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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2일 (화) 골든디스크 / 차 한 잔 하시죠
첫
곡: Snow / Claudine Longet
신경미
- 빨간 내복의 추억 -
"아니,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무슨 치마를 입고 가니? 멋내려다 얼어죽겠다. 빨리 따뜻하게 내복입고 가거라.." 요즘 저희 엄마가 저 출근할때마다 늘상 하시는 소립니다. 그럼 전 "아, 엄마! 늦었어요. 저 그럼 다녀올게요"하며 후다닥 집을 빠져나옵니다. 참 그러고 보면 예전엔 내복을 겨울 내내 늘상 입고 살았는데.. 성인이 된 후엔 내복 입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내복을 입으면 괜히 답답하고 둔해보이고 해서 잘 안입게 되더라구요.
사실 요즘엔 무슨 패션내복이다 기능성내복이다 해서 내의 디자인도 세련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예전에 저 어렸을 적엔 알록달록한 무늬며 예쁜색내복을 어디 구경이나 했나요. 그냥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주시는 단색의.. 그것도 아주 촌스러울 정도로 새빨간 내복을 입고 살았지요.
지금도 그 예전 빨간내복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잊을 수 없답니다.
엄마가 사다 주신 내복을 하도 오래입어서 소맷부리가 너덜너덜해지고
무릎부분이 다 헤져서 구멍이 나면.. 엄마한테 "엄마! 내복이 다 닳아서
구멍났어요. 빨리 새걸로 사주세요" 하며 엄마한테 조르곤 했죠.
그럼 엄마는 들은체도 안하시고 내복을 갖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여기 저기 닳은 곳에 천 조각을 대서 그 자리를 다시 메워 주셨습니다.
그런 엄마의 절약정신 때문에 그 당시 보온메리를 입으셨던 아버지는 물론이고, 오빠와 언니, 그리고 저는 웬만해선 새 내복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답니다. 그 당시엔 여기 저기 헤진 빨간 내복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 그때의 철없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저 아름답기만한 추억들이네요.
자식들이 취직하면 첫 월급날 제일 먼저 부모님께 내복 선물을 하곤
하잖아요. 저도 첫 월급 탔을때 제일 먼저 저희 엄마한테 빨간내복 사드렸거든요. 그때 너무도 좋아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흐뭇해진답니다. 엄마의 내복을 보면서 그 예전 빨간 내복에 대한 추억이 더 절실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쩜 저도 결혼을 하고 나이를 더 먹으면.. 저희 엄마처럼 그 예전의 다소 촌스럽긴 하지만 웬지모르게 정이 가는 빨간내복을 입고 다닐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청곡: Only Time / Enya
아일랜드 출신의 뉴에이지 여가수 엔야의 2001년 작품.
황현국
- 디지털의 편리함에 익숙하지 않은건 무엇때문일까요?? -
저는 3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80년대 초반 컬러TV가 처음 나왔을 즈음에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사주신 Gold..... 에서 출시한 카세트 라디오는 친구이고 제 안식처였습니다. 형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저는 나이에 밀려 보고 싶은게 있어도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채널이 그다지 많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뭘 보려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더군요. TV를 대신해 저는 잘 잡히지도 않는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가며 맞추었고, 그래도 잘 안잡히면 안테나로 이리저리 잘
나올때까지 맞춘 기억이 납니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되감기와 재생을 반복하며 종이에 노래가사를 적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런 식으로 힘들게 손으로 써가며 외우면 노래가사가 쉽게 잘 외워졌는데, 지금은 그때처럼 잘 안외워지더군요. 원하는 곡, 원하는 부분만을 반복해서 들을수 있는 디지털의 편리함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왜 잘 안 외워지고
익숙하지 않은걸까요. TV를 켜면 어렸을 적보다는 수십배나 많은 채널이
있는데도 예전이 더 그리워지는건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아련함과 애틋함이 지금 이 시대에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먼 미래에는 제가
느끼고 있는 추억의 아련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신청곡: Sara Perche Ti Amo(사랑하기 때문에) / Ricchi E Poveri(리끼에 뽀베리)
샤를로뜨 갱스부르 주연의 청춘 영화 '귀여운 반항아'의 주제가로 이탈리아 출신의 칸소네 그룹 '리끼에 뽀베리' 1981년 작품.
이경신 (음악에세이 스토리 공모에 보내주신
글)
- 엄마의 화장대 -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몇 해 전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서울 살이를 하면서, 부모님과 많은 정이나 대화를 나누면서 살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몇해 전, 30년 넘게 다니시던
직장에서 정년퇴임하셨습니다. 정년 퇴임하던 해에,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노년에 올수 있는 우울과 무력감이 아마도 엄마에게 다가온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쁜 직장 생활에 엄마의 그런 일상에 대해서
염두에 두지 못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영화티켓이 생겨서 친구랑 영화를 볼려고 했는데..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랑,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 엄마, 저랑 영화 같이 보실래요 ? "
" 영화는 보고 싶은데, 입을 옷도 마땅치않고..걱정이다.."
" 그냥 대충 입고, 화장하시면 되요.." 저는 그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면서.. 엄마의 화장대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한집에 살았어도, 그러고 보니 부모님 방에 들어올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엄마의 화장대를 보면서 두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화장품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화장품 살때 제가 얻은 샘플 몇개가 다였습니다. 저는 제방으로 도망치듯 왔지만 눈에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껏 엄마에게 얼마나 무심한 딸이였는지.. 너무 죄송했습니다. 저는 그날,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본후에.. 제가 자주가는 화장품가게에 들러서.. 엄마나이에 맞는 기초화장품부터, 색조화장품까지.. 구입해서 선물해드렸습니다.. 엄마랑 화장품가게를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는 제 손을 잡아주시면서.. " 고맙다 우리딸, 이래서 딸이 좋은가보다.."
" 엄마, 제가 죄송해요..이제껏 엄마한테 너무 무심했어요.."
집에 와서, 사가지고온 화장품들로 화장대를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엄마와 저는 많이도 흐뭇해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것저것 발라보시면서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셨습니다. 오랜만에 행복한 미소짓는 엄마 얼굴이 너무도 좋아보였습니다. 그일을 계기로, 엄마에게 무심했던 제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반성을 했답니다..
신청곡: Happy Heart / Andy Williams
미국 출신의 백인 스탠더드 팝 가수 '앤디 윌리엄스'의 1969년 작품.
박나림의
차 한 잔 하시죠
이금미님
사연
이미경
- 아버지의 반숙프라이 -
어제저녁, 남편이 밥맛이 없다길래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냉장고속의
야채를 총 동원하여 볶다가 밥을 넣고 김가루도 뿌려 내오니 아이들까지
달려들어 금세 동이 났습니다. 밥이 조금 모자란듯해서 이번엔 김치를
숭숭썰어 볶다가 밥을 넣어 볶아줬더니, "이야~이게 더 맛있다" 하며 남편과 아이들의 숟가락전쟁이 났습니다. 역시 우리입맛엔 김치가 제일인가 봅니다.
저는 이렇게 볶음밥을 할때면 어렸을적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는 늘 누런 마아가린을 한술 크게 떠서 하얀 밥에 쓱쓱 비벼 드셨지요.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맛나다며 아버지가 한술 떠먹여 주시곤했는데, 그 맛이 밍밍하니 제 입맛엔 영 아니올시다 였거든요.
“맛이 뭐이래 맛없어서 안먹어요”하며 끝내 삼키지 못하고 상위에 뱉어버렸답니다. "뱃속에 기름기가 있어야 힘이 나는거야." 하고 아버지는 그 누런 밥을 잘도 드셨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 밥주발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동생과 발장난을 벌이다 아랫목 담요에
묻어둔 아버지의 주발을 엎은겁니다. “앗뜨거!” 하는 동생의 비명보다
담요자락에 쏟은 밥이 더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담요를 펼쳐보니 주발이 엎어진채로 노오~란 액체가 밥알에 물들어 있는게 아니겠어요? 밥속에 묻어둔 반숙 프라이가 터진거였습니다. 그걸 본 순간, 엄마한테 혼날까봐 감쪽같이 치우려던 제 마음은 이내 서운한 맘으로 바뀌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숟가락을 가져와 반찬도 없이 그 밥을 다 먹어버렸어요
"맛있지?" 동생은 고개만 끄떡일뿐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었던지,
"엄마한테 혼나면 어떡해?" 하고 저의 눈치만 봤습니다. 저 또한 엄마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다 먹었으면 빈그릇 가져와야지" 하시는 겁니다.
놀란 동생이 "엄마 어떻게 알았어요?" 하니까, "이제 너희들도 계란프라이 해줄게" 하시며 다시 아버지 밥을 앉히셨지요. 지금은 초코파이 한상자보다 더 싼 계란한판 값이라죠? 그래서인지 그때의 계란 프라이 맛을 찾을 수가 없군요. 옛 추억과 함께 그때 훔쳐먹었던 그 노오~란 반숙프라이의 맛이
그립습니다.
신청곡: If / Bread
미국 출신의 팝록 그룹 ‘브레드’의 1971년 작품.
양완승
- 음악을 좋아하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
저는 대전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엔 취미로 배우시는 분들도 있고, 전공을 위한 입시반도 있고, 초등학교 꼬마 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직장인 분들도 계십니다. 모두가 제 제자들이고 절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맘때 쯤이면 고3 아이들의 정시 실기고사가
끝나갈 무렵입니다. 어떤 아이는 좋은 대학을 갔다며 웃고, 어떤 아이는
떨어진 슬픔에 선생님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참 애매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이 힘든 시기를 홀로 이겨내고 있는 제자들을 위해 몇마디 적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지금의 네 자신이 실력이 없거나 또는 누군가에게서 그렇게 평가 받았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 음악을 좋아하고 알아가는데 있어서 단거리 선수같은 빠른 스타트나 스피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천천히 뛰면되고...힘들면 걸으면서 주위 풍경도 둘러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남들보다 조금 뒤쳐진것 같다고 해서 조급해 하지 말고, 정말 자기 자신이 음악을 사랑해서 행복해 질 수 있고, 나의 음악으로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 자체를 배우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느끼고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뿐, 대학을 가기위한 도구는 아니다.
입시 제도나, 부모님의 기대 등 여러 주위 환경 요인에 의해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그저 좋아 하고 즐기면 되는 것.,.. 그것 뿐이다. 사랑한다 제자들아^^
2008-01-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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