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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8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11화 - 10월의 바람 부는 날


(M) 주제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김동규 & 금주희


여     가을이 왔다.

        그래도 추석 전까진 아직 늦여름이라고

        낮엔 많이 덥다고

        우겨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다.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 출근길에 보니 나뭇잎들도 누렇게 변색이 돼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나 같아서 외면하고 빠르게

        걸어야 했다. 나이는 한 살..또 한 살 먹어가는데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는 타박은.. 올 추석에도 많이 들었다.

        부엌에서 전 부치고 있는데 고모들은 내 쪽을 흘끗거리며

        뭐라고 속닥대다가, 내가 쳐다보니까 날 안쓰러운 듯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뭐! 내가 뭐!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날 그렇게 봐!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게 외로움에 점점 미쳐가는구나.. 그럴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난 외로움에.. 점점.. 미쳐가는지도...

(M)    아, 외로워/ 요조


(E)지하철역 

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왜 갑자기 그 녀석 얼굴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연락 끊긴지 일년 반 정도 됐지.

        늘 그랬다. 그 녀석과 나는 그렇게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지내다가 1년만에 2년만에 또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어제 만난 사람처럼 말했다.

        ‘뭐하냐 지금.’

        맥주나 한잔 하자.. 해서

        슬리퍼 끌고 만나 동네 호프집에서 만나

        시시한 수다를 떨며 깔깔거리고 웃다가

        ‘그럼 다음에 또 보자’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돌아서곤 했다.

        언젠가 한번은 그런 말도 했었다.

        우리 둘다 서른 넘어 결혼 안하고 있으면

        서로를 구제해 주자고....

        그 약속을 할 때만 해도 설마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있을까 했다. 서른 넘은 나이에.. 남자가 없어 결혼을 못하는

        그런 일이...? 훗... 설마....

        이랬었다.

        그런데... 난 지금 서른을 넘었다. 넘어도 많이 넘었다.

        갑자기 좀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 녀석.. 나한테 연락도 없이 벌써 장가간 건 아니겠지?

        번호를 눌렀다.


(E) 번호 누르고 신호 가고


남     여보세요.

여     번호 안바꼈네?

남     누구세요?

여     내 번호 저장 안됐어?

남     누구신데요?

여     .... 나 윤은서야.

남     아.. 은서. 왜?

여     넌..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한테 첫마디가 왜야?

남     오랜만인가?

여     오랜만이거든?

남     어. 그래 오랜만이다.

여     참 인사 빨리도 한다.

남     너 왜 오랜만에 전화해서 시비냐?

여     (참고) 너 결혼은 했냐?

(M)    S.O.S /  A-Teens


(E) 호프집 분위기. 짠 건배하고


여     (기분 좋은) 야. 난 걱정했잖아. 너 결혼했으면 어떡하나 하고.

남     야. 내가 너한테 연락도 안하고 결혼하겠냐?

여     연락처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남     아니 그건.. 말했잖아. 나 전화기 잃어버려서 연락처가 다 없어졌다니 까?

여     아이구..그러셨어? 내가 연락 안했으면 영영 못만날 뻔 했네.

남     암튼 너 전화 잘했어. 니가 내 결혼식 안오면 되냐?

여     .......어? 너 결혼해?

남     해야지. 넌 안하냐?

여     해야지.. 그런데 너 애인 있어?

남     응. 내년 봄쯤에 식 올릴라 그래.

여     아... 그렇구나. 너까지 가는구나....

남     너는 언제 해?

여     당장....

남     응?

여     이라도 하고 싶다. 남자 없냐 누구?

        나는 진짜 큰 거 안 바래. 키도 나보다만 크면 되고

        전세금도 나는 반반 부담할거야. 그냥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는

        정상적인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남자면 돼. 누구 없냐? 

(M)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 버블 시스터즈


(E)슬리퍼 찍찍 끌고 가는


남     그래도 니가 우리 중학교 땐 잘나갔는데? 왜 이렇게 됐냐?

여     내가 너무 눈이 높았지. 현실적인 눈높이를 갖고 나니까

        나이가 이렇게 먹고 말았다...

남     맞아. 너 스물 일곱땐가 여덟때 변호사 남친 있다고 엄청 자랑하고

        다녔잖아.

여     그랬지.. 그눔이 바람만 안폈어도...

        (한숨)사실... 엄밀히 따지면 바람도 아닌데.. 아니 후배랑 영화보고

        밥먹고 술 좀 마실 수 있지. 그게 뭐 어떻다고... 용서를 못해주고...

        (회한) 내가 나빴어.

남     그때 그 여자랑 뽀뽀하다 너한테 걸렸다 그러지 않았냐?

여     아.. 그랬나? 그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난리난리 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 응? 술김에.. 그럴 수 있지.

        나도 술김에 노상방뇨 한 적도 있고 그런데... 그런 맥락에서... 

남     야.. 그거랑 그게 어떻게 같은 맥락이냐?

여     그래두.... 그 사람.. 손이 발이 되게 빌었는데

        한번 봐줄걸.... 그랬으면 내가 오늘날....

남     너 진짜 많이 궁하구나.

여     그때 그렇게 잘난척 하고 튕겼다가 이 모냥 이꼴 됐잖니.

        너같은 애도 여자 만나 결혼한다는데.. 난 이게 뭐냐.

남     나같은 애가 뭐.

여     됐어. 너 중학교 때 나 좋다고.. 초컬릿도 주고 그랬잖아.

남     야..그때야 감성이 흘러 넘칠 때잖냐. 난 우리반 여자애들 절반은

        좋아했다. 

여     뭐? 너 진짜야? 너 그렇게 헤픈애였어?

남     뭐가 헤퍼. 감성이 풍부한거지.

여     순 바람둥이 날라리. 아.. 난 올 가을을 누구랑 보내냐구.

        너 애인 없으면 너라도 좀 옆에 둬볼까 했더니.

남     내 애인 없어.

여     있다며.

남     아니.. 그러니까 있는데. 지금은 없다구. 유럽 갔거든.

여     유럽?

남     출장. 걔가 해외영업일을 하는데. 꽤 유능해서. 회사 대표로

        협상하러 갔대나봐. 한 2주 걸린대.

(M)    사랑과 전쟁 / 다비치


(E) 회사 내 소음

여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속도 늙었는지 예전 같지 않아, 숙취해소가 안돼 힘들어하고

        있는데.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나다.

여     어.. 잘 들어갔어?

남     속 괜찮냐? 어제 엄청 먹더니?

여     죽겠다.

남     그럴 줄 알았지. 나와라.

여     어? 

남     네모빌딩 지하에 북어탕 집 알지?

여     어. 거기 점심시간에 사람 많은데?

남     오빠가 지금 거기 줄 서 있잖냐. 한 십분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으니까 총알같이 나와. 속 풀어야지.

여     어우야.. 고마워.

(M)    내 귀에 캔디 / 백지영 (feat. 택연)


(E)먹는 

여     아 정말.. 속 확 풀려. 역시 북어국.. 니가 최고다.

남     북어국 사준 내가 최고겠지.

여     그런데 웬일이냐? 니가 여기까지 와 주고?

남     내가 꿈을 다 꿨다. 니가 하도 어제 외롭다..외롭다.. 난리를쳐서.

여     (민망) 내가 뭐..

남     니 말대로 가을이고.. 우리 우정이 25년인데.. 이 정도 못해주겠냐?

여     그래.. 고마워 죽겠다.

남     내가 좀 알아봤거든? 너랑 소개팅할만한 사람?

여     (반갑) 있어?

남     야.. 욕 바가지로 먹었어. 여자 나이 너무 많다고.

여     많긴 뭐가 많아.

남     내가 친구로서 해줄 건 없고. 내가 좀 놀아줄게.

        나도 심심했으니까.

여     야.. 됐거든? 내가 아무리 궁해도 여친 있는 남자랑 놀아나진 않아.

남     누가 놀아나재? 놀자고 같이.

여     그게 그거지.

(M)    편한 사람이 생겼어 / 일락


(E) 영화관 소음

남     (속삭) 거봐. 여자 혼자 영화보러 오는 거 얼마나 궁상맞아 보이는데

        나랑 같이 노니까 좋잖아.

여     시끄러. 영화나 봐.

남     나 팝콘 좀 줘.

여     아 그러니까 두 개 사자니까.

(E) 팝콘 와작와작 먹는

남     콜라도 줘.

여     두 개 사자니까.

(E) 콜라 빨대로 빨아먹는


여     그 녀석이 옆에서 팝콘을 와작거리고 콜라를 마시는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하나가 옆에 있을 뿐인데. 허전함이 이렇게 금방 가시다니.

        역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건 사람 뿐인가 보다.

(M)    왠지 느낌이 좋아 / 여행스케치


(E) 걷는 소리

남     나 보고 싶은 거 다음주에 개봉하는데. 그것도 같이 볼래?

여     뭐 그러든가.

(E) 빠앙 하며 지나가는 자동차

남     (급히) 은서야.

(E)  비켜서고

남     암튼 저런 매너 없는 자식.. 좁은 길에서...

        (소리지르는) 얌마! 조심해서 운전 안해?


여     그 녀석이 나를 차도 안쪽으로 밀어넣고

        차 뒤꽁무니를 향해 소리소리를 지르는데

        왠지 보호받는 기분에.. 안심이 됐다.

        그리고 살짝 설레기도 했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던 것에 대한 후유증일거라고

        애써 나 자신을 달래야 했다.


남     주말에 우리 어디 놀러갈까?

여     응? 어디?

남     그냥 가까운데... 산정호수 드라이브 가는 거 어때?

(M)    연애 / 김현철


(E) 낙엽 밟고 걷는. 새소리 등등..


여     서울이랑 이렇게 가까운데... 데이트 안하면 오기 힘들어?!

        왜 그럴까? 혼자서도 올 수 있는데.

남     게을러서 그렇지.

여     여기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더라...

        맞다. 그 변호사 남친.

남     미련이 아주... 그 남자는 지금 뭐한대냐?

여     뭐하긴 뭐해. 나랑 헤어지고 6개월 뒤에 그 여자랑 결혼했잖아.

남     그 여자?

여     그 여자. 나 몰래 만났던 그 후배.

남     그럼 바람 핀 거 맞네.

여     맞지 그럼. 나쁜 자식...

남     언젠 용서해줄 걸 그랬다며.

여     그거야... 그냥 한 소리고. 너 바람 불치병인 거 알지?

        그 놈은 아직도 어디 가서 또 그러고 있을 거야.

        나한테 빌면서 그랬었거든. 나 아니면 자기는 절대 결혼할 일도

        없고. 그 여자는 자기한테 후배 이상 아무런 감정도 줄 수 없다고.

남     남자들 급하면 뭔 소릴 못해.

여     그런거지? 내가 그 사람이랑 헤어지고 한 2년을 아무도 못만나고.

        그러다가 혼기 놓쳐서 확 늦어진 거 아냐.

남     그러니까 그때 내가 결혼하잘 때 하지 그랬어.

여     니가?

남     내가 그랬잖아. 너 그 남자랑 헤어지고 울고불고 난리칠 때.

        그러지 말고 나랑 결혼하자고.

여     그랬나?

남     그랬더니 니가 그러더라? 나랑 결혼하느니 혼자 산다고.

여     내가..그랬나?

남     솔직히 그때 내가 너 좋아했는데. 그 말 듣고 마음 완전히 접었다.


여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녀석과는 역사가 워낙 오래되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그냥... 여지라도 남겨둘걸....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이 녀석의 옆모습이 꽤 괜찮아 보인다.

(M)    넌 친구? 난 연인! / 김건모

------------------1부 끝 -----------------------


(E) 물에 돌 던지는


여     오.. 실력 죽지 않았는데?

남     당연하지. 물수제비 하나는 또.. 날 따라올 사람 없었잖냐.

여     으.. 좀 써늘하다.

남     그러게. 가을은 가을이네. 잠깐만.

여     너 뭐하냐?

남     이거 걸쳐.

여     어우..됐어. 

남     걸쳐. 너 감기 잘 걸리잖아.

여     이게.. 몇백년만이야. 남자가 걸쳐주는 옷 입어보는 게.

남     으이구.. 왜 그러고 사냐.

여     그러게 말이다. 인생이 고독하다.

남     참나... 

여     너 그 때 우리 했던 얘기 생각나냐? 서른 넘어서 결혼 못하고 있으면

        서로 구제해 주기로 했던 거?

남     기억 나지.

여     믿고 있던 보증수표가 부도수표가 돼 버렸네.

남     나 좀 봐달라고 그렇게 기다릴 땐 쳐다도 안 보더니.

여     그거야...

남     임마.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다 때가 있어.

        그게 엇갈리면.. 인연이 아닌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속 편해.

여     그래. 누가 뭐래냐?


(E)걷는 소리

여     허전할 때 내 옆에 있어줘서일까.

        추울 때 기꺼이 외투를 벗어줘서일까.

        이 녀석 때문에 지금은 따뜻한데

        금방 가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고 슬퍼지는 기분이다.

(M)    향기로운 추억 / 박혜경


(E) 차 가는 소리


여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피곤해선지, 어색해선지, 우리는 둘 다 별로 말이 없었다.


(E)부스럭.. 하고

여     껌 줄까?

남     어. 괜찮아.

여     ....

남     ....

여     안 피곤해? 아까두 니가 운전했는데. 이번엔 내가 운전할 걸 그랬나?

남     괜찮아.

여     뭐 이렇게 밀려?

남     토요일 이 시간에 이쪽 원래 이래.

여     .... 자주 오나봐 여기?

남     가끔.

여     ...

남     ...

여     그런데 있지. 너 그때 나 좋아했었어?

남     ....응. 여러번 얘기 했잖아. 술만 마시면 말했는데?

여     그거야... 장난 치는 줄 알았지.

남     좋아했었어. 그때는.

여     좀 제대로 말을 하지.

남     제대로 말했었어. 니가 제대로 안 들어줘서 그렇지.

여     그랬나..

남     뭐 옛날 얘긴데.

여     ...그렇지. 

(E)전화벨 


남     여보세요. 어. 나야. 잘 지냈어? 거긴 몇신데? 여기 지금 저녁이지.

        

여     녀석의 여자친구였다. 그녀의 하이톤 목소리가 전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남     지금? (머뭇) 어 밖에 나와 있어. 친구랑 술 한잔 하려고.

        있어. 고등학교 동창.

(M)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 나윤권


(E) 문 탁 닫고 내리는

여     데려다줘서 고맙다.

남     너 왜 그래?

여     내가 뭘.

남     아까부터 한마디도 안했잖아.

여     어... 그냥.. 내가 좀 미안한 거 같아서.

남     뭐가?

여     괜히 너 거짓말 시키고. 너 절절 매는 거 보니까

        내가 너한테 큰 죄 저지르게 한 사람 같아져서

        마음이 그렇더라.

남     아... 그거.... 그게 무슨 큰 죄야.

        그냥 내 여자친구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그리구 괜히

        여자랑 있다 그러면 이거저거 꼬치꼬치 캐묻구...

여     그래. 누가 뭐래? 잘했어.

남     기분 나빴구나?

여     (하하... 시니컬하게 웃고) 나쁘기는. 나빴다기 보다는....

        그래. 나빴어.

남     미안하다. 옆에 사람 두고 그렇게 얘기해서.

여     너랑 나랑... 지금 이거 바람 피는건가?

남     ....어?

여     넌 나랑 이렇게 만난 거, 절대 얘기 못할 거 아냐.

        나도 그럴거고. 우리 두 사람만 알게.. 몰래.. 만나는 거잖아.

        이게 바람 맞지?

(M)    그건 사랑이었지 / 루시드폴


여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괜히 학창 시절에 그녀석과 주고 받던 편지도 꺼내보고

        일기장에 적혀 있던 그녀석과의 일화들도 다시 들춰보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 했던 건 무엇이었나.

        그런 건 사랑으로 치지 못하는 건가.

        뭐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뒤척거리기만 했다.

(E)새소리 

여     그러다 날이 밝았고. 겨우 눈을 붙이려는데.

(E) 메시지 소리


남     일요일인데.. 뭐할거냐. 내가 보자고 했던 그영화..

        오늘 볼래? 조조영화로 표 끊어놨는데.


여     메시지를 받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밀려오던 피로도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서둘러 머리를 감고. 팩을 하는 내가

        나 자신도 낯설었다.

(M)    사랑한다는 말 / J & 알렉스


여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이

        조조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공원 옆의 까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E) 공원 소음


여     그래서? 창식이 또 결혼한대?

남     어. 아마 곧 청첩장 올거야.

여     미친 거 아니니? 두 번 결혼하면서 또 청첩장 보내?

남     보내지. 결혼식 할 건데 청첩장 안 보내냐?

여     양심이 있으면 부조는 안받아야 되는 거 아니니?

        내가 지 첫 번째 결혼할 때 낸 돈이 얼만데.

        거기다가.. 지 아들 돌잔치 한다고 금반지 받아갔지..

        지는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남     너야.. 니가 뭐라도 해줄 기회를 안 줬잖아.

여     ... 그거야 그렇지만. 참... 누군 한번도 가기 힘든데

        창식이는 능력 좋다. 두 번씩이나.

남     좋아 죽더라.

여     걘 처음에도 좋아 죽었어. 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겠대나 뭐래나..

        걔 첫 번째 결혼식 때 지 부인한테 자작시 읊어주면서

        울고불고 난리친 거 기억나지?

남     무릎도 꿇었었지.

여     맞아. 그런 난리굿을 피더니. 결국 3년만에 이혼할거면서.

남     그렇게 될 줄 알고 그랬겠냐?

여     ......하긴. 끝을 알고 하는 사랑이 어딨겠어.

(M)     사랑한다는 말 / 김연우


여     그 후로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퇴근길엔 동네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편의점 앞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함께 하는 시간이 편하고 즐거울수록.

        난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는 만남이었으니까.

        

(E) 맥주 따르고

남     오늘은 맥주가 더 시원한 것 같다.

여     내일인가?

남     ...어?

여     니 여자친구 오는 날.

남     어.

여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네? 우리 이렇게 보는 거?

남     뭘.. 마지막이야.

여     니 결혼식 때 나 안갈거거든.

남     ....

여     너도 내 결혼식 때 오지 마.

남     ....

여     넌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난 지난 2주 참 좋았거든?

        .... 그냥 친구로 만난 거 아니구. 남자친구로 너 만났어.

        연애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람피는 것처럼 죄짓는 기분으로.

남     ....

여     잘가라. 잘 가서.. 잘 살아라.

(M)    사랑이 뭐길래 / Miss. S


(E) 차도 소리. 또각또각 걸음 소리


여     퇴근길에 문득 하늘을 봤는데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왔을까?

        집에 오면서 그 녀석과 2주 내내 뻔질나게 다녔던 식당 앞을

        지나가는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녀석과 맥주를 마시던 편의점 앞 의자를 봤을 때도

        가슴이 아팠다.

        아무 연락 없는 거 알면서도 몇 번이나 휴대전화 꺼내

        열었다 닫았다 해 보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

        그 녀석에게 고맙다.. 생각했다.

(M)    Everytime We Say Goodbye /


여     그리고 며칠 후.

(E) 전화벨 소리

여     한밤 중 울린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액정을 보니, 그 녀석이었다.

        눈물이 날만큼 반가운 마음이었다.


여     여보세요? 웬일이야 이 시간에?

        ....누구세요? 아...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네? 그런 건 아니구요. 아니에요. 저기..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요. 봉덕이랑은 오래된 친구거든요.

        그냥 저희는 친구....에요. 네? 봉덕이가 뭐라 그랬는데요?

        ......................................

        아 정말요?

(M)    Love Hurts / Julienne Taylor


(E) 캔맥주 따는

여     어쩌다 걸린거야.

남     그냥 뭐.. 이거저거. 여자들 직감은 진짜 무섭더라.

여     당연히 무섭지. 나도 예전에 내 남친 바람 잡을 때 직감대로

        집앞에 가보니까, 둘이 뽀뽀하고 있더라.

남     ..... 그런데 오히려 속이 편해.

여     .....

남     완전 나쁜놈 되긴 했는데.

여     뭐.. 어디까지 말한건데.

남     사실대로 말하라 그래서 있는 그대로 다 말했지.

여     너 그거 진짜 잔인한거야.

남     알아. 어떻게든 거짓말 해주길 바랬다는 거.

여     어떻게.. 사실대로 말했는데?

남     니가 나 좋아하고. 나도 니가 좋아졌다고.

여     .....나 이런 시츄에이션.. 너무 싫은데.

        내가 제일 싫어하던 것들이... 지 짝 놔두고 바람난 것들이란 말야.

남     ..... 니가 내짝이면 어떡해. 우리가 돌아온거면.

여     그렇게 생각하면 맘은 편한데... 그래두.... 왠지 벌받을거 같애.

남     나두.. 그래서 좀 불안해.

여     불안하면 그만 둘까?

남     나... 끈 떨어진 연이야. 내 여친 성격 불같아서. 끝이라 그럼 끝인거거든.

여     그럼 그쪽으로 도루 가기도 좀 그렇겠구나?

남     어.

여     그럼 내가 좀 튕겨도 되겠네?

남     안되지 그거는. 나 힘들다.

여     하....사실은 좀 외로워서 약간 헷갈렸던 것도 있는데...

남     야아!

여     근데.. 니 여자친구 무섭긴 무섭더라. 나한테 욕하는 거 들었지.

        나 그런 욕 태어나서 첨 들었어.

남     원래 좀 과격해. 나 입술 찢어진 거 보이지.

여     맞은거야?

남     많이 맞았지.

여     맞아도 싸지. 2주 그거를 못참고 바람이 났으니...

남     야. 이게 누구 때문인데!

여     됐다.. 술이나 마시자.

(E) 술 마시고


여     바람이 분다.

        이제 제법 차가워진. 가을을 지나가는 바람이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을

        잠시 쉬게하는 바람이다.

(M) 주제음





        

        

        



 





2009-1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