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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4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55 화 - 강수지에 대한 추억


(M) 주제음 (보라빛 향기 / 강수지)


(E) 인터넷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


남     가을은 가을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제법 차가운 밤공기에

        한기가 든다.

        

(E) 커피 쪼르르 따르고


남     원두커피의 마지막 잔을 따라 마시는데.

        라디오에서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 흘러 나온다.


(E) 보랏빛 향기 흐르고 -


남     그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떠오른 얼굴 하나.

        학원으로. 교회로.

        그 아이가 가는 곳마다 부지런히 쫓아다녔던

        그 시절의 기억.

        웃음이 난다.

        그 아이는 요즘 아이들 말로. 킹왕짱 얼짱이었다.

        가녀린 몸매에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당시 뭇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던

        강수지와도 흡사한 외모였다.

        다른 남학생들도 그랬고.

        나 역시, 그녀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학교 앞에 가보기도 하고.

        일부러 그녀가 다니는 학원을 끊어보기도 하고.

        안 가던 독서실까지 다니게 됐었다.

        그땐 그랬었다.

(M)그땐 그랬지 / 카니발


(E) 컴퓨터 클릭하는. 키보드 검색하고..


남     아주 흔한 이름은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열명 조금 넘는 동명이인들의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검색해 가다가.

        드디어,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아냈다.

        사진이 올려져 있진 않았지만

        프로필에 나온 동네와 학교 등이 일치했다.

        몇초간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 다음 순간. 서른 훌쩍 넘어 이게 뭐하는 짓인가...싶은

        창피함이 밀려왔고. 얼른 컴퓨터를 끈 채 잠들고 말았다.

(M) 가을이 오면 - 이문세 


(E) 회사 분위기 소음들


남     그리고 몇일 동안 그 일을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런데. 


(E)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저.. 김봉덕씨 전화.. 맞아요?

남     네. 그런데요?

여     어.. 나야. 은서.

남     .........누구?

여     은서... 니가 쪽지 남겼길래.. 전화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해 봤어.

남     어...어..은서야. 그래.. 너 잘 지냈어?

여     그냥 뭐..넌?

남     나도 뭐... 야 이런 얘길 어떻게 그냥 전화로 하냐?

        너 오늘 저녁에 시간 돼? 만나서 얘기하면.. 안될까?

        저녁이나 먹으면서. 어때?

(M) 그녀를 만나는 곳 백미터 전 / 이상우


(E) 레스토랑 소음


남     평소엔 엄두도 못낼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윤은서를 만나러 오는 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싶었 다.       

        하나도 아까운 마음이 안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 한 테이블 한 테이블 둘러보는데

        심장이 왜 이렇게 뛰는지. 이러다 기절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     여기..

남     어... 먼저 와 있었구나?

여     응.. 앉아.


(E) 몇걸음 후 앉는


남     좀.. 변해 있었다.

        하긴.. 세월이 얼만가. 변할 수도 있지.변할만도 하지.

        

여     나 좀 변했지.

남     아니야. 똑같은데 뭐.

여     에이.. 거짓말. 그때는 여고생이었고. 지금은 서른이 훨씬 넘었는데?

남     그렇지... 그게 벌써 십칠년이 넘었나?

여     응. 

남     암튼 반갑다.

여     나두. 

(M)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 동물원


(E) 접시 소리들


여     난 아직 그 동네 살아.

남     정말? 그.. 장미 많은.. 그집? 파란대문?

여     그걸 아직도 기억해?

남     기억하지. 내가 거기 줄기차게 갔잖아.

여     맞어. 너 맨날 왔었어. 와서 괜히 거기 온 남자애들하고 싸우고.

남     그건 기억 잘 안나는데.

여     니가 학 천마리 접어서 줬잖아. 그런데 다른 남자애가..

        왜 홍길이라구 걔가 삼천마리 접어 준 거 알구.. 열받아선...

        (킬킬대고)

남     내가.. 그랬나?

여     그래. 너 그때 진짜 웃겼어.

남     어렸지.

여     그런데 너 무슨 일 해? 회사 다녀?

남     어.. 증권회사. 펀드매니저야.

여     (반짝) 어머.. 진짜? 그거 연봉 쎄다던데?

남     괜찮지. 그런데 요샌 장이 안좋아서 욕 많이 먹는다.

여     그렇구나. 너 성공했다 얘.

남     성공은 뭐...

여     하긴... 니가 그때 여드름은 좀 많이 났어도.. 공부 하난 잘했다

        그랬었어. 니가 영광고 1등이라고 해서. 나도 약간 혹했었잖아.


남     수다를 떠는 그녀를 본다.

        살이 좀 쪄 있었고. 하얗던 얼굴에 주근깨가 좀 내려앉았다.

        웃을 때 주름도 좀 지는 것 같고. 뭣보다 길고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있었다.

        짧은 퍼머 머리의 그녀는, 내 추억 속의 그녀와는

        거리가 있었다.

(M) 긴머리 소녀 / 기후


(E) 걷는 소리


남     이 동네는 진짜 하나도 안바꼈네.

여     응.. 매년 재개발 얘기는 있는데. 그냥 그러다 말더라구.

남     그래도 좋다. 오랜만에 왔어도 똑같은 모습으로 맞아주는

        곳이 있어서.

여     난 약간 지겨운데.

남     그나저나.. 넌 어떤 일 해?

여     어? 어.. 놀아.

남     어?

여     논다구.

남     아... 그렇구나.

여     대학 졸업하고 회사 좀 다녔었는데. 너무 힘들더라구.

        남들 비위 맞추는 것도, 나랑은 안맞구. 그래서.. 관뒀어.

남     그랬어?

여     회사 그만두구 결혼이나 하려구 선도 많이 봤는데.

        그렇더라구. 이게 좋으면 이게 마음에 안 들구.

        저게 좋으면 저게 마음에 안 들구.

남     백퍼센트의 사람이 어디 있겠어?

여     있을 줄 알았지. 그래서 기다렸지.

        그런데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 셋이 돼 버리더라?

남     스물 아홉부터는 진짜 빨리 가지 않냐?

여     맞어. 있잖아. 진짜진짜 우울한게. 요샌 선도 안 들어온다?


남     내 눈앞에 있는 그녀가

        그 아이가 맞나.

        그 시절 우리 동네에 살던 모든 남학생들의 우상이자 소망이었던

        그녀가 맞나. 추억과 현실 간의 괴리 속에

        난 잠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M) 추억 속의 그대 - 황치훈


여     다 왔다.

남     야.. 진짜... 여기 그대로 사네...

여     그렇다니까. 이사가자 그래두 아빠가 고집불통이셔.

남     그런데.. 집이 원래 이렇게 작았나?

여     어?

남     아니... 그때는 커보였는데.

여     니가 큰 거겠지.


남     그런 거겠지? 그땐 이 집이 들어설 수 없는 성처럼 보였고.

        그녀는 그 성 안에 사는 고귀한 공주님 같기만 했었다.


여     잘 가. 오늘 재밌었어.

남     그래... 갈게.

여     있잖아. 

남     어?

여     전화해도 된다구.

(M) 마법의 성 - 클래식 키드


남     추억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여자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첫사랑 그녀와 비교하곤 했던 게 사실이었다.

        어떤 여자와 좀 더 깊이 사귈라 치면..

        아직 마음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첫사랑이

        어김없이 떠올라..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서글프지만 그게 진실이었다.

        다시 일상 속으로 복귀해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날.


(E) 전화벨


남     여보세요?

여     (화를 참는 듯한) 난데.

남     네?

여     은서라구. 내 번호 저장도 안해뒀니?

남     아..미안. 바빠서 발신번호도 안보고 받은거야.

여     어쨌든.. 할 말이 있어서.

남     어... 무슨....?

여     너 나랑 장난해?

남     어??

여     왜 전화 안해?

남     그게.. 무슨 소리..야?

여     가만 있는 사람 건드려서.. 확 흔들어놓고

        왜 전화 안하냐구! 너 내가 우스워?

남     야... 뭔소리하는거야.

여     있잖아. 나 지금 니네 회사 앞이거든? 잠깐 나와줘야겠다.


남     여름 다 지나 무슨 공포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다.

        이게 웬 스토킹이란 말인가.

        그저 추억을 추억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M) 미절 - 쿨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E) 뛰어 나오는


남     야.. 너 여기까지.... 어떻게 된거야.

여     내가 전화해도 된댔잖아. 그런데 왜 안했어?

남     그거 물어보려고 온거야?

여     너도 나한테 실망했어?

남     뭐?

여     너 같은 남자가 처음인 줄 알아?

        형주. 혁준이. 승진이. 홍길이. 민성이. 세창이. 영민이.

        더 얘기해 줘?

남     무슨 소리야.

여     걔네들도 다 너처럼 어느날 갑자기 보고 싶다면서

        한번 만나자고 연락했었어. 그래서 나가면. 표정들이 한결같이

        똑같애! 똥씹은 표정들!!!!

남     야.. 내가 언제..

여     그래놓고. 뭐 추억이 아름답다는 둥 헛소리하고는

        그 다음부터 연락 한번이 없지. 내 기분이 어떨 거 같니?

남     아니.. 난 그런 게 아니구...

여     그래. 난 그래도 넌 다를 줄 알았어!

        나 쫓아다녔던 남자애들 중에 니가 제일 일편단심이었으니까.

        가을에 니가 시집에 꽂아줬던 은행잎 아직도 난 가지고 있고.

        아직도 그거 보면. 넌 참 좋은 애였지.. 생각했으니까.

남     ....

여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내가 보든 안 보든, 작은 꼬마 트리

        집앞에 갖다 놓고 도망친 것도. 너라는 거. 난 알고 있었으니까.

        비오던 날. 학교 앞에서. 나한테 우산 쥐어주고.

        넌 비 다 맞으면서 뛰어가던 것도. 난 다 봤으니까.

남     은서야..

여     그래서 넌 다를 줄 알았어. 너한테 전화 받고 나서.

        나갈까 말까.. 또 그런 일 생기면 어떡하나.

        얼마나 고민 많았는지 알아? 그래도 나갔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믿어보자 싶어서 나갔어.

        그런데. 너도 똑같더라?

남     그게....

여     너..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존재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돼 버리는 기분이 뭔지.

        알기나 해? 난 가만 있었는데. 니들이 날 들었다 놨다

        다 한 거잖아!!!

(M) 다가라 - 엄정화

여     (엉엉 울고 있고)


남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을도 오고 있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옛사랑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

        그리 큰 죄란 말인가.

        물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나도 다른 녀석들처럼. 추억은 추억이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여     너.. 지금 왜 하필 너한테 이러냐고.. 그러고 있지?

남     (화들짝) 어? 아...아니야. 누가 그래. 아니야.

여     니가 잘못 걸렸다고 생각해.

        그래도 다른 애들은 스물 아홉.. 서른.. 뭐 이때쯤 나타났는데.

        넌 너무 늦게 나타났잖아. 너... 왜 날 찾아왔어?

남     그냥... 가을도 되고...

여     내가 우울해지면 꺼내는 술병이야? 심심할 때 꺼내보는

        옛날영화냐구!!

남     아니... 그게 아니구....

여     너 솔직히 말해. 내가 약간.. 살쪄서.. 실망했지!!!

남     실망이라기보단.. 좀 놀라긴 했지.

여     뭐??


남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남     야 너같으면 안 그러겠냐? 너 예전에 완전 강수지였잖아.

        강수지가 강부자가 됐는데. 너같으면 안놀래겠냐구!!!

        어떻게 예전이랑 똑같이 대하라는거야.

여     야. 내가 무슨... 그렇게까진 아니잖아!

        그리구 이거 나이살이야. 나이 들면 살찌는 거 당연한 거 아냐?

남     너.. 미숙이 알지. 걔 고등학교 때 완전히 통통하고

        얼굴 호빵 같았잖아. 너 미숙이 이뻐진 거 보면 놀랄거다.

여     ...뭐?

남     걔는 대학 간 순간부터 저녁 6시 이후엔 아무 것도 안먹었대요.

        물론 쌍거풀 수술을 하긴 했지만. 얼굴도 진짜 이뻐지고. 

        얼마나 날씬한데!! 결혼해서 애를 낳았는데도

        처녀 같기만 하더라.

여     그래서? 너 지금.. 감히 미숙이랑 날 비교해?

남     야.. 너 그 소리 미숙이가 들으면 섭섭해해.

        지금 미숙이가 너보다 백배 낫다니까?

여     너.. 어떻게.. 나한테.. 감히....

남     감히는 무슨 감히야!

        내가 진짜 참고 넘어가 줄라 그랬는데. 니가 아직도 우리 동네

        공주 마만 줄 알아? 아니.. 현실을 직시할 줄을 알아야지!!

여     야!!!!!

(M) 미쳐 - 이정현

(E)술잔에 술 따르는


남     야. 그만 마셔. 너 맨날 그렇게 마시냐? 너 그거 나잇살 아니고

        술살이야 술살.

여     아 냅둬!! 니가 데리고 살거야?

남     물론... 그건 아니지. 암튼 그만 마시라고.

        너 안주도 엄청 먹잖아. 그래서 살 찌는 거야 너.

여     아 술만 마시면 위장 버리잖아. 건강 때문에 안주도 먹는거야.

        내가 뭐.... 맛있어서 먹는 줄 알아?

남     맛있게 먹더구만 뭘.

여     조용히 해. 옛날엔 내가 한마디 해주면

        얼굴 빨개져서 찍소리 못하던게....

남     그때랑 지금이 같냐?

여     술이나 따라봐. 너.. 내가 술 따르는 영광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남     하...나 참... 그래. 고맙다. 고맙고 황송해 죽을 지경이다...


(E) 술 따라주는데

(E) 쿵 머리 박는


남     야... 거기다 머리 박고 쓰러지면 어떡해.

        야.. 은서야. 정신 좀 차려봐.

여     (정신 없는) 봉덕아....

남     왜~~

여     아프다.... 

(M) 착각의 늪 / 박경림


(E)낑낑대며 걸어가는

남     아우... 이렇게 무거우면서 살 안쪘다구.... 아우.... 진짜....

여     야. 나 너무 힘들어. 좀 쉬었다 가.

남     너보단 내가 힘들거든?


(E) 털썩 주저앉는


남     휴.... 

여     내가 우리엄마한테 니 얘기 했거든? 너 펀드매니저 됐다구.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당장 잡으라더라?

남     ....뭐?

여     오늘 안 들어와도 된다구. 그냥 확 물고 늘어지래.

남     야...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여     사실 내가 그래볼까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니야.

        우리 엄마 심정이 바로 내 심정이걸랑.

남     은서야. 너 충분히 취했어. 내가 콜택시 불러줄테니까

        그거 타고 집에 가라. 응?

여     야. 김봉덕!!

남     응?


남     .....대답하고 고개 돌리는 다음 순간.

        난 당하고 말았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 위를 덮쳤고.

        반항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당하고 말았다.

(M) 스위티 - 샵


남     뭐하는 거냐고 화를 내고. 벌떡 일어나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좋았다.

        그냥..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아있었을 뿐인데.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뜨겁게.... 그리고 다음 순간.


여     우.....웩...

남     야! 너 뭐하는거야.

여     미안.. 나 속이 안좋아서. 우.....웩.....

남     아 진짜. 옷 다버렸잖아. 너....

여     (켁켁거리면)

남     (짜증은 나지만 걱정도 돼서) 괜찮아? 으이구.. 그렇게 퍼마시더라니.  등 대 봐.


(E) 통통통 등 두드려준다


남     한손으론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나머지 한손으론 그녀의 짧은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잡아준다.

        내 가슴 속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M) 숙녀에게 - 변진섭


(E) 사무실 소음


남     다음날. 아무리 일에 집중을 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장이 마감 되고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에도

        계속 멍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차를 몰고 간 곳은 바로.

        그녀의 집앞이었다.


(E) 차에서 내리고, 전화하는


여     ...왜!

남     너는 사람이 전화했는데. 왜는.

여     나 지금 말하기도 피곤하거든? 특별히 할 말 없으면 끊자.

남     속은 좀 괜찮냐?

여     괜찮겠냐? 넌 무슨 술을 그렇게 멕였어!

남     내가 멕였냐? 니가 먹었지!

여     말렸어야지! 

남     해장국 먹었어?

여     해장국은 무슨? 우리 엄마한테 나 쫓겨날 뻔 했어.

        잡으라는 남자는 안잡아오고. 채여놓고 뭘 잘했다고 술을

        퍼마셨냐고!!! 

남     나와. 해장국 사줄게.

여     어딜 나가. 나 어디 갈 컨디션이 아니야.

남     니네 집 앞이야.

(M) 그냥 걸었어 / 임종환


(E) 대문 열고 나오는


남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그녀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온다.

        

여     진짜..네?

남     그럼 거짓말을 왜 하냐?

여     왜 왔는데.

남     해장국 사주려고 왔다 그랬잖아.

여     (피...)

남     가자. 타.

여     그래. 그럼 뭐... 얼큰한 걸로 사줘.


(E) 해장국 끓는 소리


남     야. 많이 먹어. 내가 이거저거 먹어봐도

        콩나물 해장국 만한 게 없어.

여     (한술 먹고) 으.........

남     속 확 풀리지.

여     어....죽인다... 국물 끝내주는데? (킥킥)

남     참... 너 옛날엔 말도 그렇게 이쁘고 고고하게 하더니만.

여     됐다. 좀 먹자.


(E)  먹는 소리


남     콩나물 해장국을 허겁지겁 먹는 그녀를 보는데.

        웃음이 났다.

        추억에 끌리는건지.

        지금 그녀의 모습에 끌리는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은 명확했다.


여     뭘 봐.

남     야. 너 예전에 강수지 노래 잘불렀잖아.

        왜.. 그 노래 들으려고. 내가 우리 학교 소풍 땡땡이 치고

        니네 학교 소풍 쫓아간 적도 있잖냐.

여     그래서?

남     이따 노래방 갈까?

여     내가 나이가 몇인데. 강수지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

        나 요새... 이효리 노래.. 거 뭐냐. 유고걸... 그거 맹연습중이야.

남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만 불러줘 봐봐.

여     됐다고. 내 몸에 그런 노래 부르면 사람들이 욕해.

남     야... 말난김에 너 살 좀 빼봐라. 얼굴 윤곽은 똑같잖아.

여     너는~ 너도 솔직히 내가 지적 안해 그렇지

        30대의 배는 아니야. 무슨 애가 배만 그렇게 볼록하냐?

남     야.. 이거 배 아니야. 내가 옷을 좀 크게 입어서 그래.

여     웃기네. 배잖아. 장난 아닌데 뭐.

남     아니라니까? 


        (두 사람 어쩌고 작아지고)


남     가을은 가을이다.

        가슴이 마법을 부려. 인생이 이렇게 즐거워지다니.

주제음: (M) 보랏빛 향기 / 강수지






2008-09-03(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