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14 화 - 막장 러브스토리 (M) 주제음 용서못해 / 차수경 (E) 펜으로 종이 위에 사각거리며 글 쓰는 소리 여
나는 작가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좀 쑥스럽지만 아주 유명한 드라마 작가다. 내가 쓴 일곱 편의 드라마는 공전의 힛트를 기록했고. 때문에 나는 아주 잘나가는 작가다. 물론 내년이면 나는 마흔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에 만족한다. 가족은 없지만, 내겐 나를 빛나게 해주는 작품이 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나는 펜으로 대본을 쓴다. 그리고 팩스를 통해 전달한다. 이 방법이 좀 느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처럼 품위를 중시하는 작가에게 이 작업은 자부심을 갖게 해준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열심히...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M)
Memory / Sarah Brightman (E) 텔레비전 끄고 여
오늘도 나의 드라마는 대박이었다. (E) 강아지 낑낑대는 소리 여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서 긴장된 마음으로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한 후 (E) 컴퓨터 켜는 여
컴퓨터를 켰다. (E) 커피잔 놓고 마시는 여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실 때까진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 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E) 클릭하는 여
뭐야 이게? (E) 급하게 클릭 클릭 여
이게 뭔 소리야? 아니.. 누구 드라마가 뭐가 어떻다는...
뭐? 막장? 아니 내가 왜 막장이야? 여기가 무슨 탄광이야?
막장은 무슨 놈의 막장? (M)Call Me / Blondie 남
윤은서 작가의 드라마는 한마디로 막장이다.
벌써 이런 이야기로 몇 번의 재미를 보았다.
불륜에 출생의 비밀.
자매가 한 남자 때문에 파탄에 빠지더니
이번엔 형제가 한 여자 때문에 모든 걸 내던진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 기억상실증이
왜 안 나오나 했더니, 오늘밤 나왔다.
자기복제의 최고봉격인 윤은서 작가의 드라마.
과연 전국민의 40%나 되는 사람이
그녀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확신한다. (E) 커피잔 덜덜 떨리는 여
나는 오늘 밤 이 칼럼을
스무번째 읽고 있다.
커피도 열잔째다.
손이 덜덜 떨려오는 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일거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M)Give / Tori Amos (E)새소리 여
아침이 되자마자 난 그 사람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러니까, 그 칼럼을 쓴 기자 말이다. (E) 통화음 가다가 남
여보세요. 여
저.. 그러니까...
남
(자다 깬)누구시죠?
여
저는... 흠... 그러니까 저는... 남
(짜증) 누구시냐구요. 여
저 윤은서 작가에요. 당신이 김봉덕 기잔가요? 남
윤은서 작가..? 아... 여
아아?? 하! 당신이 쓴 칼럼 봤어요. 거기에 대해서 할 말 있거든요? 남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쩌죠. 아직 제가 잠이 덜 깨서. 여
잠이 덜깨요? 아니 지금이 몇신데.. 남
새벽 6시 20분이네요. 여
......아.. 그러네요. 저는 워낙 아침형 인간이라서..
암튼 그럼.. 일어나서 정신 차리면 전화 주세요.
아니 그럴 거 없이 좀 만나죠. 커피라도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은데. (M)
If You Seek Amy / Britney Spears (E) 커피잔 드는 소리 덜덜 남
저..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손이 좀 떨리시는 것 같은데.. 여
커피를..너무 많이 마셨나봐요. 남
아 그럼 다른 걸로 시키시죠. 여
됐어요. 나 들어가서 일해야 돼서.. 남
아... 요즘 바쁘시죠? 작품하실 때 작가 만나기 힘든데..
어떻게 시간을 내셨네요. 여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더라구요? 남
네? 아... 하하하. 제 칼럼이 그렇게 인상적이였나요? 여
자랑스러우세요? 남
예? 아뇨.. 뭐 자랑스러울 것까진 없지만. 저는 제 느낌을 솔직하게
쓰는 게 일인 사람이니까요. 여
칼럼이 일기장인가요? 개인적인 감상문이 아니잖아요? 남
물론 아니죠. 감상문이었다면, 그렇게 예의 바르게 쓰지 않았겠죠. 여
뭐라구요? 예의 바르게? 남
뭐 어긋나는 얘기 한 적은 없는데? 여
저한테 무슨 감정 있으세요? 남
아뇨? 방금 전에 만난 분한테 무슨... 여
그러니까요. 방금 만난 나한테 왜...
(멈칫) 저기.. 혹시.. 남
뭐죠? 여
아니에요. 남
철학과 꼴통 김봉덕이야? 이렇게 물어보려고 그랬어요? 여
네? 남
맞아요. 철학과 꼴통. 김봉덕. (M)
그 때 그사람/ 심수봉 여
믿을 수 없었다.
그 인간은 정말 철학과에 다니던 김봉덕이었다.
그러니까 대학 시절 내내
나를 죽어라 쫓아다니던 그 김봉덕 말이다.
그는 나를 죽어라 쫓아다녔지만
내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본 건
대여섯번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내 앞에 서서 꽃을 주거나
고백을 하도록 가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거나
다른 남자의 팔짱을 끼고 가 버렸다.
그땐 나도 꽤 괜찮았다. 뭐.. 물론 20년 전 일이지만. (M)
그대 모습은 장미 / 민해경 남
왜요? 왜 그렇게 보세요? 여
아니... 꼭 다른 사람 같아서.
그땐... 남
개량한복만 입고 다녔으니까.
여
그러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정장을 입고 있고...
수염도... 남
깨끗하게 깎았고. 여
진작 이렇게 다니지 그랬어? 남
저한테 지금 반말하세요? 여
아니..요. 누가요? 저는 그냥.. 예전엔 그랬으니까.. 친근감의 표시로.. 남
뭐 암튼 그게 우리가 만난 일에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여
아니긴요? 아...그러니까 이제 답을 알겠네.
계산이 딱 떨어져. 남
무슨 계산이 떨어져요? 여
그거잖아요. 그때 나 좋다고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내가 안 받아줘서
그래서 앙심 품고 있다가 지금 나를 이렇게 비난한 거잖아요? 남
전혀요. 왜 사람을 그런 저질로 만들어요? 여
저질 맞잖아요? 남
나는 윤작가님 비난한 적 없습니다. 윤작가님의 작품을 비판한거죠.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요. 여
그럼 내 드라마가 왜 막장인데요? 내 드라마가 그렇게 별론데
왜 매번 40% 넘는 시청률이 나오겠어요? 남
점점 떨어지고 있죠. 여
네? 남
워낙 자극적이고 쎄니까...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봐줬지만
점점 약발이 떨어지고 있잖아요. 오늘 시청률 안 봤어요?
지난주보다 4%나 떨어지고 있던데? 여
그거야.... 남
첫 번째 작품보다 두 번째 작품이...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그리고 여섯 번째보다 일곱 번째가.. 더 안좋아요.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그걸 본인이 몰라요?
난 알겠던데. (M)
주제파악/ 지니 (E) 사각대면서 뭔가 쓰는 소리 여
그리고 그 주 내내 나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E)종이 구겨서 버리고 여
아.. 그 꼴통.. 그 인간 때매.... 아 미치겠네 진짜.. (E) 전화벨 여
(한숨 쉬고) 여보세요. 네.. 거의 다 써가요. 다 써간다고 하잖아요.
(버럭) 아 그럼 못쓰겠는걸 어쩌라구요!!! 전화 좀 그만 하세요.
안 그래도 생각 안나는데 미치겠잖아요!!! (E) 전화 끊고 여
이게 다.. 그 인간 때문이야... (E)전화하는 남
여보세요. 여
야 김봉덕! 이게 니가 원하는 거였어?이렇게 소금 뿌리는 거?
그래. 나 너 때문에 완전 소금 뿌려진 배추 돼서 숨 다 죽었거든?
이제 글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쓰겠고. 머리는 완전 빈 깡통이
돼 버린 기분이거든? 이게 니가 원하던 거지? 맞지?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구! 니가 나 좋다는데 내가 너
싫다고 한 게, 그게 그렇게 한이 맺혔니? 그래서 이래?
참 좋겠다. 나는 이제.. 너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겠어! (M)
You Oughta Know / Alanis Morissette (E) 시계 초침 소리 째각째각... 여
초조할 땐 한 시간이 일초처럼 지나간다.
너무 빨리 가 버려서 난 아무 것도 못한 채
넋놓고 앉아 있었다. 오늘밤까지 대본을 넘기지 못하면
촬영 펑크에 방송 펑크다. 뭐라도 써야 했다... (E) 초인종 소리 여
(화들짝 놀라고) 뭐야.. 박감독 여기까지 온거야? 아 정말... (E)나가며 여
누구..세요? 남
나야 김봉덕. 여
누구? 남
김봉덕이라구. 여
니가 여길 왜 왔어? 남
잠깐 문이라도 좀 열어라. 여
어떻게 알고 왔냐구. 남
문 열면 대답해 줄게. (E) 문 열고 여
왜 왔어. 어떻게 알고 왔어. 남
스텝 중에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말이 작가가 대본을 안넘겨서 방송이 펑크날 것 같다고 하더라. 그 사람
한테 작업실 알려
달라고 했고. 그리고 왜 왔냐면. 격려차. 여
뭐? (E)부스럭 남
이건... 니가 좋아하는 순대. 그리고 이건 니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그리고 이건 니가 최고로 좋아하는 고구마 튀김. 여
뭐하자는거야? 남
인정할게. 사감이 들어갔었다는 거. 오랜 세월 동안 니가 참 얄미웠다는 것도 인정. 그래서.. 니 기를 죽여놓고 싶었
던 것도 인정.
그런데... 너 이 정도였어? 여
뭐? 남
너 남이 뭐라든 별로 상관 안하던 애였잖아. 그런데 뭘 그 정도로
이렇게까지 흔들려? 여
됐고. 그거나 말해. 남
뭐? 여
내가 쓴 거.. 재밌어? 재미없어? 남
어? 여
재밌어? 재미없어? 남
재밌어. 난 재미없는 건 비판도 안해. 여
....됐어. (E)부스럭 받아들더니 여
잘 먹을게. 잘 가. (E) 글쓰는 소리 여
신기한 일이었다. 그날밤 나는 불가능해 보이던 작업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끝냈고. 달콤한 잠까지 잘 수 있었다. (M)Sunday Afternoon / Mocca -----------------1부 끝 ------------------- (E) 부스럭 뭐 꺼내는 여
또 뭐 가져온거야? 남
점심 밖에 시간이 안된다면서. 샌드위치 사왔어. 여
참치? 남
어. 여
고마워. 너두 먹지. 남
내꺼두 있어.
이거 사면서.. 그런 생각 들더라. 너 별로 안 변했다. 여
(먹으며) 내가 뭐? 남
오늘 만나자고 전화 한 건 너였잖아. 여
그래..뭐. 이런 저런 할 얘기도 있었고.. 남
그런데.. 내가 그러자고 하니까, 니가 뭐랬는지 알아? 여
나 점심밖에 시간 안된다고. 짧게 보자고. 남
그러니까... 니가 보자고 한건데도 너는 니 편리만 생각하잖아. 여
너 지금 그거 따지는거야? 우리 나이 마흔이야. 남
너는 스무살 때도 그랬어. 여
관두자. 오늘 보자고 한건 다른 게 아니라. 암튼 고맙다는 얘기
하려고야. 남
뭐가? 여
어쨌든 요전날 말이야. 그 일이 다 너 때문에 생긴 거긴 하지만
그래두.. 어쨌든.. 니가 와서 그렇게 얘기해 주고 가니까
한결 낫더라. 남
드라마도 좀 나아졌더라. 여
뭐? 남
이번주는 좀 낫더라구. 여
누가... 뭐 너한테 그런 거 평가해달랬어? 남
그냥 내 느낌을 얘기한거야. 여
(떠보듯)그래? 뭐가.. 더 나았는데?
남여러 가지로. 억지스런 설정도 사라졌고. 대사도 더 안정됐고.
전엔 너무 자극적이고 좀..상스러웠잖아? 여
뭐? 남
그게 훨씬 좋아졌더라구. 품위 있으면서도 붕 뜨지 않았고.
그때도 말했듯이 인정해. 니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재밌어. 여
뭐.. 마실래? 커피 내가 사올게. (M)
커피 한잔 어때 / 허밍어반스테레오 여
그의 말이 맞았다. 내 작품에 대한 평가는 훨씬 좋아졌다.
나답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청률은 곤두박질 쳤다.
물론 상대 방송사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작을
시작해서였기도 하지만. 예전같으면 어림없는 얘기였다.
내 드라마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안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건 정말로 큰일이었다. (M)Honesty / Beyonce (E) 전화 오고 남
여보세요... 여(
울고 난리난) 너 이제 이거 어떻게 책임질거야. 남
누구세요? 여
뭘 누구세요야. 너 나 몰라? 남
윤은서. 여
괜히 니 말 신경쓰면서 안쓰던 착한 드라마 쓰다가
이꼴이 뭐니? 어제 꺼 몇프로 나왔는지 알기나 해? 남
지금 몇신 줄 알아? 여
그게 중요해? 남
(한숨 쉬고) 새벽 3시야. 여
그래서! 남
너 내가 결혼이라도 했으면 내 와이프한테 미안해서 어쩌려고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여
(헉) 너 결혼했니? 남
아니. 여
거봐 안했잖아. 남
넌 물어본 적도 없잖아. 내가 왜 결혼 안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여
그게 이 시점에서 왜 중요해! 나 지금 한 글자도 못쓰고 있다구.
알어? (M)요즘 우리는 / 코코 (E)털썩 앉는 남
자.. 먹어라 먹어. 여
고구마 튀김은. 남
너 새벽 4시에 막 튀겨낸 고구마 튀김 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여
옛날엔 잘도 찾아왔잖아. 너 내가 찾아오라는 건 다 찾아오지 않았니? 남
옛날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 여
그래... 너두 참.. 변했어. 그땐 진짜.. 야. 너 그때 안경은 왜
그런 걸 썼어? 남
그만 하자고. 너 이럴 시간 있어? 여
없지.. 나 이제 어떡해. 난 이제 완전 망할거야.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집 청약은 괜히 해서..
난 이제 잔금도 못치르고 계약금만 날릴거야... 남
엄살 그만 피고.. 여
진짜야. 나 돈도 없단 말이야. 남
여태 번 건 다 뭐했냐? 여
엄마 아팠잖아. 병원비에.. 내 동생들 줄줄이 시집 장가 보내고.
너 가족부양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인 지 알아? 남
(약간 한숨 쉬고) 이번 주 방송이 좀 잔잔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큰 맥락에선 꼭 필요했던 내용이잖아. 여
그래. 그러면 뭐하냐구. 시청률은 완전 박살 났고..
상대 드라마에선 전쟁도 나고 지진도 나고 난리법석인데. 남
워낙 물량공세가 심했으니까. 그래도 다음주부턴
내용을 찾아서 볼거야. 시청자들이 그렇게 바보 같진 않아. 여
...그래? 남
그러니까, 내용에 충실해서 열심히 해 봐.
다음주가 비밀이 밝혀지는 거니까, 재밌을 거 아냐.
여저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좀 써논 게 있는데 좀 봐줄래? (M)고마워요 / 임현정 여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재미있다고 하면, 난 안심이 되었다. 남
재밌는데? 여
진짜야? 남
그래. 재밌어. 중반 이후가 중요할 것 같긴 하지만.
잘 써봐라. 나 간다. 여
저기 잠깐만. 너 지금 바빠? 남
새벽 4시 반에 바쁠일이 있겠어? 자는 거 밖에. 여
그럼 저기 소파에서 좀 자라. 너 집에 가려면 피곤하잖아. 남
나는 내 침대에서만 잠이 와. 여
예민하기는. 그럼 커피 좀 더 마실래? 남
왜. 여
나 나머지 쓸테니까 넌 좀 더 있다가 읽어보고 가. 남
뭐? 여
좀 그렇게 해. 바쁜 일도 없다면서. 거기 앉어. (E) 사각거리며 쓰는 여서있지 말고 앉어. (M)가까이 / ? (E) 새소리 여
무슨 꿈인가 꾸다가 벌떡 일어났다.
벌써 아침이었고. 난 어느새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여
어우.. 미쳤어 미쳤어.. 어디까지 쓴거야... (멈칫) 맞다..
거의 다 썼지.. 마지막 씬이 여기... 여
원고지 위에 노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그가 써놓고 간 거였다. 남
자고 있길래 좀 봤다.
재밌다. 감동스럽기도 하고. 여
그의 칭찬에 자신감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그 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
그를 내 작업실로 끌어들이곤 했다. (M)놀러와 / 러브홀릭 (E) 커피 따르는 여
별로야? 남
어. 여
아니 왜 별로야? 이게 얼마나 죽이는 씬인데? 남
너무 작위적이잖아. 이렇게 멋있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여
그러니까 드라마지. 하긴 니가 누구 깎아내기나 해봤지
드라마를 알겠어. 남
모르는 사람 앉혀놓고 뭐하는거야. 나도 피곤하다. 여
아니... 가지 말고. 앉아봐. 어디가.. 어떻게 작위적인데? 남
이거 봐. 여자가 너무 쿨한 척 하잖아. 여
너 쿨한 게 트랜드야. 남
그래도... 3년 사귀던 남자가 지 뒤통수를 쳤는데. 반응이 뭐 이러냐구. 여
그럼 촌스럽게.. 너 죽고 나 살자 하니? 남
그래도 뭔가.. 그럴 법한 반응이어야지. 이건 너무... 멋지기만 해. (E) 확 뺏는 여
아 이리 내. 지가 뭘 안다구.. 남
내가 너 3년 반 쫓아다녔잖아. 여
..그래서? 남
니가 졸업논문 자료 찾아달래서 그거 다 찾아서 주러 갔더니
니가 그랬잖아. 이제 너 필요 없으니까 그만 찾아오라고. 여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남
그렇게 말했어. 여
그런데.. 그 얘길 왜 지금 하는데. 남
그렇게 뒤통수 맞아본 사람으로서, 이 대본은 너무... 실감이 안난다.
공감도 안되고. 내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해줄까? 여
..........아니? 얘기 안해줘도 돼. 커피 더 마실래? (M)Hot Sauce / Winterplay 여
나는 생각한다. 그가 없었다면, 8회 쯤부터 헤매다가
16회를 마무리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는 거의 한달 동안 내 작업실에 들러주었고
나는 그 덕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 술따르는 남
마지막 대본 넘겼다구? 여
그래서.. 오늘은 술이야. 커피 아니구. 남
좀 자야 되는 거 아냐? 여
일할 땐 한시간만이라도 편하게 자는 게 소원인데
끝나면 이상하게 잠이 안와. 남
그래.. 여
너 그런데.. 왜 기사 안 써? 남
무슨 기사? 여
내 드라마에 대한 기사.. 다른 기자가 쓰더라. 넌 안쓰고. 남
그렇잖아. 작업 과정을 다 보면서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는 게..
쉽지도 않고... 여
그런가... (사이) 그래서 어땠어?
이번 러브스토리? 남
또 확인받는거야? 괜찮았어. 여
그게 다야? 남
그럼? 여
니 말대로, 인물들의 감정에 개연성을 주려고 노력했거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땐 원인이 있는 거고..
감정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확 불붙듯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점점 차곡차곡 쌓이는 거고.... 남
무슨 소리야? 여
그런데 있잖아. 그렇게 쓰다 보니까.... 현실하고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
뭐가? 여
예전에 나는 니가 진절머리나게 싫었고. 그냥 이용만 하고 싶었거든.
다시 만났을 때는 더 싫었고. 할 수만 있다면 니 입에 반창고라도
붙여놓고 싶었고. 남
그런데? 여
그런데.. 오늘은 니가 좋아서.
이거 막장이니? 남
....어? 여
니가 좋아. 결혼은 안했다 그랬지. 애인은 있니? 남
...... 여
대답 안했으니까 없는 걸로 알게. 어떻게... 나랑 사귀어볼 생각은 있니? 남
윤은서... 여
그래.. 그럼 그러는 걸로 알고.. 나 다음 기획 때까지 몇 개월은
죽어라 놀거거든? 어디 어디 가고 싶은지.. 뭐뭐 하고 싶은지..
생각.. 해 놔. 나 간다.... 여
돌아서서 가면서 창피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난 아직 그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논리정연한 그는, 내 이런 미친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러브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M) 주제음
2009-10-3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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