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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70화 - 필름이 끊겼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M) 주제음 다행이다 / 이적
남 나는 찌질이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샌님.
거기에 백수다.
친구 녀석들은 이 불황에 용케도 취직을 해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데.
게다가 좋은 여자 만나 결혼까지 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나는 여전히 다섯평짜리 반지하 월세방에서
여기저기 제출할 이력서에 사진이나 붙이고 있는 신세다.
오늘은 또다른 친구가 대리로 승진했다면서
한턱 쏘겠다고 나오란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기로 했다.
집에 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면, 어떻게든 저녁은 해결되겠지....
정말, 한숨만 나온다.
(M) 싸구려 커피 - 장기하와 얼굴들
(E) 시끌벅적하게 노는 소리
남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저녁은 고기였다.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꽃등심인가.
2차는 내년봄에 결혼하기로 했다는 철진이 녀석이
내기로 했다.
단란주점이었다. 차라리 이 술 사줄 돈으로
쌀이나 사줬으면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술을 먹어선지
금방 취하는 것 같았다.
깜박 취해서 자다가 일어나 보니
친구들은 스테이지에서 신나게춤을 추고 있었고.
내 옆엔 낯선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 오빠. 이제 깨는거에요?
남 누구...?
여 나 아까부터 오빠 옆에 앉아 있었는데. 몰랐어요?
남 네.. 몰랐는데...
여 하긴 취해서 그렇게 잠만 자댔으니..
남 그런데 누구...?
여 누구긴 누구에요. 저 오빠가 아가씨들 불러서
여기 앉아 있는 거잖아요.
남 아... 네....
여 술 한잔 받으실래요?
남 예? (황송해서) 아...아뇨. 제가 따라 먹을께요.
여 그러지 말고. 받아요. 처음 만난 기념으로.
(M) 만남 / 노사연
(E) 새소리
남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너무 쓰리다.
예쁜 여자가 술을 따라준다고 황홀한 나머지
너무 마셨던 것 같다.
이럴 때. 개운한 해장국이라도....
해장국은 무슨. 라면이나 끓여먹여야겠다.
(E)보글보글 물 끓는데, 라면 뽀개서 넣는
남 라면 국물에 면을 집어넣고 끓기를 기다리는데.
(E)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여보세요. 봉덕이 오빠?
남 네? 누구세요?
여 이 오빤, 자꾸 누구냐고 묻기만 하시네. 나 몰라요?
남 네?
여 어젯밤에. 오빠 옆에... 앉았던.
남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여 어제 오빠가 번호 찍어줬잖아요.
남 제가요?
여 치.... 명함 달라니까, 그냥 번호 찍어줘놓구?
남 난 명함이 없어서....
여 기억 안나요? 우리 오늘 만나기로 한 거?
남 예? 우리가요? 아니 왜....
여 나 지금 오빠네 집 근처 근린공원이거든요? 글루 나와요.
남 아니... 참.... 난 이게 어떻게 된건지.
여 나와요. 해장국이라도 먹게요.
(M) My Style / 브라운 아이드 걸스
(E) 해장국 보글보글...
여 먹어요. 난 우거지 해장국 좋아하는데.
남 나두요.
여 근데 진짜 기억 안나요? 동네 어떻게 찾아오면 되는지
마을버스 번호까지 가르쳐 줘놓고?
남 네.. 제가 취하면 필름이 끊겨서....
여 내가 그랬잖아요. 싼 월세방 구한다구. 지금 있는 데
너무 비싸서....
남 아...
여 그랬더니 오빠가 그랬잖아요. 월세 싼 데론 지금 오빠네
동네만한 데가 없다구.
남 그건 맞는 말이죠. 여긴 보증금 없는 집도 꽤 되거든요.
여 그러니까요. 내가 거기에 혹 했잖아요.
지금 있는 거 보증금 빼서, 금리 높은 저축은행에라도
넣어두면 그게 이자가 얼마야.
남 그렇죠.
여 그래서 내가 집보러 온다구, 어디냐구 가르쳐 달랬구.
오빠가 오기만 하라구, 자기가 다 안내하겠다구
그랬잖아요!
남 아....
여 내가 해장국 사줄테니까, 오늘 안내 확실히해주세요. 오빠.
(M) 오빠 / 왁스
(E)계단 올라가는 소리
여 (힘들어하며) 아직 멀었어요?
남 거의 다 왔어요.
여 아까도 거의 다 왔다며!
남 진짜 거의 다 왔어요. 이리 와봐요.
여 (몇걸음 더 오고) 어디요.
남 저기....
여 어디. 초록색 대문?
남 초록색 대문은 우리집이구. 그 옆에 하늘색 대문.
여 아..
남 거긴 그래도 우리집보단 덜 오래돼서. 괜찮아요.
이 동네에선 좋은 집에 속해요.
여 그래요?
남 주인 아줌마도 좋은 편이구요. 얼마전에 얘기 들어보니까
저 집 옥탑 살던 아가씨가 이번달 말에 나간다더라구요.
여 날짜도 잘 맞네.
남 이렇게 들어가면, 복덕방 비도 세이브 되는 거잖아요.
여 맞다. 오빠가 역시 내 맘을 잘 알아주네. 제가 어제 오빠
보는 순간 딱 알았거든요.
남 뭘요?
여 아, 이 오빠, 우리 과다.
(M) Family / 마이티마우스
(E) 이삿짐 옮겨주는
여 고마워요. 이렇게 이삿짐까지 안도와줘도 됐는데.
남 언젠 도와달라면서요.
여 에이..... 그냥 고마우니까, 인사차 하는 말이죠 그러니까.
남 이제 다 됐어요?
여 밑에... 상자 두 개 더 있어요.
남 뭔 짐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 다 화장품 옷 그런 거 아니에요?
여 어머? 아니에요. 무슨 옷이 이렇게 무거워요.
남 그러게... 뭐에요 이거 다?
여 책이요.
남 책? 무슨 책?
여 그냥..... 문제집도 있고..... 참고서도 있고....
남 ?? 문제집? 참고서? 무슨 시험 봐요?
여 나... 수능 준비 하잖아요. (웃으며) 대학 갈려구.
(M) 거위의 꿈 / 인순이
(E) 자장면 먹는 소리
여 역시.. 자장면은 이삿짐 나르고 이렇게 신문지 깔고 먹는 게
최고에요. 그죠.
남 그거... 이사 자주 해본 사람들만 아는 맛인데.
여 나야 뭐... 어려서부터 이사 숱하게 다녔죠.
솔직히 이사하는 거 하나도 안 힘들어요 나는.
남 그래요? 난 혼자 살면서부터 이사했지. 지방이라서요 본가가.
여 본가.... 어머니 아버지 계시는 집요?
남 네. 형님이랑 형수님이랑 조카들도 있구요.
여 우와. 완전 복작복작하겠네.
남 은서씨네는?
여 우린 무남독녀.
남 귀하게 자랐겠네.
여 처음엔 그나마 그랬는데.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아버지
일이 잘 안되고. 이사 자주 하게 되고. 그러면서는, 뭐..
경제적으로 힘들면요.암만 귀한 자식이라도
천덕꾸러기 되는 거 같더라구요.
남 근데요. 참 다른 거 같아요.
여 뭐가요?
남 화장 했을 때랑, 지운 때랑. 정말 딴 사람 같으니까.
훨씬 어려보이고.... 암튼 다른 사람 같아요.
(M) 그댄 달라요 / 한예슬
남 우리집 마당에서 보면, 그녀의 옥탑방에 불이 켜졌는지
꺼졌는지, 환하게 보인다.
언제부턴가. 나는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나와서
옥탑방에 불이 켜졌나, 꺼졌나.... 힐끗 보게 됐다.
켜져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고.
꺼져 있으면, 오늘은 왜 이렇게 늦나....
무슨 일이 있나.... 어딜 갔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공부할때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날 밤엔 초저녁부터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걸 보고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E) 유리문 노크하는 소리
남 누구세요?
여 (밖에서) 저에요. 은서요.
(E) 문 열며
남 추운데... 이 시간엔 웬일로.
여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해서요.
남 그녀의 손엔 문제집이 한권 들려 있었고.
다른 한손엔 호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여 아. 그리고 이건... 밥통 속에 넣어놨던 건데
두 개 혼자 다 먹긴 많아서. 하나 먹어볼래요?
(M) 키친 / 이소은
(E) 쓱쓱 긋는 소리
남 어허... 수능 본단 사람이 이런 것도 몰라서 어떡해.
여 뭐... 내가 남들처럼 학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교육방송이나 들으면서 가끔 하는 건데.
그것도 술 안 마신 날만. 난 환경이 다른 수험생보다... 쳐지잖아요.
남 그래도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야.
이거 봐.
(E)쓱쓱 도형 긋고
남 여기 선을 이렇게 긋고. 엑스 값을 구하면. 이거 봐. 쉽잖아.
여 어? 그게 그렇게 되냐?
남 되냐? 라니. 선생님한테.
여 선생님은 무슨.
남 모르는 거 가르쳐 주면 선생님이죠.
여 생색은. 내가 수업료로 호빵 사왔잖아요.
남 호빵 갖구 돼요?
여 그럼 이건 어때요?
(E) 뽀뽀 쪽 소리
남 뭐...뭐...뭐야....
여 (까르르 웃고)
남 순간 좀 두려웠다.
그녀에겐 아무 것도 아닐 가벼운 키스가
나에겐 너무 큰 의미가 되어버릴까봐.
(M) Kiss할까요 / 성시경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M) Kiss할까요 / 성시경
(E)계단 올라가는 소리, 똑똑 노크소리
여 어? 오빠.
남 뭐하고 있었어?
여 목욕 갔다 와서 텔레비전 보고 있었어요. 그거 뭐에요?
남 시골에서 고구마를 보내왔는데 맛있길래 좀 쪘어요.
여 우와, 맛있겠다.
남 먹어요.
여 들어와요.
남 아니에요. 나는 그냥...
여 에이, 들어와요. 추운데.
(E) 들어오고 문 닫고
남 집.. 깔끔하게 정리 잘해놨네.
여 그럼요. 내가 또 한깔끔하거든요. 앉아요.
(E) 신발벗고 들어와 앉고
여 김치 잘 익은 거 있는데 그거랑 같이 먹을까?
(E)냉장고 열고 김치뚜껑 여닫는 소리며...
남 오늘은 안나가요?
여 가끔 쉬는 날 있거든요.
남 뭐 몰랐던 거 있으면 물어봐요. 온 김에 가르쳐 줄게.
여 그래도 돼요?
남 그럼요.
여 (약간 멀리서 아무렇지 않은 척) 오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요?
남 네?
여 난 요새 그게 궁금하던데?
(M) 알고 싶어요 - 이선희
남 그건 무슨 뜻일까?
어떻게 생각하냐는 건, 자긴 날 좋아한다는 건가?
아닌가? 연애를 해 봤어야 알지.
공부에 집중 안되게, 왜 그런 소리를 해서는......
이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설레고 들뜨는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
(E) 계단 터벅터벅 올라오는 소리
남 은서씨.
여 어? 오빠.
남 왜 이렇게 늦어요?
여 혹시 나 기다렸어요?
남 아니. 그냥 답답해서 바람이나 좀 쐴까 하구요.
여 추운데?
남 ....
여 나 늦어서 걱정돼 기다린 거 아니에요?
남 왜 이렇게 늦었어요? 술 마셨어요?
여 쪼금요. 어쩔 수 없이 마셔야 될 때가 있어요.
(E) 걸어가며
여 그나마, 난 술이 쎄서요. 그리구, 들어가기 전에
간장약 이런 거 챙겨먹고 가거든요.
남 ....네. 힘들지 않아요?
여 ..... 이거저거 해봤는데요. 안힘든 일 없더라구요.
남 그래도....
여 그래두요. 양심은 지키면서 살아요.
엄마 아빠한테 가끔 전화해서, 거짓말하는 게 미안할 땐
있지만. 두분 다.... 나한테 도움 줄 형편이 아니니까.
이혼해서, 따로따로 재혼하셨거든요.
남 ....네.
여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면서 벌써 1년 넘었어요.
대학만 붙으면 그만 둬야지 했는데. 이번엔 떨어졌구....
남 ...... 뭐 돈을 쉽게 벌려고 그러는 걸수도 있지만...
여 (뾰족하진않고) 왜요. 충고하게요?
무슨 말 할 지 다 알아요. 나도 알아요.
차라리 패스트푸드점이나 고깃집 가서 일해라.....
그게 덜 부끄럽다. 그거죠.
남 ......
여 나도 알아요. 근데요. 그러기엔..현실이 너무 힘들어요.
(M) 모를까봐서 / 쥬얼리
남 들어가요.
여 그래도 둘이 같이 걸어오니까 좋다.
자주 그렇게 마중나와 있으면 안돼요?
남 ... 크리스마스 이브엔 뭐해요?
여 나... 뭐...... 일은 하는데...
남 아... 일하는구나.
여 솔직히... 그날이 피크죠 뭐.
남 그렇...겠죠.
여 그런데..... 쉴까요? 그전날부터 아프다고 연기 좀 해서?
남 그럴 수 있어요?
여 ....... 오빠가 그러라면 그러는 거지 뭐.
남 ..... 정말요?
여 전화해요.
(E)문열고 들어가는
남 그녀가 손을 흔들고 들어간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이 걱정은 되지만
난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한다.
그날, 그녀와 함께 어딜 갈까. 무엇을 할까.
생각만 해도. 좋다.
(M) Jingle
bell / As One
남 24일 오후다.
친구 녀석에게 돈을 꾸기까지 하면서
난 나름대로의 준비를 했다.
우선 명동에 가서, 밥을 먹고
명동거리를 걷다가 성당에 가서 기도도 드리고
밤에 되면 한강 유람선을 타는 건 어떨까.
서울에 10년넘게 살았지만
한번도 유람선을 타보지 못했으니까.
(E) 전화한다
남 집에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도 받질 않는 그녀.
받겠지.... 받겠지..... 하면서
몇 번 더 전화도 하고. 문자도 남겼다.
하지만 연락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저녁 7시가 훌쩍 넘어버리고 말았다.
(M) Lonely Christmas - 샤크라
(E) 전화하는
남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는데.
여 여보세요.
남 왜 이렇게 전화가 안돼요.
여 전화하지 마세요.
남 네?
여 (신경질) 전화하지 말라구요.
남 은서씨!
(E) 뚝 끊긴다
남 황당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가 났다.
농락당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녀와 유람선을 탈 돈으로
택시를 잡아 타고
그녀가 일하는 가게 앞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E) 북적북적한 소리
여 (멀리서) 오빠... 좀 더 놀다가지. 금방 또 와야 돼요.
(헤픈 웃음)
남 내가 모르는 여자 같았다.
호빵을 사들고 모르는 문제를 풀어달라던 그녀가
아닌 것같았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던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같이 보내자고 웃던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값싸 보이는 화장에 속살이 내비치는 야한 옷에
헤프게 웃고 있는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닌 것 같았다.
화가 났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바보짓을 하고 있었나 싶었다.
돌아서려는데. 그녀가 나를 봤다.
짙은 화장으로 가렸지만, 이마 밑으로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가
눈에 띄었다. 입술도 찢어진 것 같았다.
나를 발견한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
그리고 바로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던 게 틀림 없었다.
(M) 그녀가 나를 보네 - 브라운 아이즈
(E) 단란주점 내부 소음들
(E) 복도 걸어가는 소리
남 은서씨. 은서씨!!
여 왜 이래요.
남 얼굴 왜 그래요? 누가 그랬어요?
여 무슨 상관이에요!
남 은서씨!
여 나랑 얘기하고 싶으면. 룸부터 잡아요. 술도 시키고 안주도 시키고.
그다음에 나 불러주세요. 그럼 갈께요.
남 은서씨 정말...
여 그럴 돈 있어요? 있으면 부르라구요. 없으면 가구요.
남 윤은서! 여 그래. 약속 못지켜서 미안하다. 나도 갈라 그랬어.
나도.. 오늘 같은 날 이런 데서 아저씨들한테 술이나 따르고
모욕 당해도 웃고. 그런 거 끔찍하고 싫었다구.
너랑 놀고 싶었어.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고. 캐롤도 듣고.
여기저기 걸어다니기도 하고.
남 그러면 되잖아!
여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내 길이 이래. 내가 살아온 길이 이래. 대학? 대학 간다고
공부 하면. 내가 술집 애 아닌 게 돼? 설사 대학갔다고
내 과거가 없던 게 돼?
남 무슨 소린데 그게!!
여 지금은 내가 좋은 거 같아서 이러겠지만!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나 믿어줄 수 있어?
내 과거를 없던 걸로 해줄 수 있어?
좋을 때. 잠깐 같이 놀다가. 밀어낼 거잖아! 버릴 거잖아!
버려질 거 뻔히 알면서. 너한테 갈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구 이바보야!
(M) 가니 - 진주
(E) 빗소리
남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다.
단란주점에서 나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가 늦은 새벽이었다.
들어오다 보니 그녀의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용케 집까지 찾아왔네... 속이 쓰려온다.
(E) 라면 부수는 소리 + 물 보글보글
남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계란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E) 문 두드리는 소리
남 누구세요.
여 문 열어요.
(E) 문 열고
남 (약간차갑게) 무슨... 일이에요.
여 네?
남 무슨 일이냐구요.
여 어이없다.... 진짜....
남 네?
여 아침에 해장국 끓여서 오라면서요.
남 네?
여 또 기억 안나요?
남 무슨....
여 어젯밤에 우리집 문 두드리고 난리났던 거. 기억 안나요?
남 내가요?
여 무릎 꿇고 나한테 맹세했던 것도 기억 안나겠네?
남 맹세를 해요?
여 나보구, 일 그만두라면서요. 일 그만두면 자기가 취직해서
나 먹여살리겠다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더니?
남 그 말을 하고 싶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서 그런 얘기를 했던 걸까.
여 그래서. 나 아침에 가게에 전화해서 얘기했어요.
예금 들어놓은 거 깨서 빚 갚겠다고. 이제 당신들한테
크리스마스 이브에 쉬겠다고 맞을 일 없다고.
남 ...... 잘했어요.
여 .... 잘했죠?
남 네.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 했는지 몰라도. 그 말 다 진심이에요.
여 .....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해장국 끓여왔잖아요.
남 .....네.
여 해장국 같이 먹고 파트타임제 알바 자리 찾으러 가요.
남 .....나도 같이요?
여 당연하죠. 그리고 앞으로 공부도 더 많이 가르쳐 줘야 돼요.
내년엔 무조건 대학 가야 하니까.
남 .......네.
여 으 추워. 문 닫아요. 들어가게.
남 아....네
(E)신발 벗고 들어오는
여 이 남자에게 필름이 끊기는 술버릇이 있다는 건 다행이다.
처음에, 집 같이 봐주겠다고 오라고 했다는 말도
어젯밤, 나에게 일 그만두라고 했다는 말도
다 내 거짓말이니까.
그 사람이 그냥 그래줬으면 했다.
용기를 내지 못해, 말하지 못한 것일 뿐
진심은 그랬으면 했다.
다행히..... 그 사람의 진심 역시 그러한 것 같으니
나의 거짓말은..... 슬며시 숨겨질 것 같다.
다행이다.
(M) 주제음 다행이다 / 이적
2008-12-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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