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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0일 (화)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 / 차 한 잔 하시죠
장수애
- 배워라, 남편! -
일요일에 친지 결혼식이 있어서 온 가족이 외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에는 거의 내리지 않던 비가 시간이 가면서 더욱
세차게 내리는 겁니다. 전 날 뉴스를 듣고 우산을 준비하긴 했지만,
‘비도 안 오는데 무슨 우산이냐’며 남편이 귀찮다고 짜증을 내는 바람에,
2개 밖에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서, 저희가 모두 비를 피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아들에게 한 개 주고, 또 저희가 한 개를 썼는데 우산이
크지 않아서 자꾸 몸으로 빗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개의
우산을 제게 양보하기는커녕, 자꾸 자기 쪽으로만 우산을 씌우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나한테도 우산을 좀 나눠달라고 했더니, ‘당신은 집에서
살림만 하기 때문에 조금 맞아도 괜찮지만, 나는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감기 걸리면 안된다’며 그냥 참고 맞으라고 하더군요. 화산이 터지는 듯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밖에서 싸울 수 없어서, 반만 가리고
나머지 반은 비를 거의 다 맞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우산을 제게 건네주는 겁니다. “엄마는 괜찮아. 너 그러다가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니? 그러니까 그냥 써. 엄마는 아빠랑 쓰면 돼.”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 “엄마는 참... 나는 남자잖아. 그러니까 조금
맞아도 끄덕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감동이 밀려 오던지요.
남편은 아들 말에 창피했던지 아들을 등에 업어서, 결국은 세 사람 모두
비를 피할 수 있었답니다. 비가 내려서 기온이 많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은 얼마나 훈훈 하던지요. 제가 아들 하나는 참 잘 둔 것 같네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위하고,
챙겨주지 말입니다. 남편은 자기가 건강해야 저랑 아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지만 아들 앞에서 창피한 건 아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더라구요.아들이 비록 우산 하나 양보해 준 것이지만,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나저나, 남편아~~ 어린 아들 보고 반성해라 잉??
신청곡: Don't Push Me / Sweetbox
독일 출신의 혼성 듀오 ‘스윗박스’의 2002년 작품.
이순자
- 딸부잣집의 나들이 -
우리가족은 다섯 식구입니다. 자칭 애국자라고 이야기하지요.
우리 부부와 아홉 살 난 큰 딸, 일곱 살인 둘째 딸, 그리고 네 살인
셋째 딸까지.. 딸 부잣집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습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근데, 옆에서 자꾸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더라구요. 잠시 후,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딸만 셋이예요? " “네 그런데요..” “어휴... 그럼 또 동생 봐야겠네...”
그러더니 놀이방에서 나오는 막내 딸 아이를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고추 하나만 달고 나오지 그랬니.." 저희 부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말을 던지는 아주머니가 참으로
미웠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이 외출을 하면 나이 드신 분들을 걱정을
해주십니다. "아휴,, 아들 낳으려다가 못낳았나 보다.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지? " 이런 말들을 수 없이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막내를 임신했을 때,
딸이 둘 있으니 이왕이면 아들이기를 바랬지만, 딸을 낳고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남아선호사상이 존재하는지... 아무리 세대 차이라고 하지만, 딸 부자집에 대한 관심은 제발 끊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랍니다. 큰 딸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물어봅니다.
“엄마! 엄마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저는 있는 그대로 자세히 설명해 주지만,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딸 가진 부모가 죄인도 아닌데, 세상도 무섭고 사람들의 시선도 무섭고,,,
참으로 세상 살 맛 안 나는 하루였습니다.
나는 ?찮다는데, 왜들 아니라고들 하시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신청곡: Dancing Queen / Abba
스웨덴 출신의 혼성 4인조 그룹 '아바'의 1977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던 노래.
박형구
- 여동생 -
지난 주말에 여동생을 시집보냈습니다. 저와 10살이나 차이 나는 여동생은
아버지의 대한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동생이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시집가는 날, 제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여동생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지금껏 봐온 어느 신부보다 예뻤습니다. 지난날,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로 인해, 동생이 상처받지 않을까, 혹시 빗나가지 않을까 노심 초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귀가시간이며 옷차림 등, 간섭만 할 줄 알았지, 아버지의 자상함을 대신 보여주지 못한 것이 생각이 나, 가슴이 아파 오더군요.
신부 입장을 위해 잡은 여동생의 손은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표정과는 달리,
파르르 떨고 있더군요. 동생의 손을 꽉 잡아 주며,
"임마. 왜떨어.. 그동한 오빠가 간섭 너무 심하게 한 거 미안하다."
제 말에 동생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오빠.. 오빠는 내게 아버지 같은 존재야.. 고마워'
신부입장을 하며 동생은 울고, 저는 흐르려는 눈물을 꾹 참느라 애썼습니다.
이제 동생은 제 그늘에서 벗어나,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과 서로 의지해가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겠지요.
제 그늘아래 있을 때, 좀더 편하게 해주지 못한 걸 오늘도 후회하며,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동생을 기다려봅니다.
신청곡: Casablanca / Bertie Higgins
미국 출신의 남성 가수 ‘버티 히긴스’의 1981년 작품.
인기 차트엔 오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빅 히트.
박나림의
차 한 잔 하시죠
김현주님
사연
박승모
- 7년 결혼생활에 다시 시작된 연애 -
아내와 예쁜 두 딸내미와 떨어져 지낸지 어느덧 7개월.
이제는 떨어져 지내는 이 생활에 익숙해졌나보다.
첫날은 허전하고, 허전함에 뒤척이다 잠이 들었고,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두 시간을 달려서 아내와 두 딸들을 보러 집에
간적도 있었다. 오늘도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내는 잠을 잔 듯 했지만, 안잔 척 목소리 톤을 높여 전화를 받았다.
9년 전 연애 때부터 아내는 그랬다. 전화 벨소리에 깨어나서 전화를 받았으면서도 안 잤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는건, 결혼한 지금까지 여전하다.
아내와는 1년 반 연애하다 결혼을 했다. 둘 다 퇴근이 늦어서, 만나면
정말 밥만 먹고 헤어질 때가 많았다.
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 아내는 거의 자다가 전화를 받았다.
"잤구나?" "아니,, 자려고 누웠어요!"
티나는 거짓말이었지만, 내게는 사랑스러웠다. 계속되는 통화에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잠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연애 때의
기분이 든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전화를 하면 아내는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받는다. 안 잔척하며 말이다. 통화내용은 거의 두 딸 이야기뿐이다. 그렇지만 내 기분은 연애 할 때의 바로 그 기분이다.
아내의 목소리에 설레이기도 하고, 행복하고, 기분도 좋고.
떨어져 지내는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신청곡: Love / John Lennon
존 레논의 1970년 작품으로 그의 명반 'Plastic Ono Band' 앨범에 수록된 노래.
이수진
- 추억 한자락 붙잡기 -
오랜만에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시골집.
뒷뜰에 있는 단감나무와 대추나무, 앵두나무만이 그 옛날의 내 모습을
기억이라도 하듯이 반갑게 맞이하는 집.
집 앞마당에는 봄에 나온 풀들로 인해 마당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습니다.
열쇠로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옛날에는 이 좁은 집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습니다.
아니, 제가 너무 커버린 탓이겠지요. 쪽방문을 무심코 여는 순간, 내 눈에 보이는 텔레비젼 한 대. 여기 저기 상처 난 텔레비젼 한대가 세월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주무시던 작은방에는 엄마가 쓰시던 까만 재봉틀 한 대와 시집올 때 장만해 오신 자개농까지 먼지를 친구삼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먼지를 훅 털어내고 재봉틀 의자에 살짝 앉았습니다. 마치 그 옛날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옷을 만들던 박음질 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에 잠시 빠졌습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듯, 절로 웃음이 났지요. 그때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여보. 이 절구통 좀 봐. 아이구, 무거워라~ 집에 가져가지도 못하겠네.
이거 가져다가 금붕어 몇마리 키우면 좋겠는데 말이야.."
남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 속에 콩을 삶아서 메주를 찧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절구로 찧는 재미가 어찌나 쏠쏠했던지 어설픈 절구질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는 찧은 콩을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큰방에 널어놓고, 어느 정도 마르면 짚으로 묶어 방안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었습니다.
지독했던 그 냄새가 이제는 향기로 되돌아 올 정도로 세월이 흘렀네요.
고향 떠난 지, 벌써 20년. 마을을 벗어나기 전, 마을을 지켜주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정자에서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마을을 바라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올 때나 한번씩 들르는 시골동네는 젊은 사람 하나 없이 오늘도 그렇게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내 고향아 고맙다. 이렇게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신청곡: My Home Town / Paul Anka
캐나다 출신의 팝 가수 '폴 앵카'의 1960년 작품으로 싱글 차트 8위
2008-05-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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