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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08화 - 눈부신 날에
(M) 주제음 드라마/ 서브웨이
남 여름이 지났다.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볕과는 뭔가 다르다.
바람의 향기도 달라졌다.
하늘의 색깔도 달라졌다.
계절은 그렇게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며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건,
나이 들면서 더하는 느낌이다.
(E) 원두 커피 내리는 소리
남 커피를 내리고, 컵에 따라 마시면서
창문을 열어놓고 잠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그런데.
(E) 전화벨 소리
남 모르는 번호다.
기획부동산이나 사채 쓰라는 전화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받지 않는다. 하지만 벨은 끈질기게 울린다.
(E) 받는
남 여보세요.
여 김봉덕씨?
남 네. 무슨 일입니까.
여 저.. 두달 전에요.
남 네?
여 두달 전에 제주도에서....
남 누구세요?
여 (결심한 듯) 두달 전에 제주도에서 만났던 사람이에요.
그때... 저랑 같이 하룻밤... 기억안나세요?
(M)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코나(Kona)
(E) 파도 소리
남 두달 전 제주도라는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두달 전... 기억 난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던 그 무렵.
나는 일찌감치 휴가를 받았고, 제주도로 향했다.
여름 휴가는 늘 해외로 떠났는데
이번 여름엔 왠지 제주도에 가보고 싶었다.
대학 졸업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E)걷는 소리
남 끝없이 펼쳐진 올레길을 따라
오랜만에 마음껏 걷던 중이었다.
서너 발자국 쯤 앞으로
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보였다.
긴 머리를 바짝 위로 동여맸는데
여자가 걸을 때마다
말꼬리처럼 늘어진 머리칼들이 찰랑거리며
리듬감 있게 왔다갔다 했다.
몇시간을 그렇게 걸었을까..
그녀가 잠깐 쉬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도 그 옆으로 앉았다.
여행이 좋은 건, 낯선 사람을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리라.
나도, 그 사람에겐 낯선 사람이니까.
남 안녕하세요.
남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뒷모습만 보며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깨끗하고 맑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M)
She's The One /Robbie Williams
(E) 시끄러운 까페 소음
남 하지만. 지금은 그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두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저 얼굴이 좀 하얀 편이었고
눈이 반달 모양이었다는 것 밖엔
생각나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어떤 여자가 산뜻하게 까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을 때까지
난 그여자가 누군지 몰랐던 것 같다.
여 왜 그렇게 보세요?
남 네?
여 저 기억 안나세요?
남 아뇨. 납니다.
여 처음 보는 사람 보는 것처럼 보고 있잖아요 지금.
남 아니.. 그냥.. 오랜만이라서.
그리구. 머리 잘랐어요? 그땐 길었던 것 같은데.
여 네. 잘랐어요.
남 아.. 그랬구나. 그러니까 딴 사람 같네요.
여 놀라셨죠.
남 아뇨. (했다가) 네. 좀..
여 전화 번호 줬었잖아요. 전화하라면서요. 서울 가면.
남 그랬죠. 그런데 두달 동안이나 연락이 없어서요.
여 두달 동안 고민 좀 하느라구요.
남 아....
여 여기 셀프에요?
남 어.. 그러네요. 어쩐지 주문을 받으러 안 오더라.
여 뭐 드실래요? 제가 가져올께요.
남 아니에요 제가..
여 아니에요. 많이 놀라셨을텐데.. 제가 가져올께요.
뭐 드실래요?
남 저는.. 커피. 아메리카노.
여 잠깐 계세요.
남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모르는 여자를 처음 소개 받은 기분이라고.
(M)
With Coffee... / 브라운 아이즈
(E)쟁반 놓는다
여 여기 있어요. 아메리카노.
남 여자는 뭘 마시나.. 힐끗 보니까 오렌지 쥬스다.
순간... 약간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여 왜요?
남 아니.. 왜 커피 안 드시고. 여기 커피 맛있는데...
여 저 원래 커피 안 마셔요. 카페인 싫어해서.
남 아... (다행)
여 방금 무슨 상상 하셨어요?
남 네?
여 두달 전에 그냥 하룻밤 지냈던 여자가
갑자기 만나자고 하고..
그 여자가 커피를 안 마시고..
이거 뭔가 불길하다.. 그러셨나요 혹시?
남 아뇨! 아니에요.
여 임신 같은 거 안했어요. 걱정 마세요.
남 저 그런 놈 아니에요. 그런 거 생각도 안했어요.
남 ....라고 짐짓 기분 나쁜 듯 얘기했지만
사실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것도 사실이고
혹시나... 짧은 순간 몹시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다.
여 그런데 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하세요?
남 혹시 점쟁인가?
사람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보는 것 같아
순간 좀 무섭다.
여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냥 가을도 왔고.. 지난 여름 휴가 때 찍은 사진들
정리하다 보니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때... 좋았잖아요.
(M)
Last Summer / Abba
남 여자 말이 맞다. 그때 우린 분명 좋았다.
(E) 파도 소리
남 어디 쪽으로 가세요?
여 성산포요.
남 어? 나도 그런데.
남 그때 난 원래 중문단지에 숙소까지 예약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급하게 노선을 바꿨다.
여 정말요? 잘됐네요.
남 그럼.. 저녁 같이 먹어요.
여 저녁요?
남 제가 성산포 근처에 갈치조림 기가 막히게 하는 데 알거든요.
여 갈치조림요? 아.. 갑자기 배고파진다.
남 저쪽 가서 노을 한번 보고. 출발하죠.
(E) 파도 소리 길게 나다가
(E) 다시 까페 소음으로
여 그냥 그날 밤에 성산포 가서.. 밥 먹다가.. 어쩌다 보니까
술도 마시고.. 또 어쩌다 보니까.... 암튼요.
그것도 인연이고. 서울 올라가면 얼굴 한번 보자고 했던 것도
생각나서...
남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남 그런 거라면 뭐.... (하하) 잘하셨어요. 제가 먼저 연락 드렸어야
되는건데...
여 제 번호 모르시잖아요. 저만 번호 받았는데?
남 아.. 그랬나요? 뭐 암튼... 어떻게.. 차 마시고 나가셔서
저녁이라도.. 아니면 영화라도..?
(M)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 (With 박새별) /이한철
남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그녀가 보고 싶다는 영화도 봤다.
신파극이었는데. 그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빌려주기도 했다.
(E) 걷는 소리
남 집이 효자동 쪽이라고 하셨나요?
여 아뇨. 효창동이요.
남 아.... 제가 데려다드려야 하는건데...
집이 일산이라..
여 괜찮아요. 오늘 재밌었어요.
남 저두요. 그럼 나중에 또 연락 주세요.
여 ....네. 그럼...
(E) 또각또각 멀어지는
남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걸어가다가.
난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그날 밤이 생각났다. 그날 밤....
(E)다시 파도 소리
남 그녀는 좀 취해 있었고. 우리는 밤바다를 걸었다.
여 아.. 커피 마시고 싶다.
남 아까두 마셨잖아요. 밥 먹고 나서..
여 저는 술 먹고 나면 꼭 커피 한잔씩 하거든요.
나만의 숙취해결법이랄까...
남 너무 많이 마시면 위 버려요.
여 그래두.. 너무 좋은걸요 뭐. 하루에 석잔 이상은 기본이에요.
......
(E)빠앙 - 길게 경적 울리고 지나가는 차
남 그랬다. 그녀는 커피 마니아였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커피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건... 뭔가... 있다.
(M)
On The Beach / Chris Rea
남 며칠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일요일 오후 그녀가 산다는 동네로
직접 찾아가 전화를 걸었다.
(E) 거리 소음, 탁탁 걸어나오는
여 웬일이세요? 여기까지?
남 지나가다가요. 여기 근처... 용산역에 뭐 볼 일 있어서...
여 아....
남 순간 나는 그녀의 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특별히 뭔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 뭘 보세요?
남 아뇨.
여 근데 어쩌죠? 제가 약속이 있어서 막 나가려던 참이었거든요.
차라도 한잔 해야 하는건데...
남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왔잖아요.
여 저 지하철 타러 갈건데.. 거기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실래요?
남 그러죠 뭐.
(E) 걷는 소리 나다가
남 저기..
여 네?
남 아니에요..
여 ..?
남 그러니까요.
여 네.
남 .... 저기 혹시 별 일 있는 건.. 진짜 아니죠?
여 무슨 별 일요?
남 .... 혹시 그거...
여 ......
남 .... 진짜 아니죠?
여 맞아요.
남 예??
여 임신했냐고 물어보는 거잖아요. 맞다구요.
남 예???
(M)
True Colours / Eva Cassidy
남 아니 잠깐만요. 지금 어딜 가겠다 그러세요 자꾸.
여 저 약속 있어서 가는 길이라고 했잖아요.
남 지금 약속이 문젭니까?
여 그럼 뭐가 문젭니까?
남 어떻게 하실 작정인데요?
여 그거야 내 맘이죠.
남 윤은서씨.
여 거 보세요. 그쪽도 나한테 묻잖아요. 어떻게 할 거냐고.
우리 어떻게 할까요? 이게 아니잖아요.
남 말꼬리 잡기 하자는 거에요?
여 지난주에 찾아갔던 건. 맞아요. 이 얘기 해볼까 하고 갔는데
그쪽이 날 너무 무서워하더라구요. 혹시라도 그런 얘기 나올까
벌벌 떠는 게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한테
정말 부담 주는 거 싫었어요. 나도. 그리고... 우리 아기도...
그런 취급 받는 거 싫었다구요.
남 지금 그말은 무슨 뜻이에요?
여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했잖아요? 나는 아이 낳아서 키우려구요.
남 예?
여 다른 걸 기대했나봐요? 난 어차피 혼자 살 거였어요.
결혼 같은 거 할 생각도 없었구요. 그런데.. 선물 받았다 생각하려구요.
아이 낳아서 키우면서 같이 살 거에요.
남 아니 그래두요.
여 맹세해요. 절대 피해주거나, 찾아가거나, 부담스럽게 굴지 않아요.
뭐... 각서라도 써줘요?
남 이건 너무하잖아요. 내 인생은 생각 안해요?
여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생각을 해줘요? 없는 사람으로 치고
살면 된다고 하는데?
남 은서씨 잠깐만요. 잠깐만 더 얘기하고 가요.
여 저 정말 늦었어요. 제가 통역 일 한다고 말씀 드렸죠?
중요한 고객하고 약속이에요. 가볼께요.
(E) 또각또각 가는
남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부담갖지 말라고 해도. 어디선가 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평생을 갈 부담이다.
(M)
C'est La Vie /Emerson, Lake & Palmer
남 제주도에선 어디서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성산포에서 우리가 함께 맞이한 바다는
그 어디에 있는 바다보다 더 아름다웠고.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E) 파도 소리
남 서울에선 혼자 살아요?
여 네. 앞으로도 쭉.. 혼자 살거에요.
남 왜요?
여 결혼 안할거니까.
남 그건 또 왜요?
여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요. 물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우리 엄마 아빠 보면서... 왜 결혼을 하고... 왜 같이 살까...
이런 의문 많이 가졌거든요.
남 ...
여 이혼하고나서야, 두 분 모두 행복해 보였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나는, 저런 시행착오 겪지 말아야지..
결혼하지 말아야지...
남 그래도 외롭지 않을까요?
여 사는 게 외로운 거잖아요.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고.
근데요. 같이 있으면. 외롭기도 하면서, 상처까지 받거든요.
남 너무 편견이 심하다..
여 외로움은 즐길 수도 있지만. 상처는 즐길 수 없다...
이게 제 생각이에요. 고로 난 결혼 안한다. 끝.
(E) 파도 소리 사라지고
남 그렇게 말하는 그녀 모습은 참 강해 보여서,
순간 난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시점에서, 그런 그녀 모습은
무섭다. 그녀는 분명..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를 수도 있는 여자다.
(M)
Song Bird / Chris de Burgh
(E) 귀뚜라미 소리
남 공원.. 이런 데 자주 와요?
여 산책 삼아서.. 걷는 걸 워낙 좋아해요.
남 나도 그래요. 그래서 차도 안 사고..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걷고... 맞다. 우리 제주도에서도 걷다가 만난 거잖아요?
여 하실 말씀이 또 뭐에요?
남 ....네..
여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왔어요.
더 볼일은 없어요.
남 궁금한 게 있어서요.
여 뭔데요.
남 그날 나한테 얘기하려고 했댔죠. 아이 가진 거.
여 ...네.
남 그때 내가.. 그럴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았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만약에 내가.. 결혼이라도 하자고 하면 할 거였어요?
여 ...난 결혼 안해요.
남 그럼... 나한테 왜 온 거에요?
결혼하자고 온 것도 아니고.
여 좋아할 줄 알았죠. 나는 처음에 알고, 기뻤으니까.
남 ...
여 그냥 그런 남자 아니었고.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좋았던 남자니까.
실수였다는 생각 든 게 아니라. 잘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난 정말, 좋아할 줄 알았어요.
남 ..... 어떤 남자라도.. 길을 막고 물어봐요.. 누가.. 그런 얘기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할 수 있는지.
여 그래요. 그 마음, 이제는 너무나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좋아할 필요도 없고. 신경쓸 필요도 없어요.
난, 아이 가진 걸 실수라고 생각 안해요.
그때 그쪽 찾아간 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남 은서씨.. 통역 한다고 했죠.
여 ....? 네.
남 나 2남 1녀 중에 차남이에요.
1억 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구요. 부모님 다 지방에 계세요.
지금 다니는 직장.. 월급 넉넉하진 않아도 안정적이구요.
내년이면 차장으로 승진도 할 거에요.
여 ....
남 결혼해요.
여 네?
남 결혼합시다. 일단 배 불러오기 전에 결혼식 올리고.
애 낳고. 그러면서 서로 천천히 알아가면서.. 그러죠 뭐.
여 .... 고마워요.
남 ....
여 큰 결심 했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미안해요.
난 결혼 안해요. 절.대.로.
(M)
Love Affair /임창정
(E) 벨 누르는
여 누구세요?
남 나에요.
(E) 대문 열고
여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남 지난주 목요일에요. 은서씨 데려다 줄 때.. 잘 봤죠.
3층으로 들어가는 거.
여 웬일인데요?
남 들어오란 소리도 안해요? 사과랑 귤이랑 사왔는데.
여 들어와요.
(E) 들어가는
남 집이 아담하고 좋네요.
여 그래요? 커피 줄까요?
남 네.
여 커피 향기 맡을 때마다 미치겠어요. 먹고 싶어서.
남 한두 잔 정도는 괜찮다던데요?
여 나는 안돼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못참고 몇잔씩 먹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아예 참는 거에요.
(E) 좀 멀리서 물 붓고 가스 켜고 부시럭대는 소리
남 그리고 다음 순간. 내눈에 띈 건 테이블 위에 놓인
산모수첩이었다. 그 옆엔 아직 상자도 뜯지 않은
아기 속옷이 놓여 있었다.
(E) 쟁반 놓고
여 드세요.
남 귤 먹을래요?
여 고마워요.
남 배가 살짝 나온 것 같기도 해요.
여 그래요? 아직은 뭐 그럴 땐 아닌데.. 내가 요새 워낙 많이 먹어요.
난 입덧은 안하는데.. 왜 이렇게 식욕이 좋은지..
남 (무심결) 우리 엄마도 나 가지셨을 때 그랬다던데.
여 ..그래요?
남 아들인지 딸인지, 그런 거 모르죠?
여 모르죠. 아직은.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아요. 아기 딱 낳을 때..
그때 알 거에요.
남 요샌.. 애 낳을 때 아빠도 같이 들어간다던데?
여 같이 가면 뭐해요. 어차피 내가 낳을 건데 뭐.
남 그래두요. 옆에 사람 있으면 아무래도 힘이 되죠.
여 사람이 옆에 있으면 힘이 된다.... (웃고) 난 잘 모르겠네요. 그래본 적 없어서.
남 힘이 나요.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은서씨가 나 찾아온 이유도
아마 그거일 걸요? 힘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싶어서.
(M)
내가 지켜줄게 / 녹색지대
남 그녀는 청소를 하겠다고 했고. 난 차를 다 마신 후 집에서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휴대전화를 놓고 온 걸 깨달았고.
다시 집으로 갔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청소를 하던 그녀가 배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져 있었으니까.
난 그녀를 들쳐업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제발 무사해라..
그녀에게도. 아무 일 일어나지 말아라..
의사는 유산끼가 있으니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고.
난 잠들어 있는 그녀 옆을 지켰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집에 두고갔던 내 휴대전화를 꺼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모두 그녀였다.
쓰러지기 직전. 아픔을 느낀 그녀는 내게 여러번 전화를 했었다.
(M)
아껴둔 사랑을 위해 / 이주원
(E)새소리, 걷는 소리
남 에이 좀.. 천천히 걸어요.
여 7개월 넘었으니까 괜찮다 그러잖아요 의사도.
남 사람이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
여 아 목말라.
남 (바로) 목말라요? 여기 물.
여 물도 싸왔어요?
남 당연하죠. 물이랑 김밥. 어제 참치김밥 먹고 싶다 그러기에
참치 넣고 쌌죠. 올리브유 참치. 이게 천원 더 비싼 거에요.
여 조리원 예약했어요.
남 또..또 혼자갔죠. 나랑 같이 가자니까.
여 귀찮아요.
남 귀찮아서 숨은 어떻게 쉬는지..
여 대신.. 병실은 가족 분만실로 할까 해요. 들어오고 싶다면서요.
남 당연하죠. 그리구요..(사이) 부모님한테도 말씀 드렸어요.
여 네에??? 미쳤어요??
남 아니.. 우리형 장가도 못가서.. 첫손준데.. 얼굴은 보셔야 될 거
아니에요.
여 그래두요!
남 아 결혼 당장 못한다고 말씀 드렸어요. 압박 주지 말라고두요.
여 당장 못하는 게 아니라, 난 안한다고..
남 (OL) 그거는 차츰 한번 생각해 보자고 했잖아요.
그쪽도 나 알아가면서.. 나도 그쪽 알아가면서...
애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지고.. 할 마음 생기면.. 하자고.
여 ....
남 그냥 당분간은, 우리 아이.. 엄마 아빠로.. 사이 좋게 지내요..
여 ....
남 눈부신 날에 우리는 만났고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계절이 바뀌듯이, 아주 천천히.
(M) 주제음
2009-09-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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