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16 화 - 꽃보다 아름다워

 

(M) 주제음 나의 바램이 저 하늘에 닿기를 / 이동건

 

(E) 서랍 여는 소리

 

남여보. (대답 없자 더 크게) 여보!

 

(E) 방문 열고

 

여    왜.

남    양말.

여    없어?

남    없잖아. 이거 짝 안맞는 거 하나밖에 없는데.

여    아 맞다. 어제 세탁기 돌린다 그래놓고 깜박했네.

남    그럼 빨아논 거 없어?

여    ...없네.

남    아 그럼 세탁기 속에 있는 거래두 꺼내와. 그거라도 신게.

여    에이 그걸 어떻게 신어. 그냥 나가다가 하나 새로 사.

남    아 그럴 시간 없어. 그냥 줘.

여    ...아니... 물에 담궈 놨단 말이야.

남    뭐어?

(M)I want to hold your hand / Rita Lee

 

(E) 대문 열고 나오는

 

여    나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줘.

남    안돼. 늦었어. 가다가 양말까지 사 신어야 되는데.

        (생각하니 또 화나는) 당신은 정신을 어따 두고 살어.

여    1절만 해.

남    이따 집에 와서 얘기하자. 어?

여    바람 불어서 추운데 지하철까지 언제 걸어가냐구..

남    그러게 누가... 응? 그렇게 짧은 거 입으래냐? 스타킹은 무슨

        나비 날개 같아 가지구.

여    그럼 회사 가는데 청바지 입고 가랴?

남    택시 타고 가든가.

여    여기서 거기.. 가까운데 무슨 택시야.

남    그럼 걸어가든가.

여    추운데.

남    에이 진짜! 니 맘대로 해!

(E) 엘리베이터 띵 오고 타는

남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답답해 죽겠어 진짜. 너 원래

        그랬냐? 내가 완전히 속아서... (하다가) 안 탈거야?

여(    삐져서) 됐어. 먼저 내려가.

남    늦었다면서.

여    됐다고. 먼저 내려가라고. 답답한 사람은 20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 갈테니까.

(M)괜히 나만 미워해 / 베니

 

남    결혼 3년차.

        아직 아이는 없어, 우리를 보고 신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은 이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좋아 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장점들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 그녀는, 그저 깜박깜박 잘 잊고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음식솜씨도 별로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매일 무슨 업무가 그렇게 많냐고, 일은 소처럼 그렇게 많이 하는데

        무슨 월급은 그렇게 작냐고. 우린 집 언제 사냐고.

        운동 좀 하라고. 다른 집 남자들은 복근이 장난이 아니라고.

        늘 불평만 늘어놓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될 걸...

        우리는 왜 그렇게 목숨 걸고 결혼하려고 했나... 의아해진다.

        우리 부모님은 아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땐 왜 그랬을까.

(M)가려진 시간 사이로 / 윤상

 

(E) 설거지하는 소리

 

남    과천 한번 가야지.

여    어?

남    아까 어머니가 전화하셨던데.

여    그래? 당신 다녀와.

남    왜.

여    나 몸이 좀 안좋아.

남    당신 몸은 참 이상해. 왜 가만 있다가 과천만 갈려 그러면

        갑자기 아프고. 쑤시고.

여    그런 거 아니고. 진짜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래.

남    주말엔 좋아지겠지.

여    주말이래봤자 낼 모레 아냐.

남    그래. 낼 모레까진 좋아지겠지.

여    .... 정말 안좋아. 내일까진 할 일이 많고.

        나도 이번 주말엔 좀 쉬자. 쉬고 싶어서 그래. 잠 좀 푹 자게.

        당신 혼자 다녀와.

남    언제까지 그럴건데.

여    뭘.

남    어머니랑 풀어야 할 거 아냐.

여    (애써 부드럽게) 난 풀고 말고 할 거 없어. 나는 언제라도 어머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데. 어머니가 날 미워하시잖아.

남    노인이 되면 고집도 더 쎄지고. 마음 바꾸기도 쉽지 않으니까..

        당신이 더 노력해야지.

여    친정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거 빼곤.. 나 당신 어머니가 미워할만큼

        나쁜 조건의 며느리 아니야.

남    나도 알아.

여    아니? 당신은 몰라. 당신도 어느새.. 어머니처럼 생각하잖아.

        내가 많이 꿇려서.. 내가 많이 모자라서 시집왔으니까.

        어머니 구박은 당연하고. 그거 자연스럽게 받아넘기지 못하는 내가

        속이 좁은 거라고.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틀려?

남    ....난 당신의 이런 모습에 어머니도 질렸을 거라고 생각해.

여    ...뭐?

남    한마디도 안지는 거.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는 거. 어느 순간에도

        양보가 없는 거. 너만 너무너무 잘난 거.

여    여보!

남    가기 싫으면 가지 마. 이제 너 안 올 거라고 얘기해놓을테니까.

(M)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더클래식

 

남    나 혼자서 부모님 댁에 다녀오고

        그 다음 주 내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고

        말도 섞지 않았다.

 

(E) 식탁 차리는

 

여    밥 먹구 출근해.

남    괜찮아.

여    할 말이 있어.

(E) 와서 앉는

남    밥은 됐어. 무슨 말인데.

여    좋은 소식 한가지랑 나쁜 소식 한가지가 있어. 뭐부터 들을래.

남    나 당신이랑.. 별로 장난치고 싶은 마음 아니거든?

여    그래. 좋은소식부터 전할게.

        나 임신했어.

남    ...뭐? 정말이야?

여    응.

남    언제 알았어 그거. 서..있지 말고 앉아봐. 앉아서 얘기해.

여    좋아?

남    당연히 좋지. 얼마나 기다렸는데. 주말에 어머니 아버지도

    계속 물어보시더라구.

여    ...그러셨겠지.

남    잠깐.. 전화부터 드리자. 얼마나 좋아하실지..

(E) 전화기 꺼내 버튼 누르려는데

여    잠깐만. 나쁜 소식도 있다고 했잖아.

남    어.. 뭔데.

여    종양이 있대.

남    어?

여    악성인 것 같대.

(M)Close To You / Noon

 

(E) 차 가는 소리

 

여    어딜 간다 그래. 나 늦었어.

남    오늘 못간다 그래. 나는 전화했어.

여    왜 못가. 갈 수 있는데.

남    나랑 병원 다시 가보자 그러잖아. 정밀 진단 다시 받아봐.

        당신 몰라서 그렇지.. 오진 많아.

여    그래. 그럴 것 같아서 벌써 세군데 돌아다녔어.

남    너.. 혼자서...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여    내가 몸 안좋다고... 여러번 얘기했잖아. 당신.. 한번이라도 물어봤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병원엔 갔는지.

남    (답답해 미치겠고) 그건 그냥.. 그냥 그러는 건 줄 알았지.

        당신 자주 아프니까... 머리 아프다... 배 아프다...

        그냥 그런 건 줄 알았지. 난..정말...

여    .....

(E) 차 세운다

남    ........

여    .......

남    정말... 그런 건 줄 알았어 나는...

        아프다고 할 때마다... 또 그 소리냐...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엄살 핀다.... 그랬어....

여    .....

남    미안하다..

(M)Have I Told You Lately / Ryan and Rachael O'Donnell

 

(E) 찻잔 놓는

남    마셔. 허브티야.

여    여기는 그래도 장사가 되나봐. 우리 연애할 때 생겼던 것 같은데.

남    자리가 좋잖아.

여    나무 색깔이 언제 다 저렇게 변한거야..

 

남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은행 나무는 노란 잎들을 잔뜩 달고 있다가

        바람이 화르르.. 불면 몸을 떨며 잎을 떨궈 낸다.

        갑자기 쓸쓸해진다.

 

여    들어가는 길에 서점 들러서 책 사가지고 가자.

남    무슨 책.

여    태교 책.

남    아이 낳게?

여    뭐?

남    당장 수술 받고.. 할 게 많을텐데..

여    급한 거 아니야. 아이 낳고 나서 할거야. 다 물어봤어.

        당장 치료하는 거 아니면 아이 낳는 데에 아무 지장 없댔어.

남    그게 말이 돼?

여    아이 안낳는 게 더 말이 안되지. 좀전에 봐. 당신 얼마나 좋아했어.

남    그거야 당연히 좋지. 좋고... 또 안낳겠다고 하는 내 마음도...

        (한숨 쉬고) 미치겠지.

여    어차피 난 조기 발견한 거랬어. 조금 더 있다가 수술한다고

        큰 이상 생기지 않을거야.

남    넌 이 순간에도 잘난척이야?

여    내가 뭘!

남    니가 신이야? 니가 뭐든 다 할 수 있어?

        나 암으로 죽는 사람 주변에서 많이 봤어.

        그 사람들은 너처럼 잘나지 않아서 그렇게 죽은 줄 알아?

여    ...나는.. 뭐 안무서운 줄 알아?

        나도 무섭거든.

남    ....니 맘대로 해.

여    ...뭐?

남    너는 어차피 내 말 안 듣잖아. 결국 너 하고 싶은대로 할 거잖아.

        그러니까 니 맘대로 하라고.

여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남    이해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난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치료가 조금 늦어지는 건 불안한 일이지만

       어렵게 생긴 아이를 잃는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으니까.

       아내가, 어떻게든 아이를 낳겠다고 말하자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말.. 엄청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M)제비꽃 / 류

 

---------------1부 끝 ----------------

 

(E) 화장실 문 두드리는

 

남    괜찮아? 괜찮냐구.

 

(E)물 내리는 소리 들리고 문 열고 나오는

 

여    입덧하느라 속에 있는 거 다 올리는 중인데

       괜찮냐고 계속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

남    아니 나는... 괜찮나 걱정돼서..

여    그렇게 걱정되면 들어와서 등이라도 두드려주지?

남    어?

여    왜. 당신 비위 약해서?

남    누가 그렇대? 그게 아니고.. 당신이 챙피해할까봐...

여    됐다 됐어.

남    밥 먹어. 먹다 말고 뛰쳐 들어갔잖아.

여    어. 먹어야지.

(E) 자리에 앉고 뭔가 먹는 듯한

남    속 괜찮아?

여    뭘 자꾸 괜찮냐구 그래. 안 괜찮지. 지금이라도 다시 토할

       것 같은데.

남    그런데 잘먹네..

여    잘먹어서 싸워 이길라 그러지.

       나 어디 책에서 봤는데.. 식단을 이렇게 유기농 야채로 바꿔서

       수술도 안하고 항암치료도 안하고 암을 치료했대.

       어느날 속이 너무 편안해져서 병원 가봤더니

       혹이 완전히 없어지구....

       의사도 현대의학으론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남    그런 말을 믿어?

여    실제 그 일을 겪은 사람이 한 말이야.

       그리구 그 사람도 나처럼 갑산성 저하증 겪다가

       갑상선에 종양이 발견된 케이스였어.

남    그래. 물론 그랬을 수 있어. 그렇지만 그건 기적이지.

       기적은 자주 안 일어나. 그러니까.. 기적인 거고.

여    .... 그래서?

남    ....

여    그렇게 말해서 내 힘을 쏙 빼놓으니까 기분 좋아?

남    그런 게 아니라... 당장 치료 안들어간다고 해도

       체계적으로 치료 준비는 하고 있어야지.

       아이 낳고 바로 수술 들어가든.. 치료 들어가든.. 하게.

       자꾸 그런 책 읽고 기사 읽고...

       기적 같은 데 기댈라 그러니까 그렇지.

여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기댈 수 있는 곳엔 모두 기댈거야.

       기적에도 기대고.. 의술에도 기대고.. 당신한테도 기대고.

       나는 어디든 기대서.. 이걸 이겨내야 할 의무가 있거든.

       당신도 알 거 아냐.

남    ....그래.

여    아... 나 또 올라온다...

(E) 우탕탕 화장실로. 문 닫히고.

 

남       아내는 씩씩하다. 지나치게 씩씩하다.

    그녀 말대로 어떤 병도 다 이겨버릴 것 같다.

    처음엔 가슴이 덜컥..내려앉으면서

    많이 걱정을 했지만.

    이 사실 역시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가끔은 슬펐지만. 가끔은 아무렇지 않았고.

    또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했다.

(M)사랑이라는 이유로 / 김광석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여    이제 와? 나 자꾸 잠이 쏟아져서 누워 있었어...

남    좀 앉아봐.

여    어.. 일 그만두고 나니까 더 게을러지는 것 같아.

남    아까 주치의랑 상담했어.

여    뭐래?

남    요즘은 임신중에 암치료 받는 사람들 많대.

       미숙아나 저체중 아이들이 나오는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으로 위험한 건 아니니까...

여    안돼.

남    언제까지 미룰건데.

여    얘기했잖아. 애 낳을때까지.

남    그러다가. 니가 그 전에 죽으면!

여    ......내가.. 왜 죽어?

남    제발 그 쓸데없는 자신감 좀 버려.

여    솔직히 말해봐.

       아이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남    뭐?

여    내가 없어지면 아이도 같이 없어질까봐. 그래서 그러는 거지?

       나 때문이 아니고, 아이 때문에. 맞지?

남    여보.. 윤은서. 너 나를 그런 사람으로 봐?

여    내가 치료 미루고 아이 먼저 낳겠다고 했을 때.

       나는.. 봤거든? 당신이 안심하는 거.

남    ....

여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끝까지 말려주거나..

       나를 설득하려고 노력해 줬으면 했는데. 아니더라구.

       우리 솔직해지자. 이 일 생기기 전에 우리는 거의 남 같았잖아.

남    넌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어. 어떤 부부라도 살다 보면 다..

여    나는 있잖아. 당신이랑 살면서... 당신이 후회하는 모습을

       계속 봐 왔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남    ....

여    처음엔 이혼하자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어.

       그 말을 내가 먼저 꺼내면. 당신은 나를 말리지 않을 것 같았거든.

(M)쉼, 비밀, 위로/ 러브홀릭스 (우미진)

 

남    달수가 되면 유도분만을 할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진통이 찾아왔다.

       가족분만실에 들어갔는데

       아내는 계속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아픈 것을 꾹 참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다.

 

남    여보.. 아프면 소리 내도 돼. 왜 그렇게 참아.

여    참을만 하니까 참는거야.

남    독종.. 니가 그러니까 독종 소릴 듣는거야.

여    나 허리 좀 쓸어줘.

(E)허리 쓸어주는

남    아기 낳고나서 몸 회복 되는대로... 얼른 검사해서 수술 받자.

여    ....그래..

남    그때 당신이 말한 거 맞어.

       나도 어쩌면 혹시 아이한테 피해가 갈까봐...

       낳고 나서 수술 받기를 바랬을지도 몰라.

       당신보다.. 애 생각을 먼저 했어.

여    힘들어.. 누가.. 고해성사하래... 등이나 열심히 쓸어봐.

       남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나고..

       당신도.. 꼭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여    ......

남       (목메지만) 그냥.. 그렇게 우리 세식구 같이 사는 게....

       지금 내 단 한 가지 소원이야. 그것만 이뤄지면....

       나는 평생 아무 소원도 안 빌거야.

(M)그건 사랑이었지 / 루시드폴

 

남    건강하고 예쁜 딸이 태어났고. 우리 부부는 그날 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뒤.

       검사 결과 암세포가 폐에 전이됐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가는 발걸음은

       허공을 걷고 있는 것처럼 허우적댔다.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여보.. 우리 다은이 봐. 자면서 잠꼬대하나봐. 막 뭐라고 그래.

남    그래..?

여    ....(아무렇지 않은 척) 뭐래?

남    ....

여    수술 날짜 언제로 잡혔어?

남    ....

여    전이..안됐다 그러지?

남    .....

여    .... 전이됐대?

남    아니. 다른 데는 깨끗하대.

여    그렇지?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남    전이만 안됐으면 다냐? 수술이 얼마나 힘든건데..

여    자기가 의사 다 해라. 괜찮아. 감상선암은 예후도 좋고..

       암튼 괜찮을거야.

남    다은이가.. 자면서 뭐라고 잠꼬대했는데.

여    애기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옹알옹알 하는 거지.

남    그랬구나...

 

남    아내에게 등을 보이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M)지금 만나러 갑니다 / 신승훈

 

(E) 서랍 열어 뭔가 챙기는

 

남    그거 다 챙길 필요 없어. 갔다가 뭐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도 되고

       하나 사도 되고..

여    우리 다은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벌써 엄마 손 타는데..

남    엄마가 잘 봐주실거라고 했잖아.

여    어머니한테도 죄송스럽고.

남    그래도 당신 아프니까.. 어머니가 갑자기 잘해주잖아.

여    ..그러게... 당신 아들 고생시킨다고 더 미워할 줄 알았는데..

남    넌 우리 엄마를 어떻게 보고...

       다 챙겼으면 가자.

여    어..

(E) 문 열고 나와서 현관에서 신발 신는

 

남    신발 좀 따뜻한 걸로 신지.. 부츠 신을래?

여    아니야. 괜찮아.

(심호흡)

남    왜.

여    옛날에 여자들이 그랬대잖아. 애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댓돌을 보면서... 내가 저 댓돌위의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남    ...

여    나 다시 여기 와서 신발 벗고... 우리집 들어가고...

       우리 다은이랑 같이 놀고... 당신이랑 저녁 먹고... 그럴 수 있겠지?

남    그럼 안 그럴라 그랬냐.

여    그럴 수 있을거야... 그럴 수 있겠지....

(M)잊지말아요 / 백지영

 

(E)병실 문 열고 들어오는

 

여    어디 갔다 왔어.

남    1층 로비에서 수위 아저씨랑 싸웠어.

여    응? 왜?

남    꽃을 샀는데.. 못 갖고 들어가게 하잖아.

여    왜 샀는데?

남    왜 샀겠어. 구워 먹으려고 샀다.

여    나 주려고?

남    옆방 환자 주려고.

여    암튼... 말 한번을 곱게 안해.

남    내가.. 결혼하고 꽃 한번도 안 사줬지.

여    어? 알고 있었네? 난 모르는 줄 알았지.

남    내가... 참.... 그렇다?

       얼마든지 사줄수 있는 시간 있었는데....

       그땐 안사주고 팽팽이 있다가....

       지금은 안된다는데... 기어이 주겠다고...

여    무슨 꽃 샀는데.

남    ....국화.

여    어떤 국화?

남    당신 좋아하는 거 있잖아. 보라색이랑 노랑색이랑....

여    받은 걸로 하지 뭐. 고마워. 생일도 아닌데.

남    기분 좀 어때.

여    병실 말이야. 6인실 자리 나는대로 좀 옮겨달라고 그래.

       1인실 너무 비싸.

남    6인실은 자리가 없어.

여    2인실은.

남    2인실도 없어. 그냥 여기 있어. 수술 끝나고 나와서

       회복할 때도 편안한 게 좋잖아.

여    보험은 6인실 기준으로 보상해주는 거 알지.

       돈 너무 많이 들어.

남    돈 더 많이 들어도 되니까.... 낫기나 해.

여    울어?

남    미쳤냐 내가. 그때 말했잖아. 간단한 거야.

       그거 그냥 똑..떼면 된다고 하잖아.

여    ...전이된 거 다 알거든.

남    !!!

여    다 알아. 나 바보 아니잖아. (사이) 그래도 걱정 마.

       나 독종이니까... 거뜬하게 일어날거야.

남    여보..

여    하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서랍 열고) 이거...

남    뭔데.

여    하나는 당신 꺼. 하나는 우리 엄마 아빠 꺼. 하나는 어머니 아버님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 (목메고) 다은이꺼.

       편지 썼어. 혹시 모르니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거 뜯어보고.

       나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오면... 절대 보지 마.

남    이런 걸 뭐하러....

여    난 이제 자야겠다. 불 좀 꺼줘.

(E)이불 뒤집어쓰는

 

남    어둠 속에서 아내는 흐느꼈다. 나도 그랬다.

(M)희재/ 성시경

 

(E) 서랍 열고. 부스럭 편지 꺼내는.

 

남    아내의 편지를... 절대 볼 수 없길 바랐지만

        난 오늘 그녀의 편지를 열어본다.

(BG)희재 Theme

여    여보. 만약에 당신이 이 편지를 읽어야 하는 시간이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당신한테 다은이를 맡기고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억울하고. 미안하고. 괴로워.

       그래도 여보. 잊지 마. 나는 내 선택에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어.

       당신을 선택한 것. 우리 다은이를 선택한 것.

       모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이었고.

       잘한 일들이었다고 생각해.

       당신 미워한 날도 많았지만, 그만큼 사랑했던 것도 알아줘.

       우리 다은이.. 허전해하지 않게 당신이 더 많이 사랑해줄거라고 믿어.

(M)그대여 안녕/ 조원선

 

(E) 찻잔 놓는

남    아내가 떠나고 1년이 흘렀다.

       난 가끔 습관처럼 그 찻집에 들른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앉던 자리에 앉아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슬픔을 되새기면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서글픈 바람이 나무를 부등켜 안았다가 지나간다.

(M) 주제음

 





2009-11-1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