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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3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03 화 - 습관


(M) 주제음   습관/ 롤러코스터


** 오늘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익명을 요구하신 한 청취자의 사연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입니다.


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런 거다.

        그런 질문에 나 역시 문득 궁금해진다.

        내 첫사랑은, 끝난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진행중일까.

        그저, 지독한 습관일 뿐일까?

(M)    첫사랑 / 이소라


여     6년 전. 여름방학 끝무렵의 어느날.

        

(E) 운동장 천천히 뛰는 소리


여     더위에 지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때 난 졸업반이었지만 여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봤고

        그 흔한 짝사랑조차 못해본 상태였다.

        졸업 이후에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 고민스럽기도 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한 시기였다.

        해질 무렵이기는 했지만 더위에 한시간을 뛰고 났더니

        비오듯 땀이 났고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은 못걷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에 가려고 운동장을 막 나서는데.


(E) 오는 소리


남     어? 

여     예전에 학교 행사에 함께 스텝으로 참여한 일이 있어서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는 남학생이었다.


남     웬일이야? 학교 운동장에?

여     어... 심심해서 운동이나 좀... 하려고...

남     그래? 나도 좀 뛰어볼까 싶어서 나오던 길인데....

        같이 뛸래?


여     실컷 뛰었거든? 죽을 것 같거든? .... 이라고

        말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얀 운동복 차림의 그는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왜... 나랑 같이 뛰는 거.. 좀 그래?

여     아니? 나도 혼자 뛰면 심심할까봐 걱정했는데. 잘됐다.

        같이 뛰지 뭐. 어후...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M)    있잖아 / IU


(E) 두 사람 뛰는 소리


남     신기하다. 이렇게 사람 없는 학교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여     응? 그러네.

남     너 그런데 좀 힘들어 보인다. 뛴 지 이제 10분밖에 안됐는데.

여     힘들긴. 괜찮아.

남     땀 많이 나는 거 같은데...

여     어... 내가 원래 땀이 좀 많은 편이야. 아무렇지 않은데. 뭐.. 하하..

여     사람이...이러다 심장마비로 한순간에 가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심장이 정말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심장이, 내가 뛰니까 빨리 뛰는건지....

        아니면 그를 보니까 빨리 뛰는 건지... 알수가 없었다.


남     방학 때 어디 여행 갔다 왔어?

여     아니.. 그냥 집에 있었어. 뭐 다른 애들은 남자친구랑 같이 가까운 데

        갔다오고 그러기는 하던데.


여     슬쩍, 나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정보를 흘리고 싶었다.


남     넌 남자친구 없어?

여     그게... 인연이 닿질 않네.

남     나도 방학 내내 심심했어.


여     앗싸~ 그도 여자친구가 없다는 얘기?


남     ....여자친구가 어학연수 갔거든.

(M)    Stand by Me / SS501


여     (앓는 소리) 아야..... 아이구.... 몸을 못뒤집겠네. 아아아....

        여자친구도 있는 놈이... 왜 그렇게 실실 웃고.... 아... 짜증나....


여     그날 밤. 난 내가 왜 그렇게 운동장을 미친 듯 뛰어야 했는지

        괴로워하면서 몸 한번 뒤집을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때.


(E) 문자 메시지


여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남     나 김봉덕인데. 오늘, 덕분에 운동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어.


여     뭐야? 내 번호 어떻게 안거야?

        아... 맞다. 그때 스텝연락처에.... 내 번호 있었지?

        그래도 그렇지...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왜 괜히 문자질이야?

(E)전화기 확 덮는

여     ...........하긴... 별 내용도 아니잖아. 같이 운동했고.... 운동해서

        즐거웠다.... 그런 말 정도 할 수 있지. 거기에 답을 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E)핸드폰 열고 열심히 답장하는


여     (가식) 응. 나도 즐거웠어. 운동했더니 몸이 정말 가뿐하고 좋은 거         있지.

(M)    Mr. / Kara


여     그 후, 가을 학기가 개강을 하고. 우리는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했고. 또 그럴 때면 자판기 커피 한잔 정도는 함께 마시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나 문자가 먼저 오는 일도 잦아졌다.


(E) 커피잔 만지작 거리는


여     뭐야?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데 여자친구 있다며.

        진짜 우정? 뭐야. 남녀 사이에 그딴 게 어딨어. 웃기고 있어 우정은

        무슨! 바람둥인가? 아..... 미치겠네......


여     난, 커피잔을 앞에 두고 혼자 미친 여자처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다가, 혼자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턴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여     응... 그건 그렇구.... 왜 있잖아. 김봉덕.... 응.... 그때 우리 같이

        일했던.... 니네 과지? 걔 어때? 어? 아니.... 그냥 저번에 커피

        한잔 같이 마셨는데. 애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 애 아냐? 말수가 많지 않아? (기분 좋고) 그래? 나랑은

        얘기 잘 하던데? 어? 아니아니.... 애가 진중하고.... 성실하고....

        바르다구? 그래? 뭐 따분한 스타일이네.

        그런데... 여자친구 있다며? 뭐 미국에 어학연수 갔다던데....

        (사이 있다가) 죽고 못사는 사이야? 잉꼬 커플.....

        (기분 확 나빠져서) 야. 나 지금 물 끓거든? 끊는다.

(E) 전화 뚝

여     치... 웃겨. 지가 어떻게 알아? 죽고못사는 사인지?

        한쪽이 어학연수 가고 나면 헤어지는 거 거의 백프로 아냐?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약혼한 것도 아니고. 웃겨.....


여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난 자신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를, 이길 자신이.

(M)    루비 / 핑클


(E)귀뚜라미 소리

여     얼마 후, 주말과 공휴일이 겹쳐서 5일간의 황금휴가가

        만들어졌다. 난 시골집으로 내려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E)전화벨 


여     그였다.


여     (흠흠 목소리 가다듬고) 여보세요?

남     어. 난데. 자던 거 아니야?

여     아니야. 그냥.... 책 보고 있었어.

남     그래? 왠지 니가 안 자고 있을 것 같아서. 어디야?

여     시골 내려왔어. 가을옷 좀 가져가려구.

남     그렇구나. 혹시 기숙사에 있으면 커피나 한잔 하자 그럴까 했는데.


여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기숙사에 붙어 있을걸...

        시골은 갑자기 왜 내려와서. 가을옷 몇벌 그냥 살걸.....


남     나 지금 학교 산책하고 있는데. 별이 보인다?

여     정말? 여기두.... 별 많은데.

남     하긴... 시골이니까... 여기보다 거기가 훨씬 좋겠다.

여     그럼.... 문만 열면 소나무숲 향기도 좋고.... 그 위로 별도 엄청

        많이 떠 있고. 그래서 난 마음 심란할 땐 집에 와.

남     마음 심란한 일 있어?

여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구.

남     아까 전에 난 내 여자친구랑 통화했거든. 그런데 걔가 향수병에 걸렸        는지 자꾸 우는거야. 통화하고 나니까 마음이 좀 그래.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여     ...그래? 지금이 딱 그럴 때잖아. 간 지 3개월 정도 됐으니까.

        니가.. 전화도 자주 해주고. 메일도 보내주고. 기념일 같은 거

        절대 지나치지 말고 선물도 소포로 보내주고. 그렇게 잘 챙겨줘.

남     아... 소포. 내가 그 생각은 못했네?

여     남자들이 그렇지 뭐. 섬세하질 못하다니까?

남     고맙다. 


여     내가 왜 이런 조언을 해주고 있어야 하는건지.

        얘기하고 웃고 하면서도, 가슴이 시렸다. 눈물도 나려고 했다.

        나 스스로가 바보 같고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그가 좋았다.

(M)    좋아 좋아 / 서영은


---------------------1부 끝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여     그 후로도 그는 여자친구와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나를 찾았다.

        초저녁에 시작된 전화 통화는 밤늦도록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렇게 습관이 되다 보니

        하루의 일과를 서로에게 보고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여     그래서? 

남     교수님이 도와달라 그러시는 데 어떡해. 하루 종일

        이삿짐 날랐더니 어깨가 다 뻐근해.

여     너무 못됐다. 아니 왜.. 자기네 집 이사하는 데

        학생들을 인부로 써? 그래서? 뭐 수고비라도 챙겨주셔?

남     수고비는 뭐. 자장면도 한 그릇 안 사주던데.

여     너무했다 진짜.

남     원래 그런 분이라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너무했지?

        끝나고 우리끼리 삼겹살 구워먹고 왔어.

여     어디서 먹었는데? 후문 쪽에 제주도 똥돼지집?

남     아니 그 옆에 새로 생긴 데 있어. 거기 나중에 같이 한번 가보자.

(E) 띠링띠링 소리

여     어? 무슨 소리야?

남     나 배터리 다됐다. 기다려봐. 배터리 갈고 다시 전화할게.

여     응.


여     다시 그의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하며 통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응. 나야. 그런데 너 이번 주말에 뭐할거야?

여     나? ....나 동물원 가려구.

남     동물원? 누구랑?

여     그냥 뭐... 혼자서?

(M)    Ah / 애프터스쿨


(E)  사람들 많은 곳 소음


여     주말에 일부러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남     왜. 동물원 구경하고 싶다며.

여     그래두. 괜히 나 때매 시간 뺏긴 거 아냐?

남     시간 뺏기긴. 나두 뭐.. 여자친구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주말엔.


여     어쩌다 보니 우리 둘은 비슷한 색깔의 옷까지 입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지없이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의

        모양새였다. 

        슬그머니 난 들뜨고, 행복했고, 못된 욕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저 남자의 사랑이 깨지고, 그가 내 차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 말이다.


남     너, 그런 습관 있는 거 알아?

여     응?

남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 말야. 엄지손가락으로 다른쪽 엄지 손톱을 만        지작 만지작, 그래.
여
     내가? 어.. 그러네.

남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더니. 맨날 그래. 너도 모르는 니 습관인가봐.

(M)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 지퍼


(E) 조용한 거리 또각또각 걷는


남     오늘 피곤했지.

여     아냐. 재밌었어.

남     그런데 넌, 왜 남자친구가 없어?

여     글쎄. 뭐.. 아직은 그런 데 관심이 없어서.

남     너 정도면 참 괜찮은 여자친구 감이잖아.

여     내가?

남     그럼. 솔직히 내 여자친구는 애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한 편이야.

        늘 내가 먼저 연락해야 되고. 챙겨줘야 되고. 그래도 뭐 고마운 줄도

        모른다니까? 

여     그래? 

남     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E)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


여     지금이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고백할까.

        거절 당하더라도, 한번 고백해 볼까?


남     응? 없어?

여     사실은.... 나 사실은....

(E) 전화벨


남     잠깐만. (전화 받고) 여보세요? 야. 혜진이 너.

        귀 가려워서 전화 한 거 아냐? 안 그래도 내가 방금 친구한테

        니 흉 보고 있었거든. 애교라곤 눈꼽만큼도 없고

        연락도 잘 안한다고. 그래.. 고마워 죽겠다. 잘 있었어?

        밥은 먹었구? 저번에 과일 깎다 손 다쳤다고 했잖아.

        약은 잘 바르고 있고?


여     하려던 말을 삼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에 탁 걸려버린 그 말들이

        여기저기를 아프게 찔러

        난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울어야 했다.

(M)    혼자만의 사랑 / 김태영


여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E) 캐롤송 울려퍼지는


여     난 곧 졸업을 하게 될 것이며, 새해가 되면

        그의 여자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자고 했다.

        어차피 서로 외로울 것이니

        함께 지내자고 했던 거다.

        좋아야 하는데 씁쓸했다.

        그에게 나는 멀리 있는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빈 시간을 채워주는 존재 정도밖에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 잊어버릴까봐 그러는 듯

        그는 말끝마다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남     혜진이한테 보낼 카드를 고르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만들었거든.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그걸 좋아할까 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구.

여     .... 그랬니.

남     그런데 혜진이가 하는 말이, 미국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조용하대. 다들 가족들이랑 지내구. 우리나라가 더 떠들썩

        하다던데? 

여     .....(가볍게 한숨) 그래.

남     너 오늘 기분이 왜 그래? 뭐 안좋은 일 있었어?

여     니가 내 기분에 관심이나 있는 애야?

남     ....어? 왜 그래?

여     넌 친구 없니?

남     ....뭐?

여     다른 남자친구 없냐구.

남     은서야.

여     왜 자꾸 날 만나?

남     너 왜 그래?

여     나 만나면 하는 얘기 똑같잖아. 맨날 혜진이가 어떻구..

        혜진이가 뭐라 그랬구... 혜진이.. 혜진이...

남     .....

여     내 말은 그러니까.... 남들이 보면 오해할 거 아냐.

        너랑 내가... 특별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도서관도 같이 다니구.... 이런 날도 같이 있구...

남     남들이 뭐라면 어때. 우리가 떳떳한데.

여     (기막힌) 떳떳해? 뭐가?

남     우리가 아무렇지 않으면 된 거 아냐?

여     아무렇지 않긴 누가!!

남     ......어?

여     니가 오해할까봐 얘기하는데. 내가 너한테 무슨 특별한 감정...

        그런 건 절대 아니구. 그런 게 아니라....

        (눈물 날 것 같지만 참으며) 나두 곧 졸업하잖아.

        그런데 뭐 이러냐? 제대로 된 연애 한번도 못해보고.

        너무하지 않니? 만나면 넌 맨날 니 여자친구 얘기하면서

        염장이나 지르구. 그리구 나 너 만나느라 다른 남자 만날 시간도

        없어진 거 같애. 다른 애들은... 니가 내 남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구. 

남     너... 그러니까 나 만나는 거 불편해?

여     .... 그래.

남     아... 그랬구나. 그럼 말을 하지... 나는 몰랐잖아.

여     .....

남     알았어. 앞으로는 연락 안할게. 이런 날 만나자고도 안하고.

        됐지? 

여     ......

남     그냥 편하게... 아니 그러니까 만나면 인사 정도만 하고...

        뭐 만날 일도 없겠네. 너 곧 졸업하면...


여     그런 게 아닌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쏘아붙이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난 고개만 끄덕였다.

(M)    아름다운 이별 / 옥주현


여     졸업하고 나면 모든 게 정리될 줄 알았다.

        일을 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고,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면

        저절로 잊혀질 줄 알았다.

        내가 그 사람과 독한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그가 내게 무언가 약속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깐 그렇게 설레이고 아프다가

        말 줄 알았다. 그런데 지하철을 탈 때나 영화를 볼 때나

        슬픈 발라드곡을 들을 때. 나는 습관처럼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연락 한번 없이 3년이 지날 때까지 그랬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그 사람과 비교가 됐으니까.

(M)    기억속에 먼 그대에게/ 박미경


여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모임에 나가게 됐다.

        자연스럽게 술을 몇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자리에 그 사람도 나오기로 돼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때부터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뭘 먹어도 먹는 줄 모르겠고

        웃어도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난 반짝반짝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시간 쯤 지났을 때

        그 사람이 들어왔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도, 그 사람 많은 복잡한

        곳에서도, 난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전에 만났던 사람인 듯 인사를 건넸다.


남     오랜만이다. 잘 있었어?

(M)    안부/ 별 & 나윤권


남     윤은서. 나랑 한잔 해야지.

여     어... 그러자.


(E) 술잔 부딪치는


남     너 별로 안 변했다.

여     너두.

남     니 소식은 간간이 들었어.

여     그랬어? 난 니 소식 통 못 들었어.

남     뭐... 나도 졸업하고.. 취직하고.. 바빴어.

여     그래? ...... (애써 아무렇지 않게) 결혼은?

남     해야지.

여     아.. 그래? 누구랑?

남     누구긴. 혜진이지.


여     순간, 주변에서 그놈의 순애보 정말 대단하다는

        부러움섞인 야유가 쏟아졌다.

        그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고.

        난 차마 그런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어 술을 더 마셨다.

(M)    Rain / 박혜경


(E) 비오는 소리


여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2차를 가자며 시끌벅적한 가운데를 조용히 빠져나와

        혼자 걷고 있는데. 그가 날 따라왔다.


(E) 뛰어오는 소리


남     한잔 더 하러 가자는데 안가?

여     내일 출근해야지.

남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여     여기서 안 멀어. 걸어가면 돼.

남     비도 오고.. 밤에 혼자 가면 그렇잖아.

여     괜찮아. 애들 따라가.

남     내가 뭐 애들 보러 나왔냐?

여     그럼?

남     너 보러 나왔지.

여     ...왜?

남     그냥 보고 싶어서. 어떻게 변했나도 궁금하고.

여     그럼... 봤으니까 됐잖아. 나 혼자 걷고 싶어서 그러니까..

        가 봐.

남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봐.

여     그러게. 우리가 또 볼 일이 뭐 있겠어.

남     섭섭하게.. 그럼 가.

여     응..


(E) 몇걸음 걷다가


여     참... 있잖아 나.. 내 습관 말이야.

남     어?

여     나도 모르는 내 습관 있다 그랬었잖아 니가.

남     어... 맞아.

여     그거 말고도 참 고치기 힘든 습관이 있었거든.

        그거 오늘부터 고치려고.

남     그게 뭔데?

여     있어... 그런 거.... 잘 가.


(E) 비오는 소리


여     내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뒤로 한 채

        난 천천히 걷는다.

        뭔가, 아련히 아프지만,

        한편 가벼워진 기분이다.

(M) 주제음

        






2009-08-1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