늘은 자기 밥 차려 주고 싶어서 일찍 올라왔어.
손씻고 와. 저녁 먹자.
여 맛있겠다. 금방 올게.
남 난 오늘 저녁.. 그녀에게 월세도 아까운데..
내년엔 결혼이나 하자고 청혼해 볼 생각이다.
2009년의 마지막 시간이.. 흐르고 있다.
(M) 주제음
2010-01-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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