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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03 화 - 습관
(M) 주제음 습관/ 롤러코스터
** 오늘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익명을 요구하신 한 청취자의 사연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입니다.
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런 거다.
그런 질문에 나 역시 문득 궁금해진다.
내 첫사랑은, 끝난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진행중일까.
그저, 지독한 습관일 뿐일까?
(M) 첫사랑 / 이소라
여 6년 전. 여름방학 끝무렵의 어느날.
(E) 운동장 천천히 뛰는 소리
여 더위에 지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때 난 졸업반이었지만 여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봤고
그 흔한 짝사랑조차 못해본 상태였다.
졸업 이후에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 고민스럽기도 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한 시기였다.
해질 무렵이기는 했지만 더위에 한시간을 뛰고 났더니
비오듯 땀이 났고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은 못걷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에 가려고 운동장을 막 나서는데.
(E) 오는 소리
남 어?
여 예전에 학교 행사에 함께 스텝으로 참여한 일이 있어서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는 남학생이었다.
남 웬일이야? 학교 운동장에?
여 어... 심심해서 운동이나 좀... 하려고...
남 그래? 나도 좀 뛰어볼까 싶어서 나오던 길인데....
같이 뛸래?
여 실컷 뛰었거든? 죽을 것 같거든? .... 이라고
말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얀 운동복 차림의 그는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 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왜... 나랑 같이 뛰는 거.. 좀 그래?
여 아니? 나도 혼자 뛰면 심심할까봐 걱정했는데. 잘됐다.
같이 뛰지 뭐. 어후...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M) 있잖아 / IU
(E) 두 사람 뛰는 소리
남 신기하다. 이렇게 사람 없는 학교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여 응? 그러네.
남 너 그런데 좀 힘들어 보인다. 뛴 지 이제 10분밖에 안됐는데.
여 힘들긴. 괜찮아.
남 땀 많이 나는 거 같은데...
여 어... 내가 원래 땀이 좀 많은 편이야. 아무렇지 않은데. 뭐.. 하하..
여 사람이...이러다 심장마비로 한순간에 가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심장이 정말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심장이, 내가 뛰니까 빨리 뛰는건지....
아니면 그를 보니까 빨리 뛰는 건지... 알수가 없었다.
남 방학 때 어디 여행 갔다 왔어?
여 아니.. 그냥 집에 있었어. 뭐 다른 애들은 남자친구랑 같이 가까운 데
갔다오고 그러기는 하던데.
여 슬쩍, 나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정보를 흘리고 싶었다.
남 넌 남자친구 없어?
여 그게... 인연이 닿질 않네.
남 나도 방학 내내 심심했어.
여 앗싸~ 그도 여자친구가 없다는 얘기?
남 ....여자친구가 어학연수 갔거든.
(M) Stand by Me / SS501
여 (앓는 소리) 아야..... 아이구.... 몸을 못뒤집겠네. 아아아....
여자친구도 있는 놈이... 왜 그렇게 실실 웃고.... 아... 짜증나....
여 그날 밤. 난 내가 왜 그렇게 운동장을 미친 듯 뛰어야 했는지
괴로워하면서 몸 한번 뒤집을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때.
(E) 문자 메시지
여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남 나 김봉덕인데. 오늘, 덕분에 운동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어.
여 뭐야? 내 번호 어떻게 안거야?
아... 맞다. 그때 스텝연락처에.... 내 번호 있었지?
그래도 그렇지...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왜 괜히 문자질이야?
(E)전화기 확 덮는
여 ...........하긴... 별 내용도 아니잖아. 같이 운동했고.... 운동해서
즐거웠다.... 그런 말 정도 할 수 있지. 거기에 답을 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E)핸드폰 열고 열심히 답장하는
여 (가식) 응. 나도 즐거웠어. 운동했더니 몸이 정말 가뿐하고 좋은 거 있지.
(M) Mr. / Kara
여 그 후, 가을 학기가 개강을 하고. 우리는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했고. 또 그럴 때면 자판기 커피 한잔 정도는 함께 마시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나 문자가 먼저 오는 일도 잦아졌다.
(E) 커피잔 만지작 거리는
여 뭐야?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데 여자친구 있다며.
진짜 우정? 뭐야. 남녀 사이에 그딴 게 어딨어. 웃기고 있어 우정은
무슨! 바람둥인가? 아..... 미치겠네......
여 난, 커피잔을 앞에 두고 혼자 미친 여자처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다가, 혼자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턴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여 응... 그건 그렇구.... 왜 있잖아. 김봉덕.... 응.... 그때 우리 같이
일했던.... 니네 과지? 걔 어때? 어? 아니.... 그냥 저번에 커피
한잔 같이 마셨는데. 애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 애 아냐? 말수가 많지 않아? (기분 좋고) 그래? 나랑은
얘기 잘 하던데? 어? 아니아니.... 애가 진중하고.... 성실하고....
바르다구? 그래? 뭐 따분한 스타일이네.
그런데... 여자친구 있다며? 뭐 미국에 어학연수 갔다던데....
(사이 있다가) 죽고 못사는 사이야? 잉꼬 커플.....
(기분 확 나빠져서) 야. 나 지금 물 끓거든? 끊는다.
(E) 전화 뚝
여 치... 웃겨. 지가 어떻게 알아? 죽고못사는 사인지?
한쪽이 어학연수 가고 나면 헤어지는 거 거의 백프로 아냐?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약혼한 것도 아니고. 웃겨.....
여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난 자신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를, 이길 자신이.
(M) 루비 / 핑클
(E)귀뚜라미 소리
여 얼마 후, 주말과 공휴일이 겹쳐서 5일간의 황금휴가가
만들어졌다. 난 시골집으로 내려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E)전화벨
여 그였다.
여 (흠흠 목소리 가다듬고) 여보세요?
남 어. 난데. 자던 거 아니야?
여 아니야. 그냥.... 책 보고 있었어.
남 그래? 왠지 니가 안 자고 있을 것 같아서. 어디야?
여 시골 내려왔어. 가을옷 좀 가져가려구.
남 그렇구나. 혹시 기숙사에 있으면 커피나 한잔 하자 그럴까 했는데.
여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기숙사에 붙어 있을걸...
시골은 갑자기 왜 내려와서. 가을옷 몇벌 그냥 살걸.....
남 나 지금 학교 산책하고 있는데. 별이 보인다?
여 정말? 여기두.... 별 많은데.
남 하긴... 시골이니까... 여기보다 거기가 훨씬 좋겠다.
여 그럼.... 문만 열면 소나무숲 향기도 좋고.... 그 위로 별도 엄청
많이 떠 있고. 그래서 난 마음 심란할 땐 집에 와.
남 마음 심란한 일 있어?
여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구.
남 아까 전에 난 내 여자친구랑 통화했거든. 그런데 걔가 향수병에 걸렸 는지 자꾸 우는거야. 통화하고 나니까 마음이 좀 그래.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여 ...그래? 지금이 딱 그럴 때잖아. 간 지 3개월 정도 됐으니까.
니가.. 전화도 자주 해주고. 메일도 보내주고. 기념일 같은 거
절대 지나치지 말고 선물도 소포로 보내주고. 그렇게 잘 챙겨줘.
남 아... 소포. 내가 그 생각은 못했네?
여 남자들이 그렇지 뭐. 섬세하질 못하다니까?
남 고맙다.
여 내가 왜 이런 조언을 해주고 있어야 하는건지.
얘기하고 웃고 하면서도, 가슴이 시렸다. 눈물도 나려고 했다.
나 스스로가 바보 같고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그가 좋았다.
(M) 좋아 좋아 / 서영은
---------------------1부 끝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여 그 후로도 그는 여자친구와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나를 찾았다.
초저녁에 시작된 전화 통화는 밤늦도록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렇게 습관이 되다 보니
하루의 일과를 서로에게 보고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여 그래서?
남 교수님이 도와달라 그러시는 데 어떡해. 하루 종일
이삿짐 날랐더니 어깨가 다 뻐근해.
여 너무 못됐다. 아니 왜.. 자기네 집 이사하는 데
학생들을 인부로 써? 그래서? 뭐 수고비라도 챙겨주셔?
남 수고비는 뭐. 자장면도 한 그릇 안 사주던데.
여 너무했다 진짜.
남 원래 그런 분이라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너무했지?
끝나고 우리끼리 삼겹살 구워먹고 왔어.
여 어디서 먹었는데? 후문 쪽에 제주도 똥돼지집?
남 아니 그 옆에 새로 생긴 데 있어. 거기 나중에 같이 한번 가보자.
(E) 띠링띠링 소리
여 어? 무슨 소리야?
남 나 배터리 다됐다. 기다려봐. 배터리 갈고 다시 전화할게.
여 응.
여 다시 그의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하며 통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응. 나야. 그런데 너 이번 주말에 뭐할거야?
여 나? ....나 동물원 가려구.
남 동물원? 누구랑?
여 그냥 뭐... 혼자서?
(M) Ah / 애프터스쿨
(E) 사람들 많은 곳 소음
여 주말에 일부러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남 왜. 동물원 구경하고 싶다며.
여 그래두. 괜히 나 때매 시간 뺏긴 거 아냐?
남 시간 뺏기긴. 나두 뭐.. 여자친구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주말엔.
여 어쩌다 보니 우리 둘은 비슷한 색깔의 옷까지 입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지없이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의
모양새였다.
슬그머니 난 들뜨고, 행복했고, 못된 욕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저 남자의 사랑이 깨지고, 그가 내 차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 말이다.
남 너, 그런 습관 있는 거 알아?
여 응?
남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 말야. 엄지손가락으로 다른쪽 엄지 손톱을 만 지작 만지작, 그래. 여 내가? 어.. 그러네.
남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더니. 맨날 그래. 너도 모르는 니 습관인가봐.
(M)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 지퍼
(E) 조용한 거리 또각또각 걷는
남 오늘 피곤했지.
여 아냐. 재밌었어.
남 그런데 넌, 왜 남자친구가 없어?
여 글쎄. 뭐.. 아직은 그런 데 관심이 없어서.
남 너 정도면 참 괜찮은 여자친구 감이잖아.
여 내가?
남 그럼. 솔직히 내 여자친구는 애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한 편이야.
늘 내가 먼저 연락해야 되고. 챙겨줘야 되고. 그래도 뭐 고마운 줄도
모른다니까?
여 그래?
남 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E)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
여 지금이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고백할까.
거절 당하더라도, 한번 고백해 볼까?
남 응? 없어?
여 사실은.... 나 사실은....
(E) 전화벨
남 잠깐만. (전화 받고) 여보세요? 야. 혜진이 너.
귀 가려워서 전화 한 거 아냐? 안 그래도 내가 방금 친구한테
니 흉 보고 있었거든. 애교라곤 눈꼽만큼도 없고
연락도 잘 안한다고. 그래.. 고마워 죽겠다. 잘 있었어?
밥은 먹었구? 저번에 과일 깎다 손 다쳤다고 했잖아.
약은 잘 바르고 있고?
여 하려던 말을 삼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에 탁 걸려버린 그 말들이
여기저기를 아프게 찔러
난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울어야 했다.
(M) 혼자만의 사랑 / 김태영
여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E) 캐롤송 울려퍼지는
여 난 곧 졸업을 하게 될 것이며, 새해가 되면
그의 여자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자고 했다.
어차피 서로 외로울 것이니
함께 지내자고 했던 거다.
좋아야 하는데 씁쓸했다.
그에게 나는 멀리 있는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빈 시간을 채워주는 존재 정도밖에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 잊어버릴까봐 그러는 듯
그는 말끝마다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남 혜진이한테 보낼 카드를 고르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만들었거든.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그걸 좋아할까 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구.
여 .... 그랬니.
남 그런데 혜진이가 하는 말이, 미국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조용하대. 다들 가족들이랑 지내구. 우리나라가 더 떠들썩
하다던데?
여 .....(가볍게 한숨) 그래.
남 너 오늘 기분이 왜 그래? 뭐 안좋은 일 있었어?
여 니가 내 기분에 관심이나 있는 애야?
남 ....어? 왜 그래?
여 넌 친구 없니?
남 ....뭐?
여 다른 남자친구 없냐구.
남 은서야.
여 왜 자꾸 날 만나?
남 너 왜 그래?
여 나 만나면 하는 얘기 똑같잖아. 맨날 혜진이가 어떻구..
혜진이가 뭐라 그랬구... 혜진이.. 혜진이...
남 .....
여 내 말은 그러니까.... 남들이 보면 오해할 거 아냐.
너랑 내가... 특별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도서관도 같이 다니구.... 이런 날도 같이 있구...
남 남들이 뭐라면 어때. 우리가 떳떳한데.
여 (기막힌) 떳떳해? 뭐가?
남 우리가 아무렇지 않으면 된 거 아냐?
여 아무렇지 않긴 누가!!
남 ......어?
여 니가 오해할까봐 얘기하는데. 내가 너한테 무슨 특별한 감정...
그런 건 절대 아니구. 그런 게 아니라....
(눈물 날 것 같지만 참으며) 나두 곧 졸업하잖아.
그런데 뭐 이러냐? 제대로 된 연애 한번도 못해보고.
너무하지 않니? 만나면 넌 맨날 니 여자친구 얘기하면서
염장이나 지르구. 그리구 나 너 만나느라 다른 남자 만날 시간도
없어진 거 같애. 다른 애들은... 니가 내 남자친구라도 되는 줄
알구.
남 너... 그러니까 나 만나는 거 불편해?
여 .... 그래.
남 아... 그랬구나. 그럼 말을 하지... 나는 몰랐잖아.
여 .....
남 알았어. 앞으로는 연락 안할게. 이런 날 만나자고도 안하고.
됐지?
여 ......
남 그냥 편하게... 아니 그러니까 만나면 인사 정도만 하고...
뭐 만날 일도 없겠네. 너 곧 졸업하면...
여 그런 게 아닌데.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쏘아붙이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난 고개만 끄덕였다.
(M) 아름다운 이별 / 옥주현
여 졸업하고 나면 모든 게 정리될 줄 알았다.
일을 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고,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면
저절로 잊혀질 줄 알았다.
내가 그 사람과 독한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그가 내게 무언가 약속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깐 그렇게 설레이고 아프다가
말 줄 알았다. 그런데 지하철을 탈 때나 영화를 볼 때나
슬픈 발라드곡을 들을 때. 나는 습관처럼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연락 한번 없이 3년이 지날 때까지 그랬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그 사람과 비교가 됐으니까.
(M) 기억속에 먼 그대에게/ 박미경
여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모임에 나가게 됐다.
자연스럽게 술을 몇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자리에 그 사람도 나오기로 돼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때부터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뭘 먹어도 먹는 줄 모르겠고
웃어도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난 반짝반짝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시간 쯤 지났을 때
그 사람이 들어왔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도, 그 사람 많은 복잡한
곳에서도, 난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전에 만났던 사람인 듯 인사를 건넸다.
남 오랜만이다. 잘 있었어?
(M) 안부/ 별 & 나윤권
남 윤은서. 나랑 한잔 해야지.
여 어... 그러자.
(E) 술잔 부딪치는
남 너 별로 안 변했다.
여 너두.
남 니 소식은 간간이 들었어.
여 그랬어? 난 니 소식 통 못 들었어.
남 뭐... 나도 졸업하고.. 취직하고.. 바빴어.
여 그래? ...... (애써 아무렇지 않게) 결혼은?
남 해야지.
여 아.. 그래? 누구랑?
남 누구긴. 혜진이지.
여 순간, 주변에서 그놈의 순애보 정말 대단하다는
부러움섞인 야유가 쏟아졌다.
그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고.
난 차마 그런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어 술을 더 마셨다.
(M) Rain / 박혜경
(E) 비오는 소리
여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2차를 가자며 시끌벅적한 가운데를 조용히 빠져나와
혼자 걷고 있는데. 그가 날 따라왔다.
(E) 뛰어오는 소리
남 한잔 더 하러 가자는데 안가?
여 내일 출근해야지.
남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여 여기서 안 멀어. 걸어가면 돼.
남 비도 오고.. 밤에 혼자 가면 그렇잖아.
여 괜찮아. 애들 따라가.
남 내가 뭐 애들 보러 나왔냐?
여 그럼?
남 너 보러 나왔지.
여 ...왜?
남 그냥 보고 싶어서. 어떻게 변했나도 궁금하고.
여 그럼... 봤으니까 됐잖아. 나 혼자 걷고 싶어서 그러니까..
가 봐.
남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봐.
여 그러게. 우리가 또 볼 일이 뭐 있겠어.
남 섭섭하게.. 그럼 가.
여 응..
(E) 몇걸음 걷다가
여 참... 있잖아 나.. 내 습관 말이야.
남 어?
여 나도 모르는 내 습관 있다 그랬었잖아 니가.
남 어... 맞아.
여 그거 말고도 참 고치기 힘든 습관이 있었거든.
그거 오늘부터 고치려고.
남 그게 뭔데?
여 있어... 그런 거.... 잘 가.
(E) 비오는 소리
여 내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뒤로 한 채
난 천천히 걷는다.
뭔가, 아련히 아프지만,
한편 가벼워진 기분이다.
(M) 주제음
2009-08-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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