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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73화 - 마돈나와 터미네이터
(M) 주제음 내가 사랑해 / 서영은 & 자전거 탄 풍경
* 오늘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은 익명을 요구하신 청취자님의
실제 사연을 각색한 것입니다.
여 학교는 졸업했는데 별다른 직장도 없었고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재산을
모두 날리고 빚쟁이에 쫓기고 있었다.
여동생과 나 역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들 때문에
수없이 이사를 하면서도 늘 가슴 졸이고 살아야 했다.
남자친구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그날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피씨방에서 이런 저런 게임을 하면서
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채팅방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E)키보드 자판 치는 소리 -
남 닉네임이 마돈나네요?
여 그쪽은 터미네이터?
남 네. 예뻐요?
여 그러는 그쪽은 힘이 쎄요?
남 글쎄요.
여 저도... 글쎄요.
(M) A Lover's Concerto / 접속 O.S.T
여 특별히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심심하고도 외로운 시간을 그 사람과 인터넷상에서
대화하는 시간이 메워주었다.
어느샌가 잠들기 전엔 늘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남 마돈나님. 나 이번주에 북한산 가는데.
여 북한산엔 왜요?
남 겨울산 좋아하거든요.
여 위험하지 않아요?
남 위험한 코스로 안가고,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길로 가면 괜찮아요.
여 네. 조심해서 잘 다녀와요.
남 마돈나님은 안가요?
여 저는 등산 싫어해요.
남 산에 가는 거 참 좋아요. 몸은 좀 힘들어도 잡생각도 잊을 수 있고.
뭔가 성취감 같은 것도 느껴지구요.
여 네에..
남 같이 안갈래요?
(M) 즉흥여행 / 윤종신
여 고민이 됐다.
여러 날의 대화로 나쁜 남자가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직접 만나는 건 좀... 내키지 않았다.
요즘처럼 위험한 세상에
아무 것도 모르는 낯선 남자를 만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라구...
다음날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이렇게 치기 시작했다.
(E) 자판 치는 소리
여 터미네이터님. 제가 어제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아무래도
만나는 건 좀.....
여 하지만 내가 글을 다 쓰기도 전에
터미네이터 쪽에서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남 마돈나님 등산화 있어요?
여 등산화? 난 쓰던 글을 서둘러 지웠다. 그리고.
여 등산화는 없고 그냥 운동화는 있는데...
남 겨울산 타려면 그냥 운동화 가지곤 안돼요. 등산화 꼭 있어야 돼요.
여 아.. 그래요? 그럼 전 안되겠네요... 안 그래도 제가 안된다는 얘기를
막 하려던 참...
남 발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여 네? 발..사이즈? 235요.
남 와.. 발 진짜 작네. 알았어요.
여 뭘 알아요?
남 235짜리 등산화 준비해 놓을테니까
이번주 토요일 북한산 앞 버스 정거장에서 봐요.
(M) 등산 / 산울림
(E) 버스에서 내리는
여 막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약간 후회가 됐다.
사실 마돈나라는 닉네임은 얼토당토 하지 않았다.
난 섹시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타입도
아니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누가 마돈나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할까. 그 사람이 내 얼굴을 보면
웃음을 터뜨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E)걸어오는 소리
남 저.. 마돈나님?
여 네? 누구...
남 저에요. 터미네이터.
여 터미네이터가 다 얼어죽었단 말인가.
아니 저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 소심해 보이는 얼굴이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에 어울리기나 한가.
여 (쓴웃음) 네에... 안녕하세요.
남 못알아볼 뻔 했어요.
여 네? 왜...요..
남 보통은 자기 이미지에 어울리는 대화명을 쓰잖아요.
마돈나님은... 그러니까 마돈나라는 이름이랑은 좀.... 안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여 아니 뭐... 그건 터미네이터님도 마찬가진 거 같은데...
뭐냐 그러니까... 그다지 강인한 이미지는 아니시지 않나요?
남 (웃고) 제 얘기에 기분 나쁘셨어요?
여 아뇨 뭐..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단..
남 제 말은. 마돈나님은 마돈나보다는 오드리햅번쪽에
더 가까운 거 같다는 얘기였는데.
여 ....(기분 좋아지지만 티 안내려) 오..드리햅번요?
남 우아하면서도 지적이시잖아요.
여 어..어머나.. 무슨.. 우아는.. 아우 아니에요. (이미 기분 좋아졌다)
지적이기는 뭐... 호호호호.
(M) Moonriver / Audrey Hepbern
(E)저벅저벅 걸어가는
남 괜찮아요?
여 아후.. 잠깐만요. 좀만 쉬었다 가요.
남 힘드세요?
여 제가 이런 거 안해봐서요. (헥헥)
남 앉으세요. 그리구... 이거 먹을래요?
여 초컬릿이네요?
남 등산할 때 초컬릿은 필수에요.
목마르면 얘기해요. 오이랑 물이랑 다 싸왔으니까.
여 참 다정다감하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딱 저러셨는데.
겨울숲은 하얀 입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추웠지만
그 사람이 뿜어내는 따뜻한 기운에
난 하나도 춥지 않았던 것 같다.
(M) He Was Beautiful / Cleo Laine
(E) 걸어오는 소리
남 다 왔어요. 이리 올라와봐요.
여 (영차 하고) 아.... 에구.... 진짜 다 온거에요?
남 보세요.
여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보니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이
참... 작고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어쩌면 나를 누르고 있는 많은 고민과 아픔들도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겠구나...싶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툭 터져 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은 내가 우는 걸 분명히 봤는데도 불구하고
고맙게도 다른 곳을 봐주었다.
그렇게 그 사람이 울 시간을 내어 주어
난 조금 더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울고 났을 때 가슴 한 가운데 막혀 있던 게
툭 터진 것처럼. 시원하고 상쾌했던 기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M) Dreams / Crenberries
여 함께 산에 다녀온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일년 쯤 지났을 때.
그 사람은 불쑥 말을 꺼냈다.
남 우리 결혼해야지..?
여 마치. 이번 주말에 영화 봐야지..? 또는 마트에 같이 갈까?
라는 말을 꺼내듯이 일상적인 어투였다.
나 역시 그 사람과의 결혼과 미래를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말을 듣자 앞을 턱 가로막는 게 있었다.
남 왜..? 그런 표정이야? (농담조) 어? 나랑 결혼은 안하고
연애만 하려고 했었어? 나 갖고 논거야?
여 왜 이래..
남 내가 너무 부담스런 얘기를 꺼낸건가?
여 그게 아니구.
남 그럼?
여 다 얘기했잖아. 우리집 사정.
남 응. 알아. 그래서 뭐. 우리집은 뭐 많이 나은가? 빚만 없지..
우리집도 그냥 그냥 살아.
여 나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정확히 몰라.
가끔 엄마한테 전화나 걸려와야.. 살아계시구나.. 그러지.
이런 집 딸을.. 자기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
남 너 우리 부모님이랑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 내가 좋아하는데.
여 철딱서니 없는 소리 하지 마..
남 걱정 마. 내가 공사 다 해놨으니까.
여 공사..? 무슨 공사?
남 내가 지난 일년 동안 우리 부모님한텐 세상에서 제일 무능하고
못난 아들로 찍혔다.
여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남 요즘 맨날 그러셔. 내 아들이 저렇게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책임감없고 띨띨한 놈이었는지 몰랐다구.
여 자기.. 집에선 그래?
남 내가 일부러 그러는거야. 우리 부모님 맨날 그러시거든.
저런놈한테 누가 시집올까. 누가 시집올지, 재수 참 없구나...
여 나 안미워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다구?
남 너.. 아무리 부모 자식간이라두 때론 작전이 필요한거야.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좋아하고
그 여자한테 고마워하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딨겠어.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좀 망가지는 거 쯤 어떠냐?
여 ...... 자기야..
남 내가 엊그제 술먹고 새벽 세시에 들어가서
진짜 갖은 진상 다 부렸더니. 우리 부모님 완전 패닉 상태시거든?
이번 주말 쯤 가서, 니가 인사 드리면. 니 손 잡고 고맙다 그러실거 야.
여 설마...
남 설마 아니라니까.
여 설마가 아니었다. 그 사람 말대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인사를 갔더니. 그 사람의 어머니는 눈물까지 글썽이시며
이렇게 참하고 고운 처자가 내 아들한테 정말 시집올거냐고
손을 덥썩 잡으신 것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국에 계신다고 둘러대면서
난 그분들께 속으로 말씀드렸다.
죄송하다고. 하지만 이 남자와 결혼하면
정말 최선을 다해, 잘살겠다고.
(M) 그대와 영원히 / 이소라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E) 좀 멀리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
여 우리의 첫 신혼집은 기찻길이 가까운 곳이었다.
소음 때문에 보증금 없이 싼 월세였지만
난 마냥 좋았다.
정착할 집이 생겼다는 게...
(E) 못 박는 소리
남 됐어?
여 어.. 그거 걸어봐.
남 이렇게?
여 아니 왼쪽으로. 어. 그렇지. 됐어.
남 (손 탁탁 털며 내려오는) 그림 한번 걸기 힘드네. 이게 무슨 그림이 야?
여 이게 있지. 은미가 선물한건데. 돈 들어오는 그림이래잖아.
남 처제가 이런 걸 선물했어?
여 우리 자매가 돈엔 한이 좀 맺혔잖아? 은미가 그러는데
반드시 돈 많이 벌어서 자기도 좀 묻어가게 해달래.
남 (웃고) 처제도 참..
여 아까 우리 동네 들어오기 전에 새로 지은 아파트 봤지?
남 어.
여 나 5년 안에 거기 들어간다.
남 뭐? 거기 얼마나 비싼데.
여 아니?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5년 동안은
애 갖자는 얘기 하면 안돼.
남 5..년 씩이나..?
여 나 이제 제빵사 자격증 따서 일 시작할건데. 애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해. 그리구, 애를 키우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키우지.
남 .... 돈 없어도 사랑으로 키우면 되지.
여 아니? 우리 엄마 봐. 아무리 우릴 사랑하면 뭘해.
돈 없으니까 자식들 고생만 시키잖아.
남 당신도 참...
여 나, 당신이 그러라고 해서 그러긴 했지만. 시집올 때... 십원짜리
한 장 못 보태고. 당신한테도 어머님아버님한테도 얼마나
면목없고 미안했는데.
남 또 그 소리야? 우린 아무 상관 없다는데. 당신 혼자 왜 그래?
그리구. 내가 뭐... 대궐 같은 집에 당신 꽃마차 태워
데려온 것도 아니고. 겨우 이런 집인데.
여 시작은 여기지만. 5년 후엔 저기 저.. 햇볕 잘 드는 아파트에
살자구 그러니까. 우리 둘이 힘 합쳐서.
(M) Our House / Crosby Stills Nash And Young
(E) 대문 여닫고
남 당신 왔어?
여 응..
남 피곤하지.
여 괜찮아. 여보. 나 제빵학원에서 시험 봤는데 1등했다?
남 진짜? 야.. 대단하네.. 아줌마가?
여 치. 아줌마 무시하지 마라. 근데 언제 들어온거야?
남 아까 회사 끝나고 6시 좀 넘어서.
여 저녁은.
남 그냥 라면 먹었어.
여 왜 라면 먹어! (하다가 아차) 아.. 내가 아침에 밥 안해놓고
나갔구나.
남 괜찮아. 밥은 내가 할 수도 있었는데.
라면 먹고 싶어서 먹은거야.
여 그래두.. 혼자 라면 끓여먹게 해서 미안해. 앞으론 일찍 와서
저녁은 같이 먹을게.
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그후로도 계속 남편 혼자 저녁 식사를
하게 했다. 크리스마스도, 발렌타인데이도, 결혼기념일도
남편은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한마디 불평도 없었다.
(M) 니가 있어 / As One
여 드디어 제과학원을 졸업해 취업을 했다.
하지만 힘든 일은 남아 있었다.
원래 피부가 약했던 내가
밀가루와 기름을 계속 만지다 보니
알러지 반응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팔과 다리에 붉은 반점들이 번지면서
내가 봐도 징그러울 정도였다.
남 여보..
여 (우울한) 됐어. 만지지 마. 보여주기 싫어.
남 이리 와 봐. 내가 약 발라줄게.
여 됐다구. 당신이 보는 거 싫으니까 보지 마라잖아.
남 아 뭐 어떻다 그래. 진짜 마돈나 같기만 한데.
여 지금 누구 놀려? 마돈나 좋아하네! 나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남 아니야. 지금 당신 얼마나 섹시한데.
자기 일 열심히하고. 힘들어도 꾹 참고. 그렇게 잘 견뎌가는 당신이
얼마나 멋지고. 섹시한데.
여 말도 안되는 거 잘 알았지만
남편의 위로에. 눈물이 났다.
(M) Like a Virgin / Madonna
여 그러던 어느날. 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남편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남 여보.. 너무 잘됐어. 이제 일 조금만 하고 몸 조심해.
여 (심드렁) 앞으로 몇 년간은 정말.. 애 안 가지려고 했는데.
남 그런 소리 하지마. 뱃속에 우리 애기가 듣겠다.
여 나 오늘 늦어.
남 왜...
여 예약된 케익이 많아서 그거 다 만들고 오려면 12시 넘을거야.
남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데...
여 그럼 어떡해! 누군 뭐 그렇게 일하고 싶어서 해?
우리 사정 제일 잘 알면서. 내가 일 안하면. 당장 낼 돈을
못내는데. 그럼 당신이 내가 버는 것까지 벌어오든가!
여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한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남편이 얼마나 애쓰는지 나도 아는데.
택시 한번 안타고. 그 좋아하는 담배도 끊고.
술자리도 거의 안가고.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남 미안해..
여 ..... 됐어. 나 간다.
(M) Tears In Heaven / Choir Boys
여 너무 무리를 해서였는지.
아니면. 아이도 내가 원치 않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는지..
얼마 뒤. 뱃속에 있던 우리의 아이는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뜻밖이었다.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이가 떠난 것을 알았을 때. 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엄마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엄마에게 따뜻한 태담 한마디 듣지 못하고 가버린. 불쌍한 우리 아기.
난 병원에서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리고 난. 누구보다 남편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 (딱딱) 몸조리 잘하고 있어. 회사 갔다올게.
여 ....여보. 왜그래.
남 ....
여 왜 나랑 눈도 안 마주쳐. 나한테 화 많이 났어?
남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주면 안돼?
여 왜... 나 지금 얼마나 힘든데... 당신이 날 위로해줘야지.
남 내가 왜?
여 뭐?
남 난 당신이 왜 지금 이렇게 울고불고 난린지 모르겠어.
여 여보....
남 원하지도 않았잖아. 조심 하라고 그렇게 당부했어도
내 말 듣는 척도 안했잖아. 오히려 다른때보다 더
심하게 일하고. 몸도 함부로 했잖아. 우리 아이가 귀찮아서
거추장스러워서 그런 거 아냐? 이렇게 되길 바랬던 거 아냐?
여 (울컥, 울먹)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여보. 내가 지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데. 내 속에 있던 내 아이가... 없어졌어.
내 잘못으로. 나 지금.... 죽을 것 같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 근데 안되잖아.
남 쉬어. 나중에 얘기하자.
(E) 문 닫고 나가는
여 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내가 미울지, 짐작도 됐다. 그러면서도 서러웠다.
나만을 위해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바래서. 가난하게 사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남들에겐 쉬워 보이는 삶이.
나에겐 이렇게 힘들기만 한건지. 너무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M) Thank you / 이은미
여 이후, 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게 됐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고. 무력해졌다.
예전처럼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남 여보.. 일어나.
여 피곤해.. 더 잘래.
남 일어나 봐. 나랑 산에 가자.
여 ...산에?
남 당신 등산화 빨아서 잘 말려뒀어.
여 갑자기.. 산에 왜...
여 ....라고 하면서도 마음이 조금 설?다.
그가 꺼내둔 등산화를 신고
버스를 타고. 함께 겨울산으로 향했다.
(M) 제주도 푸른밤 / 성시경
(E)걸어가는 소리
여 산을 올라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남 안 힘들어?
여 ...괜찮아.
남 힘들면 말해. 쉬었다 가게.
여 응... (하다가) 아야!
(E) 넘어지는 소리
남 에이 조심하지. 어디 봐.
여 괜찮아. 살짝 뼜나봐.
남 에이 참.. 업혀.
여 어우 됐어. 걸을 수 있어.
남 업히라구.
여 평지도 아니고. 오르막을 어떻게 가겠다 그래. 그냥 부축만 해줘.
여 하지만 남편은 고집이 ?다.
나를 업고 한발 한발 떼기 시작했다.
마른 등이 너무 포근하고 편안해서 얼굴을 묻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E) 걸으며
남 당신 울어?
여 ....
남 그냥 거기 대고 울어.
여 ... 여보.. 미안했어.
남 .....나도.. 나도 미안했어.
(M) 해바라기 / 박상민
여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사람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나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산은 여전히 높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 보며
우리는 있는대로 고함도 치고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다 괜찮은 것 같았다.
다 지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M) 다시 또 시작해 / Fly To the Sky
(E) 아기 소리
남 여보. 승주 목욕물 다 됐어?
여 어... 데리고 들어와.
남 안 뜨거워?
여 어. 딱 맞아.
남 들어가 있어. 내가 목욕 시킬게.
여 조심해. 안 떨어뜨리게.
남 걱정을 마세요 사모님.
여 내가 꿈꾸던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이사왔다.
그리고 결혼 8년만에 이쁜 딸도 얻었다.
좀 있으면 돌이다.
화려한 돌상은 못차려주겠지만
우리 셋, 가족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욕심을 줄이니, 행복이 찾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나의 터미네이터와
그 사람에겐 가장 섹시한 마돈나가 함께 사는 우리집.
우리집이 바로. 내가 그리던 천국이다.
(M)
주제음
2009-01-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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