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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84화 - 바보들의 행진
(M) 주제음 커플/ J walk & 손담비
여 컴퓨터로 사주를 봤다.
3월에 귀인을 만난댄다.
놀라지 마라. 내 나이, 서른하고. 일곱.
언제 이걸 다 먹었는지,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3월에 귀인을 만난댔는데
오늘이, 3월 26일.
엿새밖에 안남았는데. 귀인은 무슨 귀인.
난 너무 억울해서, 급한대로 나 스스로 소개팅을 추진했다.
후배 여직원들을 쭉 줄 세워놓고
오빠나 남동생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들었다.
있어도 없는 척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큰언니 소개팅 좀 해달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주변에 괜찮은 남자 이어주는 사람에게는
일주일 야근 면하게 해주겠다는 당근을 내놓았다.
모두들 눈빛을 빛내면서도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실 내가 상담팀장으로서
후배들을 좀 갈구긴 했었다.
일을 못해서 가르치려는 순수한 의도도 있었으나
가끔은 연애질하는 것들이 미워서,
젊고 싱싱한 것들이 괜히 싫어서,
선 보고 나이 많다고 채인 것이 억울해서,
아주 괜한 트집을 잡아서 막 몰아세우기도 했었다.
그렇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도 알고 보면 속은 여리다.
그런데 이것들이, 나한테 남자를 소개 안해준다.
내가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다가섰건만.
하지만. 점심 시간이 지난 후
막내 소영이가 내게 슬쩍 다가와 커피를 내민다.
그러면서, 육촌오빠를 소개시켜 주겠단다.
왜, 친오빠는 싫었던거야?
내가 너 친오빠 싱글인 거 뻔히 알고 있는데, 왜 육촌이야?
나같은 올케는 버거웠던거야?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이렇게 말했다.
육촌오빠, 뭐하는 분이셔? 나이는... 몇살?
(M)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 베이시스
(E) 레스토랑 분위기, 커피잔 달그락
여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나는 홍대 앞 어느 까페에 와 있었고.
내 앞에 앉은 그 남자는, 썩 괜찮았다.
왜 서른 일곱 먹을 때까지 누가 안 채가고 남아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E) 커피잔 들고
여 여기 커피 참 향이 좋네요.
남 그렇죠? 원두를 좋은 거 쓰는 것 같아요.
여 네. 브라질산을 쓰나....?
여 브라질은 개뿔. 난 커피 별로 안좋아한다.
마차나 생강차 좋아한다. 카페인 안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척 했다.
남자가 마음에 들어서다.
남 은서씨?
여 (예쁘게) 네?
남 정말 남자친구 없는 거 맞으세요?
여 네? 네. 아 그럼요. 좋다고 따라댕기는 남자들은 좀 있었지만
제가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남 아아...
여 왜... 그러세요?
남 제가 보기엔 은서씨처럼 완벽하신 분이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이상해서...
여 어머. 저두 방금 봉덕씨 보면서 그런 생각 했었는데.
남 (약간 당황한 듯) 네?
여 이렇게 통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죠..
남 ...네에..
(M) 공주는 외로워 / 김자옥
(E) 걷는 소리
여 목련이 정말 예쁘게 폈네요.
남 그러네요.
여 꽃이 피고 지는 거 보면 인생 금방이드라구요.
남 네?
여 아.. 제 말은.. 인생은 짧고... 운명적인 순간이나 기회도 얼마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 한다.. 뭐 그런 말...
남 네?
여 남자가 다 좋은데 눈치가 좀 없는 것 같다.
괜찮다. 저 정도 외모에 그만한 직장에 눈치 없는 것 쯤
흠도 안된다. 눈치는 내가 빠르니까.
남 저 은서씨....
여 뭔가 말을 꺼내려나보다.
남 저...
여 네. 말씀하세요. 어려워 마시구...
남 솔직히 저 은서씨 마음에 듭니다.
여 그렇지!!!!
남 그런데.....
여 네? 그런데...요?
남 저는 정말 별 거 없거든요. 여자한테 잘해주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여태 이모양 이꼴로 있는 거겠죠?
여 아니 봉덕씨.. 그런 생각 마세요. 봉덕씨가 어때서...
남 솔직히, 은서씨 너무 욕심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제 그릇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 네? 아니.. 감당 안하셔도..되는데?
남 은서씨 같은 분은 더 좋은 사람 만나셔야 돼요. 꼭이요.
(M) Gunther & The Sunshine Girls - Ding Dong Song
(E) 사무실 분위기
여 일이 안된다.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
그 사람 눈에 내가 그렇게 완벽해 보였던 것일까?
점심시간에 소영이를 불러다 놓고 고문을 했다.
어떻게 된거냐고, 당장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육촌오빠가 그러는데, 내가 너무 완벽해 보여서 부담된다 그러드라구.
그 사람이 내가 마음에 들긴 들었나보다.
어제 메이크업이 유난히 잘되긴 했다.
그렇다고 날 그렇게 부담스러워 할 줄이야.
오후 내내 고민하던 난 결정했다.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내가 다가가면 된다고. 좀 허술한 구석도 보여주면서, 접근해보리라!
(E) 전화통화음
남 여보세요?
여 저에요. 며칠전에 만나?던 윤은서.
남 (화들짝) 아..네.
여 저인 줄 모르고 받으셨나봐요.
남 네..
여 제 번호 지우셨어요 벌써?
남 네? 아... 그게... 저장해놔봐야 괜히 마음만 쓰일까봐.
여 그러지 마시구요. 우리 만나요.
남 네?
여 지금 제가, 세종로 쪽으로 갈께요. 차 한잔 해요.
남 아... 저기...
여 조금 이따 봐요 그럼.
(M) 커피 한 잔 / 자두
여 소영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제가 너무 완벽해서 부담스럽다고 하셨다는 얘기요.
남 네에. 저는 제 마음 전했다고 생각했는데..왜...
여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어요 봉덕씨.
남 네?
여 저 이렇게 먼저 전화해서 봉덕씨 불러내기까진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저는 뭐 여자 아닌가요?
저 나이 먹을만큼 먹었어두요, 저두
여자구요. 자존심도 있구요. 창피한 것도 알아요.
남 ....네.
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러낸 건요. 차라리 봉덕씨가 제가
마음에 안들어 못만나겠다고 했으면 포기가 됐을텐데. 그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서로가 마음에 드는데 왜 만나지 못하는지...
남 저. 은서씨...
여 그렇잖아요. 이 나이에 이렇게 딱 마음에 드는 상대 만나기
쉬운 일 아니잖아요. 그런데 부담스럽단 이유로 포기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인 거 같아요.
남 은서씨 미안해요.
여 미안해하지 말구요. 봉덕씨 모자라지 않아요. 충분히 좋은 사람이에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져요!!!
남 그게 아니구, 사실은 마음에 안들어요.
여 .....에?
남 마음에 안든다구요. 은서씨.
여 저기.. 방금 뭐라구...?
남 내 스타일이 아니라구요.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소영이가
찍힐까봐. 찍히면 엄청 갈구는 스타일이시라면서요.
그래서 말 못한 거 뿐이에요.
여 (헉!!!!)
남 미안해요.
(M) Bad Boys / 김애리
(E)종이 지이익 찢는 소리
여 귀인? 3월에 귀인을 만나? (날카롭게) 하!!!!
귀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까부터 팀원들은 내 눈치를 슬슬 보면서
날 피해다닌다.
이면지를 앞에 놓고 찌이익 찌이익 찢어대는 날 보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탓이리라.
어젯밤 한숨도 이루지 못한 내 눈은 새빨갰고
가슴은 만신창이로 찢겨 있었다.
잠시 뒤. 소영이가 출근했다.
출근 시간을 30분이나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그녀의 화장은 완벽했다.
옷빨도 훌륭했다. 도무지 서두른 기색이 어디서도
읽히질 않는다. 그러니까 그녀는 출근을 30분이나 늦게 하면서도
머리에 롤 말고 메이크업 완벽하게 다하고 전혀 흐트러짐 없이
차려입은 채 집을 나선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
난 소영이를 회의실로 불러놓고 장장 15분 동안
속사포같은 잔소리를 쏟아부었고. 결국 눈물을 쏙 빼놓고 말았다.
이건 절대, 소영이가 소개해준 남자가 날 비참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녀가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M) 내게 너무 예쁜 당신 / 왁스
여 그리고 퇴근길.
(E) 또각또각 나오는데
남 저기요.
여 그 남자가 날 기다리고 있다.
너무나 기막힌 탓에 난 그를 확 외면하고 쌩하게 걸어가 버렸다.
남 잠깐 얘기좀 해요.
여 왜 이래요?
남 얘기 잠깐만요.
여 할 얘기 없거든요? 이거 안놔요?
남 잠깐이면 돼요. 잠깐요. 네?
여 어제 한 얘기로 모잘라요? 무슨 얘기가 더 남았다 그래요?
남 여긴 사람들 지나다니니까 저쪽 공원으로 좀 가요. 네?
(E) 두 사람 걸어와 앉는 듯
여 왔으니까 해 봐요. 무슨 말인데요.
남 소영이 울렸어요?
여 뭐에요?
남 우리 소영이 울렸냐구요.
여 이 남자가 지금 뭔소릴 하고 있는거야?
남 얘기해요. 당신이 우리 소영이 울렸어?
여 왜 이렇게 오바에요?
그래요. 울렸어요. 아침에 지각하면서도 그냥 있는 멋 없는 멋 다내고
뻔뻔하게 들어오길래 몇마디 했더니 울대요? 그게 왜요?
난 직장상사로서 할 말 한 거 밖에 없어요?
남 역시... 듣던대로네.
여 뭐라구요?
남 우리 소영이가 마귀할멈이라 그러더니. 그 말이 딱 맞았어.
여 마..마귀할멈?
남 그래요. 그렇게 성질이 드럽다면서요. 후배들 갈구고. 뻑하면 울리고.
그러니 아직까지 남자친구 하나 없이 그러고 살지.
여 이 남자가!!!! 당신 뭐야? 당신 한소영 육촌오빠 맞아?
남 아니? 나 한소영 좋아하는 남자에요.
여 뭐라구요? 그럼 소영이 남자친구?
남 그건 아니고... 나 혼자, 일방적으로 소영이 좋아해서 따라다녀요.
여 하!!! 그럼 소개팅 나온 건..
남 소영이가 부탁했어요. 야근하느라 너무 힘드니까 좀 도와달라구.
만나고 나서는 너무 완벽해 못만나겠다는 말만 좀 해달라구.
여 하... 하!!!!! 아 기막혀 진짜!!!
여 귀인? 귀인? 귀인이 다 씨가 말랐나?
너무 기가 막히면 숨이 안쉬어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보다.
숨이 안쉬어지니 하늘이 정말 노래보였다.
(M) Honey / Kara
---------------------------1부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2부가 이어집니다.
(E)탁탁 걸어가고, 쫓아가는
남 저기요.. 은서씨...
여 (분하고) 왜요 또. 아직도 뭐 남았어요?
남 그게 아니라... 하... 아깐 내가 너무 흥분을 해서 안해야 할 말까지
다 했어요.
여 그래서요?
남 우리 소영이... 혼내실거에요?
여 뭐라구요?
남 우리 소영이... 은서씨한테 혼나고 나면 애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얼마나 무서워하는지요.
우는 거 보면 너무 안쓰럽고...
여 이거보세요. 김봉덕씨. 댁이 남자친구도 아니라면서요.
남 그래두요. 내가 좋아하는 여자니까요.
여 아니, 댁한테 지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마귀할멈이랑 소개팅하라고
떠미는 기지배가, 아직도 좋아요?
남 네. 좋아요.
여 ....하...
여 애절하게 나를 보고 있는 그남자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
여 좋아요. 소영이한텐 아는 척 안할께요. 그 일로 야단칠 일도 없구요.
남 정말이세요?
여 네.
남 감사합니다.
여 그런데요, 그쪽도 빨리 정신 차리세요. 여자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맘 있으면, 그런 짓 못하거든요? 내가 보기에 소영이는 그쪽한테
정말 털끝만큼도 마음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육촌오빠 행세해
소개팅 해달란 부탁 하는 거에요.
남 ....
여 그러니까 희망 같은 거 갖지 말구요. 마음 정리해요.
이건, 아무런 사심없이 진심으로 하는 충고에요.
안녕히 가세요.
(M) Dangerous and Sweet / Lenka
여 3월은 갔다. 그것도 아주 훌쩍 갔다.
4월이 가고. 5월이 가도. 귀인은 오지 않았다.
다시 컴퓨터로 사주를 봤다.
아들을 얻을 운세란다.
이것 봐. 다 뻥이다.
잠시라도 이런 말에 혹해서 달달한 미래를 꿈꿨던 내가 바보지.
일요일이다. 혼자서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혼자서 배고파 식당에 들어가 김치찜을 시켰다.
1인분은 안된다 그래서 2인분을 시켜놓고
배 터지게 먹었다.
혼자서 커피전문점에 가 커플들과 등지게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며 아이스라떼를 홀짝거렸다.
저것들은 안어울리네. 저 커플은 남자가 아깝네.
혼자 궁시렁대면서 말이다. 그때.
(E) 전화벨 소리
여 모르는 번호다
여 여보세요?
남 여보세요?
여 누구세요?
남 저에요 은서씨. 김봉덕.
여 네?
남 제 번호 지우셨나봐요.
여 하.. 제가 그쪽 번호를 왜 저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전화하셨어요?
남 혹시 지금 집이세요?
여 왜요?
남 제가 지금 은서씨네 집 앞 까펜데, 혹시 잠깐 나오실 수 있나 하구요.
여 ..집..앞 까페 어디요?
남 커피 볶는 집이라고 있잖아요.
여 네?
(E)다가오는 발걸음소리
남 어? 은서씨?
(E)전화기 접고
여 여기서.. 다 만나네요.
남 은서씨도 여기 계셨구나. 다행이네요.
여 뭐가 다행이에요.
남 아니 전 안나오시겠다 하면 어쩌나 했거든요.
여 하... 진짜. 왜요. 왜 보자 그러셨는데요.
남 잠깐 앉아도 돼요?
여 그러시든가.
남 일단, 감사합니다. 정말 쿨하신 분이더라구요 은서씨.
여 네?
남 소영이한테 아무 해꼬지도 안하시고. 저는 정말 걱정했거든요.
여 아우 그런 인사하실거면 가세요. 짜증나게 진짜.
남 그건 아니구요. 그때 이후로 쭉 생각했는데. 은서씨가 참 좋은 사람
인 것 같았어요. 처음엔 소영이 때문에 편견을 갖고 본 부분도
있었는데.
여 무슨 소릴 하세요 지금.
남 어쩌면 제 마음을 털어놀 수 있는 분이 아닌가...
여 무슨 마음요.
남 그때 그러셨잖아요. 그만 포기하라구. 사실 저 소영이 혼자 좋아한 거
2년째거든요. 이제 정말, 포기해야 할까요?
(M) 정신차려/ 김수철
여 별... 미친.....
욕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걸 꾹 참았다.
내가 무슨 지 카운셀런 줄 알고. 하지만. 해사한 얼굴과 미소를 보니
차마 욕을 할 순 없었다. 그는 나에게 술 한잔 하자고 권했고.
동네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주말 저녁에 나도 할 일도
없고 심심하던 차였다.
(E) 맥주잔 내려놓고
남 그러니까, 헤어져라, 그 말씀이시죠?
여 헤어지고 말고 할 게 뭐 있냐구요. 시작이나 했어요 어디?
남 그건 그런데.. 그래두요, 소영이가 가끔 한번씩 전화하거든요.
저도 독한맘 먹고 연락 안하려고 하는데도, 그럼 전화해서
밥사달라 그러기도 하고 속상한 거 털어놓기도 하고....
여 그게 그쪽한테 조금이라도 맘 있어서 그런 거 같죠.
남 ...네.
여 그게 착각인거에요. 여자든 남자든, 자기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지 갖기 싫어도 남 주긴 아까운 법이거든.
남 그런데 은서씬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여 뭐.. 연륜이랄까.
남 그런데 왜 연애는 못하세요?
(M) 사랑은 아무나 하나 / 태진아
(E) 전화벨 소리
여 (자다 깬) 여보세요.
남 은서씨, 잤어요?
여 왜요 또.
남 나 요 며칠 진짜 맘 굳게 먹고 소영이한테 연락도 안하고
또 안받고 그랬는데, 소영이가 술먹고 전화를 했어요, 데릴러 오라고.
여 거길 왜 가요 왜. 소영이 지 남자친구 있는데 왜!
남 둘이 싸웠나봐요.
여 아니 둘이 싸웠으면 둘이 풀게 냅둬요 제발. 거기 또 왜 빙충이처럼
껴들어 기사노릇이나 해줄라 그래요. 그러고 나서 좋은 소리나 들어요?
남 그건 아니지만
여 몇번을 말해요!!!! 그거는 희망고문이라니까. 걔는 전혀, 봉덕씨한테
맘이 없어요. 봉덕씨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싫어하고,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도 싫어하는 애에요 걔가.
남 그건 알지만
여 알면 아는만큼 행동을 해요. 바보처럼 굴거면 다시는 전화하지 말구!
(E)뚝 끊고
여 차라리 혼자였을 때가 편했지. 하루에도 서너통씩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받아 이런저런 상담을 해줘야 하는 신세가 되자
정말 신경질이 치받쳤다. 더욱 열이 받았던 건
귀찮은 그의 전화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는 거.
밤중에도 새벽에도, 혹시 전화가 올까봐 진동으로 바꿔놓지
못하고 가장 큰 벨소리를 유지시켜야 했다는 거.
(M) 8282 / 다비치
(E) 밥 먹는
여 웬일이에요 밥을 다 사고?
남 오늘 내 생일이에요.
여 네? 그럼 말을 하지. 난 그냥 밥먹자길래..
남 아니에요. 뭐 어차피 혼자 보내기도 그렇고....
여 다음에 만날 때 선물 줄께요.
생일이라 이렇게 거하게 쏘는거였구나.
남 많이 먹어요.
여 그의 여자친구라도 된 기분이었다.
생일에 단 둘이 저녁 식사라니. 행복했다.
(E) 전화벨
여 그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진.
남 여보세요. 어 소영아. 왜 그래? 어딘데. 알았어. 지금 갈께.
어쩌죠. 나 지금 잠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여 왜요.
남 모르겠어요. 소영이가 어디가 아픈건지.... 울고 그러네요.
여 (차분히) 가지 마세요.
남 아니 그래두...
여 계속 그럴거에요? 아프다 그럼 가고. 슬프다 그럼 가고.
그랬다가 내쳐지고. 바보도 아니고. 왜 그러고 살아요?
남 나중에 얘기해요 은서씨. 나중에.
여 지금 가면 나중 없어요.
남 ...?
여 나중 없다구요. 그런 거 없어요.
남 은서씨..
여 나도 희망고문 당하기 싫어요. 봉덕씨한테 바보 아니냐고 했지만
진짜 바보는 나거든요. 나도 나한테 맘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들어준다는 핑계로 옆에 붙어 있었으니까.
남 .....
여 지금 가면, 난 다시는 봉덕씨 안 봐요. 갈 거면 그런 건줄
알고나 가요.
남 ...은서씨. 미안해요.
여 끝내 그는 식당에서 나가 버렸다.
(M) 님은 먼 곳에 / 거미
(E) 걸어가는
여 계속 눈물이 났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난 내 전화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내일 아침 전화번호를 바꿀 것이고 새로운 핸드폰을 살 것이다.
다시는 그의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말이다.
그렇게 펑펑 울다가 밤 12시가 넘어 집앞에 도착했다.
남 왜 이제와요.
(E) 그냥 가는
남 은서씨.
여 소영이 달래주고 왔어요? 그러고 나니까 내 생각이 나요?
나도 당신처럼 바보긴 하지만, 그래도 당신보단 나아요.
다신 이렇게 찾아오지 말아요. 이제 더는 한마디도,,,,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 이야기 따윈 듣고 싶지 않아요.
남 그거 아니에요.
여 ....
남 아니라는 거 나도 이제 알았어요. 아까 식당에서 나와서
택시잡아타고 가다가... 그러다가 알았어요. 이대로 은서씨를
못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고 막막해져서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서 돌아갔어요. 그런데 거기 은서씨가 없어서.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해요?
여 .....
남 전화는 왜 안돼요. 어디 갔었어요 도대체.
여 (눈물) 나한테 전화기가 얼마나 끔찍한 물건이었는지 알기나 해요?
나는 당신 이름 뜨길 기다리면서 전화기 바라볼때가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버렸어요.
다시는 그런 짓 안할려구.
남 .......미안해요.
여 (으앙 울고)
남 다시는 맘 아프게 안할께요. 미안해요.
여 내 어깨를 끌어안은 그의 손이 내 등을 토닥토닥해준다.
전화기 분실신고하고, 얼른 찾아봐야겠다.
전화기 켜면, 제일 먼저 단축번호1번에 그의 이름을
저장해 놔야지. 내꺼... 이렇게.
나 이런 거, 너무 해보고 싶었다!!!!
(M) 주제음
2009-03-2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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