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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7화 - 시네마 천국
(M) 주제음 Cinema Paradiso / Josh Groban
남 30년전 그때.
영화가 최고의 볼거리였던 그때.
영화관 한번 갈라치면
며칠전부터 들뜨고
아침부터 꽃단장하고
몇시간전부터 근처에 가서 서성였던 때.
군대를 막 제대하고 푸릇한 청년이었던 내게
우리 동네의 영화관은
그냥 영화관 이상의 의미였다.
여 혼자 오셨어요?
남 네.
여 7시 20분 영화 맞아요?
남 네.
(E) 티켓 쫙 찢어서 주는
여 여?습니다.
남 그녀가 여기 있었으니까.
(M) Can't Help Falling In Love / Elvis Presley
남 그녀를 혼자서만 지켜본 지 육개월이 지났지만
네... 밖에는 해 본 말이 없었다.
백수 처지에 그렇게 자주 영화관에 갈 수도 없어
괜히 그 앞을 서성이는 날이 많아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상영되기 직전이었다.
(E) 걸어오는
남 저기.. 한 장이요.
여 또 혼자 오셨어요?
남 예?
남 그녀가 나를 알고 있었다는 얘긴가.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떨리고 기뻤다.
(E)표 찢는
여 여?습니다. 마지막 손님이시겠네요.
남 아.. 그래요?
여 곧 시작해요. 얼른 들어가세요.
남 오늘따라 그녀의 말이 길다.
나 역시, 네.... 말고도 다른 말을 몇마디 더 하지 않았나.
여 영화가 재밌다고 소문이 났더라구요.
남 네에...
남 그럼 티켓 한 장 더 주실래요? 아직 안보신거면 같이 보시면
안될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왔지만
차마 뱉을 순 없었다.
그냥 그녀가 내민 티켓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M) 장미의 미소 / 신인수
남 마지막 시간이라서 그런지 영화관 안은 한산했다.
난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광고를 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사람 하나가 더 들어오는 것 같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모습이 낯익다.
긴머리에 단정한 정장 차림의 그녀.
늘 희뿌연 유리 너머로 앉아 있는 모습만 봤었는데
키가 꽤 크다.
낮은 단화를 신었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또각또각 걸어오더니
두 칸 앞 자리에 앉는다.
영화가 시작됐지만, 그녀가 재미있다고 했던 영화지만
난 그날 영화의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두시간 다 되는 동안
내내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봤으니까.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녀가 눈시울을 적시는 것 같으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뭉클해져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으니까.
(M) 아이처럼/ 김동률
(E) 걸어나오는 사람들 소리
남 용기를 낼까..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해볼까...
영화관 밖에 나와서도
난 그녀 뒷모습만 보면서 무슨 말부터 해야할 지 몰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난 그대로 얼어붙어서 괜히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여 ..... 영화 재미있으셨어요?
남 네? ... 저요?
여 네.
남 아.... 네. 재밌던데요. 영화.. 보셨나봐요?
여 네. 보고 나온 사람들이 다 재밌다고 해서요.
가끔 마지막 프로그램 보거든요.
남 ...혼자요?
여 예.
남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남 저... 혹시 혼자 보실거면. 그러지 말고
저한테 전화주시면 안될까요.
여 네?
남 손 좀....
남 난 얼른 볼펜을 꺼내
그녀의 손바닥에 우리집 전화번호를 적었다.
남 제가 없으면... 저희 어머니한테 말씀해 주셔도 되구요.
그러면 제가 언제라도 마지막 프로그램 맞춰서
이리고 오겠습니다. 그럼...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E) 후다닥 도망가는
남 도망가다가 힐끗 돌아보니
그녀는 번호가 적힌 손을 꼭 쥔 채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이 나에게 더 큰 용기를 줬고
난 활짝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M) 웃는 여잔 다 이뻐 / 김성호
남 그리고 약 일주일 동안
난 그녀에게 전화번호 준 것을 후회했다.
전화가 오지 않으니
영화관에 갈 수도 없었고
영화관에 갈 수 없으니 그녀를 볼 수도 없었다.
혹시 집을 비운 사이에 전화가 올까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으면
만사 다 제치고 다시 뛰어와야 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얼굴 보는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혼자서 짝사랑이나 계속할걸...
난 소심한 후회를 하며
계속 전화기 앞만을 배회했다.
(E)옛날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어.... 안녕하세요. 저 혹시...
남 네?
여 ..... 혹시...
남 혹시 영화관...
여 네 맞아요.
남 아.. 전화 많이 기다렸는데.
여 전화 하려고 몇 번 그랬는데요.
남 (안타까운) 하지 그러셨어요.
여 이름을 몰라서.
남 네?
여 이름을 몰라서요. 다른 사람이 받으면... 누구 바꿔달라 그래야 하는건지....
그걸 몰라서 차마 전화 못하겠더라구요.
남 아... 이름!!!
여 전화했다가 다른 사람이 받는 것 같으면 끊으려 그랬었어요.
남 (좋고) 아... 그랬구나. 내 이름.. 김봉덕인데.
여 저는.. 윤은서요.
(M) Island In The Stream / Kenny Rogers & Dolly Parton
(E) 뛰어오는 소리
남 아직 안 늦었나요?
여 네. 3분 후면 시작해요. 들어갈래요?
남 네!
남 우리는 그후로 마지막 영화를 함께 보는 사이가 되었다.
내 옆에 앉아서 과자를 먹어가며 깔깔대며 웃는 그녀를 볼 때면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아직 손 한번도 못 잡아보고.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봤지만
내 마음은 이미 충만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멋진 남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M)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장희
(E)걷는 소리
여 벚꽃이 다 졌네요.
남 그러네요. 지난주까지만 해두 한창이더니.
여 봉덕씬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 네? 저야 아버지 가게 물려받아서... 잘 모르겠어요.
아직 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여 난요, 극장주가 되고 싶어요.
남 극장 주인 말이에요?
여 네. 내가 걸고 싶은 영화 마음껏 걸어놓고
내가 보고 싶을 때 맨날맨날 보기도 하구요.
그리구, 극장 주인이면 엄청 부자일 거 아니에요.
남 은서씨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여 나는 비비안리 나오는 영화 다 좋아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일 좋아하구요.
남 아... 나는 오드리햅번 좋아하는데.
여 오드리햅번도 이쁜데. 너무 여왕 같잖아요.
비비안리는 뭐랄까... 좀 더 잡초 같으면서도
강하고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남 그러고 보니까 은서씨가 비비안리를 좀 닮았나?
여 진짜요?
남 농담이에요.
여 뭐에요 진짜...
(M) Moon River / Audrey Hepburn
남 말 세마디 이상 섞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녀가 항상 내곁에 있다.
나를 사랑한다고도 말해준다.
난 정말 행복했다.
행복했었다.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기 전까진. 늘 그랬다.
(M)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1부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2부가 이어집니다.
여 서울.. 간다구?
남 어. 같이 안 갈래?
여 갑자기 왜 서울에?
남 아버지 가게도 잘 안되고. 이 촌동네에 있어봤자 비전이 뭐가 있어.
여 여기가 어때서..
남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내가 서울 가고 싶은 이유가 뭔데.
여 뭔데?
남 너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여 서울 가면 행복해져?
남 내가 성공할거니까.
여 성공하면 행복해져?
남 돈도 많이 벌거고. 유명해질거야.
여 (가볍게 한숨) 무슨 수로...
남 너 지금 나 못 믿어?
여 못믿는 게 아니야. 믿어. 믿지만... 서울은 만만한 데가 아니야.
나 고등학교 때까지 거기 살다가.. 아버지 사업 망하시면서
이쪽으로 와서.. 더 행복했어.
조용하고 욕심 없는 이곳이 좋았단 말야.
남 몇 년만 더 있어봐. 그런 생각 안 들어.
나는 여기서 나고 자랐고. 군대 갔던 기간 빼곤
늘 여기 있었어. 그래서 잘 알아.
여기 있어선 아무 것도 못해. 죽을 때까지 이 모습일거라구.
여 이 모습인 게 싫어?
남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세상은 빨리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만 뒤처지고 있단 생각
안 들어?
여 난 그냥, 천천히, 뒤쳐진 채 그렇게 가도 돼.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얘기도 많이 하고
산책도 하면서 사는 게 뭐가 나빠?
남 ...... 난 가고 싶어.
여 .......
남 진짜 같이 안갈래?
(M) Somewhere Over The Rainbow / Israel Kamakawiwo'ole
남 서울에 간 후로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었고
성공의 이유는 단 하나였으니까.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거.
(E) 버스터미널 소음
남 은서야!!
여 (멀리서) 응!!!
(E) 뛰어오는
여 오래 기다렸어? 차가 연착돼 가지구.
남 괜찮아. 오느라 힘들었겠다. 짐 줘.
여 방 구했다구?
남 어. 산동네긴 한데. 좋아. 경치도 좋고.
밤에 야경 보면 죽여. 도시 야경이 멋지긴 멋지더라.
여 얼굴이 좀 야윈 거 같다. 밥 잘 안먹고 다녀?
남 그냥 뭐. 젊은 놈이 좀 못먹고 다니면 어때.
여 젊을 때 건강 챙겨야 된다구.. 울엄만 늘 그러시는데.
가자. 내가 삼계탕 끓여줄게.
남 삼계탕?
여 재료 다 손질해 가지구 왔어. 자기 몸보신 시켜주려구.
(M) Lovin' You/ Sparkle
(E)보글보글 끓는
여 다 됐다.
(E) 냄비 상에 놓고
여 먹어.
남 장난 아닌데?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음식다운 음식이냐?
여 으유... 방은 또 이게 뭐야. 좁은 데 살수록
잘 치워놓고 살아야 하는 거 몰라?
(E)치우기 시작하는
남 야아... 같이 먹어.
여 먹고 있어. 난 이거 좀 치우구.
남 맛있는데 같이 먹자니까?
여 자기나 많이 먹으라니까?나야 집에서 맨날 잘먹고 잘 사는데
(약간 울먹) 뭐가 걱정이야.
남 ..... 은서야 왜 그래?
여 아니야.
남 왜.
여 집꼴이 이게 뭐니? 부엌은 또 그게 뭐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 전화로 맨날 잘 살고 있다구
큰소리 쳐서 진짜 잘 사나보다.. 그랬는데
눈으로 보니까 미치겠다 정말. 왜 이고생을 하고 살어 바보야.
남 뭐 어때. 나는 있잖아. 나중에 너한테 극장 지어줄거란 말이야.
여 뭐어?
남 니 꿈이 극장주라며! 내 꿈은 극장주 남편이야!
여 (울먹) 기막혀. 그게 그냥 해본 말이지... 내가 무슨 극장주인이야!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얘기 한 줄 알아?
남 안되는 게 어딨어.
내가 두 번만 살아도 이런 얘기 안해. 딱 한번 사는건데.
해보고 싶은 거 해보고 죽게, 최선 다하는 게 나빠?
여 누가 나쁘대? 자기가 너무 고생이니까....
남 걱정마. 나 하나도 안힘들어. 눈비 피할 수 있는 데서 자면서
굶지 않고 먹으면 됐지.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
(M) 내가 지켜줄게 / 녹색지대
남 사실, 서울살이는 힘들었다.
백원짜리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막노동판에 가서
허리가 다 까지도록 짐을 날라도
벌 수 있는 돈은 월세 낼 돈이 다였다.
밤에 끙끙 앓을 정도로 힘들게 일을 했지만
손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E)공중전화 동전 툭 떨어지는
여 여보세요
남 어 나야.
여 왜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해.
남 좀 바빴어. 잘 지내?
여 나야 뭐.. 몸은 좀 어때?
남 괜찮아. 그런데 은서야.
여 응?
남 나 어디 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여 ...또 어디?
남 중동
여 뭐?
남 거긴 일손이 많이 모잘라서 사람도 많이 뽑고 그러거든.
한 일년만 열심히 일하고...
여 정말 이기적이다 자기.
남 어..?
여 이젠 우리나라 밖으로까지 나가겠다구?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도대체 뭔데 그래?
남 은서야..
여 날 행복하게 해주겠다구? 이게 행복한거야?
일주일에 한번 겨우 목소리 듣고. 몇 달에 한번씩 잠깐 얼굴
보는 거? 우리 마지막으로 같이 영화본 게 언젠지
기억이나 나? 이게 행복한거야?
남 너 그렇게밖에 말 못해? 내가 누구 때매 이 고생을 하는데!
여 누구 때문이라는 말 하지 마.
나 때문이라구? 나 때문이면 당장 내려와!
남 ......
여 자기는 자기 자신 때문에 그러고 있는거야.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걸 괜히 나 때문이라고
포장할라 그러지 마.
남 그만하자. 끊는다.
여 ......잠깐만....
남 .....
여 가지 마.
남 ......
여 중동인지 어딘지 가지 말라구. 그냥 오라구.. 제발....
(M)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 이소라
남 그때 가지 말걸...
그녀가 말릴 때 못 이기는 척....
그 고향으로 내려갈걸...
이런 후회를 천번도 넘게 했다.
중동... 그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물이 날 때마다.
돌이 씹히는 밥을 먹을 때마다.
그녀가 보고 싶어서. 돌아가고 싶어서.
하지만 1년만. 딱 1년만 버티자...
오기내고 다짐하며 그렇게 버텨나갔다.
(M) 존재의 이유 / 김종환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들뜬) 은서야!!!
여 ......
남 나 돌아왔어.
여 어딘데?
남 여기 영화관 근처야. 집에도 안들르고 바로 너한테 전화부터
하는거야. 내가 니 선물 사왔거든?
여 기다려. 나갈게.
(E)걷는 소리
남 너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러냐? 나 돌아온 거 안반가워?
여 얼굴 참 볼만하다.
남 좀 많이 탔지? 대신... 나 돈 많이 벌었다?
아 물론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작게 뭐 하나라도
시작해 볼만큼은 돼.
여 나 결혼해.
남 어?
여 결혼해. 서울 사는 남자야.
남 .....
여 자기가 계속 서울에 살게 된다면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순 있겠다.
남 은서야... 너 지금 농담해? 화 많이 났어? 내가 그동안
엽서도 많이 보내고....
여 화난 거 아니고, 지쳤어. 자기가 날 너무 과대평가했나봐.
나도 내 사랑을 과대평가했던 거 같고.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졌어. 피곤해.
(M) 편지 / 이은미
남 그날도 앙상한 벚꽃나무 가지 아래로
눈처럼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난 그 아래에서 그녀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중소건축업체의 사장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30년동안 사업만 해온 성공한 사업가라며
경제지에 기사도 몇 번 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고향의 영화관이 헐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그 영화관을 인수했다.
수익은 커녕 유지비가 더 드는 곳이지만
난 영화관을 팔 생각이 없다.
오히려 쉬고 싶을 땐 그곳에 가서 유행 지난 영화들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30년동안 딱딱하게 굳어버린 심장이
조금씩 풀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직도 그녀가 앉아 있던 매표소 입구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M) Cinema Paradiso / Ennio Moricone
남 얼마전부터는 고전영화들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오늘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상영하는 날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몇몇 손님들이 극장으로 들어갔고.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
누군가가 들어왔다.
은발에 분위기 있는 코트를 걸친 여자였다.
그녀는 내 자리의 두칸 앞 자리에 앉는다.
그 순간 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라는 걸.
(M) 세월이 가면/ 최호섭
남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후
다른 손님들이 다 나간 후까지
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 그녀가 돌아보았고. 내 눈엔 전혀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남 어떻게... 알고 왔어?
여 신문기사 봤어. 당신이 이 극장 인수했다는 소식도 들었고.
남 .... 그랬구나. 난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여 잘... 살았지?
남 글쎄... 어떤 게 잘 사는 건지...
여 잘 살았을거야.
남 .... 그래.
여 그만.. 갈게.
남 ....
여 참.. 그리구 이거....
남 그녀는 봉투 하나를 건네주더니.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
걸어나갔다.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다가
봉투를 열어보았다. 낯익은 영화제목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영화 제목들이다.
마지막 프로그램을 보면서 모아두었던 그 낡은 영화티켓들.
그걸 30년 동안 잊지 않고 있었구나 그녀는.
추억을 간직해준 그녀에게 고마워..
난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M)주제음
2009-04-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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