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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30일 목요일 방송 내용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9화 - 약국 옆에 식육점


(M)주제음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 현이와 덕이


남     대형 약국에서 월급 약사 노릇하기를 몇 년

        드디어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 좀 껴서 내가 주인인 작은 약국을 오픈했다.

        비록.. 월세긴 하지만.

        또 동네는 좀 후지긴 하지만

        시장 입구라서 좀 지저분한 맛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열평 남짓한 공간을 쓸고 닦고 다듬고

        난 거의 한달 동안 내부를 수리했고

        약국스럽다기 보단 오히려 까페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기다리시는 동안 차 한잔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고.

        좋은 음악도 준비했다.

(M) 좋은 음악 나오고 -


남     한 블록만 더 가면 약사만 열명이 넘는

        대형약국이 떡 버티고 있었고.

        우리 약국은 병원에서도 좀 떨어져 있는 편이라

        여러 가지로 불리한 걸 모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난 자신 있었다.

        난 천성이 섬세하고 다정해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영업은 내 매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가보다.

        약국 문 연지 열흘이 되도록

        손님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난 슬슬 월세와 관리비에 대해서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E) 빗자루로 길 쓰는


남     그래서 난 일단 동네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장 앞 길이라도 좀 쓸면서 얼굴을 익히면

        그래도 우리 약국에 와주지 않을까, 뭐 이런 기대.. 솔직히 했다.

        그렇게 아침마다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었는데.


(E) 가게문 열리고 걸어나오는 소리


여     저기요. 여긴 우리 가게 앞인데?


남     고개 들어 보니 우리집 바로 옆 식육점에서 나온 사람인가보다.


남     아.. 안녕하세요. 풍년식육점 주인이신가봐요?

여     네. 그런데 왜 여길 쓸고 계세요?

남     네 뭐.. 저희 가게 앞 쓰는 김에요. 저 여기 옆에 행복약국 주인인데.

여     아니에요. 내버려두세요. 정 더러우면 나중에 제가 치우든 할테니까.

남     아우 뭐 어때요. 이웃끼리.

여     저기요. 

남     네?

여     약국 주인 맞죠.

남     네. 

여     거기 싸게 들어갔죠.

남     아.. 하하하. 시세보다 좀 싸게 들어갔죠.

여     거기 원래 책대여점이었던 거 알죠.

남     네. 그랬다고 들었어요.

여     거기 주인이 이 시장 사람들한테 돈 쫙 꿔가지고

        먹고 튄 거 알아요 몰라요.

남     예에???

여     거기 육개월 비어있던 데에요. 재수 없다구.

남     !!!

여     나두 삼백 띠었거든요? 아주 그 앞으로 가고 싶지도 않아 내가.

        장사 안되는 이유. 알겠죠?

(M)    호랑나비 / 김흥국


남     설마 해서 알아보니 모든 게 사실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 가게에 학을 떼고 있었고.

        처음이라 장사가 좀 안되는 거 뿐이라며 자위하고 있던 나에게

        그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여기 들어간 자본금은 나에겐 전부였으므로.

        또다른 동네 사람을 통해, 어제 그 식육점 주인이

        여기 반장이고. 나름 말빨이 좋아 이 동네에선 권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에겐 방법이 없었다. 아줌만지 아가씬지 모를 그 식육점 여자를

        공략하는 수밖에.

(M)    장사하자 / 하찌와 TJ


(E) 고기 쓱쓱 써는


남     안녕하세요. 

여     네. 고기 사러 오셨어요? 뭐 드려요?

남     아... 삼겹살.. 반근만...

여     반근 갖다 어따 쓰게? 한근은 사야지?

남     저 혼자라서요. 반근도 남아요.

여     그래요 그럼.

남     저 그런데요. 어제 하시던 얘기 조금만 더 자세히 해주시면 안될까요.

여     다 했잖아요. 주인이 시장사람들 돈 모아다가 튀었다구요. 그래서

        너무 재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 가게 앞으론 가지도 않는다구..

        꼭 가야 할 일이 있어도 돌아가고 말지!

남     저는 진짜 몰랐거든요. 완전 속았어요.

여     싸면 싼 이유가 있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남     하하 참나..

여     그런데요. 내가 고기 썰 때는 누가 말시키는 걸 싫어해서.

        이게 기계로 써는 게 아니라, 정신이 흐트러지면 모양도 흐트러져.

남     아... 또 그런 심오한 게 있구나.

        그런데요. 제가 억울한 건 저는 돈 띵겨먹고 도망간 책대여점 주인이  아니라는 거죠.

여     그런데 그런 걸 왜 나한테 호소하고 앉았어요.

남     제가 듣자하니, 이 구역에선 가장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계시는데다 언변술도 탁월하셔서 주변인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우시다고....

여     아우 뭐 그렇게 거창해. 그래요. 내가 아는 사람 많고 말빨이 좀 쎄요. 그 얘기 하려구요?

남     네.

여     그래서 어쩌라구요.

남     저.... 이거 별 건 아니지만....

(E) 뭔가 쓱 내미는

여     이게 뭐에요?

남     저희 가게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양젠데. 이거 아무 약국에서  나 파는 거

        아니거든요. 수입이라 구하기도 어렵고. 마진도 얼마

        안남아서... 

여     (약간 혹하고) 뭐 이런 걸 다..

남     이게 피부미용에도 좋고. 머릿결도 진짜 좋게 해주구요.

        피로도 그냥 쫙 풀어주구요.

여     진짜 약장사야 뭐야. 그런 약이 어딨어요.

남     뭐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진짜 괜찮은 영양제거든요.

여     지금 이걸 뇌물로 먹으라는 거에요?

남     뇌물은요. 이웃지간의 선물이라고 보시면 되겠죠.

여     뭐 선물이라고 하면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남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저 이 약국 망하면 갈데도 없습니다.

        대출도 꽉 차게 받아서 더 받을 수도 없구요.

        가련한 영혼 도와주신다 생각하고. 바람 좀 잡아주세요.

(M)    대박이야 / 대성


남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여     할머니. 뭐하러 한블럭 더 가서 약을 사. 여기서 파는 파스도 똑같애.

        여기 후끈후끈한 파스 있죠?

남     있죠~ 


여     언니! 두통약 여기서 사. 여기 드링크도 공짜로 주고. 커피도 타 마실

        수 있어. 그죠!

남     커피 녹차 사이다 종류별로 다 있습니다. 골라 드시고. 신청곡도

        틀어드리니까 말씀만 하세요.

여     무조건 있죠 무조건. 이 언니는 무조건 좋아해.

남     아 있죠.

(M)    무조건 / 박상철


(E) 드링크 까주는


남     여기 이거 드세요.

여     아 됐어요. 오늘 하루 종일 드링크를 몇 개 마신거야. 그만 마실래.

남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여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비싼 영양제 얻어먹었으면 그만한 값을

        해야지. 받을 땐 선물이었는데. 받고나니 이게 확 부담이 되는 게

        뇌물이더라구.

남     제가 고기 사러 많이 갈께요..

여     그쪽이 안 사러 와두요. 우리집은 삼십년 단골들이 많아서

        지장 없네요.

남     아니...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삼십년 단골요?

여     아... 이게 우리 엄마때부터 대를 물려온거라.

남     아아... 

여     우리집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딴 데 못가거든요.

남     저번에 삼겹살도 진짜 맛있더라구요. 담번엔 반근 말고 한근 살테니까요. 같이 드세요.

(M)   부부송/ 이박사


(E)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냄새


여     내가 또 우리집에서 고기 사다가 우리집에서 궈먹는 손님은

        첨 보네.


(E) 소주 따르는


남     고마워서요.

여     아우 파스 몇장 두통약 몇 개 팔아준 거 고맙다고 이렇게 쏘다가

        돈 벌겠어요? 장사꾼으로서 마인드가 안됐네.

남     사실 제가 월급받고 남의 밑에서만 일하다가 아직 장사 어떻게 하는지 감이 안잡히거든요.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여     그건 자세가 좋네요. 요즘 같은 불황엔 월급쟁이가 낫지. 섣불리

        사업한다고 나섰다가는 피보기 딱 좋거든. 정말 각오 단단히 하지

        않는 한.

남     제 말이요.

여     한잔 할래요?

(E) 술 따라주는


남     여기까진 기억이 난다. 또 여기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난 약국 소파에 엎드려 자고 있었고.


(E) 들어오는 소리


여     (다정) 봉덕씨.. 아직두 자요?

남     예? (후다닥 일어나는) 어? 오셨어요..

여     (애교) 여기서 잔거에요? 추웠겠다. 이불두 안덮구.

남     (왜저러지?) 아뇨 뭐 괜찮았어요.

여     이거... 술국 좀 끓여왔어요. 속 풀라구.

남     여기 숙취해소제도 많은데...

여     아무리 약사라구. 음식으로 풀수 있는 걸 약으로 풀면 돼요?

        이거 훌훌 둘러마셔요. 술깨는 덴 선지가 최고야.

남     저는 선지국 못먹는데.

여     (버럭) 남자가 이걸 왜 못...(가다듬고) 못먹는구나.

        그래요. 다음번엔 내가 콩나물국으로 끓여올게.

남     예? ...예.

여     그런데요. (수줍) 어제 한 약속.. 잊은 건 아니죠?

남     (깜짝) 예? 무슨 약속요?

여     아우 나두 뭐 창피해요. 창피한데.. 용기내서 먼저 얘기하는거야.

        봉덕씨 쑥스러울까봐.

남     아니 그러니까 내가 뭐가 쑥스러운..

여     우리 사귀기로 한거요. 솔직히.. 난 봉덕씨가 먼저 그렇게 고백할 줄

        몰랐거든요. 밤에 한숨도 못잤네.

남     예에?

여     그럼 일봐요. 나 식칼 좀 갈아야되는데. 이따 내가 손님들

        몰고 올테니까 이따 봐요.

남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M)    곤드레 만드레 / 박현빈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




남     나에겐 안좋은 술버릇이 있다.

        그건 술만 마시면 마구 친한 척을 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과도하게 친한 척을 하며

        의형제를 맺자고 난리를 쳐서

        담번에 볼 때 민망할 때도 많았고.

        또 어떤 여자라도 술만 마시면 예뻐 보여서

        이런저런 멘트를 날리다가 오해도 많이 샀다.

        이제 나이 들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버릇이 또 나온 모양이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사귀자고 했을 줄이야.

        하늘이 노랗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M)    빙글빙글 / 김장훈


남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야겠다 싶어서

        식육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E) 걸어들어가는데

(E) 도마로 탕 치는 소리


남     그녀는 무시무시한 식칼을 들고 고기를 내리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 그녀는... 무서워 보였다.


여     어머~ 왔어요? 안그래두 내가 봉덕씨 줄라구..

        사골 좀 따로 떼어놓는 중이었잖아요.

남     네?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진.

여     앉아요. 커피 줄까?

남     네. 한잔 주세요.

(E)커피 따르는

여     사실 나 어젯밤에 좀 놀라긴 했어요.

남     네?

여     봉덕씨도 나랑 같은 마음일 줄은 몰랐거든요.

남     ...같은 마음요?

여     사실 내가 성격이 화끈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사람을 보면 한눈에 아, 좋다, 싫다,가 분명하게 나뉘는 편이에요.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남     ..... 아...네...

여     봉덕씨 보자마자 느낌이 확 오더라구요. 그런데...

        그렇잖아요. 그쪽은 하얀 가운 입은 약사고. 난 좀... 그렇고.

남     아니에요. 좀 그렇긴요.

여     그래서 일부러 더 틱틱대고 말도 험하게 하고 그랬는데.

        봉덕씨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하니까. 나 이렇게 설레고 좋은 거

        사춘기 이후론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남     어떡하나.. 지금 솔직히 말해버리면

        그나마 이 여자 때문에 만들어진 몇몇의 단골손님들까지

        끊겨버릴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     어머.. 왜 그렇게 뚫어지게봐요.

남     저기요...

여     네.

남     죄송해요. 제가... 술버릇이 있어요.

여     네?

남     술만 마시면 아무 여자한테나... 아니 아무 여자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그렇게 친한척을 하거나 고백을 하거나..

        뭐 이러는 버릇이 있어서요.

여     ....네??

남     전 솔직히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아마 제가 또 그 버릇이 도져서

        그런 모양이에요. 죄송합니다.

여     ....(하...)

남     놀리려고 했거나 장난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구

        요. 암튼 지금 기분 진짜 드러우실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M)    미안미안해 / 태진아


남     정말, 손님이 거짓말처럼 뚝...끊겼다.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없어진 것도 같다. 이 자리에선 도저히

        안되는 거란 말인가. 인테리어에 쏟은 공이며 돈이 얼만데.

        영양제로 끝낼걸.. 왜 괜히 술은 마셔가지고...

        온갖 후회로 하루 종일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밤 10시 다 돼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E)걸어오는


남     어... 이제 집에 가세요..?

여     나한테 말걸지 마요.


(E)또각또각 가는데


남     내가 잘못 본 걸까?

        그 여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저건 뭔가. 술김에 한말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단 말인가?

        사람 괜히 미안해지게.

 

(E) 가는데, 쫓아가고


남     댁이 어디세요. 저 차 가져왔는데. 모셔다 드릴까요?

여     지금 뭐하자는 거에요?

남     네?

여     내가 그쪽 좋다 그랬죠. 그쪽은 나 싫댔죠.

        그런데 나 차 태워주면 난 무슨 생각 하겠어요? 또 헷갈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헷갈리면? 그쪽도 헷갈리나?

        아니잖아요. 자기는 헷갈리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을거면서

        왜 날 갖고 놀아요 왜! 내가 만만해요?

남     아니에요. 그런 거. 전혀 아니거든요? 죄송해요. 그냥 그럼

        안데려다 드릴께요.

여     지금 나랑 장난해요? 데려다 주겠다면서요! 그래놓고

        또 안데려다 준다 그러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요!

        혼자 걸어가면서 얼마나 비참하겠냐구요!

남     저기...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정말 몰라서 여쭤보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여     같이... 같이 걸어가줘요. 집까지. 같이요.

(M)    여우랍니다/ 이수영


(E)걷는 소리


여     나 때매 요며칠 심란했죠.

남     아니에요. 저 때문에... 진짜 죄송해요.

여     내가 나이가 올해... 몇이냐. 세보지도 않아서 모르겠네.

        서른..하고 일곱인가부다...

남     저보다.. 세 살 많으시네요.

여     네. 많아요. 나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 맘에 드는 남자가

        나 좋다 그러니까 뵈는 게 없었나봐요. 진짜 달콤한 꿈을 꿨네요.

        완전 주책맞죠 나. 괜한 사람한테 신경질이나 부리구.

남     제가 다 초래한 일인데요 뭐.

여     결혼이나 연애 이런 거 포기했었거든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고기나 자르고 있는 여자를.

남     왜요. 아니에요.

여     됐어요. 그런 말. 속으론 아닌 거 알거든요.

        선 보러 나갔다가 별 소릴 다 들었어요. 가게 정리하고

        차라리 식당을 내보는 거 어떠냐. 여자가 뭐 그런 일을 하냐.

        그래두 어떡해요. 우리 엄마가 혼자 몸으로 나 키우면서

        한 일이 이거 하난데. 돌아가시면서도 단골 손님들 걱정하면서

        돌아가셨는데. 나도 뭐 할 줄 아는 거 이거 하나고.

남     자기 일에 자부심 가지고 열심히하는 모습 좋아 보여요.

여     좋아 보일 순 있겠지만. 내 여자인 건 싫죠?

남     .....

여     이해해요. 나래두 그럴 것 같아요.

남     미안해요.

여     아 왜 이러시나. 나 그렇게 치졸한 여잔 아니거든요?

        나 안좋아한다고 나한테 미안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어요 설마?

남     그래도 마음이 자꾸 미안하네요.

여     앞으로 부담스럽게 안할테니까 그냥 우리 좋은 이웃지간으로

        지냅시다. 오케이?

남     .... 오케이.

(M)    쿨하게 / 마야


남     그녀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고기를 썰었고.

        난 내 자리에서 열심히 약을 팔았다.

        점차 동네사람들과 친해져 가면서 단골도 늘었고.

        많은 수입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생겨갔다.

        그녀는 피곤할 때면 우리 가게에 와서

        커피도 마시고 잠깐씩 눈도 붙이고 갔고.

        난 혼자 고기 먹기 심심하면

        그녀 가게에 가서 삼겹살 한근 사서

        그녀와 함께 나눠먹었다.

        화끈한 성격의 그녀는

        마음을 한번 열고나면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믿어주고

        그러다가 상처도 잘 받았다.

        사기도 많이 당했고, 뒤통수도 자주 맞았다.

        그럴때마다 난 제발 사람을 의심하면서 살라고 충고도

        했지만. 그녀는 한결 같았다.


여     아니.. 한 사람한테 사기 당할까봐 열사람을 잃고 살라는거야?   

        인생이 그럼 뭔 재미야? 사람하고 어울리는 맛으로 사는게 인생인데.


남     그녀와 엮이면서, 내 생활도 많이 달라졌고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졌고. 인생관도 달라졌다.

(M)    알 수 없는 인생 / 이문세


여     나 커피 한잔 주삼~

남     오셨어요 누님?

여     어우 그 누님 소리 좀 빼면 안돼?

남     누님을 누님이라 그러지 뭐라 그러나 그럼.

(E) 커피잔에 물 넣고 주는

남     자요. 누님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커피.

여     나 결혼할지도 몰라.

남     (헉!) 예? 누구랑? 뭐 만나는 사람 있었어요?

여     몇 번 만났지.

남     나한테 말도 않고?

여     너한테 무슨 말을 해. 내 사생활인데.

남     아니 난 다 말하잖아요. 선본 거. 소개팅 한거 다..

여     그거야 니가 나한테 상담하느라 한 말이고. 암튼..

남     어떤 남잔데? 아니 어떤 남자가 서른 여덟 다 된 노처녀를

        데려간대?

여     어떤 남잔 어떤 남자야. 오십 바라보는 아저씨지.

남     예에??

여     일찍 결혼해 상처하고 애들 다 키워냈대. 성실한 사람인가봐.

남     누군지도 잘 몰라요?

여     몇 번 만났다니까? 밥도 두 번 먹고.

남     밥 두 번 먹고 결혼을 해?

        밥 먹은 걸로만 결혼했으면 나랑은 백번도 했겠네!

여     밥으로 결혼하니? 나랑 결혼해준다고 하니까 하는거지?

남     아니 누님이 무슨... 짐보따리에요? 떠맡아준다고 하면 덥썩 가게?

여     그럼 혼자 늙어죽을까?

남     ....

여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늙어죽고 싶지. 밥 두 번 먹은

        사람이랑 어색하게 살 맞대 가면서 같이 늙어가고싶진 않어.

        그래도 어떡하니. 난 죽은 지 한달만에 발견되고.. 그러고 싶지

        않거든.

남     누님이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죽은지.. 한달만에 발견돼요.

        내가.. 가만 있을까?

여     삼십년 후에도 내 옆에서 지금처럼 있어줄 수 있어? 약속할 수 있어?

남     ....

여     그럴 거 아니면 말도 꺼내지 마. 커피 잘 마셨어.

        그리구... 나 가게 정리할까봐.

남     예?

여     지치기도 하구. 그쪽이 돈은 많아서 이런 거 안해도 되나봐.

남     돈 벌라고만 하는 거였어요 그 일이?

여     뭐 그럼 좋아서만 했겠어? 해 왔던 거니까.. 그리고 우리집 고기

        좋아해주는 사람들 보면 기분 좋으니까.. 그래서 했던 것도 있지만

        아 먹고 살려고 한거지. 따지고 보면. 나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데

        내가 뭐.. 굳이... 암튼 간다.



(E) 무조건 노래 나오는


남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 무조건.

        그녀가 좋아했던 커피. 설탕 크림 듬뿍 넣은 다방 스타일.

        그녀가 좋아했던 시간. 해질녁.. 도시가 고요해지는 시간.

        많은 걸 공유한만큼 정도 많이 들었나보다.

        며칠을 그녀가 낯선남자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던 걸 보면.

(E)걸어가는


남     누님.

여     어? 아직 안갔어?

남     기다렸어요. 

여     왜? 

남     삼십년 후에도 내가 옆에 있어주면요? 그럼 그 결혼 안할래요?

여     뭐?

남     아 있어줄께요 까짓거. 뭐 어렵나? 내가 설마 누님 혼자 죽은 채로

        발견되게 냅둘까봐?

여     나 니 농담에 두 번은 안속거든?

남     지금은 맨정신이거든요? 농담도 아니고?

        하던 일도 계속하세요. 누님은 식칼들고 있을 때가 젤 이뻐.

여     ... 너 왜 이러니.

남     몰라요. 나도. 그냥 계속 이렇게. 누님은 고기 팔고. 난 약 팔고.

        둘이 같이 얘기도 하고. 커피도 나눠 마시고. 그렇게 여기 시장통에서

        삽시다. 안될까요?

여     ..... 

남     내가... 삼십년 후에도 사십년 후에도. 옆에 있을께요.

여     너... 이것도 나중에 홧김에 그런 거라고 발 빼면... 진짜....

        무서운 맛이 뭔지 보여준다.


남     시장통 입구의 고장난 가로등은 깜박깜박..하고.

        우리는 서로 눈도 못마주치고.. 괜히 딴 데만 보며.. 웃는다.

(M)주제음 


 






2009-04-3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