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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2일 (화)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 / 차 한 잔 하시죠
첫
곡 : Happy Ever After / Julia Fordham 영국 출신의 여가수 '줄리아 포드햄(Julia Fordham)'의 1988년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만 히트한 노래.
최중근
- 김밥 -
저는 3남 3녀중 막내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저보다 세살이나 많지만 늘 막내 며느리 라고 궂은일을 합니다. 지난 설에도 변함없이 고생하는 아내를 보니, 너무도 안쓰럽더군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잠든 아내를 위해 아침밥상을 차려 기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요리를 해 본지가 너무 오래 됐지만, 김밥과 어묵국은 해볼만하고 만만하더군요. 이른 아침부터,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그 재료를 지지고 볶고 준비를 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됐는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희집에 아이들이 넷이나 있다 보니, 쌀의 양을 좀 넉넉히 했는데, 그게 약간 양이 많았나 봅니다.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생쌀 비슷한,, 말 그대로 불면 날아갈 정도가 된 게 아닙니까? 밑에 밥은
그럭저럭 찰기가 있는 것 같아서, '뒤섞으면 되려니' 하는 마음에 양념을
하고 고루 섞었습니다. 그런데, 김밥을 말았더니만 밥알이 따로 놀며 김에서 자꾸 튀어나가더라구요. 김밥을 말기도 힘들거니와, 자르고 나면 전부
풀어져서, 재료들이 이리저리 각자 돌아다니니 무슨 대책이라도 필요했습니다. 정말 난감 하더군요. 곤하게 잠든 아내를 깨우기도 민망하고.......
고민과 생각 끝에, 양념된 밥을 밥솥에 다시 넣고 물을 약간 부은 후,
취사를 눌렀습니다. 그래도 효과가 없길래, 물을 더 부은 후, 전자렌지에도 돌려봤습니다. 그래도 밥알이 여전히 따로 놀길래, 냉동실에 있던 찬밥을
데운 후 섞었습니다. 하지만, 밥 색깔만 누렇게 변할 뿐, 따로 돌아다니는건 여전 하더군요. 끝내 저는 포기하고 아내를 깨워 사정 설명을 했습니다.
한참을 웃던 아내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는지, 밥알이 김에 붙지 않는
그 김밥을 맛있게 먹어주더군요. 저는 미안함에, 체하지 말라고 아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한 병 사다 줬습니다. 설 연휴 뒤, 정말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 김밥을 저녁까지 먹어야 했으니까요. 남자라도 가끔씩은 밥과 음식을
해봐야겠습니다. 갑자기 하려니 뜻대로 안되네요. 그래도 다행인건 어묵국은 맛있었다는겁니다.
신청곡: Home / Westlife
아일랜드 출신의 남성 그룹 ‘웨스트라이프’의 2007년 작품.
강은정
- 엄마와 미역국 한사발 -
지난 주말이 엄마의 5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는 줄곧 멀리 떨어져 생활하느라, 엄마의 생일에 함께 모여 밥 한 끼 하는 것 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겨우 전화통화로 “엄마 생일 축하해~ 이번에도 또 못내려갈 것 같네. 얼른 돈 벌어서 좋은 선물이랑 식사대접 할께요, 건강하세요~” 하며, 몇 마디 건네고 말았지만, 마음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몇 해전, 제가 중학생이고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을 막 졸업할 무렵, 매년 이맘때쯤인 엄마의 생일 때는 새뱃돈을 받은 후라, 저희 주머니 사정이 든든했지요. 그래서 동생과 저는 엄마 생일상을 거하게 한번 차려 보자고, 두 자매가 작전을 세웠습니다.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 조용히 냄비를 꺼내고, 전날 불려놓았던 미역 한주먹도 다시 한번 뒤적거려 보고, 미리 장봐놓은 목록을 하나둘씩 냉장고에서 꺼냈습니다.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마저 죽이며 몰래 끓이려던 미역국 한 사발. 갓 초등학교를 넘긴 두 자매가 무얼 알았을까요. 그저 요리책을 뒤적거려 적어낸 레시피 한쪽 달랑 들고, 100g이라고 쓰인 고기의 양이 도대체 얼만큼을 의미하는지, 한 큰술 두 큰술의 양도 넣을 만큼 넣었는데, 색깔이며 맛은 영 어머니가 끓여낸 그 맛이 나오지 않는겁니다. 날은 밝아오는데, 아직 미완성된 미역국을 앞에 놓고 동생과 머리 싸매면서 연구하고 또 연구했었지요. 저와 동생은 숟가락을 한손에 들고,
서로 맛을 보여주며 “언니 이 맛이 아니야. 그지? 엄마가 끓인 건 이것보다 조금 더 푸른빛이 나고 맛있었단말야. 뭐가 덜들어간거지?” 그러면 저는
또다시 소금을 조금 넣어보곤, “이건 어때? 좀 맞는거 같애?” 하며, 간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날은 밝았고, 엄마는 일찍 일어나 저희 자매의 얼굴을 바라보며, 절대 맛있을리 없는 검은 미역국에 크게 감동 받으셨습니다. “어머! 이거 어떻게 끓인거야? 너무 맛있다~ 이래서 딸키우는 맛을 느낀다니까 내가~” 하며 더 크게 칭찬해주시고, 미역국 한사발에 밥한그릇을 뚝딱 말아잡수셨습니다. 그때 엄마의 사랑을 진하게 느꼈답니다. 엄마 부디 건강하시고, 내년 생일엔 맛있는 미역국이랑 잡채해서 생일상
차려드릴께요~ 사랑해요~
신청곡: Yesterday Yes A Day / Jane Birkin
영국 출신의 샹송 가수 '제인 버킨'의 1977년 작품.
최지록
- 가슴을 울린 아버님의 한마디... -
저는 결혼 7년차 주부입니다. 24살.. 어린나이에 시집을 와서인지 시아버님은 저를 며느리로 생각하시기 보다는 막내딸로 귀여워 해주셨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직장을 다니시면서 직원들을 거느리는 아버님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집에서도 식구들을 직원 다루시듯, 잘못한 일을 지적하시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지요. 임신을 했을 때 아버님께서는 저의 손을 붙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며느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사랑한다..." 이렇게 자상하시던 아버님께서 3년전 간암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면서 10번이상의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많이 힘이 드셨을 텐데.. 힘드시다는 내색한번 안하시고 씩씩 하시던 아버님께서 올초에 크게 허리를 다치셔서 이제는 누워만 계십니다. 그때부터 아버님은 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쉽게 짜증을 내고, 화내시고 식사도 잘 못하시고... 하루가 다르게 외소해 지시는 아버님을 뵈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간호 하시느라 힘든 어머님 식사 챙겨드리고, 아버님 안마해드리고
말벗이 되어드리는 것 외에는 없더라구요. 하루도 빠짐없이 시댁을 오가면서 힘은 들었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드리고 싶은 맘 뿐이였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께서 제 손을 조용히 잡으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가야.. 정말 고맙다.. 내가 너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지.. 우리 며느리랑 손자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눈물이 나는구나..."
저도 울고, 아버님도 울고,,, 저의 맘을 알아주시는 아버님께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제 소원은 한가지입니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이라도 드시고 싶은 거 맘껏 드시고, 여행도 하시는 겁니다. 이제껏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시다가 조금 쉬어가려고 할 때 찾아온 병마가 참 밉게 느껴지지만, 이로 인해 가족들이 더욱 아버님을 생각하게 되고 서로 화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사랑해요.. 그리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신청곡 : You Light Up My Life / Debby Boone
미국 출신의 컨트리 여가수 '데비 분'의 1977년 작품.
박나림의
차 한 잔 하시죠
김혜경님
사연
서순자
- 겨울철 빨래와 빨간 동태국 -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나는 일요일 아침이면
전축의 턴테이블 위에,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피아노
소품곡이 수록되어 있는 LP판을 조심스레 올려놓고 하루를 시작하던, 꿈이 예쁜 여고생이었답니다. 하지만 엄마는 마치 팥쥐 엄마처럼 우리 두 자매의 영롱하고도 달콤한 휴일아침을 눈엣가시처럼 그냥 넘기실 분이 아니었죠.
우리 집, 열 두식구가 벗어던진 빨랫감을 따뜻한 비눗물에 넘치도록 담가놓고선, 언니와 날 우물가로 목청껏 불러내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 집 12식구들. 그것도 키가 장난이 아니게 컸던 우리 집 남자들의 빨래를 언니와 내가 맨 손으로 일일이 비누칠해서 빨래판에 문질러가며
해댄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무장갑도 귀했던 시절이었으니, 빨래가 끝나고 나면 새빨갛게 얼어버린 손은 곱아서 쉽게 움직여지지도 않을 지경이 되고 말았답니다. 펌프가 있는 우물가에 산처럼 쌓여 있는 겨울빨래를 하는 일은, 바라보기만 해도 두려움 그 자체였답니다. 아침밥 먹고 시작한 빨래는 점심때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끝날 정도였으니까요. 빨래를 해서 옥상에 널어놓으면 빨래줄은 또 그 무게를 못 이겨 툭 하고 끊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빨래를 주워 일일이 다시
행궈야 했지요. 지금보다 혹한의 그 겨울, 빨래를 널기 바쁘게 동태처럼
뻣뻣해지고 고드름을 매달기 일쑤였던 빨래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께선
“내 새끼들 고생했다” 하시며 무 넣고 고추 가루만 풀어 끓인 빨간 동태국에 새로 지은 흰 쌀밥을 해서 따뜻하게 먹게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동태국만 보면 유난히도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나봅니다.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던 할머니의 동태국 맛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잊히질 않습니다.
신청곡: Maidens' Prayer (소녀의 기도) / Hans Kann
오스트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한스 칸’의 1998년 연주곡.
구혜진
- 꼬마가 본 숭례문 화재 -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말려주는데 여덟살난 딸아이가 갑자기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우냐고 했더니 엄마는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보물
숭례문이 타버렸는데, 슬프지도 않냐고 하면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덟살 어린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어른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눈물이 나면서도 한편로는 잠시 혼동스러웠습니다. 이제 겨우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데, 아이의 감성은 이미 어른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철이 없고 말을 안듣는 미운 여덟살은 저도 모르는 사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숭례문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차를 타고 지나가다 한 번 바라봤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유심히 한참동안
응시하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보물이 무엇인지, 국보가 무엇인지 한참을 설명해 주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아이는 이미 아는 것을 뛰어넘어
그 소중함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까지 느끼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를 너무 가볍게만 바라보고 대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였습니다. 나라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아픔과
울분은 단지 저 혼자만이 느끼고 있는 아픈 감정이 아니란걸 깨달았습니다.
어찌 보면 아이가 너무 조숙해 걱정스럽고 자칫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불안감이 앞설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눈에 비친 따랑이의 모습은 너무도 대견했습니다. 슬프게 엉엉 우는 딸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독이고 위로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저도 모르게 대견스럽고 어른스럽게 자라나는 딸아이를 좀 더 보듬어 주고 다독여주며
아이의 감성이 더 자라날 수 있도록 격려해야겠습니다.
2008-02-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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