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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6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402화 - 강원도에서 생긴 일


(M) 주제음     슬픈 인연/ 럼블피쉬


여      요즘 건어물녀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감성이 마른 오징어처럼 건조한 여자라나 뭐라나.

        밖에선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여자지만

        알고 보면 귀차니즘에 절은 게으르고 의욕없는

        여자, 정도의 의미랜다.

        휴가를 떠나는 차 안에서

        잡지에 실린 건어물녀 테스트를 해보았다.

        음. 먼저... 집에 돌아오면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나? 집에서 뭐.. 정장 차려입을 일 있어?

        예쓰.

        그 다음에...

        휴일은 무조건 노메이크업.

        뭐 질문이 이래? 당연한거 아냐? 그럼 휴일에 집에서

        메이크업을 왜 해? 매일 하는 화장도 귀찮아 죽겠는데.

        예쓰.

        냄비채로 라면을 먹는다? 예쓰.

        방에 널어놓은 세탁물은 개기 전에 입어버린다?

        그럼 입을 걸 뭐하러 개? 예쓰.

        최근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건 계단을 뛰어올라갔던 일 정도?

        두근두근? 가슴이 두근두근한 거?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어후... 기억도 안나네. 예쓰!

(M)    U go girl / 이효리


여      테스트 결과 나는 초건어물녀였다.

        몸은 아줌마인데, 마음만 젊어서

        어리고 멋진 남자를 원하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자 모든 걸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하면서 연애를 꿈도 꾸지 않고 살고 있대나..뭐래나.


(E)잡지 확 덮어버리며


여      뭐 이런 게 다 있어? 웃겨 진짜? 하.. 참...

        

여      몹시 기분이 나쁘다. 왠지 맞는 말 같다.

        내 나이 서른 일곱.

        얼마 전엔 엄마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선 보러 갔다가, 가임기가 지나지 않았냐는

        모욕적인 말까지 듣고 돌아왔던 나다.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랑... 오징어를 샀던가?

        그래서 집에 와서 무한도전 재방송 보면서

        오징어를 질겅질겅...씹어먹었던가?

        암튼 그랬다.

        연애 못하면 어떤가? 결혼 못하면 또 어떤가?

        난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살고 싶지 않다! 고...

        자신감 있게 말해서 어린 후배들에게 박수를 받긴 했으나

        혼자 휴가 떠나려고 짐을 꾸릴 땐... 솔직히 좀 그렇긴 했다.

        그래도 괜찮다. 난 강원도에 왔다. 깊고. 푸르고. 맑은. 이곳으로.

(M)    여름안에서/ 서연


여      속초의 한 펜션에 들어왔다.

        바다가 훤히 보이고. 저 뒤로는 안개에 뒤덮인 설악산이

        보이는 이곳.

        이런 성수기에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예약이 된 게

        다행이다 싶다.

        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공동으로 쓰는 베란다로 나왔다.

        어떤 남자가 어리디 어린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느끼한 멘트를 풀어놓고 있다.

        난 조금 떨어져서 풍경 사진을 찍었다.


(E) 찰칵찰칵...


남      (느끼) 저기 바다 보이지? 우리 나중엔 요트 타고

        수평선 끝까지 가보자.


여      “어머~ 오빠 정말 정말? 요트? 오빠 요트 살거야?”

        ......라며 어린 여자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참, 놀고들 있다,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남      우리 이제 그만 밥 먹으러 갈까?


여      .......라며 돌아서던 남자가 우뚝 선다.

        그리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설마 나에게 반한걸까? 혼자 온 여행이니만큼

        완전 푸석푸석한 맨얼굴에

        역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잠자리 안경까지 쓴, 몹시 편안한 모습인데?

        이런 나에게도 한눈에 반한단 말인가?

        옆에 저렇게 어린 여자까지 둔 채?


남      너... 혹시 윤은서?

(M)    영계백숙 / 애프터쉐이빙


(E) 문 쾅닫는


여      왜 하필 여기서 저놈을 만난건가.

        어우 왜 하필 이꼴로.

        생각해 보면 내가 오늘날 서른 일곱의 나이에

        건어물녀가 된 건, 저 녀석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10년 전. 내가 빛나는 20대였을 때.


(E) 깡... 하고 야구공 날리는 소리


여      (간드러지는) 자기 짱이야! 최고! 어쩜 그렇게 공을 잘 쳐?

남      뭐 이 정도로 그래. 내가 야구선수로 본격 안나가서 그렇지

        나가만 봤어 봐. 메이저리그가 다 뒤집어졌다.

여      그래. 남들이 뭐라던.. 난 그 말 믿어.

남      잠깐만 기다릴래? 나 오늘 컨디션 괜찮아서 요거 한판만 더 할게.

여      어.. 그래.

(E) 깡.....


여      그는 실내 야구장에서 야구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말 끝마다 자기가 제대로 배우기만 했어도

        이종범을 넘어섰을 거라는 둥...

        투수를 했으면 선동렬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둥...

        뻥과 망상이 심했지만, 그래도 그때 내 눈엔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난 그때 감성이 푸딩처럼 말랑말랑하다 못해 곧 터질 것 같은

        20대였고. 그가 내 운명이고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M)    너는 내 운명 / 전도연 & 황정민


(E) 바닷가 걷는


여      시간이란 건 참 재밌다. 그때, 그 사람 때문에 울고 웃었던 시간이

        자그마치 1년 6개월인데. 10년이 지나고 나자, 얼굴조차 기억이

        안나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이랬으니까.

        그런데 정말 운 나쁘게도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고.

        난 쫓기듯이 방으로 들어갔다가,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몰래몰래 바닷가로 나와, 이렇게 걷고 있다.

        인생은 가끔 이런 쓸데없는 장난질을 치나보다.

        난 하나도 재미없다.


(E) 걸어오는 소리


남      은서 맞구나?

여      .......네? 누구?

남      나 몰라? 진짜 몰라?

여      글쎄.. 저는 잘... 실례합니다.


여      ....하고 지나가려는데. 이 녀석 나를 턱하니 붙잡는다.

        몹시 남자답게.

        그래.... 한때 내가 니 이런 모습에 좋아죽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남      은서 맞는데 뭐. 나 김봉덕이야.


여      내가 그 이름 어떻게 잊겠니. 웬수 같은 김봉덕.


남      야... 섭섭하다. 어떻게 나를 다 잊어버리냐?


여      섭섭? 내가 너한테 섭섭했던 걸 책으로 썼으면

        열여덟권 대하소설이고. 드라마로 썼으면 완전 막장복수극이야.

        이거 왜 이래!


남      사람을 왜 그렇게 봐. 진짜 기억 안나?

여      아......

남      이제 기억나?

여      네. 이제 좀.. 기억이 날랑말랑 하네요.

남      야.. 그런데 너 많이 변했다. 처음에 너 보고 진짜 못알아볼 뻔

        했거든? 그런데 콧등에 점 있잖아. 그거 보고 알았잖아.

        내가 한때는 그 점 보고, 너보구 고소영 닮았다구.. 막 그랬잖아.

여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

남      고소영은 아직도 이쁘기만 하던데. 너는... 하하 참...

        이래서 인생무상.. 이라고들 하나봐?


여      저놈은 여전하다.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나쁜 자식!


여      (웃으며) 그나저나 너도 많이 늙었네. 나는 아까 니가 웬 어린여자랑

        있길래, 무슨 삼촌이랑 조카가 같이 놀러를 왔나~? 참.. 가족간에

        보기 좋네~ 그랬다 난?

(M)    뿔났어/ 라니


(E) 바닷가 빠르게 걷는 두 사람


남      너 나한테 아직도 뭐 화난 거 있냐? 그래도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그렇게 쎄해?

여      우리가 화기애애할 게 뭐 있어. 반가울 건 또 뭐구. 넌 나 봐서 반가 워? 띠동갑 연하 여자애한테 소개해 보지 왜? 내 옛날여자친구라구?

        왜 그러지는 못하구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나와서 이래?

남      뭐? 도둑 고양이?

여      넌 똑같애! 하나도 안변했어.

남      내가 동안이라는 소린 들어.

여      그 소리가 아니구! 얼굴은 늙었는데. 하는 꼬라진 똑같다구!

        느물거리구.겉다르구 속다른데다가. 비겁하구. 비열하구!

남      (기막힌) 내가? 내가 왜!

여      기억 안나?

남      뭐가! 


(E) 커피잔 만지작거리는


여      10년 전에. 만난지 정확히 1년 하고 5개월 반 쯤 됐을 때.

        니가 나 불러냈었지. 우리가 자주 만나던 까페로.


(E) 들어오는


여      자기야. 여기.

남      일찍 와 있었어?

여      아니. 뭐.... 30분 정도? 와서 책 읽고 있었어.

남      책은 무슨. 넌 꼭 잡지 읽으면서도 책이라고 그러드라? 그럼

        좀 있어보이냐?

여      (안웃긴데 웃기는 척 호호 웃고) 어우 자기두 참~ 나 놀려먹는 게

        그렇게두 재밌어? 암튼 짓궂어.

남      놀려먹는 게 아니구. 진심에서 하는 말이야.

여      ...어?

남      나 있잖아. 처음엔 너를 정말 좋아했지만. 솔직히 점점 너한테

        지쳐가고 있어.

여      왜? 아니 왜 지쳐? 내가.. 뭘 어쨌다구? 잡지 보면서 책 읽는다

        그래서? 그래.. 나 잡지 좋아해. 그렇지만 가끔은 진짜 책 읽을

        때두 있어.

남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애가 왜 이렇게 이해력이 떨어져!

여      아니 그럼 무슨 말인데.

남      더 이상 널 봐도 두근거리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너를 만나는 게, 너무 피곤하다구. 우리 그만 끝내자.

(M)    아주 오래된 연인들 / 015B


(E) 파도 소리 쏴아....


여      넌 그랬을 거야. 그때 그렇게 내뱉어놓고 뒤돌아 사라지면서

        깨끗하게 쫑이라고 생각했겠지.

남      다른 건 몰라두.. 우리 이별은 아름다웠어.

        내가 그날 찻값이랑 계산도 다했고. 또 마지막이라고

        선물도 줬었잖아. 목걸이었나?

여      그거 진짜도 아닌 거? 어디서 그런 싸구려를..

남      그게 중요해? 중요한 건 마음이야. 다른 남자들은 헤어질 때

        선물은커녕, 지가 줬던 거 다 내놓으라구 난리랜다! 그에 비해

        난 얼마나 젠틀하고 멋졌냐.

여      줬던 게 있었어야 내놓으래지. 솔직히 줬던 건 백배 내가 많어.

        그거 하나라두 돌려줬냐? 니가 그때 입고 있던 가죽 잠바.

        그것도 내가 사준거였어! 할부도 다 안끝났던 거 그거!

        그거 홀랑 입고 튀었잖아 니가!

남      우리 이런 유치한 얘기 그만하자. 그때 우린... 마음이 다해서

        끝낸 거 뿐이었어. 아름답게 기억하는 게 더 좋잖아.

여      그 뒤로. 내가 뒷조사 다 해봤거든? 너, 양다리였잖아.

남      .....뭐?

여      그 여자 아빠가 골프장 사장이었다며? 내가 그 여자 찾아가서

        다 얘기했었어.

남      ....뭐? 그럼..... 너 때문이었어?

여      그 여자가 그런 얘긴 안했나봐?

남      너... 어떻게... 내가 그 여자를 얼마나...

        (분노) 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나 알고 그런 짓을 한거야!!!


여      ....그는 정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는 얘긴가.

(M)    Don't Know Why / Norah Jones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E) 귀뚜라미 우는 소리


여      너무 궁금해서 밤에 잠도 안온다.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사실이 정말 있긴 있는걸까.

        난 그때 친구를 통해, 외국 유학파인 그 여자가

        한국에 잠시 왔다가 그를 만났고. 두 사람이 뜨거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시기에 나에게 이별을 고한 걸 보면

        틀림없는 양다리가 아닌가. 게다가,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렇게 큰 부자라고 하니. 돈 좋아하는 그 남자가 왜 그 여자에게

        가기로 결심했는지는 안봐도 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가, 그 남자의 악행을 낱낱이 고했던 것이었다.

        내 얘기를 들었던 그 여자의 표정이.. 어땠더라.

        좀 울었던 것 같다. 아니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런 게 문제는 아니었다. 나도 아팠으니까.

        나도 미칠 것 같았으니까. 잠이 안온다.

(M)    Quando Quando Quando / Winterplay


(E) 커피잔에 커피 따르는


여      펜션에 딸린 작은 공용주방에 갔더니 그가 커피를 따르고 있다.


여      ....저기.

남      ....

여      저기. 잠깐만. 사람이 말하려고 그러는데.

남      왜.

여      이따가 잠깐만 시간 돼? 물어볼 거 있어서 그래.

남      됐어.

여      자꾸 신경이 쓰이잖아. 어제 거기로 저녁에 잠깐 나와.

        어차피 나 내일 아침엔 다른 데로 간단 말이야.

        8시부터 기다릴테니까 틈 봐서 나와.


여      그날밤. 그는 10시가 다 돼서야 나타났다.


(E) 파도 소리


남      물어볼 게 뭔데.

여      어제 그 얘기 말이야. 너무 궁금해서... 잠이 다 안오잖아.

남      뭐가 알고 싶은데.

여      그때 나한테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 여자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      ....그걸 왜 이제 물어봐?

여      뭐?

남      차라리 그때 물어보지. 왜 사람 뒤나 캐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여자 몰래 찾아가서 그런 말이나 하고.

여      그럼 내가 가만 있었어야 한다는거야? 니가 나한테 한 짓은

        생각 안해? 난 1년 반 너랑 사귀고. 그렇게 비참하게 차이고 나서

        여태 10년 동안 남자 만나본 적도 없어. 그래. 감성이란 게

        나한테 남아 있나. 정말 바짝 말라버린 거 아닐까.

         내가 다시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난 그래.

        회사에서만 웃고 떠들다가, 집에 오면 티쪼가리 입고 맥주나 마시고.

        그러구 살아. 휴가도 나 혼자 왔고. 돌아갈 때도 혼자 돌아갈거야.

        그리고 난 지금 서른 일곱이야!

        그게 어떤 의민지 니가 알기나 해? 그런데 내가 왜 그 시절을 궁금해

        하지도 못한다는거야!

(M)    체념 / 빅마마


(E) 파도 소리


여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어놓고 몇십분 동안이나 우리는

        까만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저 멀리로

        등대 불빛만 깜박깜박..했다.

        

여      여기 밤 12시까지밖에 못 있어. 아까 보니까 12시부터 6시까진

        출입금지라고 써있더라.

남      그 여자 죽었어.

여      ....어?

남      너한테 그 얘기 듣고.. 미국 들어가서.. 3개월 있다가.

여      ...(충격)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뭐야... 말도 안돼.

        아니.. 왜? 내가 그런 얘기 좀 했다구? 나 별 얘기 안했어.

        너랑 나랑.. 사겼다구.. 너 양다리라구..

        그거 때매... 죽었다구?

남      그것 때문은 아니구.

여      그게 무슨 소린데.

남      내 잘못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야. 내가 그땐 너무 정신이 없어서

        너한테 이런저런 설명 못하구 그랬던 건 미안하게 생각해.

여      아니 이제 와서 그런 얘긴 필요없구.

        아까 그건 무슨 소리냐구.

남      원래 병이 있었어.

여      .... 병?

남      니 말대로 나 돈 좋아하고. 처음에 그 여자 좋아한 것도 돈 많은

        여자라 그랬던 것도 사실이기는 한데. 아니었었어. 정말 좋아했었어.

        너무 좋아서 정신 못차리게.. 그랬어.

여      나 만나면서?

남      그래. 너 만나면서. 너한테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입이 안 떨어 져서.. 그런 식으로 헤어지자 그랬었어. 그런데 너랑 헤어지고 얼마     안돼서 그 여자가 미국 들어가 버렸고. 연락도 안됐어.

        그리고 수소문해서 겨우 연락처 알았을 때. 그 여자 죽었단 소식만

        들었어. 수술했는데, 실패했대.

여      .....말도..안돼...

남      그 동안 왜 그렇게 갑자기 가버려야 했는지 몰라서

        답답했는데. 어제 알았어. 그게 다 너 때문인 거.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거 알려주지도 못한 거..

        다 너 때문이야.

여      아니.... 나는.....

남      넌 감정이 바짝 말라버린 것 같다 그랬지.

        난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어. 오늘 같이 온 그애..

        열흘전에 나이트에서 만났어.

        누굴 만나도 한달 이상 못가.

        누굴 진짜 사랑하지도 못해.

        나도 서른 일곱이야. 나도 이렇게 살고 있어.

(M)    7년간의 사랑/ 규현


(E) 새소리

(E) 걷는


여      설악산에 왔다.

        굽 높은 웨지샌들을 신은 상태지만

        난 등산을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가에... 맘 비우고 편안하려고 강원도 왔다가

        이게 웬 날벼락인가.

        차라리. 안만나고.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10년전에 만나 가물가물한 그 여자의 얼굴이

        생각날 듯... 말 듯...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울던 모습은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도 괜히 찡했던 것

        같다. 둘은 정말 사랑했구나....

        그 사랑을.... 내가 망쳐놨구나.

        나는 그때....그녀에게.... 그 남자에겐 진심이라곤 없다고...

        너 좋다고 말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고....

        다 돈 때문에 쇼하는 거라고....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아마 질투였을 것이다.

        그 자리에 나갈 땐, 어느 돈 많고 싸가지 없는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는 예뻤고. 수수했고. 착해 보였다.

        그래서, 질투심에 더 막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눈물도 흐르는 것 같다.

(M)    이별 못한 이별 / 지선


(E) 절룩절룩걸어오는


여      산에서 돌아와 펜션으로 돌아가는데.

        입구에 그가 서 있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옆을 스쳐 지났다.


남      안 가?

여      갈거야. 새벽에 잠깐 산에 갔다오느라구.

남      다리는 왜 그래.

여      발바닥이 좀 까졌어.

남      산에 가면서... 신발 꼬라지 봐라.

여      산에 갈 거는 계산 안하고 온거거든?

남      니가 늘 그렇지. 계산이라곤 못하지. 계획도 없고.

여      비꼬는거야 지금?

남      그냥 사실을 말하는거야.

여      들어가. 여자친구가 보면 오해하겠네.

남      걔 서울 보냈어.

여      왜?

남      기분이 영 아니라서.

여      나 들어갈게. 짐 싸야돼서.

남      그래 그럼.

(E) 몇걸음 걷다가


여      그리구...

남      ....

여      (담담하지만 슬픈)

        그 일은 미안해. (사이) 몰랐어. 정말 몰랐어. 몰랐으니까 그랬지.

        나도 사람인데. 둘이 그 정도로 좋아하고. 그랬던 거 알았으면

        그러진 않았겠지. (사이) 아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도 그땐 제정신 아니었으니까. 너한테 채이고... 나도 진짜..

        확 죽어버릴까... 까지도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래도 미안하게 생각해. 너한테도. 그리고...

        그 여자분한테도. 착하고 좋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수술 잘못 된 게 꼭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정말 안좋아.

(M)    키작은 하늘 / 장혜진


(E)버스 지나가는 소리


여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가슴이 헛헛해졌다.

        사랑이 뭔데. 이렇게 지나고 나면. 시간만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데. 그게 뭐라고. 왜 그렇게들 절실하고

        절박했었나. 마른 모랫바람을 맞고. 눈에 뭔가가 들어가

        두눈을 꼭 감고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우는 것 마저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E)차 오더니 빵....


여      반짝 눈을 떴다.


남      어디로 가?

여      서울로.

남      벌써?

여      어.

남      타 그럼. 데려다 줄게.

여      됐어. 신경쓰지 말고 갈 길 가.

남      정말 안탈래?

여      안탈래. 암튼 고마워.

남      ......그래 그럼.

(E) 차 출발하고 조금 가다가 선다. 그리고 차 문 열리고 내리는.


남      (조금 멀리서) 나도 미안하다.

여      ......

남      나도 내 생각만 했던 거 맞아. 너한테 상처 줬고.

        그래놓고도 내 상처만 생각했던 것도 맞아.

        10년동안 꿈에도 생각 못했어. 너도... 힘들었을 거라는 거.

        이 세상에서.. 나만 힘든 줄 알았어.

        그리구... 절대로 니 잘못 아니야.

        그 여자앤 원래 많이 아팠고. 아마 그럴 운명이었을거야.

        그러니까... 괜히 마음 쓰지 마.

        다 지난 일이잖아.

여      ....그래. 고마워.

남      잘 가고. 나중에.... 언제 시간되면... 차라도 마시자.

여      어. 그래... 잘 가.

(E) 차 출발하고


여      내 마지막 사랑은, 그때 그 까페에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떠나는 차를 보니,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진심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어쩌면, 다음엔, 진심으로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같은 것도 든다.

        깊고 깊은 강원도의 어느 해안도로에서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M) 주제음

        







2009-08-07(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