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93 화 - 바보


(M) 주제음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 이승철


여      나에겐 바보 같은 남자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받은 게 없는데도

        한마디 불평도 없었던 사람.

        그렇게 나의 등만 바라보았던 사람.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던 사람.

        아니, 그 말조차 아꼈던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M) 기억속으로 / 이은미


(E) 비오는 소리


남      은서야.

여      어.. 오빠. 왜 왔어?

남      너 학원 끝나면 우산 필요할 것 같아서.

여      됐어. 좀 이따 그치면 갈거야.

남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서 그렇지.

여      됐다니까.. 귀찮게...

남      .....


여      그 사람은 오래 살던 집의 옆집 오빠였다.

        너무 어려서부터 살아서인지

        너무 편했다.

        그리고 너무 잘해줘서인지

        전혀 고맙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리고 내 곁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있었다.


(E) 핸드폰 누르는 소리


여      여보세요? 어 진규 오빠. 어디야? 나 지금 비가 와서.... 학원 앞.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어? ..........왜 안돼? .........알았어.


여      물론 내 옆에 머물렀던 남자들 치고

        그 사람보다 더 잘했던 사람은.. 없었다.

(M) All For You / Cool


(E) 비오는 소리, 걷는 소리


여      속으론 고소하겠다?

남      뭐가 고소해..

여      그렇잖아. 잘난척 하면서 우산 받아 쓰기 싫다더니

        아무도 없으니까 할 수 없이 같이 우산 쓰고 가는 거잖아.

남      아까 나오다 보니까 너희 엄마 아버지 일하러 가시더라구.

        그래서.. 집에도 아무도 없구.. 너 비 맞을까봐.... 그런거 뿐이야.

여      ......대학생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남      공부 다 끝내고 온거야.

여      하긴... 과수석에.. 전액 장학금 받고 다니는 분이시니... 뭐....

남      공부는 잘돼?

여      잘 될 게 뭐 있어.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봐야

        엄마 아빠 등골만 빼먹는 거 같고.

        공부 안하고 취직하고 싶은데 그건 절대 안된다시고.

        할 수 없이 하는 거 뿐이야.

남      그런 생각 하지 마. 부모님은 뭐.. 너 뒷바라지가 힘들지 않아서

        대학 가라 그러시겠어?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아서 더 큰 사람

        되라고...

여      무슨 도덕 교과서 녹음해서 틀어놓은 거 같애.

남      ....뭐?

여      오빠랑 얘기하는 거 말이야. 도덕 교과서 재생시키는 것 같다구.

        너무너무.. 지루하고. 심심해. 답답하구.

(M)  A Whiter Shade of Pale / Annie Lennox

여      초여름이었다.

        붉은 장미가 가난한 동네를 화려하게 꾸며주고 있던 그때.

        난 대학 신입생이었고.

        그는 군에서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E)딩동..


여      누구세요?


(E)슬리퍼 끌고 나가는, 대문 삐꺽 열어주고


여      어? 오빠.

남      휴가 나왔어.

여      벌써? 군대 간지 얼마 안됐잖아.

남      임마.. 잔인하게. 너 군대 가서 하루하루는 일반인 1년 보다 길어.

여      그래? 앉어. 뭐 마실 거 주까?

남      그럼 고맙고.

여      있어봐. 오빠 미숫가루 좋아하잖아. 얼음 동동 띄워서 줄게.


(E) 미숫가루 저으며 오는 듯한


여      마셔.

남      어. 

여      얼굴 완전 까매졌다.

남      너두 군대 가 봐.

여      치....

남      학교 생활은 할 만 해?

여      바쁘지 뭐. 수업 끝나면 까페 아르바이트에 과외에...

남      까페 아르바이트도 해?

여      응. 학교 앞에서. 그거 몇시간 하고 나면 종아리가 퉁퉁 부어.

남      내가 빨리 제대해서 너 데려가야겠다.

여      어머? 누구 맘대로?


여      ........장난 삼아 한 말이었겠지만

        그가 그런 식으로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 했다.

(M) 아름다운 구속 / 서영은

        

(E) 기차역 소음


여      다음 휴가는.. 언제야?

남      좀 있어야지. 편지할게.

여      편지는 뭐하러 해.

남      답장해줄래?

여      ... 뭐 봐서...

남      그래. 들어가. 학교 늦겠다.

여      어...

남      간다.


(E)몇걸음 가는데


여      저기...

남      응?

여      전화도 하든가...

남      응?

여      전화 말이야.. 전화. 하고 싶으면.. 하든가...

(M) 내 남자친구에게 / 핑클


여      연애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고 이상한... 그런 걸 시작하게 됐다.

        그 사람이 편지를 보내면 답장도 하고.

        가끔은 면회도 가고.

        또 휴가 나오면 만나서 영화도 보고. 집까지 오는 길에

        산책도 하고.

        그 사람이 없을 때 그 사람 생각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특별한 날엔 옆에 없다는 사실에 괜한 원망을 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게 사랑인 줄은. 잘 몰랐다.

        그냥 곁에 아무도 없는 게 허전해서.

        누군가.. 다음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그렇게 만나는 것 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단 하나의 운명의 사람이

        나밖에 모르는 옆집 오빠라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한없이... 누군가를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M) Baby, I'm a fool / Melody Gardot


(E) 뛰어오는 소리


남      은서야!

여      드디어.. 왔네?

남      고맙다.

여      뭐가 고마워.

남      나 제대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줘서.

여      기다린 거 없어. 그냥... 난 내 자리에 있었을 뿐이지.

남      그러니까. 그게 고맙다구.

여      아저씨 아줌마한테는 갔다 온거야?

남      전화드렸어. 얼굴은.. 너부터 보고 싶어서.

여      어으... 바보.

남      (착하게 웃고)

여      바보....

남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나 돈 많어.

여      나 약속 있는데.

남      무슨 약속?

여      누구 좀 만나기로 했어.

남      그래? 그럼 내일 저녁에 보지 뭐.

여      바보...

남      왜 그래?

여      아직 눈치 못 챘어?

남      응?

여      나 다른 남자 만나.

남      .......

여      심각하거나 오래되거나 깊은 사이는 아니고.

남      .......

여      그런데 어쨌든 만나.

남      그럼.. 이제 그만 만나. 그럼 돼.

여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오빤.

남      ..

여      그래서... 오빠가 그렇게 바보 같으니까.. 늘 나한테 있어서

        두 번짼거야. 내가 어떻게 해도 늘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 밀리는 거라구.

(M) 이제 그만 / 이소라


여      지금 생각해도 참 잔인하게 말했던 것 같다.

        이제 그만 따라다니고. 연락도 그만해 달라고.

        우리가 남들이 말하는 진짜 연애를 했던 것도 아니지 않냐고.

        하다못해 손 한번 잡아본 사이도 아니지 않냐고.

        결혼하자는 둥... 미래를 같이 하자는 둥..

        그런 얘기를 해본 사이도 아니지 않냐고.

        그러니까. 심각하게도, 슬프게도 생각하지 말고.

        그만 보자고.

        솔직히 나를 위한다면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피해 달라고.

        그 사람은 나를 언제나 최고로 대접해 줬기 때문에

        나는 늘 그 앞에서 당당했다.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해도

        어떤 식으로 비난해도.

        괜찮은 거라고. 믿었다.

        참. 건방지게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방적인 나의 밀어냄으로, 헤어졌다.

(M) 바보/ 박효신

-------------------1부 끝 ------------------------


(E) 매미 소리


여      이듬해 여름.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는 내가 원했던대로 헤어진 후 한번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실수로라도 마주치지 않았다.

        참 독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슬며시 궁금해졌다.

        사람의 마음은 그처럼 참 간사한 것이었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건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이렇게까지 무소식일 수 있는지

        슬쩍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E) 대문 열고 나오는 소리


여      그의 집 앞을 괜히 서성이던 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남      은서야.

여      오랜만이야.

남      어, 그러네.

여      바빴나봐? 

남      취직 준비하고 그러느라 바빴지.

여      엄마한테 얘긴 들었어. 취직했다며.

남      어. 

여      좋은 데라 그러던데.

남      글쎄.. 회사가 다 그렇지.

여      이거 오빠 차야?

남      회사가 멀어서... 한 대 샀어.

여      일요일인데 어디 나가?

남      명동에. 친구랑 약속이 있어.

여      그래? 나도 명동백화점 가는 길인데. 나 태워줄 수 있어?

남      ....그러자.

(E)차 가는 소리


여      .......그런데.. 친구가 여자야?

남      아니. 고등학교 동창들.

여      아 그렇구나. 동창회?

남      뭐.. 비슷한...

여      그럼 꼭 안가도 되겠네?

남      응?

여      아니... 나 갑자기 드라이브 하고 싶어져서.

        그냥 강변북로 타고 어디 시원한데 가면 안되나?

남      ...

여      안돼?

남      아니. 괜찮아. 그러자.

여      정말? 


여      자신감이 다시 생기는 기분이었다.

        역시. 이 사람은 나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나밖에 모르는, 나만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난 다시 행복해졌다.

(M) 그대 내게 다시 / 럼블피쉬


(E)강물 흘러가는 소리


남      은서야. 

여      응?

남      1년 동안 생각 많이 했었어.

여      무슨 생각?

남      일곱 살 때 너 처음 우리 옆집에 이사왔던 날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널 잊고 살아온 날이 없어.

        너 없는 나를 생각해본 날도 없어.

여      .....

남      넌 아니었겠지만.

여      알아. 오빠 잘난 사람이잖아. 어디 가서 기죽거나 자존심 굽히거나

        그러는 사람 아니잖아. 그런데.. 나한테만. 내 앞에서만. 그러는 거

        알아.

남      ......

여      고마워. 늘.

        그런데 이상하지? 오빠가 고마운데. 왜..  오빠 마음이랑    내 마음은

        다를까?

남      달라도 돼. 다를 수 있어. 다른 게 나쁘다곤 생각 안해.

여      내가 걱정스러운 건. 우리가 혹시라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난... 나를 못믿겠어.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을 것 같아.

남      나도 알아. 그런 건 다 알면서도 너를 버릴 수 없는 게

        뭐.. 거창하게 말해.. 내 운명 같은 거 아닐까.

(M)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김동률


여      그렇게 또 우리는 다른 사랑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또 한번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내 손을 잡았을 것이다.

        이번엔 서로 나이도 있었고.

        부모님들도 우리의 교제를 다 아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나고 1년이 넘었을 땐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됐다.


(E)대문 열고 나오고     


여      오빠.. 

남      어. 이 시간에 왜?

여      잠깐 놀이터로 가.


(E) 그네 왔다갔다...


여      난 여기서 그네 타는 게 참 좋아. 여기서 흔들흔들 하고 있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거든.

남      너 어렸을 때도 나한테 늘 이 그네 밀어달라고 그랬었잖아.

여      그랬지. 오빠가 나 여기서 그네 타면 노래도 많이 불러줬잖아.

남      오늘도 뭐.. 머리가 복잡해?

여      아까 오빠네 엄마 왔다가셨거든. 우리 엄마랑 결혼 문제 의논하시러.

남      ...어.

여      그런데 집을 해주실 형편이 안된다고 하시면서

        들어와 사는 건 어떠냐 그러셨대.

남      ..... 그건 걱정마. 나 혼자도 집 얻을 정도 능력은 돼.

여      전세? 월세? 아니면 대출?

남      무슨 상관이야. 둘이 벌면서 천천히..

여      천천히.. 몇 살까지.... 예순까지? 우리 엄마 아빠처럼?

        자식 하나 대학 보내는 것도 허덕허덕해가면서?

        혹시 누구 하나 병에라도 걸리면 치료비 없을까봐 전전긍긍해가면서?

남      왜 그러는데...

여      싫어서. 내 인생 1막이 이렇게 허접하고 빈티났는데.

        2막도 그러는 건 너무 싫어서.

남      .....

여      나 만났던 남자들, 왜 다들 나 떠났는데.

        우리집 별로라는 이유로. 혹시 결혼하면 우리집 거두라 그럴까봐

        지레 겁들 먹고...

남      난... 우리집은 물론 너희집도...

여      오빠 그럴 능력 돼?

남      능력 돼.

여      알아. 오빠 똑똑한 사람인 거. 그렇지만... 혼자 능력 있다고

        잘먹고 잘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야.

        난 정신이 번쩍 들더라.

        오빠 어머니가... 결혼 얘기 하시는데....

남      나 믿어. 내가 내 몸이 부서져도.. 내가 해.

        내가 너도 책임지고.. 너희집도 책임져.

여      오빤 왜? 오빠가 무슨 죄야?

        내가 정말 충격받은 얘기 해줘? 오빠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오빠 죽어라 쫓아다녔던 여자가... 디게 부잣집 딸이었다며?

        3년이나 쫓아다녔던 여자가 있었다며?

        지금도 마음 정리 못하고 연락해온다며?

남      니가 신경쓸 사람 아니야.

여      왜 그 여자 안 만났어? 그 여자랑만 결혼해도 오빠 인생은

        정말 확 펴겠던데?

남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너 그럼 지금까지 이런 얘기 늘어놓은 게.. 결국.. 그 여자 때문이었 어?

여      왜 한번도 생각 못했는지...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나보다 더.. 나은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M)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원준희


(E) 빗소리


남      은서야. 퇴근하는거야?

여      여태 기다렸으면서 뭘 새삼스레 물어봐?

남      비가 많이 와서. 너 우산 안가져왔지.

여      오빠는... 나 지긋지긋하지 않아?

남      ........

여      ........

남      그렇지 않아.

여      오빠 말대로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진데?

남      지난번 얘기 해명하고 싶어서 왔어.

        너한텐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일방적이었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어. 

여      그 여잔 결혼하고 싶다고 그랬었다며. 그게 어떻게 상관없는 일이야?

남      나를.. 못믿어?

여      사람을 어떻게 믿어. 오빠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남      ....은서야.

여      내가 오빠를 버려주는 게.. 오빠한텐 좋은 일일 수 있어.

남      ......

여      우리는 얽히면 슬픈 일만 생겨. 어쩌면 악연일수도 있어.

남      마지막으로 얘기할게. 마음 돌려. 그리고 나 믿어.

여      우산은 안 쓰고 갈게. 잘 가.

(E)비오는 소리


여      그렇게 돌아올 때만 해도 생각했다.

        이러다 언젠간 또 만날지 모른다고.

        우리는 늘 그래왔으니까.

        그 사람이 날 찾든, 내가 그를 찾든,

        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건 할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

        그런 것 또한 운명이 아니겠냐고.

(M) 너를 사랑하고도 / 전유나


(E) 핸드폰 울리는 소리


여      한달 후쯤.

        그에게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난 받지 않았다.

        메시지가 들어왔다.

        들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이름도 낯선 오지의 주재원으로 자청해서 떠났다고 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놀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로 나왔다.

        퍼뜩... 오늘 낮에 들어왔던 음성 메시지가 생각났다.


(E) 삐익.. 재생되는


남      은서야. 나다. 니가 늘.. 바보라고 하던 김봉덕.

        너한테 나는 언제나 바보였고.

        바보여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늘 부족했고. 그래서 너를 실망만 시켰어.

        지금 떠나는 마음이 착잡하고 아픈 것도 그래서일거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난 너를 사랑할거고. 걱정할 거고. 널 위해

        기도할거다. 하지만 다시 너에게 돌아가진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를 잊어도 돼.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을게.

        잘 있어. 건강해라.


(M)주제음 

 

 

 





2009-05-2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