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17 화 - 크리스마스 보험

 

(M) 주제음    Must Have Love / SG워너비 & 브라운아이드걸스

 

(E) 뭔가 한 장 넘기는

 

여    언제 11월이 됐지?

        그것도 반을 훌쩍 넘었네.

        애써 날짜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애인 하나 없이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지금.

        이것이 냉엄한 나의 현실인 것이다.

        1월1일 친구들하고 정동진 가서 뜨는 해를 보며 빌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으니, 올해 크리스마스는 제발...

        남자친구와 따뜻하게 보내게 해달라고.

        뭐 큰 거 바라지도 않는다고...

        그냥 둘이 같이 손잡고 스케이트라도 타 보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빌었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E) 거리 소음 차 경적 소리 등

 

여    퇴근길에 시내에 잠깐 들렀는데

        벌써부터 백화점 앞엔 대형 트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부인하고 싶지만.. 그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M)울면 안돼 / 개콘

 

(E) 스낵 와작 씹는

 

여    (전화 통화하는 듯)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별거니?

        외국에서는 다 가족들이랑 조용히... 거룩하게 보낸다는데..

        하여튼 우리나라만 유별나요. 그리구 꼭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이

        더 난리야. 안 그러냐? (사이) 왜. 전화왔어? 누구?

        .....남자친구? 미란이 너.. 남자 생겼냐? 언제? 뭘 나중에 얘기해.

        지금 얘기해 봐. 야! 너 나랑 간만에 통화하는데 남자한테 전화왔다고 끊겠다는 거...

        (끊겼는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미란아! 장미란! (한숨 쉬고) 이 기지밴.. 끝까지 나랑 함께 할 줄

        알았는데.... 크리스마스에 같이 술 못마시겠구나... 나쁜 기지배...

        하아..... 좋겠다....

 

(E)걸어가서 냉장고 문 여닫고 맥주 캔 따는

 

여    괜시리 허탈한 마음에 냉장고에 있는 찬 맥주를 꺼내 들었다.

        이럴 때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게 이거 하나 뿐이라니...

        내 신세가 너무 처량맞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까지 난다.

(M)한 잔의 추억/ 봄여름가을겨울

 

(E) 또각또각 어딘가 걸어간다

 

여    난 큰 결심을 했다.

        소개팅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나이에 누군가 소개팅을 해준다면 무척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예전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한 친구가

        자기 시동생이라면서 만나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에 그 남자랑 잘 되기라도 하면

        내가 그 친구의 아랫동서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죽어도 싫었다.

        여러모로 나랑 안맞는 친구였다.

        그래서 딱 잘라 거절했었다. 그런데 너무도 아쉽다 보니

        거절했던 그 껀이 생각나기에 이르렀고.

        난 정말 모양 빠지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한 번 그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느냐 물었다.

        솔직히, 이 사람과 절대 사귀거나 결혼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냥.... 한달만... 딱 한달만....

        크리스마스때까지만. 만날 생각이다.

(M)연애 / 메이비 & 하울

 

(E) 음악 잔잔히 흐르고

 

남    형수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여    남경이가 제 얘길 해요?

남    네. 정말 친한 친구분이라고...

여    네 맞아요. 친해요. 사실 나이 먹으면서 보니까

        남는 건 고등학교 친구 뿐이더라구요.

 

여    ...일년에 두어번의 전화 통화가 전부고. 단체 모임에서나

        간간이 얼굴 보는 것도, 정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말해 두었다.

        남자의 인상은 뭐, 그리 나쁘진 않았다.

 

남    여름에 형수님이 소개팅해주겠다 그러시더니

        며칠 뒤에 그러시더라구요. 그 친구가 해외 출장을

        가게 돼서 좀 미뤄질 것 같다구요.

 

여    ...해외 출장은 무슨. 핑계두 참...

 

남    그래서 영영 물건너갔나 했는데

        어쨌든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네요.

여    그러니까요. 제가 그때 장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그런데 참.. 무슨 일 한다고 그러셨죠?

남    아... 삼정전자 다닙니다.

여    어머.. 그러세요? 제가 그 얘긴 못 들었네요.

 

여    회사도 좋은 데 다니네?

        남경이 기지배 웬일이야? 나는 찌질한 시동생

        처치하기 곤란해서 괜히 나한테 떠넘기는 건 줄 알았는데?

        얼굴도 나쁘지 않고. 목소리도 괜찮고.

        조건도 좋고. 이상하다...

 

남    올 크리스마스에 뭐하세요?

(M)커플 / Various artist

 

(E) 낙엽 밟으며 걷는 소리

 

여    아... 남자랑 단둘이 이렇게 오붓하게 걸어본 게 얼마만인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콧등이 다 찡했다.

 

남    안추우세요?

여    네.. 뭐 이 정도는요.

남    그래두.. 은서씨 코끝이 빨개요.

여    어머.. 그래요?

(E) 코트 벗는 듯

남    이거 걸치세요.

여    (좋아 죽고) 어머. 괜찮은데.. 괜찮아요. 이러시지 않으셔도...

        그럼 주시는 거니까 걸칠께요.

 

(E) 계속 걷는

 

여    그래. 이런 게 인생이지.

        이렇게 따뜻한 느낌. 보호받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

        이런 게 사는거야.

 

남    크리스마스에 아직 약속 없다 그러셨죠.

여    네. 음.. 매년 친구들이랑 스키장에도 가고 그랬는데..

        올해는 아직 약속을 안잡았어요. 뭐.. 곧 잡힐지도 모르죠.

남    어.. 그럼 제가 서둘러야겠네요?

여    네? (짐짓 모르는 척) 어머. 뭘요?

남    은서씨 크리스마스 이브 말이에요. 제가 먼저 예약합니다.

여    (좋지만 애써 참으며) 글쎄요. 워낙.. 늘 함께 해온 친구들이

        있어서요. 한번 얘기를 해 봐야 하는데...

남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냥 저랑 같이..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제가 멋진 데 예약해 놓을께요.

여    아우.. 어쩌나.. 참 곤란하네. 그럼 뭐.. 할 수 없죠.

 

여    아자! 아자! 아자!

        윤은서. 아직 죽지 않았어!!!!

(M)캉캉 / LPG

 

여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줄 줄은 몰랐다.

        불안했던 정서가 안정되는 기분?

        쌀독에 쌀이 그득한 것 같은 든든함?

        뭐 그런.. 풍요로운 마음이었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일단 여유로워졌고

        느긋해졌다. 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이트 약속이 있는 사람이다!

        난.. 퇴근 시간이 되면 저녁 먹자는 전화가 오는 사람이다!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은서씨?

여    ....(모른 척) 누구세요?

남    어... 저 김봉덕인데..

여    어머. 봉덕씨~

남    제 번호 아직 입력 안해놓으셨나봐요.

 

여    안해놓기는. 단축번호 1번이다.

 

여    죄송해요. 제 정신이 이래요. 끊자마자 바로 등록해놓을께요.

남    네, 감사합니다. 퇴근 시간이시죠?

여    네.

남    저 은서씨 회사 근천데. 저랑 저녁.. 먹어주실 수 있으세요?

 

여    아.... 세상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M)Gee/ 소녀시대

 

(E)레스토랑 소음

 

여    만남을 거듭할수록.. 이 남자 괜찮다.

        내가 좀 재수없어하는 친구의 시동생만 아니라면...

        정말 어떻게 해 보고 싶다.

        솔직히... 이젠 그것도 좀 상관이 없어질라 그런다.

        동서끼리 일년에 보면 몇 번 본다구...

        그리구 생판 남보다야 그래도 친구가 낫지 않나?

        뭐 이런 생각도 드니까 말이다.

 

남    스테이크 어떠세요?

여    맛있네요. 부드럽구.

남    저희 부모님도 이 집 스테이크를 좋아하셔서요. 제가 자주

        모시고 옵니다.

여    그러시구나. 가족이 참 화목하신가봐요.

남    네. 그런데... 형님네가 곧 떠나셔서...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 하시죠.

여    네? 형님네라면... 남경이네.. 식구요?

남    네. 저희 형님이 호주 지사로 발령을 받으셔서요.

        적어도 10년 이상은 거기 계실 것 같아요.

여    아.... 그래요?

남    사실 그래서 부모님이 제 결혼을 서두르고 계시기도 하구요.

        여태는 형님네랑 사셨는데. 이제 저랑 사셔야 되니까..

여(    띵!) 네?

남    저희 형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은서씨라면 잘해내실거라구.

여    .....여기요. 물 좀 더 주세요.

남    그래서 말인데요. 은서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집이 대대로 장수 집안이라...

        할머니도 아직 정정하시고. 지금 삼대가 함께 살고 있거든요.

        저희 할머니께선 빨리 증손자 보기만 기대하고 계시구요.

여    아... 그러세요.

남    제가 좀 너무 성급한 것 같기는 한데요.

        은서씨를 본 순간.. 느낌이 오더라구요.

        왜 형수님이 제게.. 은서씨를 그렇게 강추하셨는지요.

        얼굴도 예쁘시지만 마음씨도 고우실 것 같고

        체력도 좋으실 것 같고...

        사실 저도 그런 여자를 여태 기다려 왔거든요.

 

여    남경이 이 기지배.. 이게 그럼 그렇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고.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여    (멀리 대고) 여기요! 물 좀 달라구요 물 좀!

(M) Last Christams / 이정은

 

---------------1부 끝 ---------------

 

(E) 두 사람 걷는

 

남    은서씨.. 오늘 내내 말씀이 없으시네요.

여    네.. 감기 기운이 좀 있나봐요. 머리도 좀 아프고..

남    어.. 요새 감기 그거.. 위험한데. 잠깐만요.

        여기 잠깐 계세요.

 

(E) 어디론가 뛰는

 

여    내가 좀 아프다는 말에 약국으로 뛰어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다리가 참... 기네. 어깨도 넓고. 바바리가 잘 어울려.

        사람은 진국이야. 너무 괜찮아.

        하지만 문제는... 나다.

        난 우리 엄마랑도 두시간만 같이 있으면 대판 싸우는 성격이다.

        어렸을 때 서울로 유학 오느라 일찍 집을 떠나 있었고

        혼자 자취한 지가 오래돼

        외로움을 싫어하는 한편.. 외로움에 익숙하다.

        명절에 고향집에라도 한번씩 내려가면

        그 북적임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게다가... 결혼해도 일을 그만두고 집안에 들어앉을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그런데... 시부모님에 시할머니까지 계신

        집에 들어가 맏며느리 대신 맏며느리 노릇을 하고 산다는 건...

        내겐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다.

        그런데.....

 

(E)뛰어오는

 

남    (헉헉거리며) 은서씨. 이거 드세요. 이거 한알이랑..

 

(E) 드링크제 까주는

 

남    이거 따뜻할 때 같이 드세요.

 

여    이 남자는. 너무 따뜻하다.

 

(M)달아요 / 박정현

 

여    처음엔 좀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초심을 생각하면 되는거였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크리스마스까지만 만나면 되는 거다.

        설마 그 한달 동안 결혼하자고 하진 않을 거 아닌가.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는 나에게 크리스마스용 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말 저녁. 내내 찜찜한 기분으로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은서씨. 저에요. 잘 들어갔어요?

여     집앞까지 바래다 주셨잖아요.

남    그래두요.

여    (미소) 잘 들어왔어요.

남    지금 뭐해요?

여    씻구 영화 봐요. 설경이 너무 멋진 영화에요.

남    은서씨 눈 좋아해요?

여    눈 안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요?

남    그럼 우리 눈 보러 갈래요?

(M)첫눈이 와 / 슈퍼주니어

 

(E) 차 가는 소리

 

여    진짜 강원도 가요?

남    몇 번 물어봐요. 아까 뉴스 봤는데. 오늘 밤에 강원도에 눈 온다

        그랬거든요.

여    길 위험하면 어떡해요.

남    그럴 정도로 폭설이 오는 건 아니래요. 은서씨 피곤하면 좀

        눈 감고 있어요.

여    아니에요. 안 피곤해요. (사이) 저 정말.. 놀랐어요.

        제가 눈 보고 싶다 그러니까 어쩜 그렇게 한달음에 다시 오세요?

남    저는요. 요즘 맨날 그 아이디어 짜느라 힘들어요.

여    네?

남    어떡하면 은서씨 마음에 드는 남자가 될까.

여    ....! 정말요?

남    스무살 때 첫사랑 이후 이런 감정.. 정말 오랜만이네요.

(M)화분 / 알렉스

 

(E) 똑똑 차창 노크소리

 

여    언제 잠든지 모르게 잠들었다가

        그 사람이 차창을 노크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남    은서씨.

여    어? 여기 어디에요?

남    내려봐요.

 

여    어스름 새벽이었고. 우리는 어느 작은 펜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펜션을 둘러싼 숲은 온통.. 눈꽃이 만개해 있었다.

 

여    어머... 세상에... 너무 이뻐요.

남    지나가다가 여기가 딱 좋은 거 같아서 올라왔어요.

여    눈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거에요?

남    좀 됐어요. 춥죠 은서씨.

여    괜찮아요.

남    펜션 아저씨한테 작은 방 두 개 치워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여    네? 아니.. 그냥 돌아가도 되는데...

남    여기까지 왔잖아요.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아침 먹고

        그러고 우리.. 산책해요.

(M) 산책 / 이지형

 

여    예쁜 방에 들어앉아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창밖을 보는데

        내 마음 속엔...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자책감이

        소복소복 쌓이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착한 사람인데...

        저렇게 따뜻한 사람인데...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저 난 크리스마스 외롭지 않아보겠다고

        저 사람을 이용하고 있지 않나.

 

(E) 똑똑 노크소리

남    은서씨.

여    들어오세요.

(E) 문 열고

남    나와요. 토스트 해놨어요. 커피도 맛있어요.

여    ....네.

 

(E) 나가고 자리에 앉고, 커피잔 놓는

 

남    뜨거워요.

여    ....봉덕씨.

남    네?

여    있죠. 봉덕씨는 연애를 하면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    ...네?

여    아니.. 우리 나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남의 전제조건이

        반드시... 결혼이어야 하는지... 그게 궁금해서요.

남    결혼하려고 만나는 건 아니지만...

여    그래요?

남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같이 있고 싶을 것 같은데요.

 

여        ...그래. 이 사람 말이 맞다. 틀린 말 아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뭔가 결정을 해야 했다.

(M)사랑할수도 미워할수도 / As One

 

(E) 눈 밟고 걷는 소리

 

여    봉덕씨.

남    네. 왜요. 다리 시려요?

여    아뇨. 그런 게 아니구요. 할 말 있어요.

남    뭔데요?

여    사실은.. 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려고 봉덕씨 만난 거 아니었어요.

남    ?? 네?

여    소개팅 하러 나갈 때. 한달만 만날 남자가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까지만요.

남    !!

여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남자친구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그게 너무 끔찍했거든요. 그래서....

        나 외롭지 않게 해 줄 남자가 필요했어요.

남    나랑 크리스마스 보내기로 했잖아요.

여    네... 그랬는데....자꾸 미안해져서요.

남    ...

여    난 크리스마스 이후까지 봉덕씨를 만날 마음이... 없거든요.

 

여    말해버렸다. 그리고 보았다.

        그 사람이 창백하게 굳어지는 모습을.

        당연히 그러겠지. 나 역시 미안함에 그 사람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M)만약에 / 태연

 

(E) 바람이 쌩하게 분다. 걸어오는 소리.

 

여    많이 화나셨죠.

남    .... 글쎄요. 좀 혼란스럽기는 하네요.

여    미안해요.

남    그거 하나만 물어볼께요. 왜. 내가 안되는데요?

여    네?

남    크리스마스 이후엔 왜 안되는데요?

여    그게... 그러니까... 봉덕씨는 아무래도 결혼이 급한 것 같은데

        그리구.. 부모님이랑 할머님도 기다리신다 그랬구...

        호주... 간다면서요. 남경이가... (약간 횡설수설 분위기)

남    그런데요?

여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자신 없어요.

        어른들 모시고 살 자신.

        남경이가 절 뭐라고 소개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여자가 아니거든요.

        혼자 너무 오래 살아서 저밖에 몰라요. 어른 모실 줄도

        잘    모르구요. 자신 없어요 정말.

남    그게.. 이유에요?

여    네.

남    알겠어요. 제가 은서씨 부담 드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여    ... 괜찮으세요?

남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서울로 출발하죠.

(M)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 Michael Buble

 

여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에겐 연락이 없었다.

        난 다시, 쌀독에 쌀이 다 떨어진 사람처럼 불안해졌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 사람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

        따뜻했던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모두 그리웠다.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정말 괘씸하고 화가 났을텐데...

        아무 내색 않고 날 집앞까지 잘 바래다 주고..

        그 사람 그랬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래도 자긴 즐거웠다고.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았다고. 하지만 부담은 주고 싶지 않다고.

        끝까지... 젠틀하고 매너 있고 멋졌다.

        난 거의 미친 사람처럼.. 전화기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메일을 썼다.. 지웠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애타는 시간을 보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었다.

(M)이별 못한 이별 / 러브홀릭

 

(E) 메일 체크하는 듯한

 

여    크리스마스 바로 일주일 전.

       그 사람 이름으로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클릭했는데.

 

남    은서씨 메리크리스마스.

        내가 은서씨 크리스마스 미리 찜한 거 기억하죠?

        이거 초대장인데요. 나중에 잊어버릴까봐

        예약전송 해놓습니다. 여기 약도 보구 잘 찾아와요.

        난 창가 자리 미리 맡아놓고 있을테니까.

 

여    그랬다. 나랑 헤어지기 며칠 전

        그 사람이 초대장 메일을 예약 전송 해 놓은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또 스산해졌다.

(M)Blue Christmas / 서문탁

 

(E)캐롤

 

여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

        남들 다 퇴근하는데. 핸드백만 만지작거리며 멍하게 있다가

        거리로 나왔다. 이건 뭐, 난리도 아니다.

        어딜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가기도 그렇다.

        거리를 좀 헤매다가.. 그 사람이 보내준 초대장 생각이 났다.

        예약했던 거 취소는 했을까...

        설마 예약금 같은 걸 걸었던 건 아니겠지,

        어떤 덴지.. 그냥 살짝 가서 구경이나 해볼까....

        싶은 마음에 그곳에 갔다.

 

(E) 레스토랑 -

 

여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곳이었다.

        느낌은 그 사람 같았다. 정말 포근한 느낌.

        한발 들어서는데.. 창가 자리가 눈에 띄었다.

        저 자리구나. 저 자리에 그 사람이 앉아있으려고 그랬구나..

        당연히.. 지금 거긴 아무도 없다.

        혼자 밥까지 먹는 건 주책 중 주책일 것 같아

        그냥 돌아서 나왔다.

(E)문 닫고 나오는데

남    은서씨.

여    !!!!

 

남    그 사람이 서 있다.

        빨간 장미까지 한다발 들고.

 

여    여긴... 어떻게... (!!!!) 아... 혹시 다른 분이랑 약속하셨어요 여기서?

아    ... 그새 약속이 생기셨구나...

남    은서씨는요?

여    저는... 요앞에 그냥.. 지날 일이 생겨갖구요.

남    저 보러 오셨어요?

여    아아뇨~~ 약속도 안했는데 뭘.. 그냥 지나는 길에요.

        들어가세요. 약속도.. 있으신 것 같은데...

남    없어요.

여    ...네?

남    말씀드렸듯이.. 워낙 오랜만의 일이었어요 저한테도.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본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래 마음에 남아서...

        어떻게든 이별식 같은걸 해보자.. 그랬죠. 그래야... 지워질 것 같아서.

여    ...정말요?

남    네.

여    ....이왕 예약된 건데 그럼.... 저랑 저녁 드실래요?

남    ....

여    보험 말고... 그런 거 말고... 한번 잘 생각해 볼께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 뭐 그런 거... 등등...

남    저도 은서씨면 좋겠어요.

여    네?

남    저희 부모님.. 저희 가족.. 정말 좋고 따뜻한 분들이세요.

        은서씨가.. 불편하다면... 그 분들과 친해지고..

        그런 다음에 편해졌을 때. 그때 그 다음 이야기를

        해도 좋아요. 그 과정이 좀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전... 은서씨면 좋겠어요.

 

여    나도.. 이 사람이면 좋겠다.

        뭔가 어렵더라도.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이 사람이면... 좋겠다.

        우리는 가볍게 웃고. 서로의 팔을 잡은채

        들어간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M) 주제음

 

 

 

 

 

 

 

 





2009-11-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