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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67화 -
사과
깎는 여자
(M) 주제음
기적 / 김동률 & 이소은
(E) 북적대는 소음, 캐롤도 들려오고
여 대형서점에 들어섰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사이로
그 책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 부문. 베스트 5위다.
책 표지에 작가의 사진도 인쇄돼 있다.
그 사람은 웃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다.
책을 집어든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져.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얼른 책을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그 사람은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바보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나만.
(M) 안부 / 별
여 1년 전. 11월.
시집을 안 갈거면 돈이라도 벌어오라는 어머니의 다그침에
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 했다.
신춘문예에도 번번이 낙방.
각종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낙방.
방송사의 드라마 공모전에도 낙방.
몇 년을 그렇게 낙방만 하다 보니
과연 내가 글을 써서 먹고 살수 있는 재능을 지녔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됐던 때다.
그러던 찰나. 대학 선배를 통해 들어온 아르바이트 자리는
좀 특이했다.
어느 소설가가 사고로 손을 좀 다쳤는데. 입원에 있는 병실에 가서
글을 대신 받아 적으라는 것이었다.
(E)복도 또각또각 걸어가는
(E)노크하고
남 (안에서) 네.
(E) 문 열고 들어가는
여 저....
남 누구?
여 김형주 선배님... 소개로...
남 아.... 앉아요 거기.
여 과연 남자는 오른손과 오른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E) 의자에 앉는 듯
남 내가 손이 이래서... 냉장고에 주스 있는데 좀 꺼내먹어요.
여 아니요. 괜찮아요.
남 얘기는 대강 들으셨죠?
여 네. 손을 다치셔서.... 컴퓨터 작업을 못하신다구요.
남 오른손이라.. 원고지로 쓰지도 못하겠고. 누가 좀 받아적어줘야 해서 요.
여 네.
남 그렇다고 맞춤법도 잘 모르는 무지랭이 데려다 놓고 받아적어라..
그럴 순 없고. 그래도 나름대로 대학 때 상도 받고. 글 좀 써봤다면서 요?
여 저런 얘기를 실실 웃어가면서 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 나를 비웃는건가? 나름대로 상도 받고 잘 나갔던 애가
왜 지금은 이런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거냐고?
자존심이 상했다. 몹시 상했다.
남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일요일은 쉬구요.
어때요?
여 ....돈은.. 얼마나 주실건데요?
남 이게 한달이 될 지 두달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당으로 계산하죠.
하루에 5만원. 어때요?
여 (활짝 펴지며)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M) 힘을 내요 미스터 김 /
롤러코스터
(E) 복도 걸어가는
여 그래. 자존심 뒀다가 어따 쓸거야. 딱지 접어 쓸것도 아니고.
잠깐 하루 5만원이면. 한달에 얼마야? 오륙 삼십에. 곱하기 사하면.
120? 아싸.. 이게 웬일이야.
남 (좀 멀리 뒤에서)윤은서씨!
여 (약간 놀라서) 네?
(E) 절룩이며 목발 짚고 다가오는 듯
남 내 작품 읽어본 적 있어요?
여 네? .... 죄송하지만.. 없는데요.
남 이거....
여 그 남자의 왼손에는 책 한권이 들려 있었다.
남 지난번에 내가 쓴 소설이에요. 평단에서는 혹평을 받았지만.
잘 팔렸어요. 잘 팔렸음 된 거 아닌가?
여 네에.. 제목은.. 본 거 같애요.
남 한번 읽어보라구요. 뭐.. 문체를 알면 쓸 때도 도움되지 않겠어요?
여 아..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남 그럼 내일 봅시다.
여 네에..
(E) 남자 멀어지고, 책 넘겨보는
여 그날. 밤을 새워 그 남자의 책을 읽었다.
(E) 책을 홱 던지는 듯
여 어우.. 완전 날라리. 이런 것도 소설이라고 써놓고 팔아먹었다
이거지? 그래놓고 또 계약금 받고 소설 쓰겠다 그러는 거고?
내가 발로 써도 이거보단 낫겠네. 으... 짜증나.
(M) 싸구려 커피 / 장기하와
얼굴들
(E) 컴퓨터 켜는 듯
여 다음날부터. 난 그 남자의 병실로 출근했다.
여 사과 드실래요? 가져왔는데.
남 좋죠.
(E) 쓰윽쓱 사과깎는 소리
남 사과 잘 깎네요.
여 제가 원래 이런 거 잘해요. 한번도 안끊기고 끝까지 다 깎는 거 보세요.
남 그러네...
여 제목은.. 정하셨어요?
남 제목은 아직. 나중에 다 쓰고 정하죠. 아님 중간에 생각날 수도 있고.
여 그럼.. 내용은...
남 음. 내용은..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그 여자를 위해
가족도, 친구도, 모든 걸 다 버리는..
여 네에..
남 표정이 왜 그래요?
여 네? 제 표정이.. 왜요? 아무렇지 않은데요?
남 너무 통속적이다.. 뭐 그런 표정 같은데?
여 아니.. 아주 특이한 얘기는 아니잖아요. 뭐.. 드라마에서도 맨날 나오고...
남 맨날 나오는 이야기가 나쁜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어딨어.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원래 그러는 거에요.
대신에... 디테일싸움이지.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 것이냐.
여 .....물론 그렇긴 하지만. 너무 작정하고. 눈물 빼는 이야기. 그런 거
저는 좀 별로라서.
남 초보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그런 거지. 난 좀 다른 걸 해보겠 다, 특이한 거 하겠다,
남들 다 하는 건 안한다!
여 (약간 올라서) 그게 나빠요?
남 안 팔리지.
여 안 팔리는 게 나쁜 건가요? 잘 팔리는 소설 다 좋은 거 아니고.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가 다 좋은 거 아니잖아요.
남 물론 그렇죠. 그렇기는 한데. 이거 일기 쓰는 거 아니잖아요?
나 혼자 보려고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쓰는건데. 남들이 안봐주는 게 무슨 소용이야?
여 ..... 그렇지만..
남 은서씨도 자기 글 열심히 쓸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거 누가 봐줘요?
여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구요. 저 이런 기분으론 도저히....
여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려는데.
(E)부시럭 꺼내는
남 참. 그리고 이거.일단 한달치 선불이에요. 계산해 보니까 120이던데.
여 (고분고분) 네. 맞아요.
남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여 네. 부르세요.
(M) 머니 - NEXT
(E) 타닥타닥 열심히 치는 소리
남 동하는 소리쳤다. (연기하듯이) 힘들 때면 항상 뒤를 돌아봐.
거기 내가 있을테니까.
여 (쿡... 웃고)
남 왜 웃어?
여 대사가 좀.. 유치해서요.
남 얘는 지금 고등학생이야. 당연히 유치해야지.
여 요즘 고등학생도 얼마나 어른스러운데.
남 생각해 봐. 얘는 이제 막 짝사랑에 빠진 놈이야. 그놈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 한마디 못붙이다가. 그 여자가 딴 남자 때문에 울고
있는걸 봤어. 그럼 무슨 말을 하겠어?
여 그렇다고... 항상 돌아봐. 거기 내가 있을게. 그래요?
남 그냥 받아적기나 하세요. 남자의 순정을 은서씨가 뭘 알겠어.
여 네네. 그냥 받아적을께요.
(E) 타다닥 적는데, 전화벨 울리고
남 여보세요? 어? 민아구나. 오빠 지금 입원해 있잖아. 한참 걸리지.
아냐아냐. 문병은. 오빠 다 나아가지고 멀쩡하게 민아 보고 싶어.
여기 있는 동안 이번 꺼 마무리 해서 나갈려구. 그래~
(E) 끊고
여 순 바람둥이면서.. 순정은 무슨..
남 뭐?
여 그렇잖아요. 방금은 민아. 아까는 무슨... 예진이? 어제는 뭐라더라? 경화? 무슨 여자가 그렇게 많아요?
남 윤은서씨. 우리 그럼 안돼.
여 뭐가 안돼요?
남 은서씨가 나 좋아하면 안된다구. 우린 공적으로 만난 사이잖아.
여 어으.. 무슨 소리에요 또!
남 이런 오해 안받으려면 내 사생활엔 관심 끄세요.
여 어으어으. 내가 무슨 말을 해. 알았거든요.
남 자... 동하의 말을 들은 윤주가 눈물에 젖은 눈을 천천히 드는거야.
그리고 말해. (느끼) “당신.. 사랑을 알아요?”
(E)받아적다가
여 웩!
(M)
Sex Bomb / Max Raabe
여 그럭저럭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매일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우리는 한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 같이 웃기도 하고. 슬픈 장면에선
그 사람 몰래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묘한 동질감 내지는
정 같은 게 싹트기에, 한달은 어쩌면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E) 사과 깎는 소리
여 맨날 사과만 깎으래.
남 사과깎는 거 좋아하잖아.
여 잘하는 거지, 좋아하는건 아니거든요.
남 어머니가 사과 잘 고르시나봐. 가져온 거마다 다 맛있어.
여 첨엔 안 그러는 거 같더니 갈수록 느끼해져. 어우.
남 느끼는. 요즘 유행하는 훈남이야 내가.
여 말을 말아야지... 근데요.
지난번에 살짝 들으니까 팔이랑 다리랑.. 그리고
늑골도 다치고 꼬리뼈랑.. 암튼 엄청 다쳤다던데.
어쩌다 그러신거에요?
남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네?
여 괜히 딴소리셔.
남 간만에 밖에 좀 나갈까? 나 이거 좀 밀어줄래?
여 오늘은 한 줄도 못쓴 거 알아요?
남 그럴 때도 있는거지. 마음 먹은대로 술술 나오면 그게 누에고치지. 작가야?
여 핑계는....
남 무릎담요랑 좀 챙겨서. 나가자.
여 네. (하는데)
(E)전화벨
남 여보세요. ....어. 지..금 어딘데? 어. 알았어. 금방 갈게.
여 어딜 가요?
남 운전할 줄 알아? 아니다. 택시.. 콜택시 좀 불러봐.
여 어디 가시게요? 쫌 이따 회진이잖아요. 그리구 이 다리로 어딜 간다구. 당분간 절대 안정. 몰라요?
남 나 지금 좀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머리가 좀 아프니까.
조용히 좀 해 줄래?
여 ...네.
남 그리고 니가 나 좀 부축해줘. 같이 가자.
여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초조해 보이는 그를
부축해서 병원을 빠져 나가는데. 왠지 마음이 스산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인가가 생긴다면.
그 일이 나와 무관치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M)
Adia / Sarah Mclachlan
------------------------1부 끝 ------------------------
*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M)
Adia / Sarah Mclachlan
(E) 도로 소음
여 괜찮아요? 다리 안 아파요?
남 괜찮아.
여 추운데. 손 내 주머니에 넣어요.
남 괜찮다고. 잠깐만.... 여기 있을래? 아니다. 그러지 말고.
(지폐 주며) 어디 들어가서 커피 마시고 있어. 전화할게.
여 혼자 가게요?
남 어.
여 무슨 일...
(E)걸어가는
여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는 굳은 표정으로 어느 커피 전문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 팔로 목발을 짚은 채 위태위태하게.
그런 그를 두고 자리를 뜰 수가 없어. 난 그 자리에 선 채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자의 앞으로 그 남자가 다가가 섰다.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남자의 앞에 앉은 여자는 작고 여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남자와 몇마디 나누는 것 같더니
그 여자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여 ...뭐야... 저 약한 척은.... 쳇.... 양손으로 얼굴 감싸고 우는 게
무슨 지가 영화주인공이야 순정만화 캐릭터야....
딱 보니까 여우 중에 여우구만...
여 어느새 나는 카페 문에 거의 들러붙어 두 사람의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더 가관이다.
여자가 울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손수건을 건네주고.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위로를 한다.
내가 알던. 그 느끼한 바람둥이. 소설가가 아닌 것 같다.
은근히. 화가 난다.
(M) 질투 / 핑클
여 그 여자가 먼저 자리를 뜨고도 한참 동안
그 남자는 멍하게 그 자리에 있더니
천천히 카페를 빠져 나온다.
(E) 카페 문 열리면서 나오는
남 어.. 벌써 왔어? 전화하려고 했는데.
여 혼자 뭐하겠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남 그래. 미안.
여 잡아요. 불편해 보이니까.
(E) 두 사람 걸어가는
여 누구.. 만났어요?
남 그냥.... 나 병원 데려다주면 얼추 6시 되겠네. 데려다 주기만 하고
집에 가.
여 오늘은 일 안해요?
남 그냥... 오늘은 쉬고 싶네.
(M) 오래전 그날 / 윤종신
여 왜 그랬을까. 그날밤. 난 한숨도 이루질 못했다.
그가 쓰는 소설 속 그 남자가, 어쩌면 바로 그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그 여자가 아닌 모든 여자에게 나쁜 남자인 그 남자.
밤을 꼴딱 새우고. 피곤한 정신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E) 노크하고 들어온다
여 안녕하..(말하려는데)
남 (전화 통화중인 듯) 알죠. 그러니까 중도금을 미리 좀 당겨달라는
거죠. 왜 안돼요. 작품은 거의 다 써간다니까요. (후 한숨쉬고) 네.
(E) 전화 끊는
남 어. 왔어?
여 네.
(E) 노트북 등을 내려놓는 듯
여 무슨.. 돈 필요하세요?
남 갑자기 목돈을 좀 쓸 일이 있어서.
여 (모른 척) 왜요?
남 그냥.. 그럴 일이 있어.
여 그 여자가 돈 빌려달래요?
남 (굳는) 그 여자라니?
여 일부러 본 건 아니구요. 어떻게 하다가 봤거든요. 그 여자가 울고..
달래주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
남 ...
여 그 여자분이 돈 빌려달라 그런 거에요?
남 일이나 하자. 노트북이나 펴.
여 ....네.
(E) 타닥타닥 쓰는
남 동하에게 여자는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많은 여자들이
주변에 있어도. 동하를 웃게 해주는 여자는 윤주 하나였다.
여 오늘은 그만 하면 안될까요?
남 안돼. 아직 시간 남았잖아.
여 몸이 좀 안좋아서 그래요.
남 안돼. 되도록 빨리 넘겨야 돼.
여 사정은 알겠는데요. 나도 힘들거든요.
남 일당 받고 하는 일 아냐? 내가 왜 사정을 해야 하지?
여 ........ (기막히고) 네.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받아 적기나 해라... 맞는 말씀이시네요. 그렇게 할께요.
(E) 타닥타닥타닥
여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일을 하다가
잠깐 일어섰을 때였다. 그 사람이 놀라는 표정을 보며
왜 저러지.... 하던 순간. 난 그대로 고꾸라졌다.
(M)
아프죠 - 해이
여 정신을 차려보니, 난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내 팔엔 링겔줄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인 게. 그래도 걱정은 됐던 모양이다.
남 정신 들어?
여 ...네.
남 누가 보면.... 진짜 내가 부려먹은 줄 알 거 아냐.
여 부려먹었잖아요. 힘들다고 했는데두....
남 미안해. 빨리 끝내야 할 사정이 생겨서....
여 누군데요.
남 .....
여 소설 속 윤주?
남 그런 거 아니야.
여 아니기는... 혼자 쿨한 척 세련된 척 다하더니. 알고 보니까
젤 촌스러.
남 다시 살아났네. 할말 다 하는 거 보니까.
여 여기 어디에요? 응급실이에요?
남 좀 더 쉬었다가 택시 타고 가.
여 ..... 일 더 하면 시간 외 수당 더 줘요?
남 그런 게 어딨어.
여 그래도 할래.
남 어?
여 내가 도와줄께요. 오늘 저녁에.
남 됐어. 내가 뭐... 사람 잡을 일 있어?
여 괜찮아요. 사실은 잠을 못 자서 기절한 거였거든요. 푹 잤더니
괜찮아졌어요. 도와줄께요. 빨리 끝내고 싶잖아요.
남 ......
여 나도 이 일 빨리 끝내고 싶어졌어요.
(M)
I Want To Know What Love Is / Emma
남 (한숨 쉬고)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 이 여자가 그렇게까지 하면 남자가 너무 바보같잖아요.
남 바보니까 이런 사랑이 가능했겠지.
여 (혼잣말처럼) 잘 아시네..
남 뭐?
여 그러니까... 결론을 말이에요. 남자가 여자를 매정하게 버리는 건
어때요?
남 그럼 이 소설의 주제가 훼손되는거지.
여 주제가 뭔데요?
남 끝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순애보.
여 그 사랑이 이 여자를 망치고 있잖아요.
남 망쳐?
여 이 여자는 그 사랑에 중독돼서 다른 사랑도 못하고. 그렇다고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이 남자는 지겨워서 만나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점점 망가져가고 있잖아요. 세상에서 상처 받으면
다시 이 남자를 찾아와서 위로 받고. 또 상처받고.
그 어디서도 정착 못하면서.
남 ......
여 내가 봤을 때.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진짜 위한다면. 여기서
깨끗하게 버려주는 것 밖에 없어요. 이 여자 혼자 설 수 있게.
상처도 혼자 치유할 수 있게.
남 어떻게 그래.
여 왜 못 그래요. 서로 그렇게 안되는 사람들이면. 그렇게 해야지.
그래야 여자도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고. 남자도.... 남자도
언젠간 그래야 할 거 아니에요. 자기를.... 사랑해주는
진짜 사랑해주는.... 여자 만나서. 남자도 행복하게 사랑해
봐야 할 거 아니에요.
남 피곤하다. 오늘은 그만 하자.
여 언제까지 그러실 건데요?
남 .....뭘.
여 누군가 선생님 좋아한다고 하면. 받아줄수는 있어요?
남 .....
여 그럴 수는 있어요?
남 ...... 아니. 진심이라면... 절대 못 받아.
여 나는 진심인데요?
남 ..........
여 (울고 싶은 거 참으며) 결론만 남았죠. 이제.
이런 거... 내가 없어도 할 수 있는거죠.
남 은서씨.
(E) 급하게 가방 챙기며
여 남은 돈은 정산해서 계좌로 넣어주시구요. 책 마무리 잘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M) 굿바이 / 이수영
여 다시 백수 생활이 시작됐다.
하루 종일 별 일 없이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이제는 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한 남자만을 미련하게 사랑하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다.
절대 돌아설 리 없는 남자의 등만 바라보면서
희망 없는 사랑을 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는
바보 같은 여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와의 4개월 동안의 만남이 지나고
1년이 흐르는 동안
단 한번의 연락도 없었다.
그동안 난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서점에 나가
그 남자의 책이 출판됐는지 확인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책이 나온 것을 확인했고.
절찬리에 판매가 되고 있는 바로 그 책을
오늘 사게 된 것이다.
(M) 벌써 1년
/
브라운아이즈
(E) 책장 넘기는
여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긴다.
빨간 책 표지에. 박힌 제목은. <사과 깎는 여자> 다.
떨리는 손으로 한 장 더 넘겨본다.
거기엔 아주 짧은. 작가의 말이 쓰여져 있다.
남 이 글을. 지난 겨울. 매일 병상에 찾아와 사과를 깎아주던
내 아름다운 그녀에게 바칩니다.
뒤늦게 깨닫게 된. 진짜. 사랑과 함께.
여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겨울 내가 받아썼던 이야기가 아닌..
그가.. 직접 써 내려간....
새로운 사랑 이야기.
(M) 주제음
기적
/ 김동률 & 이소은
2008-11-2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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