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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65화 - 내가 사랑한 사람. 나를 사랑한 사람.


(M) 주제음     아름다운 날들 / 장혜진


* 오늘의 음악에세이는 청취자 신의주님의 실제 사연을 각색한 것입니다.


(E) 사람들 소음 시끄러운 가운데


여     신부대기실이다.

        타들어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친구들은 화장이 잘 됐다는 둥

        신랑은 얼마나 멋지게 하고 오려고 아직까지 안 오냐는 둥

        떠들어대고 있다.

        10초마다 한번씩 시계를 들여다 보며

        난 점점 더 초조해진다.

        그 사람은 이대로 오지 않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러는 게 아닐까....

(M)     The Centaur / Joanne Glasscock


여     그와 나는 같은 회사에서 만났다.

        나보다 조금 늦게 입사한 그 사람은

        늘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어딘가 좀 어리숙해 보이기도 했다.


(E) 컴퓨터 자판 탁탁 쳐주며


여     이걸 왜 몰라요. 지난번에도 가르쳐 줬구만.

남     그러게요. 자꾸 헷갈리네...

여     좋은 대학 나온 거 맞아요? 학력위조 아냐?

남     (웃고)

여     속두 좋아. 뭐가 좋다고 허허허허.. 

(E) 타닥 치고

여     됐어요. 이제 다시 해 보세요.

(E) 전화 진동 울리고

여     (톤 여성스럽게 바뀌는) 여보세요? 어머.. 자기야?

(E) 어디론가 나가며

여     응... 어디야? 언제 끝나? 우리 오늘 만나기로 했지? 어디서 볼까?

(M)     Nobody / 원더걸스


여     남자친구에겐 오늘도 약속이 생겼다고 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와 약속은 벌써 1주일 전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배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난 누구에게도 밀렸다.

        나와의 약속은 언제든 뒤로 밀어도 되는 약속이었다.

        가장 먼저 취소되는 건

        언제나 나와의 약속이었다.

        

여     (후.... 한숨 쉬는 소리)


(E) 나오는 걸음


남     왜 안 들어오고 여기 있어요?

여     들어갈 거에요.

남     뭐... 안좋은 전화 받았어요? 아깐 기분 좋게 나가더니..

여     상관 말고 들어가시라구요. 이미지 설계도 다섯시까지 메일링 하기로 했잖아요.

남     네.. 


(E) 들어가는데


여     저기요.

남     (약간 멀리서) 네?

여     남자들은 원래 그래요?

남     네??

여     아니.... 원래... 잡은 고기엔 밥을 안주냐구요.

남     바..밥이라뇨? 그게.. 무슨...

여     (한숨 쉬고) 아니에요.

(M)     남자 때문에 - JOO


(E) 전화해 보는데, 전화기 꺼져 있다는 안내음

(E) 걷는 소리, 휴대폰 탁 덮고 


여     (혼잣말) 또 꺼졌어..또..


(E)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


남     윤선배.

여     (쌀쌀 맞고) 다 넘기고 나오는 거에요?

남     네. 저녁 안드셨죠 아직.

여     내가 저녁을 어디서 먹어요 지금.

남     약속 있어요 혹시?

여     아뇨. 집으로 갈건데요.

남     그럼.. 저랑 밥 좀 같이 먹어주시면 안돼요?

여     피곤해요 그냥 갈래요.


(E) 부시럭


남     아니... 이게 생겼는데....

여     뭔데요.

남     초밥집 쿠폰요. 회초밥 5만어치 먹을 수 있는 건데요.

        이게... 사용기간이 오늘까진데... 저 혼자 초밥 5만원어치를

        어떻게 다 먹어요.

여     ....회초밥요?

남     네... 여기가 광화문 인근에선 제일 맛있다고 알아주는 데라는데....

        혹시.... 회나 초밥.. 싫어하시나요?


여     싫어하기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회초밥이다.


여     ...아...뇨. 뭐... 싫어하는 건 아니고....

남     그럼 같이 가세요. 네?

여     ....(못이기는 척) 피곤한데....

(M)      자존심 / 핑클


(E)회전초밥 돌아가는 소리, 접시 집어들고


남     광어 드세요. 오늘 광어 괜찮은 것 같네요.

여     네. 

(E) 젓가락 탁탁..

남     잘 드시네..

여     (먹다가 놀라서) 자..잘 먹긴요. 그냥 있으니까 먹는거지!

남     그런데요.. 아까 선배가 물어봤잖아요. 남자들이 원래 잡은 고기엔

        밥을 안주는거냐고..

여     아.. 그 말... 그냥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남     ..... 남자라고 다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     ..... 그래요?

남     네. 내 사람이니까.. 더 잘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남자는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닐까요..

        선배도.. 여자지만.. 다른 여자랑 똑같은 건 아니잖아요.

여     뭐...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남     사귀는 사람이랑 잘 안돼요?

여     안되긴요! 그 사람이... 좀 바빠요. 그 사람 직업 내가 얘기했나?

        그 사람 온라인 쇼핑몰 사장이거든요. 그게 그냥 그런 데가 아니라

        나름 굉장히 큰 규모에요. 그래서.. 그런 거 하면.. 원래.. 사람들

        많이 만나잖아요. 그러니까.. 나 만날 시간이 없는거지...

        그.. 사람도 맨날 그래요. 보고 싶다고..

남     (궁시렁대듯) 보고 싶으면..만나면 되는거지.

여     내가 그랬잖아요! 원체 바쁘다구요!!

남     바쁘면.. 밥도 안먹고 살아요? 바쁘면 숨도 안쉬나? 잠은 안자나?

여     그런 거랑 같아요?

남     뭐가 달라요? 아무리 바빠도 그 사람 안보면 죽을 것 같다....

        그럼 봐야죠. 그래야 살겠다... 그럼 봐야죠.

여     ....... 

남     내 친구는 의산데요. 응급실에 있거든요. 그런데 지 여자친구

        너무 보고 싶으면... 응급실 뛰어들어가면서도 전화하고...

        두시간 잘 거 한시간만 자면서도 만나러 가고...

        그러던데요? 진짜 좋아하면...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여     (조용히) 이거보세요..

남     ....네?

여     사람을 꼭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야 돼요?

(E) 젓가락 탁 놓는

여     잘 먹었어요. 그만 가 볼께요.

남     아니... 윤선배...

(E) 벌떡 일어나는

남     선배...

여     그래! 내 남자친구는 술먹는다고 나 안보고. 친구 만난다고 나 안 보고. 일 바쁘다고 나 안보고.

        피곤하다고 나 안보더라! 누군 섭섭한 거

        몰라? 누군 자존심도 없어서 이러고 있냐구! 힘들어 죽겠는데도

        꾹..꾹.. 눌러 참고 있구만. 왜 건드려! 왜!!!

(M)     오빠 / 왁스


(E) 사무실 소음, 컴퓨터 치는 소리 


남     (조심스레) 선배...

여     (냉정) 왜요.

남     어제.. 많이 화났어요?

여     나 지금 김봉덕씨랑 말싸움 할 기운 없거든요? 일 좀 하게 냅둬요.

남     아까부터 같은 문자만 고치고 또 고치고..그러잖아요.

여     지금 나 스토킹 하세요? 그쪽 일이나 잘해요. 괜한 간섭 말구요.

남     아니...저는....

여     나한테 무슨 특별한 관심 같은 거 있어요? 이러지 마요 진짜.

남     전 진짜 그게 아니라....

여     그쪽 일 하라구요 글쎄!!

남     선배가 그걸 빨리 넘겨줘야 공문을 보내죠. 아까부터 거래처에서

        계속 전화오고 난린데....

여     (뻘쭘) 아.... 그..그래요?

(E) 사무실 전화벨 소리

남     또 독촉전화 오네...

(E) 받고

남     여보세요? 네.... 하대리님. 아니 우리 선배님이 아직도 완성을

        안하셔 가지구요. 금방 보낼께요. 네..네..

(M)     Bubbly / Colbie Caillat


여     나는 그당시의 남자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

        아프다고 하면 한달음에 약 사들고 달려가고.

        친구들하고 놀러간다고 하면

        그 사람 친구들 도시락까지 다 챙겨서 가져다 주고.

        그 사람 사는 동네까지 혼자 찾아가서

        잠깐 만나고 밤중에 다시 집으로 혼자 돌아오면서도

        내가 좋아하니까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도 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다 괜찮다고.


(E) 커피 타는 소리


여     김봉덕씨..

남     네.. 커피 드실래요? 다방 커피 타는데.

여     괜찮아요. 나 뭐 하나만 물어보려구요.

남     네. 

여     술 먹은 다음날... 콩나물국이 시원해요.. 선지해장국이 나아요?

남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콩나물국요.

여     음....

남     왜요? 

여     아니.. 제 남자친구요. 오늘 직원들이랑 회식한다고 해서요.

        분명히 오늘 술 많이 마시고.. 내일 아침에 속쓰리다고 난릴텐데...

        아침 일찍 해장국 좀 끓여다 줄까 하구요.

남     ....출근 안하구요?

여     새벽에 갖다 주고 오면 되죠 뭐.

남     (왠지 심통나고) 그렇게 해주면 그 사람이 좋아는 해요?

여     표현은 직접적으로 안하지만 좋아하겠죠...

남     표현을 왜 직접적으로 안해요?

여     성격이 워낙 무뚝뚝해서요.

남     딴 사람들한테도 무뚝뚝해요? 예를 들면 일로 만난 사람들이라던가..

여     일로 만난 사람한텐 안 그러죠. 세일즈하는 사람인데...

남     그럼 무뚝뚝한 건 성격이 아니죠. 은서선배한테만 그러는 거죠.

여     .....그만큼 내가 편하니까 그러겠죠.

남     편한 사람 되고 싶어서 만나요? 편한건 동네친구지.. 좀 불편해도

        설레고 좋은 게 애인이지.. 안 그래요?

여     내가 참견 말라고 했을텐데요. 왜 그렇게 주제 넘게 굴어요?

        내가 편한 사람이 되든... 술국을 끓여다 바치든.... 매달리든...

        그쪽이 내 오빠에요 아빠에요?

남     나는.. 나도 좋아하니까.

여     (눈치 못채고) 뭘 좋아해요 좋아하긴!

남     나도 선배.. 아니 은서씨 좋아해요. 그러니까 짜증난다구요 볼때마다.

        왜 그러고 사나..

여     뭐..뭐에요?

남     왜 그렇게 멍청이처럼 연애를 해요? 맨날 당하면서. 난 딱 보면 다

        보이는구만! 그 사람 은서씨한테 맘 떴어요. 그런 지 오래됐는데

        미안하니까 딱 잘라 거절 못하는 거에요. 아니... 은서씨가 워낙

        잘하니까... 떼버리긴 좀 아까워서 그냥 붙여두고 있는 거 뿐이라구요. 정신 좀 차리라구요 그러니까.

여     난 정신 차릴 생각 없거든요?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어디 가서 나 좋아한다는 둥 헛소리 하고 다니지 말아요. 회사에

        소문 날까 겁나 정말..


여     확 지르고 돌아서는데. 서러움에 겨워 눈물이 흘렀다.

        이 남자가 하는 말이 폐부를 찔렀다.

        다 옳은 말이다. 그 사람에게 난, 나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운.....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나만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M)     사랑, 그게 뭔데 / 양파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여     그날 밤. 그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 나는

        내가 너무 지쳐서 더는 못하겠노라고...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그는 나를 단 한번도 잡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 한마디만 있었어도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텐데.

        그는 그저 담담히 조심해서 잘 가라고만 했다.

        그뒤로 2주 동안.. 매일 그 사람에게 전화오지 않을까 싶어

        새벽에도 전화기를 베개맡에 꼭 두고 잤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 사람이 집앞에서 기다리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 사람이 내 집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도 났고. 오기가 생겼다.

        난 뭐 저 아니면 남자가 없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E) 종이 정리하는 듯한...


여     김봉덕씨 오늘 뭐해요?

남     별 거 없는데요.

여     그럼.. 나 술 먹는데 옆에 있어주면 안돼요?

(M)     To Love Somebody / Orleya


(E) 술집 분위기

(E) 술 따라주는


남     좀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여     봉덕씨는 집이 어디에요?

남     저요.. 속초요.

여     속초.... 좋은 데네.

남     좋은 데에요.

여     속초에 봉덕씨 기다리는 아가씨 있는 거 아냐?

남     저도.. 거기선 인기 좀 있었죠.

여     어? 진짜?

남     당연하죠.

여     그럼.. 이제 난 안되겠네?

남     네?

여     아니... 접때 나 좋아한다 그랬잖아요. 남자한테도 채였고...

        나 좋다는 남자한테 연애나 걸어볼까 했더니.. 안되겠네. 

        나 여자 많은 남자 질색인데. 그런 남자한테 데여서요.

남     아니에요! 나 여자 없어요!!

여     그럼? 나랑 연애할래요?

남     ...그래도 돼요?

여     내가 김봉덕씨 이용하는 건데? 그래도 돼요?

        보다시피... 나 마음 정리 하나도 안됐구요. 아직 그쪽 잘 알지도..

남     괜찮아요. 정리할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내가 하구요.

        나에 대해선.... 내가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줄께요.

여     나두요.... 주기만 하는 사랑 말고. 받는 사랑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남     내가 줄께요. 받기만 하세요.

여     그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요. 그거 너무

        지쳐요.

남     괜찮아요. 내가 할께요.

(M)     다 줄거야 /  조규만


여     순간적인 감정으로 내 옆자리 남자와 연애가 시작됐다.

        성실하고 착한 남자였지만.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내게.. 그의 매력은 보이지 않았다.


남     영화 뭐 볼래요? 내가.. 은서씨 좋아하는 로맨틱코미디.. 리스트 뽑아왔거든요? 골라요.

여     ....(시큰둥) 됐어요.

남     왜요. 영화 보고싶다면서요.

여     그랬는데... 지금은 좀 피곤해서.... 다음에 보면 안될까요?

남     괜찮아요. 그렇게 하세요. 피곤하면 까페 같은 데 가서

        허브티라도 마실래요?

여     귀찮아요. 

남     그럼.. 뭐할까요?

여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남     그렇게 해요.. 집에 데려다 줄까요?

여     네.

남     약 안먹어도 되겠어요?

여     그 정돈 아니에요...

남     그래도 약을 먹어야...

여     말 길게 시키지 말고 그냥 가요. 진짜 피곤하단 말이야.

(M)     Desperado / Eishu


여     무슨 못된 심보인지..

        난 그 사람에게 계속해서 심술을 부렸다.

        그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예전에 내가 당했던 걸 풀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은 잘 참아주었지만

        난 그가 인내할수록 더욱 못돼졌다.

        

(E) 전화하는 소리


남     여보세요 (시끌벅적한 소리들)

여     봉덕씨 어디야?

남     어.. 얘기했잖아.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기로 했다구.

여     술 마셔?

남     응. 밥 먹고 이제 막 자리 옮겼어.

여     (애교 부리는 게 아니라 짜증스런) 보고 싶은데. 지금 오면 안돼?

남     어?? 지금??

여     토요일이잖아! 뭐야? 나 혼자 두고?

남     아니.... 내가 한달전부터 이 모임은 얘기했었고.. 자기도 양해해

        주기로 한 거잖아..

여     알았어. 오기 싫다 이거지? 끊어.

(E) 뚝 끊고. 핸드폰 전원까지 띠리리 꺼 버리는


여     전화기 전원까지 꺼 버린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꼭 마녀 같아서..

        혼잣말을 했다.


여     너..지금 뭐하는거니?

(M)     Eventually / Pink


(E) 초인종 소리, 안나오니까 문 두드리고

(E) 나가는, 문 여는


여     왜 왔어?

남     니가 그렇게 전화 끊어버렸는데 어떡해 그럼.

여     됐어. 가.

남     왜... 나 친구들한테 욕 바가지로 먹고 빠져나온거야.

여     누가 그렇게까지 하고 나오래? 그냥 가.

남     은서야..

여     다시 가서 합류해. 그럼 되잖아.


여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     왜애..

남     그래. 괜찮은 거 보니까 됐다. 갈게.

여     술 마시러 가는거야?

남     이제 와서 뭐하러 가. 그냥 집으로 가야지.

여     근데 왜 화를 안내?

남     뭐?

여     나 때문에 친구들도 못보고.. 화날 거 아냐...

남     화는 나.

여     그런데?

남     나 화내라고 니가 그러는 걸 알기 때문에. 참는거야.

여     ......

남     내가 정말로 화내면... 그땐 너 슬퍼질걸. 그건 싫으니까.

(M)     슬퍼지려 하기 전에 - 왁스


여     받는 사랑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사랑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로

        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난 받는 사랑도 힘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없이 받아주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이 기대고 짜증내고 억지를 부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아주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양가 상견례가 이뤄지고. 결혼 날짜가 잡혔는데도

        난 별로 설레거나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     오늘은 그만 돌아다니고 들어갈래? 나머지는 내가 좀 더 보고

        리스트 뽑아놀게.

여     싫어. 자기랑 나랑 취향이 달라서 안돼. 침대랑 협탁까지만 보고

        들어가.

남     그래도 오늘 자기 안색이 별로잖아. 그럼 낼모레..

        우리 같이 월차 내면 되잖아.

여     안돼. 결혼 1주일밖에 안남았는데. 언제 다 보라 그래. 

(E)전화 진동


여     잠깐만.. 여보세요? .............. 어. 나야... 응... 잠깐만.

        (곤란한 듯) 자기야.

남     어?

여     있잖아... 나 급한 전화가 와서... 나머진 자기가 좀 봐줄래?

        나 그만 가 볼게.

남     ..... (느낌 있지만) 그래. 택시 잡아줄게. 전화 통화 계속해.

여     아니야. 먼저 가. 내가 알아서 갈게.

(E)걸어가며

여     (멀어지며) 여보세요? 어.. 오랜만이야....

(M)      Lie / 화요비


(E) 걸어오는 소리


남     은서야.

여     ...어.. 자기 왜 여?어..

남     집으로 간다며.. 왜 이제 와.

여     그냥... 좀 심란해서 혼자 좀 걸었어.

남     왜.... 심란해?

여     그냥...

남     아까 전화... 누구야?

여     ...

남     그 사람이지.

여     어.

남     왜... 전화한건데?

여     안부 물어보려고.. 전화했나봐.

남     그래서..? 뭐라고 했어?

여     (후우....) 미안해 자기야. 나 그 사람 만나고 들어오는 길이야.

남     .....뭐?

여     결혼했냐고 물어보는데.... 아직이라고.... 나도 모르게....

        나 미쳤나봐. 그치...

남     설마.... 했는데....

여     흔들린 건 아니구.....

남     미안한데... 나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지쳐 있었어.

여     .....

남     미안하다. 다 없던 걸로 하자.

여     ...뭐?

남     너 자유롭게 해준다구. 니가 진짜 원하는 사람한테 가.

(M)     가질 수 없는 너 / 뱅크


(E) 전원 꺼져 있다는

여     왜 깨달음은 이렇게 한발 늦을까.

        그 사람이 지쳤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를 괴롭혔는지.... 너무도 선명하게 알 것 같았다.

        말없이 인내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내가 아무 노력없이 얻었던 그 사랑이

        나에겐 정말 사랑이었다는 것도. 

        그는 결혼을 취소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휴대폰마저 꺼놓고

        잠적해 버렸고. 난 동분서주하며 그를 찾기 위해

        온갖 애를 써야 했다.


여     ..... 또 나야. 내 음성 듣고 있어? 속초 부모님들이 자기 연락 안되니까 나한테 전화하셨어.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결혼식 차질 없이

        진행될거라 그랬어. 결혼식에 올거지... 기다릴게. 꼭.. 와.

        .............급해서 하는 말 아니야..... 나도 몰랐는데....

        내가... 자기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애..아니... 사랑해..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M)     슬픈 사랑의 노래 / 다비치


(E)결혼식장 소음


여     예식 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제야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 같아도.... 나 같아도 그러겠다.

        그를 이해하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M)     Foolish Games / Jewel


여     사람들에게 결혼식이 취소됐다는 얘기를 해야하지 않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난 그냥 엉엉 울고만 있었다.


남     메이크업 그게 얼마짜린데 그렇게 울면 어떡해.

여     .....!! 자기야..

남     너구리 같잖아.

여     (엉엉 울고) 이제 오면 어떡해... 얼마나 기다렸는데....

남     내가 너 기다린 거보다 더 기다렸어?

여     그렇다고 이러면 어떡해.... 얼마나 겁났는지 알아?

남     미안해... 미안해....

여     (계속 통곡하며)얼굴은 그게 또 뭐야..... 완전 홀쪽해졌잖아

        밥도 안먹고 다닌거야? 아프면 어쩌려고.....

남     미안해.... 미안해.....


여     그의 따뜻한 품에 안긴 채 나는 계속해서 통곡을 했다.

        받는 사랑. 주는 사랑. 그런 거 없이..

        그냥 이 사람을 사랑 그 자체로 사랑하겠다고.....

        아프게 깨달아가는 중이다.

(M)주제음      아름다운 날들 / 장혜진








2008-11-1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