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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4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94 화 - 우표 한 장


(M) 주제음 Please Mr.Postman / Carpenters


* 오늘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은  경기도 일산에서 청취자 조현미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입니다. 


(E) 띵똥띵똥...


여      (일어나려다 삐끗하는 듯) 아야.. 잠깐만요...

        (앓는 소리) 아우 허리야.... 죽겠네 진짜...


여      그날. 초인종이 울려대던, 15년 전 그날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난 며칠째 집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눈두덩이는 보라색 멍이 들어 부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긴 상처에

        발목 인대까지 늘어나 붕대를 감고 절룩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방에서 거실을 지나 현관을 또 지나

        마당을 지나 대문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래서 방문객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E) 초인종 시끄럽게 울리고


여      아우 알았다구요. 누군지 성질도 디게 급하네!


(E) 대문 열고


여      대문을 열자, 누군가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봐야 할 정도였다.

        멀끔하게 잘생긴 그 남자는, 우체부였다.

(M)    빨간 자전거를 타는 우체부 / 장필순


남      편지 왔어요.

여      아니.. 등기도 아니고 편진데. 그냥 우편함에 넣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여      잘생긴 남자만 보면 말이 순하게 나오는 편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안그랬다.

        상대 표정이 워낙 뚱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남      편지에 우표가 안붙어 있네요.

여      우표요?

남      우표값을 주셔야겠는데요.

여      제가 왜요?

남      최철민씨.. 아는 분이세요?

여      아..네. 제 친구에요.

남      편지 받으실거죠.

여      ...받아야죠.

남      이거 원래는 반송시켜야 하는건데요. 혹시 급하게 기다리는 편지일지

        몰라서 드리는 거에요. 그치만 우표값을 주셔야죠.

여      ....뭐 그러죠.


(E) 뒤적이더니 꺼내는


여      여?어요.

남      만원짜릴 주시면 어떡해요. 아주머니 잔돈 없으세요?

여      잔돈 없는데요.

남      저도 거스름돈 없거든요?

여      그럼 어쩌라구요. 저도 지금 잔돈 가진 게 없는데.

남      그럼 그냥 주시든가요. 반송시킬테니까.

여      어머? 아니 줬다 뺐는 게 어딨어요. 그냥 주세요.

남      아니.. 아주머니. 그럼 우표값을 주셔야죠


여      내가 정말 빈정이 상했던 건, 우표값을 달라는 그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소리.


남      아주머니. 왜 사람을 그렇게 노려보고 그러세요?


여      아.주.머.니라니. 

        난 그 당시, 주민등록증이 보증해주는

        확실한 20대 초반의 아가씨였으며.

        그것도, 총각들에게 한인기 하는

        소위 ‘잘나가는 아가씨’였다.

        그런데 나보고, 아주머니라니!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여      있죠. 내가 오늘은 이 편지 그냥 가져갈테니까

        다음번에 오실 때. 그때 우표값 드릴께요.

남      네?

여      나 못믿어요?

남      솔직히... 제가 아주머니를 뭘 보고 믿습니까?

여      우리집 주소 아시잖아요. 여기 적힌 내 이름, 보셨잖아요?

        내가 그깟 우표값 떼먹으려고 이사를 가겠어요? 개명을 하겠어요?

남      ....그거야 뭐...

여      담번에 오실 때 드릴께요. 됐죠?

(M)    Sunday Afternoon / Mocca


여      씩씩거리며 들어와 한참을 열받아 했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아주머니야? 진짜 웃기는 사람이야!

        하다가, 문득 거울을 봤을 때. 난 아차 싶었다.

        이 몰골은 누가 봐도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도 그냥 아주머니가 아니였다. 진상 아주머니였다.

        몸이 불편해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는 기름기로 떡진 채

        산발이 돼 있었고. 얼굴엔 여기저기 멍자국. 거기에 눈두덩이는

        심하게 부어 있어, 이 모습은 마치.. 부부싸움 하다가 남편에게

        얻어터진... 가련한 여자 같기도 했다.

        게다가 몸이 불편해 엄마에게 얻어 입은 꽃무늬 월남치마에

        목이 늘어나고 김치 국물이 묻은 티셔츠는 또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멀끔하게 잘생긴, 뭐.. 잘생기긴 했지만 좀 싸가지가 없는

        젊은 우체부가, 날 좀 이상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

(M)    나도 여자랍니다 / 장나라


(E) 띵똥띵똥


여      누구세요?


(E) 탁탁탁 달려가 문 열고


여      어.. 안녕하세요.

남      네.

여      우표값 받으러 오셨어요?

남      등기 왔어요.

여      아..네. 아, 그리구 그때 그 우표값이요.

남      됐어요. 

여      왜요? 그땐 아주 당장 안내놓으면 날 아주 잡아먹을 것처럼

        그러시더니?

남      내가.. 언제요.

여      그러셨으면서.

남      그런데 같은 사람 맞아요?

여      네?

남      그때랑.. 같은 분 맞냐구요.

여      네. 맞아요.

남      .....아..

여      왜요? 다른 사람 같아요?

남      아니.. 뭐 솔직히 좀 그러네요.

(E) 동전 짤랑거리며

여      이거 안받으실거에요?

남      ...됐어요. 안녕히 계세요.


(E) 가려는데


여      저기요. 

남      네?

여      제가 우표값 대신에 빵이라도 좀 사드려요?

남      네?

여      아니.. 빵요. 저기 골목 입구에 새로 생긴 제과점 빵 맛있거든요.

(M)    니가 참 좋아 / 쥬얼리


(E) 가벼운 노래 흘러나오고


여      드세요.

남      나 근무시간에 이러면 안되는데.

여      잠깐 빵 먹는건데 뭐 어때요. 어차피 점심시간인데.

남      암튼.. 사주시는 거니까 잘 먹을께요 아주머니.

여      !!!! 제가 아주머니로 보여요?

남      네?

여      아니.... 오늘도 제가 아주머니로 보이냐구요.

남      아니세요?

여      ....(꾹 참고) 아니거든요. 저요, 어딜 가도 다들 동안으로 보지

        더 들어뵌다고 안그러는데.

남      아니 나는 저번에 뵈니까 눈탱이가 밤탱이 돼 있길래

        부부싸움하신 아주머닌가.... 그랬죠.

여      (또 꾹 참고) 뭐 그러셨을 수 있죠.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굳이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요.

        제가 그때 교통사고를 당하게 돼서.. 꼴이 그모냥이었던 거지...

        평소 제 모습은 이렇답니다. 오늘 보니까 어떠세요.

        확 다르죠.

남      뭐 딴 사람 같기는 하네요.

여      그러니까요! 저 원래 정말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남      그런데요. 그걸 꼭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서 설명하실 이유가 있나요?

여      ...네?

남      보니까 준비 다 하고 기다리셨던 것 같은데.

여      무슨 준비요?

남      아까 제가 편지 배달 갔을 때 그냥 집에 계셨던 거 아니에요?

여      네!

남      그런데 화장 다 하고. 립스틱에.. 눈에 그 뭐냐... 핑크색 그런 거 다 칠하고. 누가 집에서 그러고 있어요?

여      (뜨끔) 저기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남      아니긴요. 이집 단팥빵 맛은 있네. 

여      진짜 웃기는 아저씨네! 좋게 좋게 얘기하려고 그랬더니!

남      네?

여      그쪽 만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데이트 가려고

        준비중이었던 거거든요? 아까 등기 봤죠? 그것도 나 좋아하는 남자가

        보낸거구요. 저번에 그 편지요. 최철민이가 보낸 거 그거.

        그것도 철민이가 저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보낸 거거든요. 뭘 좀 알고 말씀하세요.

남      그래서요?

여      예?

남      그래서.. 날더러 뭘 어쩌라구요.

여      ......안녕히 가시라구요.

(M)    Goodbye / Mary Hopkin


여      치욕..치욕.. 망신.. 망신..

        그런 대굴욕이 없었다. 펜팔이 성황하던 그 시절.

        난 수려한 글솜씨와 뒤지지 않는 미모빨로

        많은 또래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자타공인 퀸카였는데.

        어쩌다가 이상한 인연으로 엮인 이 남자 앞에서는

        이리도 추한 꼴만 보이게 되는건지.

        제과점을 뛰쳐나와 걸어가는데.

        뒷통수가 따끔거려 괴로웠다.

(M)    어머나 / 장윤정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M      The Letters / Box Tops

(E) 띵똥띵똥...


여      누구세요?


(E) 대문 열고


여      (뾰로퉁) 안녕하세요.

남      네. 등기요.

여      네.

남      등기가 자주 오네요. 소포도 자주 오고.

여      네.

남      진짜 인기가 많은가봐요. 뭐 본인 입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

        저도 처음 보긴 했지만. 암튼.. 거짓말은 아니였나봐요.

여      전해줄 거 전해주셨으면 가보세요.

남      아... 이거 빼먹었다.

여      네?

남      이거요. 

여      뭐에요 이게?

남      영화푠데. 가고 싶으면 가라구요.


여      ......이건 뭐냐. 같이 갈까요? 도 아니고.

        가고 싶으면 가라고?


여      달랑 한 장 주면서 가긴 어딜 가요?

남      나도 같이 가주면 좋겠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요.

여      같이 가줘요? 같이 가주긴 누가요? 같이 가줘도 내가 같이 가주는 거지!

        저번부터 말씀을 너무 이상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남      혼자 가기 그렇다는거잖아요.

(E) 영화표 찢는


여      지금 뭐해요?

남      이건... 그럼 별로 소용없으니까 버리고.

        이건 어때요. 이거는 이번주 일요일 푠데. 이땐 내가 시간이 좀 되는데.

(M)    Macho Man / Village People


여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없지는 않았던 듯 싶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접근해 온 거 아니겠는가.

        늘 남자들에게 대접만 받고, 추앙만 받아오던 내 입장에선

        전형적인 나쁜남자 스타일인 그 남자에게

        은근히 끌리는 것 같기도 했다.

        첫데이트날. 

        다른 남자들을 만나러 갈 때보다

        두배는 더 공들여 화장을 했고.

        세배는 더 긴장이 됐고.

        네배는 더 설레였던 것 같다.

(M)    데이트 / 쥬얼리s


(E) 또각또각... 들어가는


남      오셨어요? 좀 늦으셨네요.

여      네. 아우.. 낮잠 자다가 약속 깜박할 뻔 했지 뭐에요.

남      네에.. 그런데 속눈썹 떨어지셨네.

여      네? 어..어디...

남      거기.. 볼... 아니 오른쪽 말고 왼쪽.

여      (후우...) 네. 감사..해요.

남      원래 속눈썹도 긴데 뭐하러 인조속눈썹을 붙여요?

여      그냥 좀 넘어가세요.

남      나는요. 화장 너무 진하게 하는 여자 별로에요.

여      하! 뭐에요?

남      그리구 특히 립스틱 빨간색은... 내 스타일 아니에요.

        쥐잡아 먹은 것 같잖아요.

여      뭘 잡아먹어요?

남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미니스커트 별로 안좋아해요.

        내가 종손에..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그런지

        암튼 여자 보는 눈도 좀 보수적이네요.

여      어머. 웃겨 진짜. 별꼴이야! 어머어머어머.

(M)    Hawaian Couple / Humming urban Stereo


여      진짜 이상한 남자라고 난리난리를 쳤지만

        다음번 약속 때 난 연한 화장에 핑크색 립스틱을 칠하고

        청바지를 입었다.


여      내가 진짜... 너한테 잘 보일라고 이러는 건 절대 아니거든?

        나는 그냥.... 요즘 이런 스타일이 땡겼을 뿐이야!!!!

        치마를.... 긴 거를 사 볼까?


여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난 진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고 했던가.

        내 앞에서 당당하기만 한, 그에게

        난 약자였다.

        뭔가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M)    사랑밖에 난 몰라 / 호란


(E) 공원 소음들


여      자기야~

남      (무뚝뚝) 어 왔어?

여      자기 어제 우리집 왔다갔지. 편지 배달온 거 봤어.

남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여      응. 뭔데?

남      자기한텐 왜 그렇게 편지가 많이 와?

여      응?

남      그것도 죄다 남자들한테만.

여      (진지) 자기야. 내가.. 남자들한테 인기가 좀 많아.

남      왜?

여      그거 모르는 건 자기 뿐이야.

        내 얼굴을 좀 봐. 이쁘잖아. 몸매를 봐. 잘 빠졌잖아.

        나 안좋아하는 남자들이 이상한거야.

남      나는 너 보면서 한번도 이쁘다는 생각 해본 적 없거든?

여      뭐? 그럼 안 이뻐?

남      뭘 이뻐. 평범하지.

여      뭐어? 그럼 자기는 왜 날 만나?

남      니가 날 좋아하잖아.

여      뭐가 어째?

남      아니야?

여      그건.. 맞아.

남      난 기본적으로, 날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

여      그럼. 또 자기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 여자도 좋아할거야?

남      그건 아니지. 나는, 또 기본적으로 의리가 있거든.

        날 먼저 좋아하는 여자를, 우대해준다는 게 내 원칙이야.

여      무슨 선착순이냐? 먼저 좋아하는 여자를 우대하고 말고 하게?

        증말 말을 해도 꼭 정 떨어지게!

남      오늘의 핵심은 그게 아니야.

        내가 딱 보니까 너 펜팔하는 것 같던데. 그거 끊어.

여      나는 답장 안해. 그쪽에서 자꾸만 미련 못 버리고 답이 오는거지.

남      그걸 왜 못짤라내. 더 이상 편지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되잖아.

여      군대에 있는 애도 있고. 그런 애한테 괜한 소리 했다가

        탈영이라도 하면 어떡해. 걔가 다혈질이라 그러고도 남는단 말야.

남      그럼 어쩔건데! 그 남자들 상처 받을까봐.

        계속 편지오게 만들겠다구?

여      뭐 어때! 그러다 지치면 말겠지. 내 마음이 확실한데 무슨 상관이야?

남      내 입장은 생각 안해?

여      무슨 입장!

남      너한테 오는 러브레터를, 배달하는 내 마음!

(M)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


여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엔 아차 싶었지만

        자존심 상, 굽히고 싶진 않았다.

        그는 정말 화를 내며 가 버렸고.

        그 이후 연락이 없었다.

        휴대전화가 거의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는 집전화로 연락을 하거나 편지로 마음 속 이야기를

        전하는 수밖엔 없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는 그 사람 때문에

        하루하루 가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몇 달이 지나며 거의 폐인처럼 시들어가던 난

        더는 참지 못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여      편지 봉투에 우표 붙이지 않았지만, 잘 알고 있겠지?

        내가 보낸 편지라는 거.

        우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내가 살아온 24년의 시간 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져.
        연애라는 게 서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아 좋아하게 되는

        데까지가 아니라. 그 다음부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싸우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또 그리워하고.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M)    Love Letters/ Julie London


여      우표도 없이, 수신인 발신인도 없이 몇통의 편지를

        우편함에 넣어두었다.

        편지들은 꼬박꼬박 없어졌지만,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조금은 지쳐가고 있었다.

        조금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날.


(E) 전화벨 소리


여      여보세요.

남      나야.

여      .... 웬일이야? 이 오밤중에...

남      잠깐 나올 수 있어?

여      부모님 계셔.

남      몰래 나와. 여기 치킨집 앞이야.

여      싫어.


여      ........라고 해놓고. 나는 신발을 품에 안고 까치발로

        몰래 집을 빠져 나갔다.  


(E) 맥주따르고


남      마셔.

여      난 맨정신으로 하는 말 듣고 싶어.

남      편지 잘 받았다.

여      알아. 답장은 없더라.

남      ....

여      그래서 나도 포기했어. 솔직히 처음부터도 뭔가 내가 손해보면서

        끌려간다는 생각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거,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라곤 생각 안하거든.

        그런데 내가 이렇게까지 사과하고, 그랬는데도

        무슨 반응도 없고. 나도 힘들어서 그만 두려구.


(E) 뭔가 턱 내놓는


여      이게 뭐야?

남      내가 그동안 너한테 썼던 편지들. 그리고 니 편지에 대한 답장들.

여      ...... 이렇게..많이?

남      ....

여      그런데 왜 안줬어? 사람 속은 다 타들어가게하고? 장난쳐?

남      내가 말주변도 없잖아. 맘에 없는 말만 하고. 너 속만 상하게 하고.

        글솜씨는 더 없거든. 글씨도 봐. 너한테 멋진 펜글씨로 편지 보내던

        녀석들하곤.... 너무 다르잖아.


여      못쓰긴 진짜 못썼다. 무슨 글씨가.. 초등학생 글씨같은지.


남      괜히 니가 내 마음 알고 나면, 더 실망할까봐.

        다른 녀석들하고 비교하게 될까봐. 두려웠어.

여      자기두 뭐...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야?

남      누구보다 훨씬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위축되는 그 마음

        세워보려고. 니 앞에서 더 쎈 척.. 했던 거야.

여      누가 그러래. 난 그런 거 상관없는 사람인데.

        글씨가 지렁이 아니라 지렁이 할아버지래두. 나한텐 자기 글씨가

        최고구. 그 글씨로 써준 편지 한통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남      그럼.. 이거 다 가져. 다 갖고... 우리.... 청첩장 찍어서 돌리자.

        편지 돌리는 건 내 전문이니까. 내가 할게.

여      자기야..... 


여      지금 우리는 부부다.

        별별일 다 겪으며, 사랑이라는 말은 입에 담고 살지 않지만

        이런 게 사랑이구나... 느끼면서 살아가는 부부다.

        우리 두 사람의 장점만 쏙 빼닮은

        두 아이의 엄마 아빠다.

        우표를 붙이지 않았던 편지 한 통.

        그 편지를 보냈던 사람은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귀한 인연 맺어준 중매쟁이인 셈이니

        이 자릴 빌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M) 주제음







2009-06-0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