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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61화 - 올드 미스터 다이어리
(M) 주제음 I Do, I Do, I Do, I Do, I Do / ABBA
남 나는 장남이다.
그것도 그냥 장남이 아니다.
6남매의 장남이다.
심지어 종손이다.
일년에 제사만 열두번이다.
제사를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아니다.
집안 어른들이 계신 안동 종갓집까지 내려가야 한다.
게다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그냥 부모님도 아니다.
무지 깐깐한 부모님이다.
아직 몹시 정정하신 아흔 넘은 할머니도 계신다.
어머니는 장한 효부상을 받으셨을 정도로
예의와 도리를 아시는 분이다.
물론. 새로 들어올 며느리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동생들도 모두 미혼이다.
막내는 고등학생이다.
이런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는.
폭락한 주식이 아무 까닭 없이
상한가 스무번 연달아 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M) 희망사항 / 변진섭
남 이제 내 나이 서른 아홉.
서른 다섯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나이를 잊고 살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어디.
언제부턴가...
여기저기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마저 느껴진다.
다들... 어디가 모자란 거 아닌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닌가...
꼭 그러는 것 같다.
우울하다.
이 가을이 지나면. 나도.. 마흔...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차다.
(M) 찬바람이 불면 / 김지연
(E)계단 걸어올라가는
남 몇 군데 결혼소개소를 전전해 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나이는 나이대로 많고.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아닌
그저 평범한 중소기업의 과장에.
그런 대식구의 장남인 나를
달가워하는 결혼소개소는 아무 데도 없었다.
회비도 훨씬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새로운 소개소를 찾아왔다.
서른 아홉 가을.
마지막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겠다는 마음이다.
(E) 문 열고 들어가는
남 안녕하세요? 아까 상담 예약했던.. 김봉덕이라고 하는데요.
여 아... 앉으세요. 제가 아까 예약해 드린 커플매니저
윤은서입니다.
남 네.
(E) 자리 앉고
여 뭐.. 차 드실래요? 커피? 녹차?
남 쥬스 있나요?
여 .... 쥬스는 없어요. 커피랑 녹차 중에 고르세요.
남 아.... 난 카페인 들어간 거 싫은데.
여 ...... 그럼 할 수 없네요 뭐. 그냥 앉아서 얘기하죠.
남 물은 없나요?
여 거기 뒤에 정수기 있죠? 물은 셀프에요.
남 네...
(E) 물 쪼르르 따르는 소리
남 (물 마시고) 물에서 약간 수돗물 냄새가...
여 (더이상 못참겠다는 듯) 김봉덕씨!!!
남 네?
여 서른 아홉이라고 하셨죠?
남 (궁핍) 만으로는 서른 여덟...
여 내년이면 마흔이구요.
남 ....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여 제가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요.
왜 여태 결혼 못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남 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여 아까 전화로 종손이라고 하셨죠?
남 네...
여 귀하게 자라셨겠어요?
남 말도 못했죠.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여 집안에 제사 많으시겠어요?
남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어요. 일년에 열두어번...
여 (기막히다는 듯) 열두어번... 제가 정리를 해드릴께요.
서른 아홉인데. 연봉은 삼천 구백이 안되고.
보살펴야 할 동생들과 모셔야 할 시부모에 시할머니까지
계신데.
본인은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귀하게 컸고.
아무 거나 안 먹고 입맛 까다롭고. 제사는 일년에
열두번... 그러니까 한달에 한번꼴인 그런 남자가 있어요.
만약 봉덕씨에게 딸이 있다면,
그런 남자랑 결혼시키고 싶겠어요?
남 ......아뇨.
여 그게 바로. 김봉덕씨가 결혼하지 못한 이유에요.
(M) 구인광고 / 홍서범
(E) 서류에 사각사각 뭐라고 쓰는 소리
남 혈액형도 다 써요?
여 당연하죠. 혹시 지병이 있거나.. 치료병력 있으면 그런
것도 다 쓰세요.
(E) 종이 주며
남 여기 있습니다.
여 흠.... 정말 쉬운 분은 아니시네요. 거기다..
결혼상대자 희망 나이가 서른?
남 왜요? 그것도 많이 높인건데?
여 김봉덕씨.... 본인은 서른 아홉이면서. 여자 나이는 서른?
그것도 많이 높인거라구요?
남 아니 연예인들도 그렇고.. 다른 남자들은 스무살씩 차이
나는 여자랑도 결혼하고....
여 됐구요. 제가 봤을 때는 서른 다섯은 넘어야 돼요.
그래도 본인보다 네 살이나 적잖아요.
남 아니 그래도... 서른 다섯이면... 애도 낳아야 하는데...
노산은 좀....
여 (버럭) 노산이라구욧???
남 아니 왜 화를 내세요.
여 서른 다섯에 결혼해 서른 여섯에 애 가져서 낳으면 되지.
그게 무슨 노산?
남 왜 흥분을 하고 그래요. 매니저님이 서른 다섯인 거
아니에요?
여 (헉...) 그래요. 맞아요. 나 서른 다섯이에요. 그래서요?
뭐 보태준 거 있어요? 나 이 나이에 결혼해 애 낳아도
노산이란 소리 절대 안 듣거든요?
(M)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 최희준
남 다혈질에.. 서른 다섯에.. 말도 함부로 하는 여자.
저러니 노처녀지..
(E)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다시 냉철한) 커플매니저 윤은선데요.
남 네.
여 첫 번째 미팅 시간이 잡혔어요.
남 벌써요? 하하.. 제 스펙이 딸린다고 막 그러시더니..
생각보단 괜찮죠?
여 회원님.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제가 이쪽 업계에선 가장
많은 회원을 상대하고 있는 매니저라서.
미팅이 빨리 잡힌 거 뿐입니다.
남 하하하..그래도 제가 딸리면 그러진 않았겠죠.
여자분 나이가?
여 네. 서른이에요.
남 하하하하. 거 보세요. 가능하다니까.
날짜랑 장소 좀 알려주세요.
여 이번주 토요일. 워싱턴 호텔 1층 로비 까페에요.
(M) 그녀를 만나기 백미터 전 / 이상우
(E) 씩씩대며 전화 거는. 받는.
여 네. 김봉덕씨. 미팅은 잘 끝나셨나요?
남 여보세요.
여 왜요?
남 아니.. 서른이라고만 했지. 애가 둘이란 얘긴 안했잖아요!
여 아...제가 그 얘기 안했나요? 그분 초혼이 좀 빠르셨어요.
스물 한 살 때 결혼하셨다가.. 실패해서..
큰애가 여덟살이래요.
작은 애는 여섯 살.. 다 키웠죠 뭐.
남 다 키우기는 이 사람이...
여 아니.. 어제 노산 걱정하셨잖아요. 미리 둘씩 낳아놓은 데
가면 좋은 거 아닌가?
남 나랑 지금 장난해요? 나는 멀쩡히 초혼인데. 재혼인 사람을
들이밀면 어떡해요.
여 요샌 그런 분들도 많아요.
남 난 아니에요. 우리 부모님도 난리나실거고.
여 결혼 경험 없고. 서른 미만에.
연봉 4천 이상의 직장인이면서.
시부모님과 시할머님 모셔가며. 한달에 한번씩 안동에
내려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여자분은 없거든요?
남 그런 여자 찾아보기 힘드니까.. 제가 비싼 회비 내고
거기 가입한 거 아닙니까. 당장 내 회비 돌려주세요.
여 뭐라구요?
남 나 완전 사기 당했으니까. 내 회비 당장 돌려달라고!!!
여 그래요. 나도 그쪽 같은 회원 때문에 골머리 앓고 싶지는
않네요.
오늘은 토요일이라 회사 쉬니까요. 월요일에 오세요.
남 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지금 당장 내놔요 당장!!
여 뭐라구요?
남 지금 당장 돌려달라구요!!!
(M) Gimme Gimme / 컨츄리꼬꼬
(E) 탁탁탁 걸어오는
남 왜 사람을 오라가라.. 여기까지 오라 그러면 어떡해요?
여 그러니까 월요일에 보자 그랬잖아요.
남 그때까지 못참겠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병원까지 오라고.. 뭐 어디 아파요?
여 아프긴 누가 아파요. 엄마가 여기 입원해 계셔서 그래요.
남 (약간 미안해지고) 아... 그럼 간병하다가 나오신 건가요?
여 그럼 고스톱 치다 나왔겠어요?
남 상황이... 이랬으면... 아까 얘길 하지. (미안해서) 나는...
성격이 좀 급한 편이라서요. 무슨 일을 질질 끄는 거
싫어하고. 당장 끝을 봐야 되거든요. 암튼.. 미안해요.
어머니 간병하는 거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다그치진 않았을텐데.
여 됐구요. 돈 가져왔어요.
남 네..
여 이거 일단 내 개인돈 찾은 거에요. 더 이상 그쪽이랑 이런
일로 엮이고 싶지도 않고... 말도 섞고 싶지 않고....
(E) 가방 여는 소리
여 여기.. 백만원... (하는데)
(E) 전화벨
여 잠깐만요. 여보세요? 어 은주야. 뭐어? 엄마가??
(E) 뛰기 시작하는
남 저기요.... 돈은 주고 가야... 이거봐요.
(E) 쫓아가는 소리에서
(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임창정
------------------1부 끝 ---------------------
*잠시 뒤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임창정
(E)뛰어가는 소리
남 아니... 뭐가 어떻게 된건데... 위독하시대요?
저기.. 내 돈은... 주고..
(E) 병실 문 박차고 들어가는
여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남 그녀의 어머니는 3년째 식물인간 상태라고 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상태가 악화되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것이다.
의사들이 오고. 응급 조치가 이뤄진 후.
상태가 호전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E) 또각또각 걸어와 털썩 앉는. 귀뚜라미 소리
여 놀랬죠. 미안해요.
남 아니에요. 난.. 그렇게 심하신 줄은 모르고...
(E) 돈 꺼내주는
여 여?어요. 돈.
남 아니에요.
여 왜요 갑자기? 내가 불쌍해요? (웃으며) 엄마가 편찮으실
뿐이에요.
나 김봉덕씨보다 연봉도 두배나 많구요.
통장 잔고에도 돈 많아요.
김봉덕씨같은 회원 한명 날린다고. 회사에서 문책 당할
일도 없구요.
괜히 이상한 연민같은 거 품지 말고. 자기 돈 잘 챙기세요.
남 아니에요. 나 그냥 윤은서씨가 소개해주는 사람들 더
만나보려고 그래요.
여 사실은 내가 자신 없어서 그래요.
아까 얘기한 거 다 진심이에요.
김봉덕씨.. 그 정도 스펙으로. 눈높이 낮추지 않으면요.
매칭 시켜 드리기 힘들어요.
남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싶다는 게. 그렇게 비웃음을
살만한 일인가요?
여 네?
남 사실 내 능력으론 좋은 여자 만나기 힘들었어요.
집 회사.. 집 회사...
그러다 보니까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구요.
그런데 결혼정보회사 같은 데 가 보면. 다들 비웃더라구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결혼이냐는 듯이.
여 ......... 비웃긴 누가 비웃어요. 그냥....
조건이 워낙 까다로우니까
매칭 시켜주기 힘들다.. 그 말이죠. 생각해 보세요. 봉덕씨도
여자 나이 따지죠.. 인물따지죠... 연봉 따지잖아요.
여자 쪽도 그렇다구요. 그러니... 합의점이 안 생겨요.
남 사실은요. 내 꿈은 그거에요.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
여 .....
남 어렸을 때 소꿉장난할 때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랑.
밥도 같이 해먹고. 유모차 끌고 산책도 하고. 마트도 같이
가고.
여 ....
남 그런데 나이 들수록 결혼이 그렇게 단순하질 않더라구요.
은서씨 말대로. 내가 그렇게 쉬운 조건도 아니구요.
연애도 두 번했어요. 둘 다.. 정말 좋아했던
여자들이었는데....
다들 헤어질 때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더 좋은 여자 만날거야.
여 ......
남 내가 좋다는데... 뭘 더 좋은 여자를 만나라는 건지....
도망가는 핑계가 아름답긴 했지만. 솔직하지 못했어요.
(M) 핑계 / 김건모
(E) 사무실 소음
여 커피 드실래요, 녹차 드실래요.
남 녹차요.
(E) 잔 놓는 소리
여 아홉 번째네요.
남 네...
여 지난번 분 마음에 안 드셨어요? 간만에 김봉덕씨 좋다는
여자분이셨는데?
남 아.. 그래요?
여 네. 남자답고 듬직해서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옆에서 제가
많이 펌프질하기도 했지만요.
남 뭐라고 펌프질을 하셨는데요?
여 뻔한 거 있잖아요. 장남이라 힘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남자다.
결혼해서 살아보면. 알겠지만.
남자.. 다른 거 필요없고. 성실하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거
만한 장점 없다.
남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여 ...뭐 별루요. 전 경제력을 제일 중요시해요.
(E) 서류 넘기는
남 그래서 결혼 못한 거 아니구요?
여 이분 정말.... 몇 번 말해요. 저는요. 회원님들 중에서도
대쉬 해 온 분들 많았어요. 그래도 제가 직업윤리상 다
거절했구요. 지금은... 집안 사정도 그렇고 해서 미뤄두는
거 뿐이에요.
남 그렇구나..
여 비웃어요 지금?
남 아뇨? 그렇다구요. 괜히 난리셔.
여 지난번 여자분... 공무원에 그만한 자리 없을 것 같은데...
남 죄송한데.... 외모가 제 이상형하곤 너무 멀구요.
너무나 과체중이셔서.....
여 왜요? 통통하고 딱 좋으시던데...
남 70킬로는 족히 넘어보이시던데요? 전 아담 사이즈를
좋아하거든요.
여 또..또.. 따지신다. 제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야겠어요? 김봉덕씨는...
(E)전화벨 소리
여 잠시만요. 여보세요? 어 은주야... (차분)
어... 어... 그래.. 알았어.
남 .......은서씨. 매니저님.
여 네?
남 왜 그래요 표정이.. 멍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여 미안해요. 제가 일이 있어서.. 먼저.... 좀.....
(정신없이 나가고)
(E) 몇걸음 가다가 쿠당탕... 뭔가 넘어뜨리는
남 왜 그래요.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요.
여 미안한데요. 나 지금 운전을 못할 것 같아서... 나 좀...
데려다 주시면 안될까요?
(M) 애송이의 사랑 / 양파
(E) 차 가는 소리
남 어디 가는지.. 얘기 안했어요 은서씨.
여 아... 병원요. 병원으로 좀....
남 (역시..)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여 네?? 네..
남 또 위독하시대요?
여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돌아가셨대요.
남 네??
여 (담담) 돌아가셨대요.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남 은서씨.... 괜찮아요?
여 괜찮아요. 늘 예상하고 있었어요. 예상은 했는데.....
남 .......
여 엄마랑.. 나랑... 우리 은주랑...
세상엔 우리 셋 뿐이라서. 엄마가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설마.... 은주랑 나만 두고 가진 않겠지.
우리 보고 싶어서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은 눈을
뜨고. 우리에게 마지막 말씀이라도 하시겠지... 했는데.....
남 ........
여 (울음) 정말 너무하네. 어떻게 그냥 그렇게.... 우리만 두고...
어떻게 그냥 가.... (엉엉 갑자기 울고)
남 아무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차를 멈추고 어깨를 토닥여줄 수도 없었고.
어설프게 괜찮다느니.. 힘내라느니..
그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오려 해
앞만 보면서 열심히 운전만 했다.
(M)
It's A Lonesome Old Town / Sting
(E)상가집 분위기
여 (약간 힘없는) 가세요.. 늦었는데...
남 아니에요. 음식 나르는 거라도 좀 도와주구요.
여 손님도 얼마 안돼요. 아까 회사 사람들 왔다 갔으니까..
이제 뭐 거의 다 온 거에요.
남 친척 없어요?
여 없어요.
남 ..... 밥 좀 먹어요.
여 그러고 싶은데. 입맛이 너무 깔깔해서.
그나저나 우리 은주가 걱정이에요. 난 독한데.
우리 은주는 너무 여려서....
계속 울기만 해서...
남 내가 밖에 나가 죽이라도 사다줄까요 동생분?
여 .......그래줄래요?
남 그래요. 은서씬 뭐 먹을래요? 굴다리 쪽에 기막히게
잘하는 죽집 있어요. 거기 야채죽도 맛있고 잣죽도 맛있고.
여 고마워요. 아무 상관도 없는 나한테...
남 아니에요.
남 아니에요... 우리가 왜 상관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이미
당신을 좋아하는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M) 연인 - 김연우
(E) 먹는 소리
남 어때요? 괜찮아요?
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
참 잔인한 말이긴 한데. 맞는말이에요.
남 ......
여 엄마 누워 계실 땐. 눈 안떠도 좋으니까.
입 안열어도 좋으니까.
그대로 누워만 계셔달라고. 살아만 계셔달라고.
돌아가시면 난 못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고 났는데도. 배도 고프고.
잠도 오고. 그러네요.
남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내가 보기엔 은서씬 최선을 다했어요.
여 고마워요.
남 고맙다는 말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오늘 몇 번이나 그 말 했는 지 알아요?
여 다음 미팅은 선경씨가 도와줄거에요.
저 2주일 휴가 받았거든요.
남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 있어요? 진짜 괜찮나보네...
여 .... 그러게요.
남 사람들도 다 갔는데. 이제 좀 쉬세요. 나도 가 볼께요.
여 그래요. 정말..
남 고마웠다구요? 그만하세요. 그리고.. 나 내일도..
모레도 올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냥 부리는 일꾼이라고 하세요.
여 봉덕씬 회사도 안가요?
남 나도 휴가 내죠 뭐.
같이 갈 사람 없어서 여름 휴가도 안냈는데.
(M) I
believe / 성시경
남 사흘 내내 그녀의 곁을 지켰다.
아직도 쏟을 눈물이 남았는지. 발인하던 날까지 그녀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E) 식당 소음
남 앉아요.
여 됐어요. 아직 밥 넘길 기운 없어요.
남 계속 죽만 먹어요 그럼? 여기 순두부 맛있거든요?
(E)보글보글 끓는 소리
남 자.. 순두부에...
(E)계란 깨는
남 계란 톡 깨서.. 해봐요.
(E)계란 톡 깨는
남 첫술이 힘들어요. 일단 첫술이 들어가고 나면.
한그릇 비우는 거
금방이에요.
여 있잖아요.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주세요?
남 잘해야죠. 장남에. 재산은 없고. 제사는 많고.
입맛은 까다롭고. 내가.. 은서씨한테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잖아요.
여 .....네?
남 은서씨가.. 불쌍하기만 한 게 아니라. 좋기도 하니까.
여 .....
남 그런데 뭐 은서씨만큼 내 단점 많이 아는 사람 없으니까
숨긴다고 숨길 수도 없고.
옆에서 펌프질 해줄 사람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은서씨 힘들 때.
최선을 다해 잘해주는 거...
그거 말곤 없잖아요.
여 나.... 경제력 본다고 그렇게 말했을텐데?
남 인생이 뭐... 자기 바라는 대로만 되면 그게 인생인가요?
여 뭐에요?
남 일단 화는 나중에 내고.. 먹어요. 숟가락 들고.
여 치.... 정말..... 말도 안돼.
남 라고 하면서도.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국물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내 배가 다 부르다.
(M)주제음 I Do, I Do, I Do, I Do, I Do / ABBA
2008-1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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