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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53화 - 달콤한 우리의 시간
(M) 주제음 - 달콤한 나의 도시 / 에이트
여 가을이 가까워지긴 했나보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소개팅 얘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
싫다 싫다 몇 번을 거절한 끝에
어쩔 수 없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
딱히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친한 선배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며
꼭 한번 만나보라는데. 거절하기가 좀 그랬다.
그런데. 지금이 몇시야 도대체.
벌써 15분이 지났는데. 내 앞 자리는 비어 있다.
(E)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남 저.. 혹시.. 한민규씨 소개..
여 (도도) 아..네. 맞아요.
(E) 앉고
여 좀 늦으셨네요?
남 아.. 예.. 죄송합니다.
여 당연히 죄송해야지.
내가 밀린 약속이 몇건이고.
거절한 약속이 몇건인데.
감히 늦어? 늦길?
그런데. 이 남자의 다음 대사가 기막히다.
남 안 나오려다가 민규 녀석이 하두 부탁을 해서.
나오시지 말라고 전화하려는데.
벌써 출발하셨을 거라 그러기에.. 할 수 없이 나왔어요.
(M) 새 / 싸이
여 이렇게 빈정이 상하고. 이렇게 민망할 때가.
남 그냥 이렇게 만난 김에
차나 한 잔 하고 헤어지죠 뭐.
여 그러세요 그럼.
여 ....이라고 해놓고도 나도 모르게 붉어지는 얼굴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E) 찻잔 놓이는
여 찐한 에스프레소 향기가 코를 찌를 때까지
마음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남 안 드세요?
여 남자가 나를 빤히 본다.
순간 무언가 울컥하고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온다.
여 (작정한 듯) 저기요. 왜.. 이 자릴 안 나오려고 하셨다는 거에요?
남 네?
여 (속사포처럼) 아니... 제 자랑 같아서 쫌 민망하긴 하지만요.
저 웬만한 남자들보다 연봉도 훨씬 쎄구요. 어디 가서
인물 빠진단 소리 들어본 적도 없구요. 성격도 좋아요.
친구도 얼마나 많은데요. 아니..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이 자릴 안 나오려고 하셨다는 거에요?
남 말.. 진짜 빨리 하시네요.
여 (어이 없어) 네?
남 말씀이 너무 빨라서.. 감탄하다가 제대로 내용을 못들었어요.
여 하...
남 암튼 제 얘기가 좀 불쾌하셨던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쪽한테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상황이 좀 그래서요.
여 ........라고 얘기하면서도
남자의 표정엔 일말의 미안함이라든가. 죄스러움 이런 게
전혀 없었다.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건지. 난 커피 대신 물을 들이켰 다. 그래도 목이 탔다.
(M) 1과 2분의 1 / 투투
(E)매미 소리 들리고 걷는 소리
남 덥긴 더운데. 그래도 여름볕은 아니네요 벌써.
여 (새초롬) 입추 지났잖아요.
남 그렇죠. (하다가) 어느쪽으로 가세요?
여 뭐야.. 정말 딱 차만 마시고 헤어지겠다는 건가?
기분이 더욱 더... 확 나빠졌다.
남 전 대학로쪽에 일이 있어서 가보려구요.
여 아.. 그러세요? 저도 약속 있어요.
남 모셔다 드리면 좋겠는데.... 제가 좀 바빠서...
여 그럼 말을 말든가. 누구 염장 질러?
여 됐어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 모범택시.
남 네에... 그럼 안녕히 가세요.
(E) 뚜벅뚜벅 사라지는
여 그 남자가 사라지는 소리는, 내 27년 자존심이 우르르
깨지는 소리였다. 그 남자가 사라지는 뒷모습은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이상한 오기 같은 게 샘솟았다.
(M) 애송이 - 렉시
여 꼭 그 남자를 만나러 간 건 아니었다.
마침 그날. 종로에 일이 있었고. 하필 그 일이 그 남자의
회사가 있는 그 건물에 있었고.
길을 가던 중 좀 힘들어서, 로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좀 보낸 것 뿐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몰려나오는 사람들 중. 그 남자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E) 사람들 소리들
여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머. 혹시...
남 네? 누구...
여 이런 젠장.. 며칠이나 지났다고 내 얼굴을 까먹은거야.
여 (빈정상해서) 아니에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봐요.
남 아... 혹시 지난번에 그...
여 (도도) 네? 뭐.. 절 아세요?
남 그때 민규가 소개해주셨던 분 아닌가요?
여 맞다... 그렇죠? 저두 어쩐지 어디서 뵌 분 같더라구요.
남 이 건물엔 어떻게...
여 아.. 여기 지하에 서점 있잖아요? 거기 책 좀 보러 왔다가
나가는 길이었어요.
남 네에.. 점심은 드셨구요?
여 뭐.. 아직....
남 그럼... 같이 드실래요? 저희 회사 앞에 일식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여 저 요새 일식 잘 안먹는데..
남 네?
여 아니.. 독도 문제도 있고... 좀 제가 그쪽에 감정이 안좋다 보니까.
자연히 잘 안먹게 되더라구요.
남 (웃기고) 하하.. 그래요? 그럼 뭐 좋아하세요?
여 저는 그냥.. 가정식 백반...
(M) 식사부터 하세요 / 자두
(E)밥 먹는 소리
남 맛있네요.
여 그렇죠? 이 근처에선 여기가 제일 낫더라구요. 원래 맛있는 집
남이랑 공유 잘 안하는데. 특별히 가르쳐 드리는 거에요.
남 감사합니다. (웃고) 다 드셨으면 일어나실까요?
여 (열받아)....아니... 이 남자 왜 이래? 돌부처야? 여자가 이만큼 했으면
눈치를 좀 채야 하는 거 아냐? 지가 그렇게 잘났어?
진짜 웃기는 짬뽕 아냐?
남 은서씨..?
여 (우아하게) 네. 여기 계산은 제가 할께요. 제가 소개한 집이니까요.
남 그러실래요?
여 그러실래요?? 아니.. 내가 낸다고 해도 지가 나서서 내야지..
완전 매너도 꽝 아냐? 어후.. 내가 저런놈 한번 더보겠다고 여길
오다니. 미쳤지 미쳤어. 이 식당에서 나가는 순간.
내가 널 다시 돌아보면 사람이 아니다!!!!
남 밥 얻어먹었으니까 차는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여 (다시 우아) 시간요? 오후 스케쥴이 어떻게 되더라..
음.. 괜찮네요.
(M) 공주는 외로워 / 김자옥
(E) 자판기 커피 동전 넣고 빼는 소리
여 뭐야. 자판기 커피? 겨우? 그것도 오백원짜리 고급도 있는데.
삼백원짜리 일반 커피? 이 남자가 나를 뭘로 보고!
장난해? 나 별다방 에스프레소 아니면 안먹는 사람이야!
남 드세요..
여 (얼른) 네. 잘 먹을께요. (마시고) 어머.. 간만에 자판기 커피
마시니까 또 색다르고 맛있네요.
남 전 그냥 이 커피가 편하더라구요. 이름도 잘 모르겠는 그런 커피들
비싼 돈 주고 먹고 있는 사람들 보면. 좀 한심하기도 하고..
여 그러게요. 커피값 너무 비싸요.
아니... 밥은 4천 5백원 짜리 먹으면서 커피는 5천 5백원짜리
먹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그러니 된장녀니 된장남이니..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남 네에..
여 어라? 뭐야? 내가 왜 이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이 쌩난리를
치는거야? 뭐 볼 게 있다고? 무뚝뚝하고. 말도 별로 없고.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왜?
삼백원짜리 커피 받아먹으면서 왜 호호거려야 하냐구!
자존심도 없냐구!
남 은서씨 참.. 밝아 보여서 좋아요.
여 (바로 좋아서) 네? 어머.. (호호) 제가 어려서부터 밝고 해맑다는
소리는 종종 들어왔어요. 그늘 없이 자라서 그런지.. 구겨진 데가
없다고들.. 그러더라구요.
남 전 그런 사람들 부러워요.
여 왜요? 봉덕씬 안 그래요?
남 (후후..) 글쎄요.. 딱 봐도 안 그래 보이지 않아요?
여 저기요. 꼭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요. 혹시 사귀는 여자분이
따로 계신가요?
남 아뇨.
여 (다행이고) 아...
남 사실은요. 저 한번 이혼했었어요.
여 (충격이지만) 아... 뭐 요새... 이혼한 게... 그늘까지 질 일인가요.
남 지금 제 모습은 원래 제 성격이구요. 이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여 네...
남 그런데.. 전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적어도 지금은 그래요.
(M) 너 때문에 - 브라운아이즈
여 이유가 뭔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혼했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일을 두려워한다거나..
남 두려운 게 아니구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귀찮아요.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나면. 특히 은서씨처럼
아무 흠 없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다음에 겪어나가야 할
많은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들을 겪는 게.. 귀찮아요.
여 이건 무슨 소리야? 그럼 이 남자도 마음 속으론 날
한번쯤은 생각해 봤다는 건가? 이 여자랑 사귀면 어떻게 될까..
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는 건가?
남 그래서.. 안 만나고 싶었어요. 난 원하지 않는데.
상황이 그렇게 엮이는 게 싫어서요.
여 그렇지만요.
남 ....
여 그렇지만, 걱정하시는 그런 상황들은.. 다 사귀고 난 다음에
걱정해야 할 것들 아닌가요?
남 ......
여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게 무서워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얘기도 못하고. 서로 알아갈 수도 없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하는 거에요.
남 ......
여 이게 뭐야. 말하고 보니까. 내가 무슨 사귀자고 먼저 대쉬하는
것 같잖아. 같은 게 아니라 그거잖아. 뭐야뭐야. 아 미치겠네...
이 남자는 왜 아무 말도 안하는거야. 여자가 이렇게까지 얘길
했는데. 왜 아무 말도.. 안하는거야!!!
남 ..... 은서씨 말이 맞네요.
여 네?
남 그럼.... 우리가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갈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까요?
(M) 아이처럼 - 김동률
----------------------1부 끝 ---------------------
*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여 사실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누구보다 완고하고 보수적이신 부모님.
그분들에게 나는 모자란 것 없이 완벽한 장녀였고.
그만큼 기대치도 높으신 분들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은 마음이
추어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남자를 만나고
연애를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늘 여기까지.... 이렇게 선을 긋고.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도 백번쯤 망설였지만.
난 더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 조급증이 났고.
그가 망설이는 것 조차 섭섭했다.
(E) 술집 소음
여 오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남 넌 나 만날 때마다 궁금한 게 하나씩 있더라.
여 왜 친구들 소개 안해줘?
남 해줘?
여 응.
남 난 상관 없어. 너가 어색할까봐.
여 내가 어색할 게 뭐 있어?
남 그러니까... 내 친구들은 내 전 와이프를 알고 있는 애들이잖아.
니가 불편하지 않겠어?
(M) Fragile / Sting
(E)탁탁탁 걷는 소리, 뒤쫓아오고
남 왜 그래.
여 왜 늘 그런 식이야?
남 화내는 이유는 대강 알겠어. 그런데 그렇게 화낼 일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난 그런 문제들이 걸렸어.
괜히 싸움의 이유들을 만들어낼까봐.
여 난 오빠 그런 태도가 늘 못마땅해.
뭐가 그렇게 겁나는 게 많아?
남 나 겁나는 거 없어.
여 .....
남 내 딴엔 이게 널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여 그게 무슨 배려야. 날 따돌리는거지!
남 뭐?
여 그렇잖아. 이렇게 연애하다가 헤어지게 되면
흔적도 없이 날 지워버리려는 거잖아!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한 사람도 없을거야!
남 그럼 넌?
여 ......
남 친구들에게 나 소개할 수 있어?
여 ..........
남 가족들에겐?
여 ........
남 부모님껜?
여 .........
남 누군가에게 널 소개하고 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우릴 몰라도. 난 그걸 알고 있고. 죽을 때까지 잊지도
못할거야. 흔적도 없이 널 지울 순 없을거라구.
너도 마찬가지 아냐?
(M) 가을 흔적 / 이승환
여 (대사하듯이) 엄마. 아빠.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키도 크구요. 얼굴도 괜찮아요. 직장도 좋아요. 엄마가 좋아하는
차남이기도 하구..... 그런데..... 아주 작은 흠이 하나 있다면....
짧게..... 진짜 짧게 살다 왔다는 거..
알죠? 돌싱이라고. 돌아온 싱글... 요새.... 한 일년 살다 돌아온 거
흠도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부모님 얼굴 뵐 때마다, 묵직한 얼굴로
입을 뗄까 말까.....백번씩 망설이다가
그대로 돌아서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거.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잘도 하던데.
반항도 하고. 안되면 가출도 하고. 사랑을 위해 온몸을 다해
항거하던데.
실상은 그러기 참 힘들었다.
(M) Come Away With Me / Norah Jones
여 그리고 얼마 후.
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고.
그 사람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여 오빠!
남 어.... 너 근무 시간 아냐? 갑자기 왜 왔어? 전화를하지.
여 전화로 말하기 그래서.
남 왜...
여 민규 오빠한테 들었는데. 오빠 소개팅 해?
남 소개팅은 무슨 소개팅...
여 민규 오빠가 그러던데? 조심하라구? 오빠 소개팅 들어왔다구?
남 들어온거지... 한 건 아니잖아.
여 오빠친구들은 다들 하라고 그런다며.
어디 병원장 딸? 그분도 잠깐 갔다 오셨다면서?
남 .....
여 왜? 그런 사람이 오빠한텐 잘 맞아?
서로 이혼했으니까 마음도 편하고.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남 소개팅 거절했어. 너 나 몰라?
여 그래두! 기분 나쁘단 말이야!
오빠한테 여자친구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어떻게 딴 여자
만나보라고들 그래? 얼마나 오빠가 날 별 거 아닌 애로
얘기하고 다녔으면?
남 별 거 아니여서가 아니라. 너무 넘쳐서 그런거야.
여 됐어. 듣기 싫어. 앞으로 소개팅해 주겠다고 했던 친구
만나지도 마!
남 이러지 마 은서야...
여 내가 뭘!
남 니가 이러면. 니가 더 어리게 생각이 돼서...
내가 죄책감이 생겨. 저렇게 어리고 철없는 애랑....
내가 뭐하는 건가....
여 ....뭐?
남 니가 어느날 정신이 들면.... 너 스스로가 바보같다고 느낄 수
있어. 그럴 때 나한테 미안해서... 또는 나한테 내뱉었던 말들을
책임지려고.... 내 옆에 계속 머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 오빠!
남 미리 얘기할게. 그럴 필요 없어. 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떠나.
(M) 가지마 가지마 / 브라운 아이즈
여 그리고 그날밤.
난 부모님께. 그동안 하려고 했던 말을 했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퍼부어댔다.
다시는 내 딸 넘보지도 말라고..
만날 생각도 말라고.....
울면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 없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날 왜 멀리 하려고 했는지.
왜 말끝마다 금방 떠날 사람처럼 얘기했는지.
왜 늘 나에게 철이 없다고 얘기했는지.
그는 우리 사이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깊게.. 더 멀리...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M) 아름다운 날들 - 장혜진
(E) 풀벌레 우는 소리
여 (많이 울고 온 듯) 미안해...
남 니가 뭘 미안해. 부모님은 좀 진정되셨어?
여 그냥 거의 도망나왔어.
남 여고생도 아니고... 도망나와?
여 어떡하지?
남 이럴 줄 몰랐었어?
여 아니.. 알긴 알았는데.. 그래도 막상 당해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고.. 너무 힘들어서...
오빠. 우리 도망갈래?
남 그 얘기 왜 안하나 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여 그럼 어쩌라구.
남 .....나 담배 한 대만 필게.
여 끊었다며.
남 (후후..) 지금같은 순간을 위해서 아껴둔거지.
(E) 라이터 불켜고. 담배 연기 뿜는
여 오빠 지금 무슨 생각해?
설마.. 나랑 헤어질 생각... 아니지?
남 (담담하게) 은서야.
여 어...
남 나는 너.. 참 좋아해.
여 ....
남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알아?
민규한테 니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그냥... 니 이름을 듣는 순간. 이 여자가 좋아질 것 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그 자리 나가기 싫었어.
여 ........ 오빠..
남 그 뒤로.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
우리 회사에서 두 번째 만났을 때.
얼마나 많이 널 좋아하게 됐는지. 너는 설명해도 몰라.
니가 좋은만큼. 내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게 돼서.
그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것도 넌 몰라.
여 있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하는 말이
사랑해서 헤어진다.. 뭐 그딴 말이거든?
어떻게든 버티자 우리. 우리 어떻게든 버텨서...
남 지금 힘들게 버티는 거 별 의미 없어.
여 왜에!!
남 부모님 화만 더 키우게 될거야.
여 그래서 진짜 헤어지자구?
남 은서야. 내가 왜 너 만나길 두려워했는데.
잡으면 놓기 싫어질까봐.
여 .......
남 안 놔 이제. 니가 가고 싶어하지 않는 한은
나도 안놔줘.
(M) 바이브 - 그남자 그여자
여 그럼... 어떻게 하자는거야.
남 나한테도. 너한테도. 널 사랑하는 부모님한테도
시간이 필요해.
여 시간?
남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 단단해지는지.
아니면 그걸로 끝이었던 건지.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질거야.
여 .....
남 시간이 지나서 더 명확해진 감정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부모님 입장에서도 우리를 더 잘 이해하실 거라고 믿어보자.
여 싫어.. 헤어지기 전에 제일 좋은 핑계가 그거잖아.
시간을 가져보자.
남 지금 그런 시간 조차 없이 우리 그냥 같이 있으면
헤어질 확률이 훨씬 더 높아져. 난 너한테 내내 미안해할거고
넌 부모님과 나 사이에서 지금처럼 울기만 할 거고.
여 ..........
남 우리가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이.... 다음 1년을 지켜줄거라고 믿어.
내년... 가을이 오기 직전인 이때쯤...
마음이 정해진 사람이 먼저 이메일 보내기로 하자.
여 너무.. 막막해...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구...
남 니가 그런다고 해도.. 난 너 원망 전혀 안해.
여 오빠가 그러면. 난 원망할거야.
남 (웃고) 그래.. 그렇게 해.
(M) 벌써 1년 / 브라운 아이즈
여 첫 사흘 동안은 울기만 했고. 한달 동안 4킬로그램이 한꺼번에
빠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막무가내로 여러 남자를 소개시켜
주었고. 그중엔 만나본 남자도 있었지만. 이미 난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한여름밤 저녁. 난 부모님과 맥주 한잔을 하며
진솔하게 내 얘기를 꺼냈다.
그 사람하고만 행복할 자신이 있다고.
1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답은 그거 하나라고.
날 믿어준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엄마는 체념한 듯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지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씀하셨다.
아직도 여전히 반대지만, 그 녀석을 데려와 보라고.
데려와서, 날 한번 설득하게 만들어 보라고.
(M) Miss You Love / Maria Mena
(E) 컴퓨터 켜는 소리
여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 사람에게 이메일을 쓰려고 컴퓨터를 켠다.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무슨 말부터 할까.
심장이 뜨겁게 박동치는 것을 느끼며.
메일함을 열었다.
거기엔 한통의 새로운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제목은. 달콤한 우리의 시간. 이고.
보낸 사람은. 그 사람이다.
달콤했던. 그리고 달콤할. 우리의 시간.
난... 설레는 마음으로 깊게 심호흡해본다.
(M) 주제음 - 달콤한 나의 도시 / 에이트
2008-08-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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