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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9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99화 - 와인 마시는 여자


(M) 주제음 Red red Wine / UB40


(E) 꼴깍 꼴깍 꼴깍 맛있게 와인 마시는 소리 (에코처럼 유난히 크게 들려도 됩니다)


남      너 다이어트 한다며.

여      내일부터라고 말 했잖아.


(E) 비스킷 와작 씹어먹는 소리


남      12시 넘었거든?

여      나에게 내일은 아침에 눈뜨는 시간부터야.

남      내일 아침에 기억이나 나겠어? 이렇게 마시면서?

여      이런 굳은 결심을 기억 못할까봐 그래? 그런 걱정 말고 마시기나

        하셔.

남      내가 너의 굳은 결심을... 들은 게..가만 있어봐. 이게 벌써 몇 년째야.

        15년?

여      에에? 15년? 뭐가 그렇게 길어.

남      길지. 고등학교 때부턴데.

여      어우, 야 갑자기 끔찍해질라 그런다.

남      나도 마찬가지거든?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냐.

여      그러게. 너두 많이 늙었다.

남      너 말이야 너. 나는 그나마 학교 일곱 살에 가서 너보단
        사정이 낫거든? 넌 진짜 어쩔라구 그래.

여      뭘 어쩔라구 그래.

남      결혼 안해?

여      (도도하게 비웃어주고) 결혼? 나에게 결혼은 도피처가 아니야.

        나한텐 남들의 시선보단 내 인생 자체가 더 중요하고.

        내 미래. 그리고 성취하고 싶은 걸 성취하면서

        더 멋있게 늙어가는 내 자신이 중요해.

남      그래. 그럼 성취를 좀 하든가.

여      할거야.

남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늙어가는 것도 좋은데.

        그러려면... 취직부터 좀 하는 거 어떠냐?

(M)    정신차려 / 김수철


(E) 다시 꿀꺽 꿀꺽 마시는


남      (하품하고) 야. 3시 넘었다. 이제 가자.

여      마시던 건 비우고 가야지. 이 와인 진짜 맛있지 않냐?

        그리구, 중요한 건 이거 이거.. 이 치즈. 크래커 위에 요렇게 얹어서

        한입 싹 먹어주면..


(E) 와작 깨물어 먹고


여      예술이야.

남      너도 예술이야.

여      (좋아서 약간 이쁜 척) 내가?

남      남들 다 있는 눈코입... 다 있고. 뭐 하나 빠지는 거 없는데.

        정신만 쏙 빠져서는.

여      뭐?

남      너 그래도 예전엔 안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재작년에 준영이랑 헤어진 다음부터....

여      그만해. 


(E)와인잔 탁 내려놓고


여      마시기 싫으면 나가자. (나가려다가 기분 나쁜지) 아무리 마시기

        싫어두 그렇지. 왜 그렇게 술맛 떨어지는 소리를 하냐?

        내가 그 자식 이름 듣기 싫댔지?

남      아니 나는... 미안..

여      내가 진짜 딱 이것까지만 마시고 갈라 그랬더니.

        저기요. 이거 한병만 더 주세요. 저기.. 그르구 안주 리필 돼요?

(M)    달이 차오른다, 가자 / 장기하와 얼굴들


(E)


여      (고래고래 ‘헤어진 다음날’ 부르며 가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정도 가사)

남      야. 에이 진짜 정신 차려.

        내가 이러니까... 어후... 그냥 확 버리고 갈까부다.

여      버리고 가. 너 저번에두 나 버리고 갔잖아.

남      내가 언제. 나는 항상 너 데려다 줬다?

여      나 엘리베이터에 버리고 잤잖아.

        내가 우유아줌마한테 손가락 밟히고 일어나서 얼마나 그냥..

        챙피하고 민망했는지 니가 알어?

남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 줬으면 됐지

        내가 그럼 니 침대까지 데려다 주리?

여      그럼 안되냐?

남      얘가 얘가.. 정신이 있나 없나. 너 그렇게 헤픈 여자야?

        혼자 사는 여자가 남자를 침실까지 막 들이고?


(E)빡 머리 때리는


여      니가 남자냐?

남      (에씨..) 그럼 여자냐?

여      너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내.... 밥이지. 밥. (깔깔 웃고)


(M)    She Bop / Cyndi Lauper


남      그녀에게 나는 밥이 맞긴 맞다.

        우리가 15년 그 긴 세월 동안 내내 친구였던 건 아니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헤어진 연인이 맞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아니, 나만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

        우리는 1년 동안 사귀었었다. 그것도 열렬히 사랑했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그녀가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됐을 때.

        그녀는 신입생 환영회를 다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      우리 그냥 다시 친구하자.

남      뭐?

여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남      너.. 그새 누구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여      아니? 날 뭘로 보고... 나 그렇게 지조없는 애 아니거든?


남      아니긴. 나랑 그렇게 헤어지고 그녀는 체육교육과 남학생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결투라도 신청해 보고 싶었지만

        너무도 건장한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그냥 쿨하게 보내주자고 마음 먹었다.

        싸우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에게도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뒤로 우리는 언제 우리가 연인이었냐는 듯이

        그랬던 시간을 아예 잊어버린 듯이

        친구로 돌아갔다.

(M)    영원한 친구 / 다함


(E)비오는 소리


남      비오는 날 저녁.

        퇴근길에 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근처 와인바에 있다고 했다.


(E) 걸어오는 소리 + 와인바


남      오늘은 또 왜.

여      좀 앉아서 얘기해라.

남      나 지난번에 힘들었거든?

(E) 앉는 듯한

남      오늘은 짧게 해라.

여      누가 들으면 내가 주정뱅인 줄 알겠다.

남      그럼 아니냐?

여      얘는...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구. 호호.

남      너는 친구가 나밖에 없냐?

여      왜 없어. 있는데, 결혼들을 해서 문제지. 아니,참 이상들도 하지.

        결혼하면 왜 이 시간에 못 나와? 친구랑, 이 좋은 밤에,

        좋은 밤이 그냥 좋은 밤이야? 비까지 오는 좋은 밤에..

        와인이나 한잔 하면서, 도란도란 얘기 좀 하자는 게.. 그게 그렇게

        못할 짓이야? 이런 것도 못할 거면 결혼을 왜 해?

        난 이래서 결혼한 애들 안부러워. 그래서 내가 결혼을 안하잖아.

        안 그냐?

남      누가 물어봤어?

여      어?

남      니가 왜 결혼 안하는지, 내가 물어봤냐고.

여      .... 아니?

남      그럼 그냥 조용히 먹던 거나 드세요.

여      그래. 그러자.

(E) 몇모금 꼴깍꼴깍 먹고 나서

여      그런데 봉덕아.

남      뭐.

여      넌 왜 계속 날 만나?

남      니가 자꾸 전화하잖아.

여      너도 하잖아.

남      나는 가끔 하지. 니가 자주하잖아.

여      지금 그거 따지재? 전화 누가 자주 하나?

남      따지구 말고 할 것도 없이, 니가 자주 하잖아.

여      어우 이 답답아! 너는 왜 자꾸 날 만나냐구! 너 나 아직 좋아하니?

남      너 벌써 취했냐?

여      (후우 한숨 쉬고) 누군 그런다더라. 나중에 첫사랑을 우연히라도

        만났을 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피부 관리도 하고,

        몸매 관리도 한다고. 그게 첫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남      ..... 참 피곤하게도 사네.

여      그런데 우린 이게 뭐니? 첫사랑한테 아주 서로 바닥까지 보여주면서.

        늙어가는 모습 속속들이 다 보여주면서.

남      너랑 나랑 첫사랑이냐?

여      남자는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아름답게 긴직하고, 가슴 아파한다더구 만 이눔은 무슨...

        첫사랑한테 돈을 꾸질 않나, 떼먹질 않나...

        술 한잔을 마셔도 정확하게 더치페이 하질 않나....

남      피차 그게 부담 없잖아. 깔끔하고.

여      봉덕아.

남      뭐. 

여      나는 정말 너 사랑한다거나 그런 감정은 전혀 없거든?

        그때도 말했잖아. 나는 너를 내 밥으로 생각해.

남      근데 뭐.

여      그런데 우리 집에서 구박이 너무 심해. 이건 거의 인권이 없다고

        봐도 될거야. 결혼을 하든, 취직을 하든 하라는데.

        이런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취직은 아무래두 힘들 것 같구

        그나마 쉬워 보이는 게 결혼이거든. 그래서...

남      (아무렇지 않게 비스켓 같은 거 씹어먹으며)그래서?

여      우리 결혼할래?


(E) 흐르던 음악, 소음 뚝 끊기고 조용해지는. 정적 한참 흐르다.


남      그녀가 나를 보며, 결혼할래? 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결혼하자고.     

(M)    청혼/ 이소라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2부가 이어집니다


(M)


(E) 비오는 소리


여      너... 왜 그래?

남      어?

여      사형선고 받았어? 못먹을 약 먹었어? 표정이 무슨... 죽상도 이런

        죽상이 다 있니? 방금 내가 너한테 프로포즈 한건데?

남      너 나 좋아해?

여      좋아는 하지. 인간적으로다가. 나는 안좋은 사람이랑은 술자리 못해.

남      그래. 나도 그렇게 너를 좋아하긴 해. 그렇지만 너 나랑 결혼할 자신있어?

        결혼이 무슨 룸메이트 구하는 것도 아니고.

여      우리는 잘 통하잖아. 말도 잘 통하고. 그리구, 결혼하면 귀찮게

        밖에서 만나서 술 마시느라 돈 쓸 필요 없잖아.

        나는 꿈이 있어. 신혼집 한켠에 작은 와인바를 만들고.

        와인을 집에 차곡차곡 쟁여놓는거야. 밤에 남편이랑 둘이 와인

        마시면서 드라마도 보고, 무한도전도 보고...

남      술친구 구하는거야? 결혼이 그런거야? 그게 다야?

여      다는 아니지. 누가 그런 것도 모른대?

남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 니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는 지

        알기나 해? 니 무책임함이 너한테만 영향 미치는 거면 내가

        이러지 않겠는데. 나한테까지 폐 끼치면 안되지.

여      폐 끼치는거야? 내가 너랑 결혼하는 게?

남      당연하지.

여      너무하네 진짜.

남      나도 꿈이 있거든. 내 부인은 술은 입에도 못대는 사람이었으면 해.

        저녁 7시 넘으면 군살 붙는다고 음식도 안먹겠다고 할 정도로

        자기 관리도 좀 하고. 요가 같은 걸 한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자신을 가꿀 줄도 알고. 정리도 잘하고, 요리도 잘 하고.

        언제나 집에 들어가면 허브향이 느껴지는... 그런 집.

        그런 여자.

여      나랑은 정반대네. 지구 반대편에 가면 그런 여자가 있을까나..

남      서울에도 많아.

여      많으면 결혼하지 그러냐? 왜 아직 그러고 있어?

남      사실은 얼마 전에 선 봤어. 그리구, 그런 여자 찾은 것 같애.

(M)    10점 만점에 10점 / 2PM


(E)비오는 소리


여      그동안 내가 만났던 수많은 남자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때마다 괜히 심란하다며 밤에 와인바에 와서 술을 마시곤 했지만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첫사랑에게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찾았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건

        내가 버리기 전까진 영원히 내 것일 줄 알았던 오래된 도자기를

        잃어버린 기분이었고.

        그 도자기가 알고 보니 고려청자라더라, 그래서 몇천만원쯤

        하는 거라더라, 라는 걸, 아주 뒤늦게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눈뜨고 도둑 맞은 기분이었고. 이유 없이 뺨을 맞고도

        아무 대응 못하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남      왜 그래?

(E) 꿀꺽 마시고

여      뭐하는 여잔데?

남      네일 아트. 그런 거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나 단정하면서도 세련됐는지. 자기 샵 운영하고 있다는데

        능력도 있는 것 같고.

여      우리 한 병 더 마실까?

남      오늘은 간단히 하자. 나 이따가 약속 있어.

여      그 여자랑?

남      응. 같이 일어날래? 그럴 거 아니면 나 먼저 일어나고.

여      (다급) 너 있잖아. 나이도 어린 게 무슨 결혼을 그렇게 서둘러.

남      서른 다섯이 어려? 내 친구 중에는 애가 초등학교 간 놈두 있어.

여      ...... 요즘 추세는 그런 게 아니야.

남      결혼에 추세가 어딨어. 뭐 인생을 대세 따라 사냐? 지금 안 일어날거 면 나 먼저 간다.

(E) 일어나서 몇걸음 가는데

여      그래도 이런 게 어딨냐?

남      어?

여      내가 너한테 프로포즈 했잖아! 그런데 거절한 것도 모잘라서

        다른 여자랑 결혼할 거라고 그래? 뭐? 허브향? 허브향 좋아한다

        진짜!

(M)    질투 / 핑클


(E) 새소리


여      머리가 아프다. 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나긴 했지만

        한참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독한 술기운에 머리 아파하다

        겨우 눈을 떴는데. 뭔가 낯설다. 사방이 낯설다.

        천정의 스트라이프 벽지는 처음 보는 것이다.


(E) 벌떡 일어나는


여      침대보도 낯설다. 커튼도 그렇다.

        여긴 어딜까.


(E) 안에서 샤워하는 소리 들리고

        

여      누군가 샤워하는 소리에 또 한번 흠칫 놀랐고.

        이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침대 머리맡에서 그의 사진을 발견한 후에야 알 것 같았다.

        난 어제 저녁 너무 취해 그에게 업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눈밑은 마스카라가 다 번져

        너구리가 다 돼 있고. 눈을 벌겋게 충혈돼 있었으며

        머리는 떡이 져서 봐줄 수가 없었다.

        괴로운 심정으로 난 살금살금 욕실 앞으로 갔다.


여      봉덕아. 큼큼.. 봉덕아!

남      (안에서) 어! 왜!

여      나 간다.

남      술 깼냐?

여      어.. 대강.

남      너 어제 토해서 카페트 세탁소에 맡겼다. 나중에 세탁비 줘.

여      ..... 알았다 이 왕구두쇠야!


(E) 구두 신고 문 열고 나오는


여      서둘러 구두를 신고,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따가워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난 다시 한번 사태 파악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처음 보는 여자가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품에 도시락을 안고서.   

        누구지? 하다가 그녀의 예쁜 손톱을 보며 서서히 깨닫게 됐다.

        허브향....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하고 단아하다는....

        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의 여자였던 것이다.

(M)    질투 / 영턱스클럽


(E) 냉커피 쪼르르 빨아먹는


여      (잔뜩 기죽어) 뭐라고 말 좀 해봐.

남      무슨 말을 해.

여      싸웠어? 나를 노려보는데, 이건 정말.... 아주 잡아먹겠더라구.

        이쁘게 생긴 게 눈은 매섭대?

남      술 마시러 가자니까 왜 오늘은 또 커피야.

여      이런 날 술 마셨다간 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남      아는구나?

여      알지. 충분히 오해 받을 상황이었잖아. 나 같아도 돈다.

        내가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네 집에서

        아침에 웬 낯선 여자가 나온다고 하면....

남      전화 안받아.

여      안받지. 나같아도 안받는다. 미안해. 내가 진짜.. 할 말이 없다.

남      그래서? 어떻게 해줄건데?

여      내가 가서 그 여자한테 설명해 줄까?

남      뭐라구?

여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구. 그냥 어렸을 때 친군데 술 먹다가

        내가 정신이 나가서... 어쩔 수 없이....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구. 그러니까.....

남      아무 일도 없었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여      어???

남      너 필름 끊겼다며.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아냐고.

(M)    이 밤의 끝을 잡고 / 솔리드


(E) 꿀꺽꿀꺽 마시고, 잔 탁 놓고 


여      너 그거 무슨 소리야? 내가 어젯밤에 뭘... 했다고?

남      나한테 무릎 꿇었다고.

여      뭘 꿇어?

남      무릎.

여      내가? 왜?

남      너 울었던 거 정말 기억 안나?

여      내가??


(BG)살짝 흐르다가


여      (울고 있다) 정말 안돼? 난 안돼? 그 허브향인지 손톱인지

        냅두고 나랑 결혼하면 안돼? 나 있지... 솔직히 너랑 헤어진

        그 순간부터 진짜 계속 후회했단 말이야.

남      일어나. 너 왜 이러냐? 그리구 정신 들었으면

        니네 집 가. 왜 갑자기 우리 집에서 2차 하자고 해선.

여      안돼. 나 못 일어나. 너한테 결혼하잔 얘기 듣기 전까진

        못일어나. 

남      너한테 나는 밥이라며. 인간적으로 그냥 좋아하는 거라며.

        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다 결혼해? 그럼

        결혼을 몇 번해야 되는거냐?

여      너, 남자는 첫사랑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돼.

남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여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도, 첫사랑이랑 비교를 한단 말이야.

        비교를 해서 첫사랑보다 못하다 싶으면, 그 연애는 오래 못간다구.

남      그래서?

여      니가 그랬잖아 나한테. 뭐든 다 맞춰주구. 내 말 다 받아주구.

        니가 나를 그렇게 길을 잘 못 들여놔서, 내가 다른 남자들한테

        적응을 못하잖아.

남      니가 니 얘길 들어봐도 왠지 말이 안되는 것 같지?

여      왜 말이 안돼!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놨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디서 손톱이랑 결혼을 하겠대? 허브 좋아하네. 내가 너 결혼하면

        니네 베란다에 허브밭 아주 다 엉망을 만들어 놀거야. 가만 둘 거 같 애?

남      니가 맘보가 그러니 시집을 못가지.

여      우리 결혼하자. 응?

(M)    레시피/ 엄정화


여      ...말도 안돼. 내가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그렇지.

남      그래서, 결국 내가 졌지.

여      어?

남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기억 안나?

여      뭐??

남      나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구, 그 난리를 치는데. 어떡하냐.

        니 말대로 첫사랑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고. 그래서 내가 결혼해

        주기로 했지.

여      아니.... 그럴 리가. 내가 그랬을 리가....

남      대신 조건이 있었어. 그건 기억 나지?

여      기억 하나도 안난다니까!!!!

남      와인 끊기로.

여      뭐?

남      너 습관적으로 와인 마시는 거. 나 싫거든.

        나랑 있을 때야 그나마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

        너 취하는 것도 그렇고. 그랬더니 니가 그랬잖아.

        나랑 결혼만 할 수 있으면 술이든 뭐든 다 끊겠다구.

여      너어... 내가 기억 못한다구 막 아무 말이나 다 갖다 붙이구.

        내가 와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잖아! 그런데 내가

        아무리 취중이지만, 와인 다신 안 마시겠단 말을 했다구?

        말도 안돼.

남      그럼 이제 와서 발뺌을 하겠다구?

        남의 연애는 다 망쳐놓구? 너야말로 책임감이 왜 그 모양이냐?

여      아니.....

남      니가 울구빌구 난리쳤으니까, 결혼은 하자. 뭐 애들한테도  

        벌써 소문 다 퍼진 모양이구.

여      어?? 무슨 소문? 무슨 애들?

남      아니 창만이한테 아까 낮에 전화 왔길래 그냥 간단히 말했거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 그랬는데, 벌써 다들 안 거 같더라.

        너한테도 전화했을거야. 지금 배터리 없어서 통화는 안됐겠지만.

여      뭐?

남      애들이, 그러더라. 윤은서가 무릎까지 꿇고 결혼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축하한다구. 나보구 다들 큰 결심 했다구...

여      야아!!!

(M)    결혼을 할거라면 / 쿨


(E)꿀꺽꿀꺽 마시고


남      은서는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믿을 수 없다며, 자신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겠다고 했다.

        기억 날 리가 없다. 다 거짓말이니까.

        사실, 은서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번 반복됐던 일이었다.

        처음에 그 얘길 들었을 땐 정말인 줄 알고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술만 깨고 나면 은서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태도였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은서가 나에게 결혼하자는 말은

        그저, 습관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난 생각했다.

        그녀의 말을 정말로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서, 있지도 않은 선본 여자 이야기를 꺼냈고.

        은서가 잠든 사이에, 회사 후배에게 전화를 해

        내일 아침 우리집에 쳐들어와 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녀가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생각해 주길 기대했고.

        조금이라도, 책임져주길 바랐다.

(M)    결혼해줄래 / 이승기

        

남      생각해 봤어?

여      우리 와인 한잔 시켜놓고 얘기할래?

남      어허.. 약속을 지켜야지.

여      에이... 알았어.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 그런데.

남      ....그런데?

여      그랬던 것 같기도 해.

남      어?

여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구. 내가... 무릎까진 모르겠는데

        울었던 것 같기도 하구...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      ...... 내 말이 다 맞다니까? 이제 하나씩 기억날거야.

        그리구 오늘 저녁에 애들 다 모이기로 했다.

여      어? 벌써?

남      난 싫은데. 애들이 자꾸 모이재서.

여      너 무릎 꿇은 얘기 할거야?       

남      그냥 뭐... 나오면 하는거구.

여      야아... 하지 마.

남      그러니까 잘해..

여      어으 진짜.. 있어봐. 너무 목말라. 나 와인 딱 한잔만 마실게.

        여기요! 

남      안마시기로 했잖아.

여      아 딱 한잔인데 뭐 어때.


남      그녀가 다른 사람 앞에서 와인을 마시는 게 싫긴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은

        와인을 음료수처럼 꼴깍꼴깍 마시고

        맛있는 안주에 기뻐하는 모습이다.

        난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가슴 벅차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        

(M) 주제음

        

        

        

 





2009-07-09(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