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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3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33화 - 나에게만 사랑.


(M) 주제음 (휘성 - 안되나요)


(E) 비오는 소리

(E) 걸어 나오는 소리


여     봉덕씨. 

남     (끔찍한 듯) 당신 여긴 또 왜 온거에요?

여     이제 끝났어요? 한참 기다렸는데.

남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 그랬죠.

        내 말 못 알아들어요?

여     알아는 들었어요. 근데.. 그게 알아만 먹는다고

        쉽게 되는 일이에요?

남     뭐라구요?

여     너무 일방적이잖아. 당신 혼자만 끝났다고

        나까지 끝나는 거 아니잖아요.

남     지금 나랑 장난해요?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휘둘릴 생각 없어요.

        다시는 나타나지 마세요.. 제발.

여     그 여자한테 가려구?

남     뭐요?

여     민수정. 그 여자한테?

남     그래요. 수정이한테 갑니다.

여     그 여자를 사랑해?

남     그래요. 사랑합니다.

여     나보다 더?

남     왜 거기에 당신을 갖다붙여. 당신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웃기는 일이에요.

여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

남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왜 이래.

        내 인생에서 어쩌다 당신을 만나게 된건지...

        진짜... 후회스럽네요.

(M) 미워도 사랑하니까 - 다비치


(E) 걸어가는 소리


여     그 사람이 비를 맞으며 성큼성큼 걸어간다.


(E) 뛰어가는


여     비맞지 말고 우산 가지고 가요.

남     이러지 좀 마 제발!


(E) 우산 내팽개치고 다시 걸어가는


여     그가 내팽개쳐서 땅바닥에 떨어진 우산이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과 마음이 닿을 수 없다는 건

        비극이다.

        특히... 한쪽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나머지 한쪽의 마음이 돌아서 버렸다는 건....

        그래서, 다시 예전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건

        참을 수 없는 비극이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니다.

        누구보다 다정하고.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BG) 회상 -


(E) 의자 끄는 소리


여     앉으세요.

남     네.

여     그림을.. 배우고 싶으시다구요?

남     예. 

여     무슨.. 준비 하시는 게 있는건지..?

남     아뇨. 그냥 취미루요.

여     아...

남     그런 건 안 가르쳐 주시나요? 하긴.. 여기가 입시 미술학원이라..

여     아니에요. 저 혼자 하는 데구.. 규모가 작아서..

        저녁 땐 입시 미술을 가르치지만

        오전이나 오후반엔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도 가르쳐요.

남     아.. 저는 오전에 시간이 나서요. 그때 배우려구요.

여     가능해요.

남     다행이네요. 

        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여기서 꼭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여     네? 왜요?

남     그냥 다른 입시 미술학원이랑은 좀 달랐어요.

        학원 같은 느낌이 아니라.. 작은 갤러리 같달까...

여     아... 그렇게 봐주셨다니까 감사합니다.

남     여기 있는 그림들은 모두 선생님이 그리신 거에요?

여     네. 

남     주로.. 풍경화를 그리시네요?

여     풍경 속에 인물이 있죠.

남     아...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요.

        얼핏 보면 그냥 풍경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람이 있네요.

(M) 풍경 - 장동건 구본승


여     처음. 우리 미술학원에 학생으로 등록을 했던 그 사람은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미술학원을 찾았다.

        그는 늘 깔끔한 스웨터 차림이었고.

        막 세수를 하고 나온 사람처럼

        화한 스킨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손에는 늘 학원 옆 커피 가게에서

        처음으로 뽑아낸 맛있는 원두커피가

        들려 있었다.


(E) 커피 놓는


남     선생님. 드세요.

여     또 커피 사오셨어요? 매번 얻어먹어서 어떡해요.

남     아니에요. 저 혼자 먹기 그런데, 선생님이랑 같이 먹으면

        좋죠 뭐.

여     그런데요. 이런 거 여쭤봐도 되나..?

        뭐..하시는 분이세요?

남     아.. 저.. 영화감독 데뷔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여     어머.. 영화감독요?

남     아직.. 준비중이에요.

여     그래두요. 대단하세요.

남     (웃고) 데뷔도 못했는데 대단은요. 유학 갔다 와서 얼마 전에

        영화사랑 계약이 돼서 지금 시나리오 준비중이에요.

여     그러시구나... 그럼 한참 바쁘실텐데 그림 배우실 생각을

        다 하셨어요?

남     제 영화 여자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여     아...

남     저야.. 이쪽 방면으론 영 문외한이라서 여기저기

        인터뷰도 많이 하고 자료조사도 했는데...

        그걸론 부족하더라구요

여     그래서 직접 배워보기로 하신 거에요?

남     네.. 

여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말.

남     힘들어요. 매일 생각한다니까요.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인가... 

여     최소한 열정은 있는 거잖아요.

남     열정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여     그게 멋진 거죠.

남     그런데 있잖아요. 제일 불쌍한 게.. 재능은 없고 열정만

        넘치는 사람이거든요. 죽어라 해도 안되는데... 그렇다고

        포기도 안하는 거.

여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남     최소한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 일을 하고 있는 거겠죠?

여     (웃고) 그럼 됐어요.

남     저 오늘 인물 소묘 배울 차례죠?

여     네. 5분 뒤에 시작할께요.

(M) 다 줄꺼야 - 이승기


(E) 쓱쓱 스케치북에 스케치하는 소리


여     음... 선을 그을 때 그렇게 너무 힘주지 말구요.

        

(E) 쓱쓱 스케치하고..


여     이렇게...

        인물의 디테일까지 다 살리려고 할 필요는 없구요.

        일단은 본인이 그 인물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갖느냐..

        그걸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세요.

        그러니까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포인트를 두는 거에요.

남     선생님.

여     네?

남     제가 선생님 한번 그려보면... 안될까요?

여     네?

남     안되겠죠?

여     특별히.. 저를 그려보고 싶은 이유는요?

남     글쎄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을 그리면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에 가서... 사진 없이도 얼굴이 떠올라서

        이어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여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안다.

        이것은, 그 어느 것보다도

        멋지고 황홀한 고백이라는 것을.

(M) 아이처럼 - 김동률


여     그의 마음을 눈치 채고서도

        나는 특별히 그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요구대로

        인물화의 모델이 되어주는 정도밖에는.


남     어? 선생님 움직였다.

여     (웃으며) 이 정도 움직이는 건 괜찮아요.

남     안돼요. 저는 초보잖아요.

여     내가 그릴 땐 몰랐는데, 이것도 고역이네?

남     어? 죄송해요. 이거.. 제가 모델비라도 드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여     그런 얘기는 아니구요.

남     아니에요. 말난김에 언제 제가 밥 한번 살께요.


여     이 얘기 역시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이쯤에서 확실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 의자에서 일어나고


남     왜 일어나세요?

여     커피 한잔 먹고 할까요?

남     제가 내려가서 사올까요?

여     아뇨. 여기서 내려먹죠 뭐...


(E) 쪼르르 따르는 소리


여     날씨가 왔다갔다 하네요. 아까까진 좋더니..

        또 비가 오고...

남     선생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여     그러세요.

남     연애 해 본적 있으세요?

여     .....

남     있으실 것 같은데.

여     있죠. 헤어졌지만.

남     헤어져요? 

여     정확히 말하면, 채였어요. (웃고)

남     솔직히 선생님.. 남자들의 로망이잖아요.

        미모의 미술선생님. 그런데 왜 채여요?

여     사람 마음은 변하잖아요.

        참 이상하게... 내가 만나는 남자들의 마음은 쉽게도

        변하더라구요.

남     .....

여     그걸 잘 모르겠어요. 내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건지.

        아니면 쉽게 돌아서는 사람들만 내가 찾아다니는 건지.

남     아직 인연을 제대로 못만나서 그런 거 아닐까요?

여     그런 거라면 좋겠어요.

남     그런 걸 거에요.

여     나는... 누군가와 인연 맺는데 자신이 없어요.

남     ....왜요?

여     어렸을 때.. 늘..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는 걸 보고 자랐어요.

        싸웠다기보다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아버지에게 당하는 모습이었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세상과 인연을 맺는 데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여     그때 나를 보는 그의 눈빛에서 느꼈다.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겠구나..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구나...

        어쩌면.. 나도 정착할 수 있겠구나...

(M) 만약에 - 태연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여     그 후로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됐다.

        그 사람이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게 돼서

        많이 바빠지긴 했지만.

        우리는 틈틈이 만났다.

        그 시간이 우리에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E) 도시락 뚜껑 열고


여     배고프죠. 밤샘 촬영 있다고해서... 싸왔어요.

        다른 스텝들 건 준비 못해와서.. 몰래 부른 거에요.

남     아니.. 이걸 다...

        선생님 힘드실텐데...

여     (새초롬) 언제까지 선생님이라고 할 건데요?

남     아... 버릇이 돼서.. (웃고)

여     은서씨. 해봐요.

남     은서씨..

여     좋아요.

남     그런데 밤에 이렇게 이런 거 싸오고 그러지 마세요.

        힘도 들고.. 요새 밤길 위험한데...

여     차타고 왔다갔다하는데 뭐 어때요.

남     그래두요. 

여     그런데 전화 받기 힘들어요?

남     전화요?

여     요즘 전화하면 늘 꺼져있고.. 가끔 받아도 그냥 끊어지고.

남     촬영 때문에요. 미안해요.

여     아니.. 괜찮아요. 그래두 하루에 한번은 목소리 듣고 싶으니까

        전화해 주면 안돼요? 난 언제 해야할지 모르겠으니까.

남     그래요. 전화 자주 할께요.

(E) 나무 젓가락 뜯는 소리

여     젓가락 여기요. 많이 먹어요. 나름 열심히 준비한 거니까.

남     와.. 맛있겠다.

(M) 향기로운 추억 - 박혜경


여     그는 언제나 바쁘다고 했고.

        나는 별 불만이 없었다.

        내가 시간을 맞추면 되고.

        내가 찾아가면 되고. 내가 전화하면 됐으니까.

        사람에게 마음을 잘 못 여는 나였지만

        한번 열면 모든 걸 다 줘버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그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가 조금씩 쌀쌀맞아지기 시작했다.


남     촬영장에.. 이렇게 너무 자주.. 찾아오면 안되는데...

여     ....왜요?

남     다른 스텝들이... 좀 그래서...

여     아.. 미안..

        우리 얼굴 못본 지 2주일이 넘었잖아요.

        그래서.. 그냥 얼굴만 잠깐 보고 가려구 온건데.. 방해됐죠.

남     좀 그러네요.

        나 그러면, 뒤에 촬영이 남아 있어서 들어갈게요.

여     잠깐만요..

남     왜요.. 

여     언제 끝나는데요?

남     내일 아침에나 끝날 것 같아요.

여     그래요. 몸 챙겨가면서 일해요.

남     그래요. 


(E)가는 소리


여     괜찮았다. 내가 만났던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람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았지만...

        난 자신 있었다.

        이번엔 그렇게 무기력하게 떠나보내지 않을 자신이...

(M) 열흘만 - 제이


(E) 도마질 소리

(E) 부글부글 끓는 소리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     봉덕씨.. 

남     (깜짝 놀라고) 어떻게.. 집엔 어떻게 들어온거에요!

여     지난번에 봉덕씨는 비밀번호가 거의 1234라고 그랬잖아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구...

남     그래서 그거 누르고 들어왔다구요?

여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더라구요.

        비밀번호 당장 바꿔요. 그러다 도둑 맞겠어.

남     일단... 나가요.. 여기서 이러고 있음 어떡해.

여     나 지금 북어국 끓이고 있단 말이에요.

        봉덕씨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면 속이라도 풀고 자라구...

        좀만 기다려요. 다 끓었으니까.. 그거 먹는 것만 보구 갈께요.

남     (버럭) 나가라구요! 남의 집에 막 들어와서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여     남의..집이라뇨.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남     그럼.. 남이 아니면 뭐에요? 은서씨가 내 와이프라도 돼요?

여     뭐..라구요? 와이프는 아니지만... 우리 곧... 결혼하기로 했잖아요.

남     (기막힌) 뭐에요?

여     봉덕씨. 

남     지난번부터 얘기해야지.. 했는데.

        나 이러는 거 정말 싫거든요? 일단 나가요. 나가서 얘기해.

여     잠깐만요. 가스불은 끄고 나가야죠.

남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일단 나가자니까요?


여     그가 왜 그렇게 날 서둘러 내보내려 했는지

        다음 순간 알 수 있었다.

        

(E)대문 여는


여     대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거기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연출하고 있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다.

(M) 환상 - 박지윤


여     지금... 저 여자... 뭐에요? 민수정씨..맞죠.

남     보면..몰라요?

여     저 여자가.. 여기 왜 왔는데요? 설명해 봐요.

남     내가 그걸 왜 설명해야하죠?

여     설명해야죠. 최소한 설명은 해줘야죠.

        봉덕씨는 내 남자친구잖아요.

남     뭐라구요?     

여     그럼.. 아니에요?

남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만 소동 부리고 가주세요.

여     ...소동요?

남     (조금 멀리 다른 여자에게 얘기하는) 수정아. 미안. 조금만 기다려줘

        이 여자 보내고 자세히 얘기해줄게.

여     당신...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

남     그쪽이야말로 나한테 어떻게...

        좋은 마음으로 친절을 베푼 사람한테 어떻게...

여     그럼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말들은 다 뭐에요?

        보여줬던 눈빛들은 다 뭐에요?

남     내가 무슨 말들을 했는데요? 내가 어떤 눈빛을 보냈는데요?

        촬영장 놀러오고 싶다 그래서 오라고 한거요?

        오면서 도시락 몇 번 싸온 거요?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겁니까?

여     ...... 우리 관계가.. 정말 그게 다였다구요?


여     나를 마뜩찮게 보고 있는 그녀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변명이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밖에 없었으리라.

        난 힘없이 그 사람의 손에 떠밀렸고.


(E) 대문 쾅 닫히는


여     문이 닫혔다.

        닫힌 문 저 안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다른 여자가 함께 있는데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M) 사랑 안해 - 백지영 (처음부터) 


(E) 스케치하는 소리


여     늘 그랬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나의 끝없는 인내와 희생을 참지 못하고

        모두 떠나버렸다.

        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주기 위한 선물이었다.

        그 사람의 주소로 그림을 부치고 난 얼마 후.

        집으로 경찰이 찾아왔다.

        그 사람이 나를 고발했다고 했다.

        사생활 침해에 가택침입.. 그리고 명예훼손과

        협박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모든 죄목에는 증거가 존재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왜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스토커라고 부르고 있었다.

(M)   Come to Me / Bjork


(E)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여     얼마 후.. 그 사람이 마음을 바꿔서

        고소를 취하했다고 했다.

        오전 11시경.

        그 사람이 항상 미술 학원으로 찾아왔던

        그 시간.

        나는 경찰서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남     은서씨...

여     .... 

남     우리... 차 한잔 할래요?

여     네.. 그래요...


(E) 찻잔 소리


여     나를.. 스토커로 고발하셨죠? 증거품들도 함께.

남     그래요.

여     내가 보낸 그림도 증거 중에 하나였구요.

남     그래요.

여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난 순수하게...

남     은서씨. 정신 차려요. 당신이 그려서 보낸 건...

        수정이가 처참하게 죽어 있는 그림이었어요.

여     그건... 

남     도대체 당신과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뭘 실수한건지

        곱씹어봤어요.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상담도 해봤어요.

        당신이 나한테 보냈던 수많은 편지와 문자들..

        했던 말들은 도대체 어떤 의민지도 물어봤어요.

여     ...그건 나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잖아요.

        왜 의사한테 물어요 그런 걸?

남     당신은.. 관계망상증 환자에요.

여     뭐라구요?

남     은서씨 기억 속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여     ..................................


여     없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기억이 없다.

        난 그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     그렇지만... 그렇지만...

        봉덕씨는 나에게 모델이 돼 달라고도 했고...

        새로운 사랑이 오면 잘할 거라고도 했고....

남     그건... 그럴 수 있는 거에요.

        내가 은서씨를 사랑하지 않아도...

        미술학원이라는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이니까..

        모델이 돼 달라고도 할 수 있는 거고...

        새로운 사랑 앞에 당당해지라고 얘기해줄 수도 있는 거에요.

여     ........

남     하지만, 은서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은서씨에게 본의아니게 상처를 줄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여     .........그렇지만.. 난.... 난...

        왜 그렇게 믿었는지 모르겠어요.

        (거의 울먹이며) 난 한치의 의심도 없이...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어요.

남     당신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부터 배워야 돼요.

여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게?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받아들이는대로... 소통하면

        안되는 건가요?

남     안되죠. 당신한테 그게 사랑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한텐 고통일 수 있으니까.

여     내가.. 당신한테 고통이었다구요?

남     네. 명백히요.

여     ...... 어떡하죠... 나는 이제 영원히 사랑을 못할 것 같아요.....

남     ..... 정말 진심으로.. 은서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여     그걸 어떻게 알아봐요?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도, 나중엔 아니라고 했어요!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도, 내가 고통이라고 해요!

        내가...  신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남     .........그건...... 그래요. 그건 나도 몰라요.

        나도.... 그걸 몰라서 많이 실수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살아요. 

여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죠?

남     미안해요.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어요.


(E) 의자에서 일어서고


남     암튼 확실한 건.. 앞으로 우리는 만날 일이 없다는 거에요.

        찻값은 내가.. 계산할께요.


(E) 걸어가는


여     그 사람은 까페를 황급히 빠져 나간다.

        그제야.. 안갯속처럼 뿌옇던 진실들이

        맨몸으로 내게 모습을 보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랑이라고 느낀 건, 나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알면서 살아가는 걸까?

        지금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나에게만 사랑이아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 알까?

        그걸... 어떻게 증명할까?

        어쩌면 모두 다... 나처럼..

        관계망상에 빠져..... 스스로 위안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M) 주제음





2008-04-02(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