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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02화 - 강원도에서 생긴 일
(M) 주제음 슬픈 인연/ 럼블피쉬
여 요즘 건어물녀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감성이 마른 오징어처럼 건조한 여자라나 뭐라나.
밖에선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여자지만
알고 보면 귀차니즘에 절은 게으르고 의욕없는
여자, 정도의 의미랜다.
휴가를 떠나는 차 안에서
잡지에 실린 건어물녀 테스트를 해보았다.
음. 먼저... 집에 돌아오면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나? 집에서 뭐.. 정장 차려입을 일 있어?
예쓰.
그 다음에...
휴일은 무조건 노메이크업.
뭐 질문이 이래? 당연한거 아냐? 그럼 휴일에 집에서
메이크업을 왜 해? 매일 하는 화장도 귀찮아 죽겠는데.
예쓰.
냄비채로 라면을 먹는다? 예쓰.
방에 널어놓은 세탁물은 개기 전에 입어버린다?
그럼 입을 걸 뭐하러 개? 예쓰.
최근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건 계단을 뛰어올라갔던 일 정도?
두근두근? 가슴이 두근두근한 거?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어후... 기억도 안나네. 예쓰!
(M) U go girl / 이효리
여 테스트 결과 나는 초건어물녀였다.
몸은 아줌마인데, 마음만 젊어서
어리고 멋진 남자를 원하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자 모든 걸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하면서 연애를 꿈도 꾸지 않고 살고 있대나..뭐래나.
(E)잡지 확 덮어버리며
여 뭐 이런 게 다 있어? 웃겨 진짜? 하.. 참...
여 몹시 기분이 나쁘다. 왠지 맞는 말 같다.
내 나이 서른 일곱.
얼마 전엔 엄마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선 보러 갔다가, 가임기가 지나지 않았냐는
모욕적인 말까지 듣고 돌아왔던 나다.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랑... 오징어를 샀던가?
그래서 집에 와서 무한도전 재방송 보면서
오징어를 질겅질겅...씹어먹었던가?
암튼 그랬다.
연애 못하면 어떤가? 결혼 못하면 또 어떤가?
난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살고 싶지 않다! 고...
자신감 있게 말해서 어린 후배들에게 박수를 받긴 했으나
혼자 휴가 떠나려고 짐을 꾸릴 땐... 솔직히 좀 그렇긴 했다.
그래도 괜찮다. 난 강원도에 왔다. 깊고. 푸르고. 맑은. 이곳으로.
(M) 여름안에서/ 서연
여 속초의 한 펜션에 들어왔다.
바다가 훤히 보이고. 저 뒤로는 안개에 뒤덮인 설악산이
보이는 이곳.
이런 성수기에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예약이 된 게
다행이다 싶다.
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공동으로 쓰는 베란다로 나왔다.
어떤 남자가 어리디 어린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느끼한 멘트를 풀어놓고 있다.
난 조금 떨어져서 풍경 사진을 찍었다.
(E) 찰칵찰칵...
남 (느끼) 저기 바다 보이지? 우리 나중엔 요트 타고
수평선 끝까지 가보자.
여 “어머~ 오빠 정말 정말? 요트? 오빠 요트 살거야?”
......라며 어린 여자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참, 놀고들 있다,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남 우리 이제 그만 밥 먹으러 갈까?
여 .......라며 돌아서던 남자가 우뚝 선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설마 나에게 반한걸까? 혼자 온 여행이니만큼
완전 푸석푸석한 맨얼굴에
역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잠자리 안경까지 쓴, 몹시 편안한 모습인데?
이런 나에게도 한눈에 반한단 말인가?
옆에 저렇게 어린 여자까지 둔 채?
남 너... 혹시 윤은서?
(M) 영계백숙 / 애프터쉐이빙
(E) 문 쾅닫는
여 왜 하필 여기서 저놈을 만난건가.
어우 왜 하필 이꼴로.
생각해 보면 내가 오늘날 서른 일곱의 나이에
건어물녀가 된 건, 저 녀석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10년 전. 내가 빛나는 20대였을 때.
(E) 깡... 하고 야구공 날리는 소리
여 (간드러지는) 자기 짱이야! 최고! 어쩜 그렇게 공을 잘 쳐?
남 뭐 이 정도로 그래. 내가 야구선수로 본격 안나가서 그렇지
나가만 봤어 봐. 메이저리그가 다 뒤집어졌다.
여 그래. 남들이 뭐라던.. 난 그 말 믿어.
남 잠깐만 기다릴래? 나 오늘 컨디션 괜찮아서 요거 한판만 더 할게.
여 어.. 그래.
(E) 깡.....
여 그는 실내 야구장에서 야구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말 끝마다 자기가 제대로 배우기만 했어도
이종범을 넘어섰을 거라는 둥...
투수를 했으면 선동렬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둥...
뻥과 망상이 심했지만, 그래도 그때 내 눈엔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난 그때 감성이 푸딩처럼 말랑말랑하다 못해 곧 터질 것 같은
20대였고. 그가 내 운명이고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M) 너는 내 운명 / 전도연 & 황정민
(E) 바닷가 걷는
여 시간이란 건 참 재밌다. 그때, 그 사람 때문에 울고 웃었던 시간이
자그마치 1년 6개월인데. 10년이 지나고 나자, 얼굴조차 기억이
안나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이랬으니까.
그런데 정말 운 나쁘게도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고.
난 쫓기듯이 방으로 들어갔다가,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몰래몰래 바닷가로 나와, 이렇게 걷고 있다.
인생은 가끔 이런 쓸데없는 장난질을 치나보다.
난 하나도 재미없다.
(E) 걸어오는 소리
남 은서 맞구나?
여 .......네? 누구?
남 나 몰라? 진짜 몰라?
여 글쎄.. 저는 잘... 실례합니다.
여 ....하고 지나가려는데. 이 녀석 나를 턱하니 붙잡는다.
몹시 남자답게.
그래.... 한때 내가 니 이런 모습에 좋아죽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남 은서 맞는데 뭐. 나 김봉덕이야.
여 내가 그 이름 어떻게 잊겠니. 웬수 같은 김봉덕.
남 야... 섭섭하다. 어떻게 나를 다 잊어버리냐?
여 섭섭? 내가 너한테 섭섭했던 걸 책으로 썼으면
열여덟권 대하소설이고. 드라마로 썼으면 완전 막장복수극이야.
이거 왜 이래!
남 사람을 왜 그렇게 봐. 진짜 기억 안나?
여 아......
남 이제 기억나?
여 네. 이제 좀.. 기억이 날랑말랑 하네요.
남 야.. 그런데 너 많이 변했다. 처음에 너 보고 진짜 못알아볼 뻔
했거든? 그런데 콧등에 점 있잖아. 그거 보고 알았잖아.
내가 한때는 그 점 보고, 너보구 고소영 닮았다구.. 막 그랬잖아.
여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
남 고소영은 아직도 이쁘기만 하던데. 너는... 하하 참...
이래서 인생무상.. 이라고들 하나봐?
여 저놈은 여전하다.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나쁜 자식!
여 (웃으며) 그나저나 너도 많이 늙었네. 나는 아까 니가 웬 어린여자랑
있길래, 무슨 삼촌이랑 조카가 같이 놀러를 왔나~? 참.. 가족간에
보기 좋네~ 그랬다 난?
(M) 뿔났어/ 라니
(E) 바닷가 빠르게 걷는 두 사람
남 너 나한테 아직도 뭐 화난 거 있냐? 그래도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그렇게 쎄해?
여 우리가 화기애애할 게 뭐 있어. 반가울 건 또 뭐구. 넌 나 봐서 반가 워? 띠동갑 연하 여자애한테 소개해 보지 왜? 내 옛날여자친구라구?
왜 그러지는 못하구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나와서 이래?
남 뭐? 도둑 고양이?
여 넌 똑같애! 하나도 안변했어.
남 내가 동안이라는 소린 들어.
여 그 소리가 아니구! 얼굴은 늙었는데. 하는 꼬라진 똑같다구!
느물거리구.겉다르구 속다른데다가. 비겁하구. 비열하구!
남 (기막힌) 내가? 내가 왜!
여 기억 안나?
남 뭐가!
(E) 커피잔 만지작거리는
여 10년 전에. 만난지 정확히 1년 하고 5개월 반 쯤 됐을 때.
니가 나 불러냈었지. 우리가 자주 만나던 까페로.
(E) 들어오는
여 자기야. 여기.
남 일찍 와 있었어?
여 아니. 뭐.... 30분 정도? 와서 책 읽고 있었어.
남 책은 무슨. 넌 꼭 잡지 읽으면서도 책이라고 그러드라? 그럼
좀 있어보이냐?
여 (안웃긴데 웃기는 척 호호 웃고) 어우 자기두 참~ 나 놀려먹는 게
그렇게두 재밌어? 암튼 짓궂어.
남 놀려먹는 게 아니구. 진심에서 하는 말이야.
여 ...어?
남 나 있잖아. 처음엔 너를 정말 좋아했지만. 솔직히 점점 너한테
지쳐가고 있어.
여 왜? 아니 왜 지쳐? 내가.. 뭘 어쨌다구? 잡지 보면서 책 읽는다
그래서? 그래.. 나 잡지 좋아해. 그렇지만 가끔은 진짜 책 읽을
때두 있어.
남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애가 왜 이렇게 이해력이 떨어져!
여 아니 그럼 무슨 말인데.
남 더 이상 널 봐도 두근거리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너를 만나는 게, 너무 피곤하다구. 우리 그만 끝내자.
(M) 아주 오래된 연인들 / 015B
(E) 파도 소리 쏴아....
여 넌 그랬을 거야. 그때 그렇게 내뱉어놓고 뒤돌아 사라지면서
깨끗하게 쫑이라고 생각했겠지.
남 다른 건 몰라두.. 우리 이별은 아름다웠어.
내가 그날 찻값이랑 계산도 다했고. 또 마지막이라고
선물도 줬었잖아. 목걸이었나?
여 그거 진짜도 아닌 거? 어디서 그런 싸구려를..
남 그게 중요해? 중요한 건 마음이야. 다른 남자들은 헤어질 때
선물은커녕, 지가 줬던 거 다 내놓으라구 난리랜다! 그에 비해
난 얼마나 젠틀하고 멋졌냐.
여 줬던 게 있었어야 내놓으래지. 솔직히 줬던 건 백배 내가 많어.
그거 하나라두 돌려줬냐? 니가 그때 입고 있던 가죽 잠바.
그것도 내가 사준거였어! 할부도 다 안끝났던 거 그거!
그거 홀랑 입고 튀었잖아 니가!
남 우리 이런 유치한 얘기 그만하자. 그때 우린... 마음이 다해서
끝낸 거 뿐이었어. 아름답게 기억하는 게 더 좋잖아.
여 그 뒤로. 내가 뒷조사 다 해봤거든? 너, 양다리였잖아.
남 .....뭐?
여 그 여자 아빠가 골프장 사장이었다며? 내가 그 여자 찾아가서
다 얘기했었어.
남 ....뭐? 그럼..... 너 때문이었어?
여 그 여자가 그런 얘긴 안했나봐?
남 너... 어떻게... 내가 그 여자를 얼마나...
(분노) 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나 알고 그런 짓을 한거야!!!
여 ....그는 정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는 얘긴가.
(M) Don't Know Why / Norah Jones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E) 귀뚜라미 우는 소리
여 너무 궁금해서 밤에 잠도 안온다.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사실이 정말 있긴 있는걸까.
난 그때 친구를 통해, 외국 유학파인 그 여자가
한국에 잠시 왔다가 그를 만났고. 두 사람이 뜨거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시기에 나에게 이별을 고한 걸 보면
틀림없는 양다리가 아닌가. 게다가,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렇게 큰 부자라고 하니. 돈 좋아하는 그 남자가 왜 그 여자에게
가기로 결심했는지는 안봐도 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가, 그 남자의 악행을 낱낱이 고했던 것이었다.
내 얘기를 들었던 그 여자의 표정이.. 어땠더라.
좀 울었던 것 같다. 아니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런 게 문제는 아니었다. 나도 아팠으니까.
나도 미칠 것 같았으니까. 잠이 안온다.
(M) Quando Quando Quando / Winterplay
(E) 커피잔에 커피 따르는
여 펜션에 딸린 작은 공용주방에 갔더니 그가 커피를 따르고 있다.
여 ....저기.
남 ....
여 저기. 잠깐만. 사람이 말하려고 그러는데.
남 왜.
여 이따가 잠깐만 시간 돼? 물어볼 거 있어서 그래.
남 됐어.
여 자꾸 신경이 쓰이잖아. 어제 거기로 저녁에 잠깐 나와.
어차피 나 내일 아침엔 다른 데로 간단 말이야.
8시부터 기다릴테니까 틈 봐서 나와.
여 그날밤. 그는 10시가 다 돼서야 나타났다.
(E) 파도 소리
남 물어볼 게 뭔데.
여 어제 그 얘기 말이야. 너무 궁금해서... 잠이 다 안오잖아.
남 뭐가 알고 싶은데.
여 그때 나한테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 여자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 ....그걸 왜 이제 물어봐?
여 뭐?
남 차라리 그때 물어보지. 왜 사람 뒤나 캐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여자 몰래 찾아가서 그런 말이나 하고.
여 그럼 내가 가만 있었어야 한다는거야? 니가 나한테 한 짓은
생각 안해? 난 1년 반 너랑 사귀고. 그렇게 비참하게 차이고 나서
여태 10년 동안 남자 만나본 적도 없어. 그래. 감성이란 게
나한테 남아 있나. 정말 바짝 말라버린 거 아닐까.
내가 다시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난 그래.
회사에서만 웃고 떠들다가, 집에 오면 티쪼가리 입고 맥주나 마시고.
그러구 살아. 휴가도 나 혼자 왔고. 돌아갈 때도 혼자 돌아갈거야.
그리고 난 지금 서른 일곱이야!
그게 어떤 의민지 니가 알기나 해? 그런데 내가 왜 그 시절을 궁금해
하지도 못한다는거야!
(M) 체념 / 빅마마
(E) 파도 소리
여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어놓고 몇십분 동안이나 우리는
까만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저 멀리로
등대 불빛만 깜박깜박..했다.
여 여기 밤 12시까지밖에 못 있어. 아까 보니까 12시부터 6시까진
출입금지라고 써있더라.
남 그 여자 죽었어.
여 ....어?
남 너한테 그 얘기 듣고.. 미국 들어가서.. 3개월 있다가.
여 ...(충격)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뭐야... 말도 안돼.
아니.. 왜? 내가 그런 얘기 좀 했다구? 나 별 얘기 안했어.
너랑 나랑.. 사겼다구.. 너 양다리라구..
그거 때매... 죽었다구?
남 그것 때문은 아니구.
여 그게 무슨 소린데.
남 내 잘못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야. 내가 그땐 너무 정신이 없어서
너한테 이런저런 설명 못하구 그랬던 건 미안하게 생각해.
여 아니 이제 와서 그런 얘긴 필요없구.
아까 그건 무슨 소리냐구.
남 원래 병이 있었어.
여 .... 병?
남 니 말대로 나 돈 좋아하고. 처음에 그 여자 좋아한 것도 돈 많은
여자라 그랬던 것도 사실이기는 한데. 아니었었어. 정말 좋아했었어.
너무 좋아서 정신 못차리게.. 그랬어.
여 나 만나면서?
남 그래. 너 만나면서. 너한테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입이 안 떨어 져서.. 그런 식으로 헤어지자 그랬었어. 그런데 너랑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그 여자가 미국 들어가 버렸고. 연락도 안됐어.
그리고 수소문해서 겨우 연락처 알았을 때. 그 여자 죽었단 소식만
들었어. 수술했는데, 실패했대.
여 .....말도..안돼...
남 그 동안 왜 그렇게 갑자기 가버려야 했는지 몰라서
답답했는데. 어제 알았어. 그게 다 너 때문인 거.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거 알려주지도 못한 거..
다 너 때문이야.
여 아니.... 나는.....
남 넌 감정이 바짝 말라버린 것 같다 그랬지.
난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어. 오늘 같이 온 그애..
열흘전에 나이트에서 만났어.
누굴 만나도 한달 이상 못가.
누굴 진짜 사랑하지도 못해.
나도 서른 일곱이야. 나도 이렇게 살고 있어.
(M) 7년간의 사랑/ 규현
(E) 새소리
(E) 걷는
여 설악산에 왔다.
굽 높은 웨지샌들을 신은 상태지만
난 등산을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가에... 맘 비우고 편안하려고 강원도 왔다가
이게 웬 날벼락인가.
차라리. 안만나고.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10년전에 만나 가물가물한 그 여자의 얼굴이
생각날 듯... 말 듯...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울던 모습은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도 괜히 찡했던 것
같다. 둘은 정말 사랑했구나....
그 사랑을.... 내가 망쳐놨구나.
나는 그때....그녀에게.... 그 남자에겐 진심이라곤 없다고...
너 좋다고 말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고....
다 돈 때문에 쇼하는 거라고....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아마 질투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 나갈 땐, 어느 돈 많고 싸가지 없는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는 예뻤고. 수수했고. 착해 보였다.
그래서, 질투심에 더 막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눈물도 흐르는 것 같다.
(M) 이별 못한 이별 / 지선
(E) 절룩절룩걸어오는
여 산에서 돌아와 펜션으로 돌아가는데.
입구에 그가 서 있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옆을 스쳐 지났다.
남 안 가?
여 갈거야. 새벽에 잠깐 산에 갔다오느라구.
남 다리는 왜 그래.
여 발바닥이 좀 까졌어.
남 산에 가면서... 신발 꼬라지 봐라.
여 산에 갈 거는 계산 안하고 온거거든?
남 니가 늘 그렇지. 계산이라곤 못하지. 계획도 없고.
여 비꼬는거야 지금?
남 그냥 사실을 말하는거야.
여 들어가. 여자친구가 보면 오해하겠네.
남 걔 서울 보냈어.
여 왜?
남 기분이 영 아니라서.
여 나 들어갈게. 짐 싸야돼서.
남 그래 그럼.
(E) 몇걸음 걷다가
여 그리구...
남 ....
여 (담담하지만 슬픈)
그 일은 미안해. (사이) 몰랐어. 정말 몰랐어. 몰랐으니까 그랬지.
나도 사람인데. 둘이 그 정도로 좋아하고. 그랬던 거 알았으면
그러진 않았겠지. (사이) 아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도 그땐 제정신 아니었으니까. 너한테 채이고... 나도 진짜..
확 죽어버릴까... 까지도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래도 미안하게 생각해. 너한테도. 그리고...
그 여자분한테도. 착하고 좋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수술 잘못 된 게 꼭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정말 안좋아.
(M) 키작은 하늘 / 장혜진
(E)버스 지나가는 소리
여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가슴이 헛헛해졌다.
사랑이 뭔데. 이렇게 지나고 나면. 시간만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데. 그게 뭐라고. 왜 그렇게들 절실하고
절박했었나. 마른 모랫바람을 맞고. 눈에 뭔가가 들어가
두눈을 꼭 감고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우는 것 마저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E)차 오더니 빵....
여 반짝 눈을 떴다.
남 어디로 가?
여 서울로.
남 벌써?
여 어.
남 타 그럼. 데려다 줄게.
여 됐어. 신경쓰지 말고 갈 길 가.
남 정말 안탈래?
여 안탈래. 암튼 고마워.
남 ......그래 그럼.
(E) 차 출발하고 조금 가다가 선다. 그리고 차 문 열리고 내리는.
남 (조금 멀리서) 나도 미안하다.
여 ......
남 나도 내 생각만 했던 거 맞아. 너한테 상처 줬고.
그래놓고도 내 상처만 생각했던 것도 맞아.
10년동안 꿈에도 생각 못했어. 너도... 힘들었을 거라는 거.
이 세상에서.. 나만 힘든 줄 알았어.
그리구... 절대로 니 잘못 아니야.
그 여자앤 원래 많이 아팠고. 아마 그럴 운명이었을거야.
그러니까... 괜히 마음 쓰지 마.
다 지난 일이잖아.
여 ....그래. 고마워.
남 잘 가고. 나중에.... 언제 시간되면... 차라도 마시자.
여 어. 그래... 잘 가.
(E) 차 출발하고
여 내 마지막 사랑은, 그때 그 까페에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떠나는 차를 보니,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진심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어쩌면, 다음엔, 진심으로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같은 것도 든다.
깊고 깊은 강원도의 어느 해안도로에서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M) 주제음
2009-08-0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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