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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5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M    To Sir With Love / Lulu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39화 - 오월의 나무


(M) 주제음 (푸르른 날 / 송창식)


남     여보 나 어때?

여     아우... 무슨 장례식장 가. 너무 칙칙하잖아.


(E) 옷장 문 여는


여     이거해 이거.

남     너무 야하지 않나?

여     당신은 얼굴이 거무죽죽해서. 이런 거 해줘야 그나마

        좀 사람이 밝아보인단 말이야.

남     내 얼굴이 뭐가 검어.

여     검지 하얘 그럼?

남     참나.. 

여     가서 사돈들 앞에서 쓸데 없는 소리는 하지 말구.

남     내가 무슨 쓸데 없는 소릴 한다 그래.

여     아유. 그냥 암 소리도 하지 마. 바깥 사돈이 교수라잖아.

        괜히 어설프게 신문 몇줄 본 걸로 아는 척 하다가 망신 당하지 말고.

        그냥.. 네네.. 그러기만 하란 말야.

남     말을 해도. 뭘 어설프게 신문 몇줄 본 걸로 아는 척을 해. 누가.

여     당신 그러잖아. 아침마다 신문 보고. 하루죙일 라디오 들으면서

        운전하니까. 자기가 무슨 시사평론가나 되는 줄 알고.

        뭔 얘기만 나오면. (흉내) 그건 말씀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껴들구.

남     그럼 내 생각도 말 못하냐?

여     그러니까 당신 택시 안에선 맘대로 하는데. 오늘은 하지 말라구.

        우리 연진이 혼삿길 돕지는 못할 망정, 망치면 안되잖아.

남     누가 딸래미 혼삿길을 망친다구 그래!

여     그럴 생각 없으면 됐어. 우리 연진이 시집 잘 간다구..

        어제 고모들 난리인 거 봤지?

남     잘가기는 뭘.. 우리 연진이 정도면 그 정도 만날 수 있지.

        그 녀석 뭐.. 회사원이기밖에 더 해? 우리 연진이도 회사 다니고 있        고.

여     그냥 회사원이야 어디? 그 회사가 얼마나 들어가긴 힘든덴데.

        거기다 집안이 좋잖아.

남     좋기는....

여     괜히 어깃장 놓지 말고. 잘하자 우리. 나도 지금 얼마나 긴장되는데.

(M) 박혜경 - 레몬트리


(E) 걸어 들어가는 소리


남     딸 아이 상견례장을 할 호텔은

        으리으리 했다.

        손님들을 태워다 주러 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안까지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다.


여     연진이는 벌써 도착했대. 걸음 좀 빨리 해 봐.

남     아이구..

여     왜.

남     배가 왜.. 살살 아프냐..

여     (짜증나고) 뭐어?

남     어쩌지? 나 화장실 좀 가야 할 것 같은데.

여     지금?

남     급해.

(E)전화오고

여     여보세요? 어 연진아. 엄마 들어왔어. 사돈 어른들 도착하셨어?

        아이구.. 그래. 갈께.

(E) 끊고

여     들었죠. 사돈 어른들 도착하셨대요.

남     아..안되겠어. 

여     그냥 일단 들어가서 인사라도 하고.

남     안되겠다니까. 나 화장실 들렀다가 갈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여     아우 증말. 도움이 안돼 도움이.

        빨리 들어와야 돼.

(M)  왜 그래 / 김현철


(E)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남     왜 하필 오늘. 지금. 배가 이렇게 아픈건지.

        화장실에 엉거주춤 앉아서.

        나가려고 하면. 다시 배가 아프고.

        또 괜찮나 싶어. 나가려고 하면. 또 아파와서.

        일어나지를 못하길 20분.


(E) 전화 오고


남     여보세..

여     (말 끝나기도 전에 속삭이는 소리로 버럭) 뭐하자는거야 지금!!!

남     배가 아픈데 어떡해 그럼.

여     그래서.. 사돈어른들 다 벌세워놓고 화장실에서 자빠져 안온다구?

남     (힘들다) 내가 괜히 이러는 줄 알아? 진짜 아파서 그래 진짜.

여     말할 힘 있으면 진짜 아픈 거 아니야. 얼른 와.

        나 정말 사돈들 앞에서 진땀 나 죽겠어. 음식도 못시키고 있잖아.

남     알았어. 웬만하면 얼른 갈께.


남     나도 미칠 지경이었다. 너무 긴장을 했나...

        하며 일어나려다 난 기겁을 했다.

        변기 안이 온통 붉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구토증을 느끼며

        난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M)   The Mention of Your Name / Chris Rea


남     눈을 떴을 때.

        나는 응급실에 있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돌이켜 봐도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E) 뛰어오는 소리


여     여보...

남     어..

여     이게 웬일이야 진짜~

남     어떻게 된거야.

여     내가 물어봐야지 그건. 어떻게 된건데.

남     모르겠어. 그냥..

여     아니... 하필 오늘....

        호텔 직원이 와서 얘기해 주는데. 사돈들 얼마나 놀라셨는지 알아?

남     연진이는.

여     내가 그냥 혼자 오겠다고 그랬어. 우리 둘 다 나와 버리면 너무 웃겨        서.

남     잘했어.

여     그 녀석이 집에 데려다 놓겠다고 그랬으니까.

        우리도 집으로 가면 돼.

남     어..

여     그런데 왜 그런거래? 아니 뭐가 얼마나 아팠길래 사람이 혼절을 해?

남     나도 모르겠어. 그러게 뭐랬어! 진짜 아프다니까.

여     아무튼 못났어 못났어. 꼭 큰일 앞둘 때 이렇게 초를 치드라.

남     뭐?

여     기억 안나? 승진이 군대갈 때도 가는 날 아침에 무슨 접촉사고가

        나서.. 데려다 주지도 못하구. 버스 태워 보내구.

남     (쩝..)

여     그걸론 모자라서 딸래미 상견례날 응급실에 실려오냐?

        아우.. 두고두고 씹을 거리 생겼네.

남     에이 참.. 거.. 하지 마.

여     왜~ 난 두고두고 놀릴거구만!


남     아내가 놀리지 않아도. 난 부끄러울 것이다.

        두고두고... 내 딸에게 미안할 것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돈들에게 죄송할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이럴걸.. 그 정도 아픔도 참아내지 못한 스스로가

        참 못나 보인다.

(M)  All My Trials / Mickey Newbury


(E) 응급실 소음


남     계산 끝났어?

여     저기... 담당 선생님이 검사를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 그러네?

남     무슨 검사.

여     몰라. 무슨 영어로 잔뜩 얘길 하는데 뭔 소린지는 모르겠고.

남     아이고. 그거 원래 응급실 같은 데 오면

        꼭 받아야 합네 하면서. 돈 뜯어가는거야.

여     아니.. 그런데. 딴 건 모르겠고. 무슨.. 종양이 의심됩니다.

        이러는데?

남     종양?

여     그게 암이라는 거잖아.

남     아 여편네가 재수 없이. 누가 암이래!

여     아니.. 암이라는 게 아니라. 암이 의심된다는 거잖아.

남     ...... 의사가 그랬어? 정말로?

여     그랬대니까..... 

(E)털썩 주저앉으며

여     아이고.. 심장 떨려..

남     (자기도 떨리면서) 떨리긴 뭐가 떨려. 떨릴 것도 많다.

여     괜찮겠지?

남     안괜찮으면 어쩔건데.

여     아이구.. 괜히 쎈 척 하기는.

남     그래서. 검사를 지금 하쟤?

여     뭐 지금은 집에 갔다가 내일 오든가. 아님 온김에 지금 받든가

        그러라는데?

남     일단 집에 가. 갔다가.. 낼이든.. 시간 날 때 다시 와.

여     괜찮을까?

남     연진이 집에 왔을 거 아냐. 괜히 늦어지면 애 걱정하잖아.

여     그렇지 참. 그래. 일단 갑시다.

        갔다가.. 다시 오자구.


남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있는데. 조용해서 돌아 보니.

        아내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눈물을 훔치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여     (애써 감추려) 가면서.. 콩나물 사가야겠네.

        속 아픈데는 콩나물이 좋다는데...

(M)  사랑해서 슬픈날 / 성시경


(E) 이불 까는 소리


여     괜찮아?

남     몇 번을 물어봐. 이불이나 잘 깔아.

여     별 거 아니겠지. 안그래도 아까 연자한테 전화왔길래 얘기했더니.

        당신 말이 맞더라구.병원 수작이 그렇대. 자기 남편도

        겁 덜컥 나는 소릴 하길래 받으라는 검사 싹 받았더니

        아니라 그러더래. 그냥 염증 좀 있는 거라고.

남     ......

여     당신도 그런 걸거야.

남     베개나 줘.

여     어... 누워. 피곤하겠다.

(E) 눕는

여     내일 택시 하지 말고 병원 갑시다.

남     생각해 보니까 내일은 좀 그래.

        그냥 쉬는 날 가는 게 나을 거 같애.

여     아이구.. 그거 쉬는 날까지 어떻게 기다려. 애간장 타서.

남     애간장탈 게 뭐 있어. 당신 말대로 아무 것도 아닐텐데.

여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글쎄 속시원하게 증명을 받자구.

        돈이 얼마나 깨지든.

남     .......

여     그 흔한 건강검진 한번을 안받고 살았잖아요 지금까지.

남     건강한데 뭐하러 받어 그걸.

여     그러니까. 이참에 지금까지 못 받은 거 한꺼번에 싹 받고.

        속시원하자구.

남     간 김에 당신도 받어 그럼.

여     내가 뭐하러 받어.

남     당신 입으로 그랬잖아. 지금까지 못받은 건강검진 다 받은 셈 치자구.

여     나는 끄떡 없으니까 염려 말아요.

남     건강 자신하는 것만큼 미련한 거 없댔어.

        내일 가는 김에. 당신도 같이 받아.

        안 그러면. 나도 안 가.

여     아이구.. 웬 똥고집이래.

남     아 맘대로 해. 가든 안가든 당신한테 달렸으니까.

여     아이구.. 그래요 그래. 가요 가자구요. 가서 우리 둘 다

        검사 싹 다 받읍시다. 그래서 둘 다 깨끗합니다.. 그럼

        속은 편하겠네.

남     그러니까..

여     (후후 웃으며) 우리 연진이 시집 보낼 것만 해도 수천 깨질텐데..

        우리 병원 검사까지 쌍으로 받으면

        길거리 나앉게 생겼네.

남     나앉지 뭐..


        두 사람.. 피식 웃으며..

(M) 그대 내 친구여 - 패티김


----------------------1부 끝 ----------------------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계속됩니다.


(E) 음식점 소음

(E) 뚝배기 놓아지는


남     먹어. 

여     어.

남     깍두기 맛있겠네.


(E) 아삭 베어물고


여     어.. 잘 익었네.


(E) 아무 말 없이 국물에 밥 먹는 소리들


여     여보.

남     응?

여     괜찮을거야.

남     ....

여     우주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무슨 복제도 하고 그런다잖아.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이잖아.

남     당신 유식하네.

여     그럼. 당신 닮아 유식하지.

남     .....먹기나 해.

여     의사선생님도 그랬잖아. 환자 본인 의지에 달렸다구.

남     6개월이 되느냐. 1년이 되느냐.

        그거 말이야?

여     여보...

남     3개월이 될 수도 있고.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고. 그딴 말 누가 못해. 그딴 말 갈기라면

        나도 의사하겠다.

여     ......

남     의사면 확실히 얘길해줘야지. 당신 언제까지 살 수 있으니까.

        그동안 무슨무슨 준비를 해라.

여     의사가 뭐..신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런건.

        그 사람이 3개월이라고 그랬다고. 진짜 삼개월만 살다 죽을거야?

        그런 게 어딨어!

남     ..... 그러면 안되지. 3개월 뒤면. 우리 연진이 결혼식인데.


(E)숟가락 놓고


남     왜 더 안먹고.

여     뭘 먹어 이 상황에. 남편 사형선고 받아놓고.

        설렁탕 잘 먹는 년이 지정신이야?

남     ......사형선고는 무슨...

여     아이구.. 엄마 아부지.. 하늘에서 뭐하는거에요.

        이게 무슨 사단이에요. 아이구...


남     끝내 아내는 눈물을 보였고.

        나는 힘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인생이구나.

        이게... 나의 인생의 전부로구나.

        한번 반짝 해보지도 못하고.

        한번 큰소리 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이제 살만하니까. 이제 이 세상에 정 좀 들만 하니까.

        이렇게 가는 게.

        내 인생이구나.

(M) 세노야 - 최백호


여     어딜 나간다 그래!!

남     뭐해 그럼. 넋놓고 있어?

여     그래서. 지금 그 매연 마셔가면서 택시 운전을 하겠다구?

        평생 했으면 됐지. 지겹지도 않냐?

남     안 지겨워. 이제 이것도 곧 못하게 될텐데

        지겨운 게 뭐야. 고맙지.

여     .......

남     갔다 올께.

여     입원 하자구. 글쎄.

남     할 때 되면 해야지. 그런데. 지금은 괜찮잖아.

여     할 때 언제. 죽어넘어가면 할래?

남     당신이 몰라서 그래. 우리처럼 암보험 하나 없는 사람들은

        돈이 수억 깨지는거야. 어차피 죽을 사람 살려보겠다고

        집안 넘어가는 사람들 나 많이 봤어.

여     여보오..

남     뭐.. 안 그러겠지만. 노파심에서 얘기하자면.

        애들한텐 쓸데없는 소리 마.

여     애들도 알아야지. 무슨 소리야.

남     알면 뭐하게. 당신 연진이 표정 안봤어?

여     ...........

남     우리가 연진이 봐왔던 얼굴 중에 요새 얼굴이 제일 이뻐. 안그래?

여     ...........(가늘게 흐느끼고)

남     걔가.. 그 이쁜 게.. 우리 딸로 태어나서

        고생 많이 했잖아. 좋은 집에 태어났으면 참 곱게.. 잘 컸을텐데.

        학비 걱정도 안하고.

여     당신도 잘했어 왜그래.

남     아버지라고 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원망도 않고

        이쁘게 커줘서.. 지가 알아서 좋은짝까지 만나서..

        이제 좀 지가.. 행복이 뭔가.. 아는 것 같은데.

        거기다.. 찬물 끼얹기가 싫어.

여     그러다 당신이 훌쩍 가 버리면. 그땐 연진이 더 불쌍하잖아.

        지도 당신한테 할 말도 있을거고. 마음 준비도 해야 할텐데.

남     여보. 나 그렇게 약한 아버지는 아니야.

여     .....

남     내가.... 약하고 못난 사람이기는 해도.

        우리 연진이 승진이한테 그렇게 약한 아버지는 아니야.

여     .......

남     어떻게든... 연진이 결혼할 때까지는 내가 살아.

        결혼하고 나면. 지 옆에 지켜주는 나무가 생기는 거잖아.

        그 그늘 아래면. 그땐 내가 떠나도. 그래도 괜찮은거야.

여     (울고)

남     우리 승진이는 남자니까 괜찮을 거고.

여     .....

남     그냥.. 당신이 제일 불쌍하지.

(M) 내사랑 내곁에 - 양희은


남     택시를 운전한다.

        장거리는 힘들 거 같아서

        가까운 거리만 슬슬 운전하는 건데도

        쉽지는 않았다.

        괜히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에

        결국 며칠 못 버티고 그만 두게 되었다.


(E) 들어오는


여     수고했어요 여보.

남     어..

여     30년이잖아. 30년을 한결같이. 그 운전대 잡고.

        그걸로 우리 먹여 살렸으니. 수고했지.

남     그래..

여     씻고 와. 된장 찌개가.. 오늘따라 맛있네.

남     당신 된장 찌개야.. 언제나 예술이지.

여     알아주니 고맙네.


(E) 보글보글 끓는


여     여보 여기 봐.


(E)뭔가 내놓는


남     어디야? 

여     우리 연진이 신혼여행 여기로 정했대.

남     좋네. 

여     산토...리..뭐라그러더구만. 까먹었네.

남     어딘데?

여     무슨 유럽 어디라는데. 무슨 그림 같지 않아?

        아유.. 진짜 이게 이런데가 있다는 게.. 참..

남     ....

여     연진이 같은 여자지만 부러운 거 있지.

        시대를 잘 타고 나서. 이런 데 신혼여행도 가고.

        아유... 우리때야 이런 게 어딨었어. 안그래?

남     그랬지.. 결혼식도 변변이 못해서..

        사진관에서 사진 한 장 박고 말았는데.

여     그땐 뭐 다들 그랬지.

남     당신도 이런 데 가고 싶지 않아?

여     뭘 가고 싶어. 다 늙어서. 그냥 눈으로만 보면 되지.

남     내가 참... 당신한테 해준 게... 없지.

여     아이구 참. 그걸 이제 알아? 죽으려니 철 드네.

남     내 말이...

여     싱거운 소리 말고. 밥이나 드세요. 약먹어야 되잖아.

남     사람이 참 어리석어.

여     뭐가 또.

남     언젠가 한번은.. 죽는건데.

        영원히 살 것처럼 다들 그러고 살잖아.

여     ....그래... 따지고 보면 그래.

        당신만 죽나? 나도.. 죽지. 

남     그럴 걸 모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아웅다웅..

        얼마나 허세를 부리고 사냔 말야.

여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어 여보.

남     그랬지?

여     그럼... (울음 삼키고)당신 먼저 간다고 너무 억울해 마요.

        나도 금방 갈거니까...

남     흉한 소리 하네

여     뭐가 흉해. 혼자서.. 서럽고 청승맞게.. 뭐하러 혼자

        길게 살어. 당신은 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벌써부터 무서워 죽겠어. 당신 없이 혼자될 거..

        생각하면. 

(M) 홀로 된다는 것 - 변진섭

        

(E) 심장 박동 소리


남     한밤중 발작같은 아픔 때문에

        난리를 피운 끝에. 병원에 실려왔다.

        그 때문에. 그동안 아무 것도 몰랐던 아이들도

        내 병에 대해서 다 알아버렸고.

        내 딸 연진이는 눈이 퉁퉁 붓도록 내 옆에서 울어댔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며칠 뒤면 결혼할 아이인데.

        내가 참 몹쓸 짐을 안겨주고 간다 싶었다.

        

여     정신 좀 들어?

남     .......어...

여     아까는 진짜.. 당신 죽는 줄 알았어...

남     사람 목숨이 질기네. 그렇게 아파도 살아남는 거 보면.

여     연진이랑 승진이가 나 원망 많이 하잖아.

        왜 말 안했냐고.

남     ......미안하네.

여     연진이 기지배 결혼을 미루겠다는 둥 해서 내가 혼냈어.

        그러는 거 아니라고.

남     잘했어. 그런 소리 말라 그래.

여     그런데.... 당신... 결혼식 못가겠지?

남     왜 못가. 갈거야. 거기 안가면 내가 십년을 더 살아?

        갈거야.

여     ....그래... 근데 지금 상태가 이래서...

남     아직 며칠 남았잖아. 금방 회복할거니까. 그렇게 알아.

(M)  애비 / 최백호


(E) 결혼식장 소음


여     여보... 괜찮아?

남     한번만 더 물어보면 백번이야.

여     의사가 그렇게 말리는데.

남     지놈이 책임질거야? 내 딸 아버지도 없이 결혼식 올렸다고..

        그게 평생 한되면 지놈이 책임질거야?

        고쳐주지도 못할 거면서 별 간섭을 다해.

여     이리 와봐. 땀 난다 당신.

남     여보 당신 오늘 곱네.

여     (눈물 나지만) 당신이 나한테.. 곱단 소리도 다 하네.

남     고마워 여보.

여     .....

남     이렇게 이쁜 아이들.. 나한테 선물로 주고.

        평생을... 나한테 된장찌개 끓여주고.양말 빨아주면서.

        같이 살아줘서.

여     당신도 고마워. 평생... 내 옆에서.. 그늘이 돼 줘서...

남     ....

여     그 그늘 아래서.. 나 참 편안하고. 좋았어 여보.

 

(E) 결혼 행진곡


남     딸 아이의 손을 잡는다.

        그 작았던 아이가 이렇게 커서.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돼서.

        이제 내 곁을 떠난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맞춰 걸으면서.

        난 이제 내 가족을 위한

        마지막 그늘을 드리운다.

        창밖으로. 5월의 나무가. 푸르르게 아름답다.

 

(M) 주제음 (푸르른 날 / 송창식)













2008-05-14(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