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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8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57화 - 남편의 첫사랑 


(M) 주제음 (오래전 그날- 윤종신 )


남     여보... (더 크게) 여보..


(E) 문 열고 들어오며


여     왜.

남     빗 없어?

여     거?잖아.

남     아니.. 도끼 빗 말고. 뒤에 컬 좀 넣게.

여     (기막히고) 뭐? 컬?

남     머리숱이 적어진 거 같아서. 드라이 좀 해볼라구.

여     참나.. 안하던 짓 하네?


(E) 서랍에서 빗 꺼내 주고


여     자..

남     (괜히 겸연쩍게) 나이들어 보이잖아. 머리 손질 안해가지고 다니면.

여     누가 뭐래?

남     요새는 회사에서도 나이 들어 보이는 거 안좋거든.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도...

여     (OL) 아유 누가 뭐라냐구. 해. 드라이.

남     어.. 


(E) 드라이 소리


여     넥타이 이거 맬라구?

남     (깜짝) 어? 어.

여     이렇게 빨간 걸? 너무 튀지 않아?

남     에이.. 안 튀어. 요샌 다 그런 거 해.

여     그래? ... (흠흠 냄새) 당신 손수건에 향수 뿌렸어?

남     (화들짝) 어? 쪼금... 냄새 나?

여     나지 그럼! 진짜 웃긴다.

(E) 드라이 끄고

남     뭘 웃기긴, 줘. 나도 다.. 살아보려고 이러는 거야.

여     살아보긴 뭘 살아봐?

남     당신이 회사 생활 안해봐서 모르는건데. 외모 가꾸는 거 중요해. 신문 봐봐. 남자들 성형이니.. 피부관리니.. 그런 것까지 한다는데.

여     아우..... 무슨.....

남     난 그런 건 안해도. 깨끗하게 하고 다니고. 좋은 향기 나게 하는 게  뭐 나빠?

여     알았어 알았어. 사설 그만 하고. 얼른 가기나 하셔.


여     .....라고 등떠밀어 출근시키면서도. 맘속 한구석엔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이가.. 갑자기 왜 저래?

(M)  왜 그래 /  김현철  


(E)  밥 먹는 소리


여     왜 이렇게 밥을 깨작대.

남     성민이는 언제 오지?


여     독서실 갔잖아. 열신 넘어야 오지.

남     고생이 많구만.

여     자식 고생하는 것만 보이고. 마누라 고생하는 건 안 보여?

남     당신이 무슨 고생?

여     뭐어?

남     회사일 해 봐. 집에만 있는 게 만고땡이야.

여     그거 듣기 좋은 소리 아니거든? 누굴 놀고 먹는 사람 취급이야?

남     일하는 여자들 봐. 그 여자들 회사 일만 하는 거 아니야.

        집에서는 가장 노릇 다하면서..

여     가장은 남자가 있는데 가장 노릇은 무슨! 맞벌이하면 여자가

        가장이래?

남     그게 아니고.... 남편 없이 혼자서 애 키우는 여자들도 있잖아.

여     누구?

남     어?

여     누구냐고 그러니까.

남     누구는.... 그냥 그런 사람도 있더라....하는..

여     모델이 있으니까 하는 소릴 꺼 아냐. 그런 사람이 누군데 그러니까?

남     아 거.. 따지기는. 텔레비전 봐. 드라마 보면 그런 여자들 얼마나 많은데. 맞다. 거... 에덴의 동쪽. 거기 이미숙이 봐.

        혼자 몸으로 애들 키워가면서...

여     아 시끄러워. 별...

(M)  Shut Up  /  Black Eyed Peas.


(E) 도마질 소리


여     여자에겐 여자만의 직감이라는 게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 꿈이 딱딱 들어맞는 것처럼.

        그 직감이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즈음

        이상한 예감이 자꾸만 든다.

        뭔가.... 수상하고도... 불길한 느낌.....


(E) 칼 탁 놓고. 걸어가는


여     여보... 뭐해?


(E) 샤워하는 소리


남     (안에서) 머리 감아. 왜.

여     응... 아니야. 거기 마른 수건 있지?

남     그래. 


( E) 방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남편 몰래 방으로 들어왔다.

        같이 살면서도 이런 짓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뒷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E) 핸드폰 여는

(E) 이것 저것 눌러보는


여     받은 편지함.


(E) ???...


여     별 게 없고.....

        그러면.... 보낸 편지함... 요게 또 관건이지....


(E) ???


여     이게... 뭐야?

        

남     (에코) 잘 들어갔죠? 오늘 피곤해 보이던데. 밥 잘 챙겨먹어요. 그럼 내일 봐요.


여     이..이게.... 이게 뭐야?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인간!!!!

(M) 넌 딱 걸렸어  /  유니


(E) 밤 풀벌레 소리


여     후..... (답답한 한숨 쉬고)


(E) 뒤척이는


남     (잠기 어린) 왜그래. 잠 안 자고. 자꾸 뒤척뒤척.

여     어? 아니야.... (해놓고 다시.. 후..........)

남     왜.... 체했어?

여     어? 어... 좀 체한 것 같애. 저녁 먹은 게 안 내려가나.

남     그러게... 밥 비벼서 엄청 먹더라. 돼지 같이.

여     ......뭐? 뭐 같이?

남     그렇잖아. 요샌 소식이 대세라는데. 당신 사전에 소식은 없지?  하긴.... 그러니까 뱃살이 나날이.... 나보다 배가 더 나왔어.

여     난 애 낳았잖아!!!

남     오연수나 김희애.... 또 그 누구냐. 암튼 미시 탤런트들 봐라.

        애를 둘씩 낳아도 몸매가 아주.... 그렇게 늘씬하고 이쁜데.

        당신은 꼴랑 하나 낳아놓고.

여     점점... 이 남자가!! 지금 누구 놀려?

        내가 누구 때매 이렇게 됐는데!

남     왜 또. 당신 배 나온 거까지 내 탓으로 돌리게?

여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가만 있는 거 아니거든? 나도 진짜 꾹 참고 있는 줄이나 알아.

남     할 말 뭐. 해 봐.


여     단숨에 문자 얘기를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결정적인 증거도 없는데. 허투르게 건드렸다간

        나만 남편 못믿고 휴대폰이나 뒤진 여편네가 되기 십상이니까.


남     해 보라고.

여     ........아니야.

(M) 섹시한 남자 - 스페이스 에이


(E) 좀 멀리서 코고는 소리 들리고

(E) 살금살금 나오는 소리

(E) 하다가 뭔가 밟고 쨍강.. 작은 소리


여     (동시에) 엄마야.... (소리 죽이고)


(E) 코고는 소리 멈췄다가 다시 나면


여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다시 거실로 나왔다. 물론 손에는 남편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으나

        이번엔 확실한 물증을 잡아야 했다.


(E) 띠띠띠 버튼 누르는 소리


여     어디.... 도대체 누군지나 보자.... 어?

        

(E)  버튼 누르고


여     문자를 보낸 번호를 검색해 보니

        저장된 이름이 가관이다.

        신용협동조합.....

        하...머리썼네.

        이렇게 저장해 두면

        나중에 전화가 올 때나 전화 걸 때 이름이 남아도

        나에게 의심 받지 않겠지.

        그 좋은 머리를 왜 바람 피는 데에만 쓸까.

        재테크에 썼으면 우리집은 재벌일 것을.

        치미는 화를 꾹.......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도저히 참아지질 않았다.


(E)  쿵쿵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여     당신 일어나봐.

남     어?

여     일어나보라구! 얼른!!

남     왜 그래.....

여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남     뭐.... 아까 돼지라 그런거? 하.... 알았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잠 자자.

여     안돼. 못자.

남     잘못했다잖아. 나 내일 출근해야 하거든?

여     누구 보러? 신용협동조합 보러?

남     ....어?

여     잘 들어갔죠? 오늘 피곤해 보이던데. 밥 잘 챙겨먹어요.

        그럼 내일 봐요!!!

남     다...당신 내 휴대폰 뒤졌어?

여     어쩐지. 요새 많이 수상하다 했어. 불어. 누구야?

남     불긴 뭘 불어. 그냥... 직장 동료야.

여     직장 동료? 한 직장 다니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달콤한 인사를 주고받는단 말이지?

남     달콤하긴 뭘. 그냥 야근하고 늦게까지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잘 들어가라고 한건데. 당신이 회사 생활을 안해봐서

        잘 모르는건데... 원래 회사에서는.....

여     회사 같은 소리 하지 마! 누굴 바보로 알아?

        일 안해봤어도. 그런 건 구분해.

        공적으로 안부 묻는 거랑. 진짜 감정이 절절이 배어나오는

        인사랑. 어떻게 다른지! 나도 그런 건 안단 말야!

남     ....

여     누구야. 어떤 여자야 도대체!

        혹시... 당신이 어제 말하던. 그 여자야? 혼자 애 키우면서

        가장 노릇 한다던?

남     (펄쩍) 어? 아니야...

여     어.... 아니야. 좋아 알았어. 내가 그럼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겠네?그렇지?

남     아 이리 줘. 남의 전화기로 뭐하는거야.

여     왜에. 당신 표정이 사색이 되는 게 더 수상하잖아.

        뭔데 그래.

남     효선씨야.

여     ....뭐? 누구?

남     있잖아 효선씨. 효선씨가.... 우리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어.

        경력직으로 오긴 했는데. 처음이라 잘 알지도 못하고.

        내가 그냥 이것저것 도와주다가....


여     앞이 멍해졌다.

        효선이라니. 남편의 첫사랑. 그.... 효선이?

(M) 네버엔딩 스토리 - 이승철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여     당신 뭐라 그랬어? 누구?

남     .... 효선씨. 아니.. 효선이.

여     당신 첫사랑?

남     첫사랑은... 그냥 어렸을 때 얘기지.

여     어렸을 때 얘기 좋아하네. 당신이 군대 가서 그 여자 때문에

        탈영을 한다... 쥐약을 먹겠다 난리법썩 치는 걸 잡아준 게 누군데!

남     그러니까. 철없을 때 얘기라니까?

여     철이 아직도 덜 났네.

        지금 그 여자랑 한 회사 다니게 돼서. 그래서 그렇게 안 부리던  멋을 내고 난리였던 거야?

남     어? 아니야... 그건 별개의 문제고.

여     별개의 문제 좋아한다. 누굴 속여.

남     진짜야.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얘기잖아.

여     그래서?

남     솔직히 새로 온 경력사원이 효선씬 거 알았을 때

        놀란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여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말해?

남     오해하는 거 같아서 그렇지.

여     그래서. 둘이 다시 잘해보기라도 하겠다고?

남     아 누가 그렇대? 난 애도 있는데.

여     하...... 나 때문이 아니라. 애 때문에 안된다는 거야?

남     그게 그거지.

여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남     신경 쓰지마.

여     어떻게 신경을 안써. 내가 그 사랑을 모르면 모를까.

        나는 너무나 잘 아는데.

(M) 부탁해요 - 왁스


(E) 머리 드라이 하는 소리


여     또 드라이 해?

남     (화들짝) 왜 소리도 없이 와. 귀신이야?

여     왜 그렇게 놀라?

남     아니야.... 다 했어.

여     왜. 뒤에 하다 말어. 더 해. 머리숱 많게 보여야지.

        로션 줄까? 잘 바르고 다녀.

남     왜 비아냥대고 그래.

여     내가 뭘?

남     그만 좀 해. 그냥 회사 동료야.

        옛날 일 때문에 내가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그쪽한테 그만 두랄 수도 없는거잖아.

여     그래..... 그렇지만 나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문자질 하거나. 통화질 하는 꼴 못본다.

남     ....너무 그러지 마. 혼자서 애 키우느라 힘든데.

여     그 여자 벌받는거야. 당신한테 어떻게 했니?

남     벌이라니. 같은 여자로서. 남편 잃고 살아보려고 애쓰는 여자한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해?

여     뭐?

남     맘보를 곱게 쓰란 말이야.

(M) 마음이 고와야지  /  남진


(E) 책장 신경질적으로 넘기다가

여     아... 짜증나.아무 것도 못하겠네.


(E) 미용실 소음. 드라이하는 소리. 머리싹둑거리는 소리


여     하루종일 초조해하다가

        미용실로 나왔다. 여름 내 꽤 길러온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새로 화장품을 사서

        발라보기도 하고. 큰 맘 먹고 가을 원피스도 한 벌 샀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맞춰

        남편 회사 앞으로 갔다.


(E) 전화 통화음


남     여보세요

여     나.

남     어... 왜?

여     나 지금 당신 회사 앞.

남     뭐?

여     기다릴게. 저녁 같이 먹자.

남     나 야근인데?

여     .... 저녁은 먹을 거 아냐.

남     회사 사람들이랑 먹기로 했어.

여     그럼 그 사람들끼리 먹으라 하고. 당신은 나와.

        사람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낼거야?


(E) 레스토랑 소음


여     어째.... 먹는 게 그렇다?

남     어?

여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잖아?

남     내가? 아니야.

여     저녁 같이 먹기로 한 사람이. 그 여자야?

남     에이 참. 아니라니까. 다같이 먹기로 한 거야.

여     여보 나 있잖아. 기분이 좀 그래.

남     뭐가. 

여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조금은 덜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거든.

남     ?

여     그 여자보다는 덜 사랑받고 있다고.

        당신은 그 여자에게 했듯이. 내게 애절하지 않았고.

        나 때문에 초조해하지도 않았잖아. 매달리지도 않았고.

        그래서. 늘 나는 그 여자보다는 조금 덜.... 이겠구나.

        했단 말이야.

남     거.... 말도 안되는 소릴....

여     그런데. 그런 그 여자가 당신이랑 매일 얼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미쳐버릴 것 같애.

(M)  사랑하고 싶어  /  왁스


(E) 커피잔 소리


남     당신이 신경 쓸 줄 알아서. 미리 얘기 못한거야.

여     사는 게 힘들대?

남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혼자서 자식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아냐.

여     그래서? 가여워?

남     그런식으로 말 몰아가면 내가 얘길 못하지.

여     정말 당신은 그 여자한테 옛날 감정이 조금도 안 남았다구?

남     .........그렇다니까. 

여     자신 없어 보이는데?

남     저녁 시간 끝났어. 들어가 봐야돼.

여     얘기 끝내고 들어가.

남     결론도 없는 얘기 언제까지 하라고.

여     저녁에도 그 여자랑 같이 있을 거잖아!

남     야근이야 야근. 일이라고!

여     당신 회사 옮기면 안될까?

남     미쳤어 진짜?


(E) 전화 오는


남     여보세요? (목소리 한결 부드러워지는) 아.. 네.

        지금 저녁 다 먹었어요. 들어가요. 지금. 아... 그거 하지 말고

        냅두세요. 제가 들어가 처리할께요.

여     여보.

남     (멀어지며) 지금 나가고 있어요. 무거우니까 괜히 옮기려고

        하지 말구요. 그래요.


여     낯선 남자의 등에 대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는 이미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M)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지연


(E) 컴퓨터 자판 치는


여     이렇게까지 하면 안된다는 거

        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이대로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 사람의 부서 주소록에서

        그 여자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고.

        이메일을 썼다.


여     (에코) 당신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알아요. 너무 잘 알아서 탈이죠.

        당신이 우리 남편의 첫사랑이라는 것도.

        그 첫사랑이 끝날 때. 내 남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도.

        당신을 다시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비참하게 차였는지도.

        나는 곁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두 번째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됐어요.

        하지만 같이 사는 내내

        언제나 나는 두 번째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당신과 남편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내 자신이 더더욱 초라해지더군요.

        그건. 왜냐면.

        당신과 내 남편이 나쁜 짓을 저질러서가 아니고.

        내 마음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들면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남편이 첫사랑을 아름답게 간직하려고 노력한다면.

        나도 내 남편의 첫사랑을

        지켜주려고 노력해야 하니까.

        비굴하고. 유치하지만.

        내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M) 편지 - 김광진


(E) 들어오는 소리


여     일찍 왔네?

남     (힘없는) 어.

여     왜.

남     아니야.

여     무슨 일 있어?

남     어? 아니....

여     밥은?

남     생각 없어. 그냥 씻고 잘래.


( E) 풀벌레 소리


남     (한숨) 

여     왜 안 자.

남     자야지....

여     우유 한잔 데워줘?

남     아니야.....

여     아 정말 답답하게. 왜 그러냐구.

남     .......

여     응?

남     그만 뒀어.

여     ...(뜨끔) 응?

남     회사.... 효선이 말이야.

여     지..지금... 자기 첫사랑이 회사 관뒀다고 이렇게 코를 석자나  빼고.... 잠도 못이룬단 말야?

남     ... 미안하다.

여     웃긴다 진짜. 자기 와이프한테.. 첫사랑한테 두 번 차인 사람 마냥....  왜... 그만둔대?

남     다른 회사.... 더 괜찮은 자리가 생겼다구....

여     그래?

남     실은.... 인사도 못했어. 아침에 갔더니 자리까지 싹 정리하고  없어졌더라구.

여     ........

남     마지막 인사라도 할까 하고 전화했는데

        번호까지 싹 바꾸고.

여     .....그...래?

남     솔직히 말할게. 감정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거야.   그런데..... 그건 절대 당신보다 그 여자를 더 앞세우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어.

여     ....참 눈물나게 고맙네.

남     그래도.... 옛날 생각도 나고. 더 잘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맘도 있고. 도와주고도 싶고.... 그랬는데.

        그 여잔 그게 부담됐나봐.

여     ......어...

남     어제 말야. 내 책상 위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더니.

        그러더라구. 부인이 참 좋은 사람일 것 같다구.

여     (화들짝) 그 여자가 그래?

남     응.... 그러고 보니. 그게 마지막 인사였네.

여     어.....

남     미안했어 여보.

여     됐어..........(잠깐 있다가) 가을이잖아. 한번 봐줄게.

남     그래.... 고마워. 나 잔다.


여     남편은 여전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

        그 뒤척임을. 조금의 미안함으로 돌아본다.

        남편의 첫사랑을.

        나도 함께 떠나보내며.

(M)  주제음 : 오래전 그날- 윤종신

 

        








        








2008-09-17(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