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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2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75화   - 갈잎의 노래

 

(M) 주제음

 

(E) 뛰어가는 소리

(E) 거친 숨소리

 

여  어떻게든 뛰어야 했다.

    지긋지긋한 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을 무릅쓰고 뛰는 길 밖에 없었다.

    열아홉살 때부터 술집을 떠돌며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팔았다.

    그러길 오년.

    나에게 남은 건 산더미처럼 불어난 빚 뿐이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뛰었고.

 

(E) 차 급정거하는 쿵하는  

 

여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마주오던 차와 부딪쳤다.

    그리고 그들이 오기 전

    차 주인은 나를 싣고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M) To Treno Fevgi Stis Okto / Agnes Baltsa

 

여  차 주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고급 병실에서 편하게 먹고 쉬고 치료받을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후.

    난 뜻밖의 검사 결과를 받게 됐다.

    간암이라고 했다.

    교통 사고 때문에 발견하게 된 병. 간암.

    그러니까 난 죽기살기로 도망치지 않았어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구나.

    헛웃음만 나왔다.

    그밤. 난 간호사 몰래 소주를 사가지고 들어와

    병원 옥상에서 따라 마시며

    한참을 울었다.

(M) 눈물 / 리아

 

(E) 걸어나오는

 

여  다음날. 퇴원했다.

    치료를 받을만한 돈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몇 개월이나 남았을까.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누구를 만나야 할까. 한참 생각했다.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한 사람만 떠올랐다.

    죽을때까지 죽어도 찾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한 사람.

    아버지.

(M) 아버지/ 권진원

(E) 버스 덜컹거리면서 내린다

 

여  오래전. 이모에게 받은 주소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직도 여기 살고 있을까.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난 그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하려고

    이 먼 길을 왔을까.

 

(E) 문 드르륵 열고

 

남  어서오세요.

 

여  작고 낡은 낚시대여점이었다.

 

남  낚시하시게?

여  ....네.

남  뭐 아무 것도 안 가져오신 모양이네? 전부 다 대여.하시게?

여  ... 네.

남  일단 좀 앉아서 몸 좀 녹이세요. 밖에 춥죠.

여  그러네요.

남  보리차라도 한잔 드릴까?

 

(E) 난로 위의 주전자 들어 보리차 따르고

 

남  여기가 물가라서 더 추워요.

여  ...

남  그런데 여자분 혼자서 낚시하러 온 거에요?

    요샌 추워서 남자분들도 잘 안오는데?

여  아저씬 여기 혼자 사세요?

남  마을에 집 있어요. 마누라도 있고. 아들놈이 두놈 있는데.

    둘 다 서울서 공부합니다.

여  .... 네에. 참.. 자랑스러우시겠네요.

남  뭐...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아들들이 이 시골에서도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

    아무 뒷바라지 안해줬어도 지들 힘으로 그 좋은 대학 척척 붙어서

    지금은 장학금 받고 다닌다우.

여  (왠지 날카로운) 뒷바라지를 해주셨겠죠.

남  이런 시골서 뒷바라지 할 게 뭐 있어요.

여  부모가. 아버지가.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뒷바라지 아닌가요.

남  예?

여  (수습하며) 아뇨. 그냥.. 그렇다구요.

(M) Fields of Gold /   Eva Cassidy

 

(E) 낚시대 드리우는

 

여  강은 조용하다.

    낚시꾼도 몇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 아버지가, 이곳에서 살았구나.

    내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도망쳐서

    이곳에 와서 살았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떠난 후

    삶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

    나를 외삼촌 댁에 맡긴 후

    마음대로 들어왔다, 마음대로 나가고

    그러길 몇년.

    어느 겨울. 고속도로 어딘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전화를 받았었다.

    아버진 이곳에서 평화롭고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우린 그렇지 않았다.

    우린, 세상이 지옥 같았다.

 

(E) 다가오는

 

남  아가씨.

여  ...네?

남  이것 좀 들어볼래요? 우리 집사람이 고구마를 쪄왔네?

여  .....

남  뭐 서울아가씨가 이런 거 좋아할 지 모르겠지만

    여기 고구마가 맛으론 명물이라.

여  네. 잘먹을께요.

남  혹시 목마르면 들어와서 물 마셔요.

 

(E) 멀어지는

 

여  멀리 그의 아내가 보인다.

    수더분하고 착해 보이는 여자다.

    20년 전. 가정이 있는 남자와 함께 야반도주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순해 보인다.

(M) Almaz / Randy Crawford

 

(E) 들어선다

 

여  아저씨.

남  고기 많이 잡았어요?

여  마을이 여기서 멀지 않나요?

남  금방이에요.

여  혹시 민박할 집 있어요?

남  민박을 따로 치는 집은 없는데. 우리집에도 가끔 낚시하는 분들 와서

    자고 가기는 해요.

여  아저씨네 집에요?

남  뭐 애들 방도 비었고 하니까.

여  그럼. 저도 거기서 묵을께요.

남  아 그러실래요? 얼마나..?

여  사나흘 정도만요.

 

여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에게 내 존재를 인식시키고. 내가 얼마나 처절한 모습으로

    죽어가는지, 알려주고 떠날 것이다.

    당신이 버린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행복할 동안.

    당신이 낳은 딸이 어떤 지옥에서 허우적댔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보여주고 떠날 것이다.

    남은 생.

    당신도 조금은 아파하겠지.

(M) 덩그러니 / 이수영

 

(E) 방문 열고

 

남  군불은 땠는데. 아랫목에 발 묻으세요.

여  네.

남  저녁상 곧 봐올 겁니다.

여  아저씬 여기 사람이 아니신가봐요?

남  아.. 어떻게 알았어요?

여  사투리를 전혀 안쓰시잖아요.

남  원랜 서울에 살았는데. 사정상 이쪽으로 이사오게 됐어요.

여  네에.. 서울에선 어디에 사셨는데요?

남  예? 아.. 뭐 여기저기 옮겨다녔죠.

    아현동 산동네에서도 좀 살았고. 뭐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요.

여  네.. 저도 어렸을 때 그쪽에 좀 살았어요.

남  그래요? 반갑네요. 그럼 좀 쉬고 있어요.

여  네.

 

(E)방문 닫고

 

여  그가 방문을 닫고 나간 후. 방안을 둘러본다.

    두 아들이 타온 상장으로 온방이 가득하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나와 같은 아버지의 자식들인, 내... 동생들.

    티 하나 없이 맑아보인다.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잘 자랐다는 걸

    알겠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왜 나에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왜.

(M)  I Don't Konw Why  / Nana Mouskouri

 

(E) 군불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E)걸어 오는

 

여  뭐하세요?

남  어이구.  깼어요?

여  아뇨. 잠이 안와서요.

남  아무래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안오죠.

여  시골이라 좋네요. 별도 많고. 공기도 깨끗하고.

남  서울보단 아무래도 그렇죠.

여  서울서 살 때가 그립진 않으세요?

남  ....

여  아무리 여기가 좋아도, 하루 이틀이잖아요.

    도시에서 살 때가... 거기서 만났던 사람이라든가...

    그리울 때 없어요?

남  있죠 왜 없어요.

여  그래요?

남  인생을 살아보니까 그래요.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되는 순간들도 많고.

    그때 그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하게 돼요.

여  .....

남  그리울 때 있어요.

    아현동 산동네에 살던 그때.

    그때.... (뭔가 말하려다 막히는) 아니에요. 내가 처음 보는 분 앞에서

    별 소릴 다하네.

 

여  매운 연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년 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을까.

    그의 눈가는 금방 붉어졌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가 후회 아니라, 땅을 치고 통곡을 한대도

    난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M) Maldicao / Amalia Rodrigues

 

------------------------1부 끝 --------------------------

 

 

 

(E)새소리

 

여  이른 아침. 나도 모르게 눈이 반짝 떠졌다.

    뜨끈한 방에서 오랜만에 푹 잘 잤기 때문일까.

    기분도 상쾌해지는 것 같다.

 

(E)마당 쓰는 소리

 

남  잘 잤어요?

여  일찍 일어나셨네요.

남  시골 사람들은 잠이 없거든요. 세숫물 데워 놨어요.

여  찬물에도 상관 없는데.

남  딱 보니까, 곱게 자란 아가씨 같은데. 이런 시골에서 찬물로 세수한     거 알아봐요.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어.

여  손에 찬물 좀 묻었다고 속상해할 사람 없는데요.

남  예?

여  ....부모님이 안계시거든요.

남  아이구. 저런. 형제는..?

여  안계세요. 저 태어나고 두분 다 돌아가셔서.

남  내가.. 안할 소릴 했네.

 

(E) 손 씻다가

 

여  자식 두고 먼저 죽는 부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  글쎄.. 뭐 그러고 싶어 그러는 부모가 있겠어요.

여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자식 두고 죽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전.

남  .....

여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부모 그늘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남  .....

여  하긴.... 죽는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요샌 별 사람들 많잖아요. 어린 자식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뭐.

 

여  순간. 그의 낯빛이 흐려지는 걸 난 보고야 말았다.

 

남  아..침이 다 됐나?

 

(E) 걸어 들어가는

 

남  부엌으로 들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왠지 휘청이는 것 같기도 했다.

(M)  Papa Can You Hear Me?  / Barbra Streisand

 

(E) 낚시대 퐁당 던지는

 

여  낚시대를 강물에 담그고서

    멍하게 아무 생각하지 않고 몇시간씩 보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이렇게 멍한 상태일까.

    아픈 것도 모르고. 슬픈 것도 모르고. 미운 것도 모르는.

    그런 상태.

    그럴 수 있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살아서, 고통을 생으로 다 느껴야 하는 건

    너무 가혹했다.

 

(E)다가오는 소리

 

남  많이 잡힙니까?

여  아뇨. 아직 한마리도 못잡았어요.

남  여기 오는 분들. 고기 잡으러 오는 사람보단

    그냥 이렇게. 생각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요.

여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  예. 그것도 뭔가 골똘히.

여  그래요?

남  누구 미워하는 사람 있어요?

여  네?

남  아니면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든가.

여  ....

남  둘 중에 하나거든요.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에겐

    죽도록 미운 사람. 아니면 죽도록 좋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니까.

여  아저씨에겐 어떤 사람이 있는데요?

남  ....저야 뭐.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 그리고 마누라.

여  그게 다에요?

남  ....(허허 웃고) 그게 다죠 그럼. 중늙은인데 젊은 애인이 있을 리도

    없구요.

여  참 불쌍하네요.

남  네?

여  추억할 만한 사람 없어요?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미안한 사람. 지금 옆에 있는 사람 말고.

    사무치는 사람 없어요? 그런 사람 없어요?

남  ....

 

여  갑작스런 나의 반응에 놀란 듯 바라보는 그의 눈을 피해 버린다.

    낚시대를 거기 그대로 둔 채

    난 마을로 돌아와 버렸다.

    아직도. 날 못알아보는 거냐고.

    나도 당신 자식인데. 왜 못알아보는 거냐고.

    당신이 생명을 주었던 당신 자식이

    이제. 죽어가고 있다고.

    내내 난 울었다.

(M) 왜 나만 아프죠 / 장혜진

 

여  한밤 중 통증이 찾아왔다.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E) 문 열고, 뛰쳐 나오는

 

여  아저씨.. 아저씨.... (소리 잦아드는) 아빠... 아빠.....

 

여  그러다가 혼절해 버렸던 것 같다.

 

(E) 문 열고 나온느

 

남  아가씨! 이거봐요 정신 차려요! 아가씨!

    여보!! 여보!! 구급차 좀 불러.

 

여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어린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BG) 나의 살던 고향은 -

 

여  네살때였나, 다섯살 때였나.

    서랍장을 딛고 올라섰다가 떨어졌고

    이마가 찢어졌었다.

    온집이 떠나가라 울고 있을 때

    일을 마친 아버지가 돌아왔고

    나를 끌어안고 저렇게 소리를 쳤었다.

    여보... 은서가 다쳤어.. 라고.

    나를 안고 뛰시던 아버지의 눈에서 흐르던 따뜻한 눈물을

    난 아직 기억한다.

    그 두근거리던 심장소리도.

    뭐라고 혼자서 웅얼웅얼 기도하던 그 목소리도

    난 다 기억한다.

    어쩌면 그 기억이 그나마 날 버티게 하던 힘이었다.

    

 

여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많이 늙어 있었다.

    이제야 그가 많이 늙었다는 사실을 알겠다.

 

남  괜찮아요?

여  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남  아니. 여기 의사 선생님 말론 아가씨가... 암... (말 못하고)

    아니 아무튼 검사를 좀 더 해 봤으면 하던데.

여  괜찮아요.

남  아니 그래도.

여  어디 아픈지 저도 잘 알아요. 약도 먹고 있구요.

남  그래요. 아깐 열이 얼마나 끓든지

    많이 놀랬었어요. 잠깐... 이마 좀....

 

여  말릴 틈도 없이. 그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었다.

    

남  열은 많이 내렸네.

 

여  그러더니. 그가 이마에 있는 내 흉터를 보고 말았나보다.

 

남  이마에.. 흉터가 있네요.

여  네.. 일부러 앞머리로 가리고 다녀요.

남  ....다친 거에요? 언제?

 

여  그에게 말을 할까.

    이 상처를 모르냐고. 당신 딸 맞다고. 이제 알겠냐고.

    

남  언제 다쳤어요? 그 이마?

여  다 커서요.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장난 하다가 다쳤어요.

남  ...아...

여  저 그만 갈께요. 좀 쉬었다가 내일쯤 짐 꾸려서

    가야겠어요.

남  벌써요?

여  사흘이나 있었잖아요. 서울 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있고.

(M) 내가 웃고 있어요 / 가인

 

(E) 갈대밭 우는 소리

 

남  몸도 안좋은데, 이렇게 걸어가서 어째요?

여  좋은데요 뭐. 전 이렇게.. 갈대잎이 우는 소리.. 참 좋아해요.

    어렸을 때. 아빠가 나 업구 갈대밭을 걸어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아빠 등에 얼굴을 묻고 이 소릴 들었었는데.

    그게 아직도 많이 생각이 나요.  

남  .....

여  우리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딱 아저씨 나이일거에요.

남  .... 그래요.

여  아저씨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돼요?

남  무슨 이야기.

여  그냥요. 뭐든 다 좋아요.

남  .....

여  우리 아빠 같아서 그래요.

남  아가씨 아빤 나보단 훨씬 좋은 사람이었을 거에요.

여  ....

남  나는 참 나쁜 사람이거든.

여  ....

남  젊은 시절에. 아내와 딸아이가 있었어요.

여  .....!!! 딸이요.

남  아내도 정말 착한 여자였고. 우리 딸은.... (잠시 말 못하다가)

    정말 예쁜 애였는데.

여  .....그런데요?

남  여자가 생겼어요 나한테.

여  .....

남  그 여자랑 야반도주를 했어요. 전세금까지 몽땅 가지고. 내가.. 미친놈이었죠.

여  그래서요?

남  그 여자한테 사기를 당했어요. 돈도 뺏기고. 돌아갈 집도 없어지고.

여  ....?

남  그렇게 한 몇년 떠돌아다녔어요. 뒤늦게 애랑 아내를 찾으려고

    했지만. 어딨는지 알수도 없었구요.

여  그럼... 지금 아내분은...

남  그러다가 여기 낚시터까지 흘러왔어요. 여기서 아내를 만났구요.

여  ......!!

남  남편 잃고 아들 둘을 힘들게 키우고 있는 여자였어요. 예전 아내를

    많이 닮았었어요.

여  그럼... 두 아드님은 친아들이 아닌거에요?

남  친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이십년을 살았어요.

    그러는 게, 어디선가 살고 있을 내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M) Solitude's My Home / Rod Mckuen

 

여  그날 밤. 난 아버지가 새로 내다 준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내 짧은 인생에도 크나큰 실수들이 많았다.

    아버지 인생이라고 왜 아니겠는가.

    그 실수가 나에겐 큰 상처를 주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이미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가슴이 오히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M) Dance with My Father  / Celine Dion

 

(E) 문 열고 나오는

 

남  벌써 가게요?

여  네. 첫차 타고 가려구요.

남  이리 줘요. 짐들어다 줄께요.

여  괜찮아요.

남  줘요. 버스 정류장까지만 바래다 줄께.

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이거. 감사했어요.

    방값이에요.

남  미안한데. 나 이거 못받겠어요.

여  네?

남  그냥... 그러네요. 마누라한테도 어젯밤 그렇게 얘기했어요.

여  ....

남  넣어둬요. 얼마 안되지만 병원비에 보태쓰든가.

 

(E) 걸어가는 소리

 

여  다 왔어요. 이제 가보세요.

남  아가씨.

여  네?

남  내가 아빠같다고 그랬죠.

여  네...

남  난... 아가씨가.... 우리 은서... 우리 딸 같아서...

    처음 본 순간부터도 그랬고. 자꾸만...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자꾸만 그래서...

여  .....

남  다음에. 몸이 다 나으면. 여기 다시 놀러와줄 수 있겠어요?

여  ....

남  꼭 한번만 더. 그래줄 수 있겠어?

여  (울음 참고 힘들게) 네. 그럴께요. 꼭. 그럴께요.

남  아픈 거. 다 나아서. 와줘요. 꼭.

여  네..

 

(E)버스 오고. 올라타는

 

여  버스에 올라타. 흐려지는 눈으로 창밖을 본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다.

    아버지....

    그의 남은 생이. 행복하기만 빈다.

(M) 주제음

 

 





2009-01-23(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