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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9화 - 약국 옆에 식육점
(M)주제음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 현이와 덕이
남 대형 약국에서 월급 약사 노릇하기를 몇 년
드디어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 좀 껴서 내가 주인인 작은 약국을 오픈했다.
비록.. 월세긴 하지만.
또 동네는 좀 후지긴 하지만
시장 입구라서 좀 지저분한 맛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열평 남짓한 공간을 쓸고 닦고 다듬고
난 거의 한달 동안 내부를 수리했고
약국스럽다기 보단 오히려 까페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기다리시는 동안 차 한잔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고.
좋은 음악도 준비했다.
(M) 좋은 음악 나오고 -
남 한 블록만 더 가면 약사만 열명이 넘는
대형약국이 떡 버티고 있었고.
우리 약국은 병원에서도 좀 떨어져 있는 편이라
여러 가지로 불리한 걸 모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난 자신 있었다.
난 천성이 섬세하고 다정해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영업은 내 매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가보다.
약국 문 연지 열흘이 되도록
손님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난 슬슬 월세와 관리비에 대해서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E) 빗자루로 길 쓰는
남 그래서 난 일단 동네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장 앞 길이라도 좀 쓸면서 얼굴을 익히면
그래도 우리 약국에 와주지 않을까, 뭐 이런 기대.. 솔직히 했다.
그렇게 아침마다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었는데.
(E) 가게문 열리고 걸어나오는 소리
여 저기요. 여긴 우리 가게 앞인데?
남 고개 들어 보니 우리집 바로 옆 식육점에서 나온 사람인가보다.
남 아.. 안녕하세요. 풍년식육점 주인이신가봐요?
여 네. 그런데 왜 여길 쓸고 계세요?
남 네 뭐.. 저희 가게 앞 쓰는 김에요. 저 여기 옆에 행복약국 주인인데.
여 아니에요. 내버려두세요. 정 더러우면 나중에 제가 치우든 할테니까.
남 아우 뭐 어때요. 이웃끼리.
여 저기요.
남 네?
여 약국 주인 맞죠.
남 네.
여 거기 싸게 들어갔죠.
남 아.. 하하하. 시세보다 좀 싸게 들어갔죠.
여 거기 원래 책대여점이었던 거 알죠.
남 네. 그랬다고 들었어요.
여 거기 주인이 이 시장 사람들한테 돈 쫙 꿔가지고
먹고 튄 거 알아요 몰라요.
남 예에???
여 거기 육개월 비어있던 데에요. 재수 없다구.
남 !!!
여 나두 삼백 띠었거든요? 아주 그 앞으로 가고 싶지도 않아 내가.
장사 안되는 이유. 알겠죠?
(M) 호랑나비 / 김흥국
남 설마 해서 알아보니 모든 게 사실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 가게에 학을 떼고 있었고.
처음이라 장사가 좀 안되는 거 뿐이라며 자위하고 있던 나에게
그 사실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여기 들어간 자본금은 나에겐 전부였으므로.
또다른 동네 사람을 통해, 어제 그 식육점 주인이
여기 반장이고. 나름 말빨이 좋아 이 동네에선 권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에겐 방법이 없었다. 아줌만지 아가씬지 모를 그 식육점 여자를
공략하는 수밖에.
(M) 장사하자 / 하찌와 TJ
(E) 고기 쓱쓱 써는
남 안녕하세요.
여 네. 고기 사러 오셨어요? 뭐 드려요?
남 아... 삼겹살.. 반근만...
여 반근 갖다 어따 쓰게? 한근은 사야지?
남 저 혼자라서요. 반근도 남아요.
여 그래요 그럼.
남 저 그런데요. 어제 하시던 얘기 조금만 더 자세히 해주시면 안될까요.
여 다 했잖아요. 주인이 시장사람들 돈 모아다가 튀었다구요. 그래서
너무 재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 가게 앞으론 가지도 않는다구..
꼭 가야 할 일이 있어도 돌아가고 말지!
남 저는 진짜 몰랐거든요. 완전 속았어요.
여 싸면 싼 이유가 있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남 하하 참나..
여 그런데요. 내가 고기 썰 때는 누가 말시키는 걸 싫어해서.
이게 기계로 써는 게 아니라, 정신이 흐트러지면 모양도 흐트러져.
남 아... 또 그런 심오한 게 있구나.
그런데요. 제가 억울한 건 저는 돈 띵겨먹고 도망간 책대여점 주인이
아니라는 거죠.
여 그런데 그런 걸 왜 나한테 호소하고 앉았어요.
남 제가 듣자하니, 이 구역에선 가장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계시는데다 언변술도 탁월하셔서 주변인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우시다고....
여 아우 뭐 그렇게 거창해. 그래요. 내가 아는 사람 많고 말빨이 좀 쎄요. 그 얘기 하려구요?
남 네.
여 그래서 어쩌라구요.
남 저.... 이거 별 건 아니지만....
(E) 뭔가 쓱 내미는
여 이게 뭐에요?
남 저희 가게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양젠데. 이거 아무 약국에서 나 파는 거
아니거든요. 수입이라 구하기도 어렵고. 마진도 얼마
안남아서...
여 (약간 혹하고) 뭐 이런 걸 다..
남 이게 피부미용에도 좋고. 머릿결도 진짜 좋게 해주구요.
피로도 그냥 쫙 풀어주구요.
여 진짜 약장사야 뭐야. 그런 약이 어딨어요.
남 뭐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진짜 괜찮은 영양제거든요.
여 지금 이걸 뇌물로 먹으라는 거에요?
남 뇌물은요. 이웃지간의 선물이라고 보시면 되겠죠.
여 뭐 선물이라고 하면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남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저 이 약국 망하면 갈데도 없습니다.
대출도 꽉 차게 받아서 더 받을 수도 없구요.
가련한 영혼 도와주신다 생각하고. 바람 좀 잡아주세요.
(M) 대박이야 / 대성
남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여 할머니. 뭐하러 한블럭 더 가서 약을 사. 여기서 파는 파스도 똑같애.
여기 후끈후끈한 파스 있죠?
남 있죠~
여 언니! 두통약 여기서 사. 여기 드링크도 공짜로 주고. 커피도 타 마실
수 있어. 그죠!
남 커피 녹차 사이다 종류별로 다 있습니다. 골라 드시고. 신청곡도
틀어드리니까 말씀만 하세요.
여 무조건 있죠 무조건. 이 언니는 무조건 좋아해.
남 아 있죠.
(M) 무조건 / 박상철
(E) 드링크 까주는
남 여기 이거 드세요.
여 아 됐어요. 오늘 하루 종일 드링크를 몇 개 마신거야. 그만 마실래.
남 정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여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비싼 영양제 얻어먹었으면 그만한 값을
해야지. 받을 땐 선물이었는데. 받고나니 이게 확 부담이 되는 게
뇌물이더라구.
남 제가 고기 사러 많이 갈께요..
여 그쪽이 안 사러 와두요. 우리집은 삼십년 단골들이 많아서
지장 없네요.
남 아니...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삼십년 단골요?
여 아... 이게 우리 엄마때부터 대를 물려온거라.
남 아아...
여 우리집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딴 데 못가거든요.
남 저번에 삼겹살도 진짜 맛있더라구요. 담번엔 반근 말고 한근 살테니까요. 같이 드세요.
(M) 부부송/ 이박사
(E)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냄새
여 내가 또 우리집에서 고기 사다가 우리집에서 궈먹는 손님은
첨 보네.
(E) 소주 따르는
남 고마워서요.
여 아우 파스 몇장 두통약 몇 개 팔아준 거 고맙다고 이렇게 쏘다가
돈 벌겠어요? 장사꾼으로서 마인드가 안됐네.
남 사실 제가 월급받고 남의 밑에서만 일하다가 아직 장사 어떻게 하는지 감이 안잡히거든요.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여 그건 자세가 좋네요. 요즘 같은 불황엔 월급쟁이가 낫지. 섣불리
사업한다고 나섰다가는 피보기 딱 좋거든. 정말 각오 단단히 하지
않는 한.
남 제 말이요.
여 한잔 할래요?
(E) 술 따라주는
남 여기까진 기억이 난다. 또 여기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난 약국 소파에 엎드려 자고 있었고.
(E) 들어오는 소리
여 (다정) 봉덕씨.. 아직두 자요?
남 예? (후다닥 일어나는) 어? 오셨어요..
여 (애교) 여기서 잔거에요? 추웠겠다. 이불두 안덮구.
남 (왜저러지?) 아뇨 뭐 괜찮았어요.
여 이거... 술국 좀 끓여왔어요. 속 풀라구.
남 여기 숙취해소제도 많은데...
여 아무리 약사라구. 음식으로 풀수 있는 걸 약으로 풀면 돼요?
이거 훌훌 둘러마셔요. 술깨는 덴 선지가 최고야.
남 저는 선지국 못먹는데.
여 (버럭) 남자가 이걸 왜 못...(가다듬고) 못먹는구나.
그래요. 다음번엔 내가 콩나물국으로 끓여올게.
남 예? ...예.
여 그런데요. (수줍) 어제 한 약속.. 잊은 건 아니죠?
남 (깜짝) 예? 무슨 약속요?
여 아우 나두 뭐 창피해요. 창피한데.. 용기내서 먼저 얘기하는거야.
봉덕씨 쑥스러울까봐.
남 아니 그러니까 내가 뭐가 쑥스러운..
여 우리 사귀기로 한거요. 솔직히.. 난 봉덕씨가 먼저 그렇게 고백할 줄
몰랐거든요. 밤에 한숨도 못잤네.
남 예에?
여 그럼 일봐요. 나 식칼 좀 갈아야되는데. 이따 내가 손님들
몰고 올테니까 이따 봐요.
남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M) 곤드레 만드레 / 박현빈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
남 나에겐 안좋은 술버릇이 있다.
그건 술만 마시면 마구 친한 척을 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과도하게 친한 척을 하며
의형제를 맺자고 난리를 쳐서
담번에 볼 때 민망할 때도 많았고.
또 어떤 여자라도 술만 마시면 예뻐 보여서
이런저런 멘트를 날리다가 오해도 많이 샀다.
이제 나이 들어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버릇이 또 나온 모양이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사귀자고 했을 줄이야.
하늘이 노랗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M) 빙글빙글 / 김장훈
남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야겠다 싶어서
식육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E) 걸어들어가는데
(E) 도마로 탕 치는 소리
남 그녀는 무시무시한 식칼을 들고 고기를 내리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 그녀는... 무서워 보였다.
여 어머~ 왔어요? 안그래두 내가 봉덕씨 줄라구..
사골 좀 따로 떼어놓는 중이었잖아요.
남 네?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까진.
여 앉아요. 커피 줄까?
남 네. 한잔 주세요.
(E)커피 따르는
여 사실 나 어젯밤에 좀 놀라긴 했어요.
남 네?
여 봉덕씨도 나랑 같은 마음일 줄은 몰랐거든요.
남 ...같은 마음요?
여 사실 내가 성격이 화끈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사람을 보면 한눈에 아, 좋다, 싫다,가 분명하게 나뉘는 편이에요.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남 ..... 아...네...
여 봉덕씨 보자마자 느낌이 확 오더라구요. 그런데...
그렇잖아요. 그쪽은 하얀 가운 입은 약사고. 난 좀... 그렇고.
남 아니에요. 좀 그렇긴요.
여 그래서 일부러 더 틱틱대고 말도 험하게 하고 그랬는데.
봉덕씨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하니까. 나 이렇게 설레고 좋은 거
사춘기 이후론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남 어떡하나.. 지금 솔직히 말해버리면
그나마 이 여자 때문에 만들어진 몇몇의 단골손님들까지
끊겨버릴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 어머.. 왜 그렇게 뚫어지게봐요.
남 저기요...
여 네.
남 죄송해요. 제가... 술버릇이 있어요.
여 네?
남 술만 마시면 아무 여자한테나... 아니 아무 여자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그렇게 친한척을 하거나 고백을 하거나..
뭐 이러는 버릇이 있어서요.
여 ....네??
남 전 솔직히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아마 제가 또 그 버릇이 도져서
그런 모양이에요. 죄송합니다.
여 ....(하...)
남 놀리려고 했거나 장난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구
요. 암튼 지금 기분 진짜 드러우실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M) 미안미안해 / 태진아
남 정말, 손님이 거짓말처럼 뚝...끊겼다.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없어진 것도 같다. 이 자리에선 도저히
안되는 거란 말인가. 인테리어에 쏟은 공이며 돈이 얼만데.
영양제로 끝낼걸.. 왜 괜히 술은 마셔가지고...
온갖 후회로 하루 종일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밤 10시 다 돼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E)걸어오는
남 어... 이제 집에 가세요..?
여 나한테 말걸지 마요.
(E)또각또각 가는데
남 내가 잘못 본 걸까?
그 여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저건 뭔가. 술김에 한말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단 말인가?
사람 괜히 미안해지게.
(E) 가는데, 쫓아가고
남 댁이 어디세요. 저 차 가져왔는데. 모셔다 드릴까요?
여 지금 뭐하자는 거에요?
남 네?
여 내가 그쪽 좋다 그랬죠. 그쪽은 나 싫댔죠.
그런데 나 차 태워주면 난 무슨 생각 하겠어요? 또 헷갈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헷갈리면? 그쪽도 헷갈리나?
아니잖아요. 자기는 헷갈리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을거면서
왜 날 갖고 놀아요 왜! 내가 만만해요?
남 아니에요. 그런 거. 전혀 아니거든요? 죄송해요. 그냥 그럼
안데려다 드릴께요.
여 지금 나랑 장난해요? 데려다 주겠다면서요! 그래놓고
또 안데려다 준다 그러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요!
혼자 걸어가면서 얼마나 비참하겠냐구요!
남 저기...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정말 몰라서 여쭤보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여 같이... 같이 걸어가줘요. 집까지. 같이요.
(M) 여우랍니다/ 이수영
(E)걷는 소리
여 나 때매 요며칠 심란했죠.
남 아니에요. 저 때문에... 진짜 죄송해요.
여 내가 나이가 올해... 몇이냐. 세보지도 않아서 모르겠네.
서른..하고 일곱인가부다...
남 저보다.. 세 살 많으시네요.
여 네. 많아요. 나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 맘에 드는 남자가
나 좋다 그러니까 뵈는 게 없었나봐요. 진짜 달콤한 꿈을 꿨네요.
완전 주책맞죠 나. 괜한 사람한테 신경질이나 부리구.
남 제가 다 초래한 일인데요 뭐.
여 결혼이나 연애 이런 거 포기했었거든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고기나 자르고 있는 여자를.
남 왜요. 아니에요.
여 됐어요. 그런 말. 속으론 아닌 거 알거든요.
선 보러 나갔다가 별 소릴 다 들었어요. 가게 정리하고
차라리 식당을 내보는 거 어떠냐. 여자가 뭐 그런 일을 하냐.
그래두 어떡해요. 우리 엄마가 혼자 몸으로 나 키우면서
한 일이 이거 하난데. 돌아가시면서도 단골 손님들 걱정하면서
돌아가셨는데. 나도 뭐 할 줄 아는 거 이거 하나고.
남 자기 일에 자부심 가지고 열심히하는 모습 좋아 보여요.
여 좋아 보일 순 있겠지만. 내 여자인 건 싫죠?
남 .....
여 이해해요. 나래두 그럴 것 같아요.
남 미안해요.
여 아 왜 이러시나. 나 그렇게 치졸한 여잔 아니거든요?
나 안좋아한다고 나한테 미안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어요 설마?
남 그래도 마음이 자꾸 미안하네요.
여 앞으로 부담스럽게 안할테니까 그냥 우리 좋은 이웃지간으로
지냅시다. 오케이?
남 .... 오케이.
(M) 쿨하게 / 마야
남 그녀는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고기를 썰었고.
난 내 자리에서 열심히 약을 팔았다.
점차 동네사람들과 친해져 가면서 단골도 늘었고.
많은 수입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생겨갔다.
그녀는 피곤할 때면 우리 가게에 와서
커피도 마시고 잠깐씩 눈도 붙이고 갔고.
난 혼자 고기 먹기 심심하면
그녀 가게에 가서 삼겹살 한근 사서
그녀와 함께 나눠먹었다.
화끈한 성격의 그녀는
마음을 한번 열고나면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믿어주고
그러다가 상처도 잘 받았다.
사기도 많이 당했고, 뒤통수도 자주 맞았다.
그럴때마다 난 제발 사람을 의심하면서 살라고 충고도
했지만. 그녀는 한결 같았다.
여 아니.. 한 사람한테 사기 당할까봐 열사람을 잃고 살라는거야?
인생이 그럼 뭔 재미야? 사람하고 어울리는 맛으로 사는게 인생인데.
남 그녀와 엮이면서, 내 생활도 많이 달라졌고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졌고. 인생관도 달라졌다.
(M) 알 수 없는 인생 / 이문세
여 나 커피 한잔 주삼~
남 오셨어요 누님?
여 어우 그 누님 소리 좀 빼면 안돼?
남 누님을 누님이라 그러지 뭐라 그러나 그럼.
(E) 커피잔에 물 넣고 주는
남 자요. 누님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커피.
여 나 결혼할지도 몰라.
남 (헉!) 예? 누구랑? 뭐 만나는 사람 있었어요?
여 몇 번 만났지.
남 나한테 말도 않고?
여 너한테 무슨 말을 해. 내 사생활인데.
남 아니 난 다 말하잖아요. 선본 거. 소개팅 한거 다..
여 그거야 니가 나한테 상담하느라 한 말이고. 암튼..
남 어떤 남잔데? 아니 어떤 남자가 서른 여덟 다 된 노처녀를
데려간대?
여 어떤 남잔 어떤 남자야. 오십 바라보는 아저씨지.
남 예에??
여 일찍 결혼해 상처하고 애들 다 키워냈대. 성실한 사람인가봐.
남 누군지도 잘 몰라요?
여 몇 번 만났다니까? 밥도 두 번 먹고.
남 밥 두 번 먹고 결혼을 해?
밥 먹은 걸로만 결혼했으면 나랑은 백번도 했겠네!
여 밥으로 결혼하니? 나랑 결혼해준다고 하니까 하는거지?
남 아니 누님이 무슨... 짐보따리에요? 떠맡아준다고 하면 덥썩 가게?
여 그럼 혼자 늙어죽을까?
남 ....
여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늙어죽고 싶지. 밥 두 번 먹은
사람이랑 어색하게 살 맞대 가면서 같이 늙어가고싶진 않어.
그래도 어떡하니. 난 죽은 지 한달만에 발견되고.. 그러고 싶지
않거든.
남 누님이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죽은지.. 한달만에 발견돼요.
내가.. 가만 있을까?
여 삼십년 후에도 내 옆에서 지금처럼 있어줄 수 있어? 약속할 수 있어?
남 ....
여 그럴 거 아니면 말도 꺼내지 마. 커피 잘 마셨어.
그리구... 나 가게 정리할까봐.
남 예?
여 지치기도 하구. 그쪽이 돈은 많아서 이런 거 안해도 되나봐.
남 돈 벌라고만 하는 거였어요 그 일이?
여 뭐 그럼 좋아서만 했겠어? 해 왔던 거니까.. 그리고 우리집 고기
좋아해주는 사람들 보면 기분 좋으니까.. 그래서 했던 것도 있지만
아 먹고 살려고 한거지. 따지고 보면. 나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데
내가 뭐.. 굳이... 암튼 간다.
(E) 무조건 노래 나오는
남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 무조건.
그녀가 좋아했던 커피. 설탕 크림 듬뿍 넣은 다방 스타일.
그녀가 좋아했던 시간. 해질녁.. 도시가 고요해지는 시간.
많은 걸 공유한만큼 정도 많이 들었나보다.
며칠을 그녀가 낯선남자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었던 걸 보면.
(E)걸어가는
남 누님.
여 어? 아직 안갔어?
남 기다렸어요.
여 왜?
남 삼십년 후에도 내가 옆에 있어주면요? 그럼 그 결혼 안할래요?
여 뭐?
남 아 있어줄께요 까짓거. 뭐 어렵나? 내가 설마 누님 혼자 죽은 채로
발견되게 냅둘까봐?
여 나 니 농담에 두 번은 안속거든?
남 지금은 맨정신이거든요? 농담도 아니고?
하던 일도 계속하세요. 누님은 식칼들고 있을 때가 젤 이뻐.
여 ... 너 왜 이러니.
남 몰라요. 나도. 그냥 계속 이렇게. 누님은 고기 팔고. 난 약 팔고.
둘이 같이 얘기도 하고. 커피도 나눠 마시고. 그렇게 여기 시장통에서
삽시다. 안될까요?
여 .....
남 내가... 삼십년 후에도 사십년 후에도. 옆에 있을께요.
여 너... 이것도 나중에 홧김에 그런 거라고 발 빼면... 진짜....
무서운 맛이 뭔지 보여준다.
남 시장통 입구의 고장난 가로등은 깜박깜박..하고.
우리는 서로 눈도 못마주치고.. 괜히 딴 데만 보며.. 웃는다.
(M)주제음
2009-04-3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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